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뉴스 시간은 연기가 난다. 명태균이라는 인물이 대통령과 거물 정치인들을 불태우고 있다. 이 불에 바람을 보태는 사람도 있다. 명태균을 담당하는 여성 변호사인 것 같다. 매일 폭로전이 벌어지고 있다. 내용은 간단한 것 같다.
대통령 부부가 명태균의 부탁을 받고 김영선 의원이 공천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김영선 의원은 그 대가로 세비의 반을 지급했다는 내용인 것 같다. 이런 저급한 폭로전에서 설익거나 날것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지방대학을 나와 이십대 중반까지 소젖을 짰다는 명태균의 운명에 맞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든 것 같다. 국회의원 서울시장 대통령 선거의 판을 자기가 다 짰다고 떠들어 대고 있다. 대통령 부인과의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설익어 있었다. 그리고 감옥으로 갔다.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자기가 구체적으로는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부인이 사과를 잘 하라고 해서 한다는 투였다. 진실해 보이기는 했지만 뭔가 설익은 느낌을 받았다.
인간 윤석열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간 직업은 검사인 것 같았다. 소신을 가진 검사로 그는 칭송을 받았다. 국회에 출석해서도 “인간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철학으로 박수를 받았다.
인기가 높아지자 그는 적극적으로 움직여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그의 행동들을 보면 뭔가 설익어 있는 느낌이었다. 대통령은 그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일이 아닌 것 같다.
인간에게는 어떤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 있는 것일까. 정해진 궤도에 따라 오차없이 가는 것일까. 아니면 자기가 자기의 인생 궤도를 만들 수 있고 인간 그릇의 사이즈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나와 친한 인생 선배가 있었다. 나보다 스무살 가량 많은 그는 비교적 일찍 이름이 알려지고 돈도 벌었다. 그런데 어떤 원인인지 칠십 고개를 넘어 내려오다가 갑자기 바닥없는 허공으로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만났던 그가 뜬금없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저는 칠십 대 중반이 되어 이제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기독교에서는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적극적이 되라고 하지만 지나놓고 보니까 그게 아닌 것 같아요.
결국 모든 것이 주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건강도 돈도 운명도 모두 그래요. 재주까지도 말이죠. 제 경우는 젊어서 열심히 갈구해서 얻은 것도 있죠. 명예도 돈도 칭송도 일찍 얻었어요.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악착같이 구해서 얻은 건 모두 설익은 거였죠.
얼마 전부터 이 세상에서 얻었던 많은 것들을 상실했어요. 자식을 잃고 아내를 잃고 얼마 안 남은 재산까지도 없어졌어요. 난 내가 잘못한 게 없다는 생각 이예요. 그런데도 모두 상실했죠.
원래부터 나의 것이 아니었나봐요. 악착같이 구한 것들은 설익은 것이었어요. 알고 보니까 자연스럽게 내게 주어진 것만 완전히 익은 거였어요.”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이렇게 말한다고 게으름을 피면서 그냥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 아니죠. 항상 마음 그릇을 비우고 에고를 없애야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내게 오는 것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걸 놓치면 내게 올 것이라도 다른 데로 가버리고 맙니다.”
“그의 삶에서 얻은 독특한 체로 걸러 얻어낸 진리 같았다. 내게는 좀 어려운 것 같았다. 마음 그릇을 비우는 게 가능한지 에고를 없앨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기 때문이다. 체험으로 깨달은 그의 말을 어쭙잖은 논리로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제는 법조계의 원로인 고교 선배가 바닷가 나의 집으로 찾아왔다. 평생 검사를 했으면서도 권력의 냄새가 전혀 배어있지 않은 좋은 분이었다. 한밤중 조용한 집에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물었다.
“검사출신 대통령이나 후보들을 어떻게 보시나요?”
검사 출신 대통령 후보나 현직 대통령이 그의 한참 아래의 부하이기도 했다.
“그들이 검사로 있을 때 보면 다른 검사들보다 튀는 경향을 보였지. 뭔가 일을 낼 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오기도 했어. 어떤 사람은 건들거린다는 말이 들리기도 했고 말이야.
순간순간 이미지를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데 성공한 것 같아. 국민들은 정책이나 내면의 인격을 보지 않잖아? 텔레비젼이나 유튜브의 한 장면이 중요한 거지.
그들의 행보가 설익었다는 느낌이 들어. 모자란 부분을 열정이나 눈물로 완전하게 익게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데 말이야.”
어떤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가슴 떨리는 소망과 현실적인 타협능력이 있어야 홍시 같은 익은 지도자가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본지 한국지사장 <저작권자 ⓒ christianreview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재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