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눈물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6/26 [12:11]

오늘 우리는 훌륭한 다윗의 생애에서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며 처절하게 울고 있는 다윗왕의 모습을 본다. (삼하 18:33)

 

우선 그의 눈물에서 부모의 지극한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아버지를 향하여 반역하고 백성의 마음을 도둑질하여 반란을 일으킨 불효 막심한 아들이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수많은 군대를 동원해서 전쟁을 벌였다. 그런데도 다윗은 진압에 나선 수하장군에게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우해달라”고까지 부탁한다.

그러나 요압은 이런 놈을 살려두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여 그를 단칼에 죽여 구덩이에 던지고, 분노의 돌무더기를 쌓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은 달랐다. 아버지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면서 통곡였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부모의 마음은 하나님 사랑 다음으로 인간 사랑 중에 가장 귀한 사랑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한다. ‘아가페’ 사랑은 조건을 요구하지 않는 사랑일 뿐 아니라, 모든 조건을 뛰어 넘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사랑하셨다. 하나님을 반역하고 대적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퍼 통곡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통하는 사랑이라고 볼 수 있다.

 

부모의 자녀된 우리 모두는, 우리를 이렇게도 사랑할 수 있는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하겠다. 그리고 나아가서 우리는 모든 사랑을 뛰어넘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을 알고 감사하고, 기쁨으로 경배해야 하겠다.

 

그리고 다윗의 눈물 속에는 자식을 사랑하는 눈물뿐 아니라, 자기의 허물을 돌아보며 슬퍼하는 눈물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생각할 때, 누구를 원망하거나 나무랄 문제가 아니었다. 아비인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것이다.

 

사실 다윗의 가정은 매우 복잡했다. 단순한 가정의 테두리를 넘어서 많은 첩들이 있었고, 배다른 자녀들이 많았다. 다윗은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자녀들을 잘 보살피지 못하고, 자녀들에게 좋은 본을 끼치지 못한 자신의 범죄로, 가정에 불화가 계속되는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며 슬피 운 것이다.

 

가정이란 자녀들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교육의 장소이다. 가정교육이 안되면 모든 교육은 그 효과를 얻을 수 없다. 죽은 아들을 위해 울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녀를 위한 눈물은 양육을 위한 눈물이어야 한다.

 

자녀를 신앙으로 기르기 위하여 마음을 쏟아야 하고 눈물로 기도해야 한다. 이런 눈물이 값지고 보람 있는 눈물이라고 할 수 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5).

 

우리는 지금 자녀 신앙교육의 위기를 맞고 있다. 내가 옛날 주일학교를 담당하고 있을 때에는 어른이 100명 모이면 어린이는 200명쯤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반대가 되었다.

 

독자 여러분은 우리 자녀들에게 인격과 생명이 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생명의 양식인 성경을 가르치는 데 얼마나 관심이 있는가? 집에서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우리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세속적인 가치관이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이 바로 자녀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뒤를 따라오며 울고 있는 여자들을 향하여 “예루살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바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주시는 말씀이 아닐까?〠

 

홍관표 | 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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