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 및 ‘열매’ 출판기념회

사랑의 부채상환, 1막 3장 드라마

글|송기태,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10/28 [14:36]

프롤로그, 크고 자상한 손길

10월의 영남은 30년 전 '부마항쟁'으로 한국의 민주화를 견인해낸 저항정신이 발현한 곳이다. 그 이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 열사의 시신은 4.19의거의 불을 지펴 '민주화의 성지'로 주초를 놓게 했다. 역사의 진보를 위한 끊임없는 영남인사들의 투쟁과 열정은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에 분연히 맞서며 신앙의 정절과 순결을 모델처럼 보여준 선교사들이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일사각오의 혼을 이어받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 지난 해 창원공원묘원에 조성한 호주선교사 순직묘원에서 호주선교사와 가족들이 헌화하고 경남성시화 임원들과 기념촬영을 했다.        ©크리스찬리뷰

그 정신을 심어준 선교사들!

그들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에서 파송받아 산을 넘고 물을 건넜지만 호주 선교사들은 신사참배 반대로 1941년 전원 추방되기도 했다. 그 선교사들의 신앙의 전승은 역시 일사각오의 상징처럼 보여주는 주기철, 손양원, 최상림 목사와 이현속 전도사에게로 이어져 순교로 열매 맺었다. 교회사는 피의 역사란 사실을 보여주는 그 현장, 과거와 현재가 만나고, 현재와 미래가 대화를 나눌 축복된 공간이 이번에 마련되었다.

경남성시화운동본부(이하 경남성시화)가 결성된 지 불과 2년 만에 이토록 성대한 첫걸음을 떼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주연이자 프로듀서인 하나님의 크고 자상한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에 재정적인 감당부터 막노동 봉사를 아끼지 않은 경남성시화 임원진과 본지 권순형 발행인, 그리고 주연으로 출연한 21명의 선교사들과 그 후손들이다.

시드니, 멜본, 브리스번, 미국 등지에서 모여든 선교사들과 후예들이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갈아타기 직전 저녁식사를 위해 레스토랑으로 옮기는 도중 경악할 사고가 발생했다.

▲루시레인 여사가 큰 사고를 당한 인천공항 'cafeview' 레스토랑 입구. 낮은 턱(화살표 지점)에 걸려 넘어지면서 부상을 입었다.           ©크리스찬리뷰

한국에서 태어나 고향과도 같은 부산에 올 날만을 손꼽아 고대하던, 호주 선교사의 대부라 할 만한 맥켄지(Rev. James N. Mackenzie) 선교사의 딸로 1918년 10월 11일 부산에서 출생한 루시 레인 여사(Mrs. Lucy Lane)가 인천공항 레스토랑 출입구 부근 턱에 걸려 넘어지면서 중상을 당한 것이다. 그의 증손녀 조지아가 동행하여 붙잡아주긴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의사 출신인 바바라 마틴 선교사와 주변 사람들이 모여 응급조치를 했지만 무릎 밑 부근의 상처로 출혈이 멈추지 않았다. 대퇴부가 골절된 이 사고 이후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응급치료를 받은 후, 신촌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고령이라 회복이 무척 더뎌 그를 위해 마련된 모든 예식에 하나도 참석하지 못한 채 호주로 귀국해야 했다.

연령으로 보아 그에게 어쩌면 생애 마지막 '고향' 방문길에 이런 참변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10월 2일 경남 선교 120주년 선교기념관(이하 선교기념관) 개관식에서는 행사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념관 개관 테이프 커팅 등이 예정돼 있었다. 또 자신이 태어난 집을 방문해 한국인 친구들과도 만날 예정이었다. 고령이지만 건강 상태가 양호해 이번 고국 방문을 무척 기대하며 기다려왔다고 했다. 세브란스병원에 마틴 선교사와 증손녀 조지아 그리고 멜본 우물교회 정원준 목사가 번갈아가며 간호를 담당했다.

