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주일을 기념하면서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3/09/25 [15:48]

10월 마지막주일은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개신교회들이 교회 개혁을 기념하는 개혁주일이다. 우리는 개혁이라고 할 때 개혁이라는 말의 뜻을 알아야 한다. 영어로는 개혁을 ‘Reformation’이라고 한다.

 

개혁은 혁명과 다르다. 혁명은 곧 ‘Revolution’이라고 하는데 과거를 완전히 부정해 버리고 뒤집어 엎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은 다르다.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변질된 것을 없이하고 다시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개혁의 본질이다.

 

초대교회에 그 순수했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종교개혁주의자들이 부르짖던 취지였다.

 

주후 4세기 로마황제 콘스탄틴이 예수를 믿게 되고 그리스도의 교회가 로마의 국교로 변했다. 이에 따라 교회의 본질이 달라졌다.

 

본래 교회는 예수님을 본받아 종처럼 백성들을 섬겨왔는데 (막10:45), 이제부터는 로마제국의 보호 밑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권력기관이 되었다. 교회가 행하는 예배는 휘황찬란한 국가의식으로 변했다. 예배당의 모양은 하늘을 찌르는 듯한 성당이 되었다.

 

울긋불긋한 금빛 찬란한 옷이 교직자들의 제복이 되었다. 금과 은으로 장식한 계단이 예배당으로 들어왔다. 교회의 조직도 로마제국의 조직과 닮아졌다. 로마제국에 황제가 있듯이 교회에 교황이 생겼다. 로마제국에 중앙정부가 있듯이 교회에도 중앙정부가 생겼다.

 

로마제국에 지방장관이 있듯이 교회에도 지방감독이 생겼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교직자는 이때부터 신부로 변했다. 신부(神父) 는 하나님 아버지의 대표자라는 뜻이다. 교황은 예수그리스도의 대리자로 온 세상에 있는 교회를 통치하는 임금이 되었다.

 

주후 13세기이르러 교황 이노센트 3세 (1198-1216 재위)는 이렇게 선포했다. “교황의 세력은 해와 같고 세상 임금의 세력은 달과 같다” 이처럼 교회의 세력이 커지자 교회 안에 부패가 스며들었다.

 

부패한 교직자들 가운데 사치하고 오만이 나타났다. 그러니까 교회에 신령한 면은 약해지고 교회는 세상에서 권력을 행하는 권력기관으로 타락되었다.

 

결국 로마교회는 중세기에 사회 형태와 같았다. 교회는 사회에 일부와 같았고 사회는 교회의 일부와 같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따금 교회에 이단이 일어났다.

 

이단은 교회가 가르치는 교리에 어긋나는 논리이다. 그런 이단을 막기 위해 교회는 종교재판소 (Inquisition)를 설치했다. 종교재판소에는 이단을 찾아내어 심문하고 처벌하는 검찰이 생겼다. 이단자는 교회의 교훈에서 어긋나는 사람이기에 고문하여 이단자라고 판결하면 그 재산을 몰수하고 반은 로마제국에, 반은 로마교회가 차지했다.

 

그리고 이단자는 불에 태워 죽였다.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이 죽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직자들의 감독 밑에 많은 사람이 고문을 당하고 죽었다. 이때에 교회는 무섭고 악독한 기관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세워진 교회가 무섭고 악독한 기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회가 세상권세와 합세하여 잘못되면 그렇게 되기 쉽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독일에서 태어난 사람이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년 11월10일 출생) 그는 1517년 10월 31일 그가 섬겼던 위텐버그교회 정문 앞 계시판에 95개조항에 항의문을 발표함으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게 되었다.

 

루터가 항의문을 발표한 직접적인 동기는 그 당시 교황이었던 레오 10세가 베드로 성당건물을 짓는데 부족한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속죄표를 파는데 대한 부정성을 모두 95조항을 나누어 항의문을 발표하게 된 것이다.

 

속죄표는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속죄표를 사기만 하면 면제된다는 괴변인 것이다. 루터를 위시하여 개혁주의자들이 강조한 것은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이다.

 

종교개혁은 506년 전에 일어난 역사적 사실이지만 은밀히 말하면 종교개혁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한다. 성경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 과제는 이땅에 성도가 있고 교회가 있는 한 계속 되어야 할 과제임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홍관표|본지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 홍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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