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3/27 [15:46]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부활절이 다시 돌아왔다. 이날이 오면 교회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며 승리의 노래를 부르게 된다.

 

부활절은 교회가 기념하는 가장 신나는 명절이다. 많은 교회들이 한 곳에 모여 교파를 초월한 연합예배를 드리며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부활의 복음을 선포한다.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부활절이 아니라 부활 그 자체이다. 사실상 부활의 축제는 매 주일마다 행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여 매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왔으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점을 두게 되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일요일을 주일(主日)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일마다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을 누리면서 감격에 넘치는 예배(축제)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담긴 부활절이 되어야 할 것이다.

 

부활은 다시 일어나고 살아나는 생명, 그 자체이다. 다시 살아나야 할 생명이기에 성경은 죽음을 가리켜서 잠을 자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예수님은 잠자는 자들을 깨우듯이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명령하셨다. 그러자 소녀가 잠에서 깨어나듯이 살아났다 (막 5:41-42),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장례 행렬을 멈추신 예수님은 청년에게 부활을 명령하셨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눅 7:14-15). 청년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일어났다. 다시 일어남은 청년 자신의 의지가 조금도 없었다.

 

이러한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도 없다. 부활을 명령하니 명령대로 모두 살아났다. 역사상 기독교는 부활을 증언하는데 목숨을 걸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고대하는 그날이 있다 (고전 15:51-52). 그날의 부활은 오늘 이 땅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체험되어야 한다.

 

부활의 명령은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명의 명령으로 이어진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사 60:1-4).

 

그렇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혼자 희희낙락할 일이 아니다. 빛을 비추어야 한다. 부활은 많은 사람을 옳은 대로 돌이키게 하는 찬란한 빛의 사명을 품고 있다.

 

부활은 반드시 빛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그 빛은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데 쓰임 받는 빛이어야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이 명령에 응답하는 것이 부활 생명으로 거듭난 우리 모두의 몫이다.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을 넘고 물 건너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가 502장) 〠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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