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21 )
오늘 성구는 ‘지지 말고 이기라’고 말한다. 이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이다. 결코 반대는 아니다. 그러니 악이 스스로 알아서 항상 져주면 좋겠는데, 악이 자기도 이기려 이 악물고 대드니 문제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이기고 싶은 성향은 누구에게나 내재한다. 서로 이기려 하니 경쟁이 거세 진다. 도 넘는 경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무한경쟁을 부른다. 급기야 일상을 전쟁 치르듯 사는 현상마저 생긴다.
전쟁은 상대방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전도된 가치관을 너무 쉽게 정당화시킨다. ‘반드시 이기자’는 것은 아니었더라도, ‘단지 뒤처지지는 말자’는 다소 소박한 조급함으로 ‘서로 따라잡기’를 계속했을 뿐인데, 허탈하게도 우리는 어느덧 모두 공범이 되었다.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기가 가야 할 마땅한 길을 자기 페이스대로 꾸준히 가면 된다. 이와 같은 삶을 산 고 김대중 대통령과 살고 있는 한강 소설 작가 같은 사람이 나는 무섭다.
대한민국이 배출한 두 명의 노벨상 수상자, 자랑스럽다. 나이 차가 있음에도, 이 두 사람은 1980년의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의 장을 교집합으로 만난다. 고 김대중 대통령은 고 박정희 정권에 의해 줄곧 탄압받았고 5.18 학살의 주범인 고 전두환 정권에 의해 내란 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광주 5.18의 비극과 제주 4.3의 아픔에 관한 글을 쓴 소설가 한강은 독재자의 딸 박근혜 정권에 의해 블랙 리스트로 낙인찍혀 불이익을 당했다. 한 사람은 몸으로 5.18을 살았고 한 사람은 글로 5.18을 썼다. 이들이 살고 쓴 5.18이 노벨평화상과 노벨문학상으로 결실한 셈이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몽니 부렸던 이들이 있었듯 노벨문학상 수상을 깎아내리는 이들이 있다. 이미 역사적 평가가 일단락된 5.18뿐 아니라 그 이전의 일제 강점기와 독립운동에 대해서조차 역사적 퇴행을 일삼는 세력이다.
인류 보편적 가치로 무장된 세계인은 이들에게 노벨상으로 경고를 보냈고 동시에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 상식적 한국인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냈다. 이런 점에서 2000년의 노벨평화상에 이은 2024년의 노벨문학상은 개인 어느 누가 받은 것이 아니다. 경제를 일으키면서 독재에 저항한 민주 시민, 평화와 문화를 사랑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모두가 함께 수상했으니,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자격이 충분하다.
크리스찬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 어둠의 자식들이 훨씬 더 지혜롭고 유능하게 살아가는 세상살이에 대해서는 적당히 안테나 낮추고 살아도 된다. 성공과 출세에 대한 과몰입은 영적 유익이 없다. 오히려 구원의 날에 부끄러울 뿐이다.
“나와 내 자식이 크게 성공하여서 하나님의 큰 영광을 드러내게 하소서”라는 기도 뒤에 숨어 꿈틀대는 탐욕과 위선의 짧은 생각을 발견해야 한다. 오히려 ‘혼돈한 세상 한가운데서 어떻게 맑고 밝고 따뜻한 천국을 살아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를 방해하는 온갖 유혹과 억압에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쿨하게 소명의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나쁜 습관, 이기주의, 열등감, 옛사람의 옛 성품, 시험, 불의, 구조적 사회악과 불평등,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폭력, 전쟁 등의 각종 악에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다.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고 이기기만 하려고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보다는, 때로 명예롭게 지고 죽기를 선택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은 오히려 더 크게 드러날 일도 많다는 사실도 기억하자. 그래야 이분들처럼 자기가 가야 할 마땅한 길을 자기 페이스대로 꾸준히 갈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9). 죽는 길이 사는 길이다. 자기를 버리지 못해, 어떻게 해서라도 죽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 시대를 의롭게 사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내 안에 사는 이, 예수 내 구주가 되도록 그래서 그리스도가 승리하도록 하자.
선은 물처럼 흐른다. 장애물을 만나면 멈춰 기다린 시간의 힘을 모아 넘어간다. 빠른 속도보다 바른 방향이면 된다. 무엇을 이루고 얼마나 성취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결과물에 끌려 욕심부리지 말고 그저 시대적 부름에 순응해 바른길을 차분히 밟아 나가면 된다. 홍수로 뒤집어진 혼탁한 물도 쉼 없이 흘러 들어오는 졸졸 시냇물로 마침내 깨끗게 된다. 소년이 오고 있다. 다시는 작별하지 말자.〠
서을식|시드니소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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