▲  세브란스 병원 병상에서 본지에서 발행한  '열매' 책자를 증손녀 조지아 양에게 설명하는 루시레인 여사. 본지 조성일 편집제작실장(오른쪽)과 권나미 영문편집위원(가운데)이 문병했다.          ©크리스찬리뷰

이를 계기로 살펴본, 세계적인 공항이라고 자화자찬하는 인천국제공항의 안전실태는 '형편없었다'고 하는 편이 오히려 나았다. 사면이 벽이 없는 레스토랑은 아무데서나 출입이 가능한 반면 함정같은 낮은 턱이 있어 발끝이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아무런 경고 표시도 없었다.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이 없었다. 일류 호텔 브랜드(워커힐)를 붙이고 영업하는 그 레스토랑의 담당자에게 따져도 허겁지겁 당황하기만 할 뿐,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 레스토랑 지배인이 기껏 한다는 말이 “공공장소에서 넘어지면서 업소 출입구 부분에 상처를 입은 경우라 당황스럽다”며 “전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보상과 관련된 조항이 없어 난감하다. 식사대에 대해서는 고려해 볼 수 있지만 …."하며 사고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는 것이었다. 식사대와 안전사고를 맞바꾸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맥도널드에서 철사가 나와 이빨이 부러지자 30만 불이나 배상을 했다는 나라의 교훈이 '그림의 떡' 같은 한국이었다. 다행히 루시 여사가 여행자 보험을 들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참으로 난감할 만한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

▲ 환영예배에서 경남성시화 대표회장 구동태 감독에게 각종 유품을 기증한 크리스토퍼(한국명 서형일)는 멜본한인교회 초대목사인 서두화 목사의 아들이다.        ©크리스찬리뷰

1장, 감동과 감격의 축제 한 마당

사고를 뒤로 하고, 창원 인터내셔널호텔에 여장을 풀고 이튿날인, 10월 1일 진해 주기철 목사 기념관을 방문, 창원시장 면담 등등 빡빡한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전야제는 화려했다. 경남성시화에서 정성껏 마련한 환영만찬은 감동과 감격의 축제 한마당이었다. 구동태 감독의 환영사는 이들의 머나먼 여행길의 피로를 풀어주었다.

 
▲ 경남성시화운동본부는 창원공원묘원에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을 건립하고 개관에 앞서 임원들과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2010년 10월 2일)           ©크리스찬리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경남 부산지방을 위해 헌신한 선교사들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밤이었다. 밤이 익어갈 무렵 겔슨 엥겔 손녀딸로 미국에 거주하는 린다 블랙 여사가 한·호 선교 120주년을 기념하며 양국의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수예품 배너를 전달했고, 이어서 선교사들과 선교사 후손들이 유물들을 기증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국의 정과 세월의 더께가 묻은 유물들을 다시 한국으로 돌려줄 때마다 가느다란 손떨림이 있었다. 선교사의 후예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도 함께 아낌없이 나누는 마음을 함께 전달하는 듯했다.

1장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기념관 개관식이었다. 10월 2일(토) 11시, 창원공원묘원에 1천여 명의 관계자들이 모여든 가운데 예배와 개관식, 그리고 경남이 낳은 최상림 목사와 이현속 전도사의 기념비 제막식을 가졌다. 개관식을 10월 2일로 정한 것은 이날이 호주 최초의 한국 선교사였던 조셉 헨리 데이비스가 1889년 한국 땅에 발을 디딘 날이기 때문이다. 경남성시화는 10월 2일을 ‘경남 선교의 날’로 정해 매년 기념관에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이 땅에 믿는 자의 긍지와 자부심과 함께 오셔서 피와 땀과 눈믈을 흘리신 선교사와 그 가족을 위로하기를” 구하는 서익수 장로의 기도를 시작으로 경남성시화 상임회장 윤희구 목사(한빛교회)는 '역사를 아는 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그는 독립 유적지 92%가 사라지거나 훼손되었다는 기사를 인용하며 역사에 대한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역사에 대한 무관심은 교회가 훨씬 심각하다고 질책했다.

 
▲ 바바라 마틴 선교사(오른쪽)가 구동태 대표회장에게 감사의 선물을 전달했다.      ©크리스찬리뷰

또 어느 대학의 광고문안에 "그들이 아끼면 그들의 역사, 우리가 아끼면 우리의 역사"라는 말을 따라 우리가 우리 것을 아낄 줄 알아야 남이 빼앗아 갈 수 없으며,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자 하셨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역사를 훼손하고 있다"고 하며 이곳에 기념관을 세우는 목적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이 땅과 백성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감사하기 위한 것이며, 둘째는 자손대대로 알려서 하나님 신앙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셋째는 우리의 선조들이 얼마나 수고하고, 헌신하였는지를 앞으로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유지를 받들어 지켜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하였다.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한국 교회의 순결을 지켰던 호주 선교사들의 기념관과 묘역이 매일 1천 명 이상 드나드는 명소에 세워져, 이들의 신앙의 실체를 보고 듣고 읽혀지면서 이 땅에 이루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대대로 전하는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 기념관 개관예배에서 축사하는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정우성 목사        ©크리스찬리뷰

