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구상에 남다른 수난의 역사를 지닌 나라가 이스라엘과 우리 한국 민족인 것 같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 년간이나 노예 생활을 하며 압제를 당하며 살았다. 그러면서도 히브리인들은 용케도 인내하면서 민족성의 동일성을 유지해온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다른 민족 같으면 벌써 애굽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민족은 끈질기게도 민족의 동일성을 유지해 오다가 430년 만에 극적으로 해방된 민족이다. 그렇지만 그들 역사를 보면, 해방된 후 500년을 살다가 다시 남북으로 분단되고, 200년 후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완전히 망해버리고 만다. 그리고는 긴 세월을 세계 각지로 흩어져 나라 없이 방황하면서 살게 된다.
그러다가 근세사에 와서 겨우 독립은 했지만, 독일 히틀러에 의해 6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히브리인들이 무참하게 학살을 당하는 비극을 겪는다. 참으로 참혹한 역사이다.
여기에 비하면 우리 민족의 역사는 비교도 될 수 없지만, 우리도 일제로부터 36년 동안 압제 받았던 민족이다. 그 36 년은 철저하게 빼앗겼던 암흑의 역사였고 수탈의 역사였다.
그후 우리 민족은 해방은 되었지만, 다시 6.25 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서 나라가 분단된 채 열강들의 틈에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의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고 말씀한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할 일이 많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 가운데 우리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사명은 나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 나아가시는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 울면서 기도하고, 가슴을 치면서 기도하고, 옷을 찢으면서, 금식하며, 밤을 새우면서 기도했다.
오늘 우리들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나라를 비판하기는 쉽다. 통치자들을 흠잡기는 쉽다. 그러나 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얼마나 울면서 하나님께 매달려 보았는가?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는 자신을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
모세는 거역하는 자기 백성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내걸고 기도하지 않았는가? 아브라함은 어떠했는가? 그는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기도했다.
“오! 주여! 제가 마지막으로 간구합니다. 노하지 마옵소서! 소돔과 고모라 땅에 의인 열 사람이 있을진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성을 심판하시겠습니까?” (창 18:24).
소돔과 고모라가 아브라함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곳은 죄악이 관영한 땅이었다. 멸망 받아 마땅한 땅이었다. 그러나 그 성에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있기 때문에 “내 동족이 죽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입술이 마르도록 하나님께 구하여 매달려 기도했다. 우리는 분단된 조국, 특히 북한에 억눌려 있는 동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삼상 12:23), 그는 기도하기를 쉬는 것을 죄라고 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우리가 지금까지 수없이 죄를 짓고 있었지만, 그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지낸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제부터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피곤하다고, 바쁘다는 이유로 조국과 민족을 위한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무엘처럼, 아브라함처럼, 모세처럼 기도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기를 바란다. 금년 8.15 광복절 기념을 기해 우리 교계에 Prayer Movement가 일어나게 되기를 기원한다.〠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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