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예뻐요?

엄상익/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4/09/20 [12:15]

▲ ©Ralphs_Fotos     

 

지하철 안에서였다. 노약자석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도 될 자격이 있는 나이였다. 한 정거장에서 문이 열리고 한 여성이 탔다. 지쳐 보이는 얼굴에 나이도 나보다 몇 살쯤은 위로 보였다. 

  

내 앞의 열차가 연결되는 부분의 문 옆에 등을 기대고 섰는데 몹시 피곤해 보였다. 자리를 양보해 주고 싶었는데 나도 힘들었다. 나는 모른 체하고 그대로 버텼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두 정거장 지나자 내 옆 자리가 비고 그 여성이 내 옆에 앉았다.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다음 정거장에서 또 어떤 노인이 차 안으로 들어와 앞으로 다가왔다. 그 노인도 기력이 없어 보였다. 자꾸만 마음이 불편해졌다. 조금 전 내 옆에 앉았던 여성이 얼른 일어나면서 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자기가 힘드는 데도 그렇게 하는 것이다. 양보 못 한 나의 마음이 다시 불순물이라도 낀 듯 찜찜해졌다. 자리를 양보받았던 그 노인이 다시 일어나 차에서 내리고 지쳐 보이던 그 여성이 다시 내 옆에 앉아 가고 있었다. 

  

내가 조용히 그 나이든 여성에게 한마디 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예쁘세요?”

  

“당연한 거죠.”

  

그녀는 주저 없이 말했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 다리가 조금 아프다고 당연한 걸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지하철을 타고 다시 돌아올 때였다. 에어컨 작동이 안 되는지 차 안이 더웠다. 열대야가 한 달 동안 계속되고 있다고 방송들의 수다가 대단했다. 

  

옆에 앉아있는 노인이 손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이상하게 바람이 내쪽으로 오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살짝 옆을 돌아보았다. 그 노인이 일부러 나에게 바람이 오도록 부쳐주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는 계속 내게 바람을 보내주고 있었다. 분명히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선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착하세요?”

  

내가 그 노인을 보며 물었다. 그 노인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제 조용한 바닷가 나의 방에서 글을 쓰고 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집 앞에 세워둔 내 스파크 차의 창문이 열려 있어 비가 들이치고 있다는 것이다. 차 옆의 전화번호를 보고 누군가 알려준 것이다. 

  

삼 년 전 구입한 값싼 중고 경차였다. 나는 그런 차가 편했다. 수시로 닦고 돌보고 차가 상처라도 입을까봐 걱정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낡은 청바지를 입고 길가에 앉는 편안함이라고 할까.

  

내가 집 앞의 차가 서 있는 곳으로 갔을 때였다. 전화로 들은 대로 양쪽의 차창이 열려있었다. 그런데 차의 지붕 양쪽에 누군가 판지를 얹고 그 끝을 살짝 접어 차양같이 만들어 비가 들이치지 못하게 해 놓았다. 도대체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할 사람이 없었다. 

  

아내는 서울에 있다. 호젓한 바닷가에 가까이 지내는 이웃도 없었다. 도대체 누가 이랬을까? 

 

분명 천사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그랬을 것 같았다. 내 가족의 차라도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근처의 해안로에 보훈회관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거기 와서 일하는 인부 밖에는 내 차 옆을 지나갈 사람이 없었다. 이따금씩 내 차 옆에 공구를 실은 트럭을 세워두는 건설 현장의 기술자들이 있었다. 

  

잠시 후 내 앞을 지나가는 인부가 보였다. 백발이 섞인 짧게 깎은 둥근 머리의 오십 대 말쯤으로 보이는 남자였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혹시 여기 내 차에 판지를 덮어준 분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가 짧게 대답했다.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착해요?”

 

“허허”

  

그는 미소를 한 번 짓고는 말없이 공사장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의 행동이 큰 감동의 물결이 되어 마음의 절벽 위로 치솟아 올라 하얀 거품을 일으키고 있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운 회색에서 아름다운 원색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다. 세상을 영롱하게 하는 것은 국회나 방송에서 하는 거친 담론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작은 배려나 사랑이 아닐까. 

  

지나가는 사람을 보며 최소한 세 사람에게 미소를 지어보라는 짧은 글을 읽은 적이 있다. 풀꽃 같은 작은 행동들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 것이다. 거친 세상의 사이사이에 천사들도 많은 것 같다.〠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 엄상익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