이어 2부 개관식에서 구동태 대표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기념관 건립을 위해 수고한 분들이 너무도 많다"며 "자녀들의 역사성과 정체성을 바르게 하고 성도들과 후손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전수하는 교육현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선교사를 대표하여 바바라 마틴(Dr. Barbara Martin) 선교사는 답사를 통해 "선배 선교사들의 손자와 손녀와 증손녀가 그들의 조상이 어디서 무엇을 했다는 사실을 배우려고 한국에 왔다"고 운을 떼었다. 계속하여 "경남성시화가 교파와 전통을 초월하여 신앙의 동일한 뿌리를 찾아 협력하여 기념관을 지은 것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리고 초기에 한국 땅을 밟은 선교사들은 한국 국민이 가장 어렵고 열악할 때 도착하여 그들이 증거한 복음이 일본인의 압력 밑에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소망과 격려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특히 초기 여 선교사들이 부산 거리에서 밥 달라는 소녀 고아들을 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입히고 양육하여 나중에 그 고아들이 교사가 되고, 목사 사모가 되고, 전도사가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1895년 경남 최초로 일신 여학교를 세우고, 1905년 진주에 진료소를 세우고, 지금은 사라졌지만 1914년에 배돈병원을 세워 의사와 간호사 교육을 시작한 일도 기억했다. 1909년에는 진주에서 젊은 여 선교사 두 명이 박성애 전도사와 협력하여 일반 사회에서 소외된 백정들이 교회 출석하도록 고집하였고,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백정들이 전국적으로 해방된 신호탄이 되었다고 하였다.

1911년 매견시 목사가 나환자 수용소 책임을 맡아 27년 동안 나환자들을 돌보고 치료한 일부터, 그 딸들이 부산 일신병원을 세우고, 조산간호사와 여성 의사교육을 시작한 공적을 치하하면서 이처럼 두 나라 교회와 두 국민이 이 공동의 역사로 연결되었다고 역사적인 의미를 정리했다. 그리고 지난 40년 동안 10여만 명의 한국인 호주 이민자들이 정착하는 데는 그 누구보다 교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추켜주었다.

시드니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정우성 목사(시드니순복음교회 담임목사)와 김영진 의원은 축사를 통해   "오늘 이 기념관 개관식을 통해 호주 선교사들과 그 후손들에게 그동안 마음속에 갖고 있던 가슴 뭉클한 감사와 사랑과 헌신의 정말 작은 보답이라도 하는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 가난이 대물림되고, 역사의 어둠속에 헤매고 있을 때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과 사랑으로 2만 불 국민소득과 경제 10위권으로 진출하며, UN 사무총장이 배출되는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이 열매 맺은 것이고, 순교자의 피가 국민정서에 감동으로 심겨지면서 선교대국이 되었다”고 감격했다.

이어 선교사와 그 후손들, 그리고 교계 관계자들이 함께 기념관 개관 테이프를 끊고, 두 순교자 제막식을 가졌다. 새로운 콘셉트로 개관된 기념관은 지난해 9월 19일 조성된 ‘순직 호주 선교사묘원’ 입구에 자리를 잡았다. 9900㎡(3천 평)의 묘원 대지에 248㎡(75평) 규모의 단층 건물로 지어졌고 부속건물도 66㎡ 크기로 마련됐다. 기념관 벽은 유리로 마감해 외부에서도 내부를 볼 수 있게 했다. 역사와 교훈과 휴식과 쉼이 있는 공간이었다. 선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적을 소상히 다루었고, 소장품들을 정리 중에 있었다.

▲ 기념관 개관 감사예배           ©크리스찬리뷰

호주에서 속속 도착한 소장품 중에 눈이 띄는 문화재급도 있었다.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1897년 편찬한 최초의 '한영대사전'이 대표적이다. 이 사전은 제임스 게일 선교사가 직접 제작, 초기 선교사들이 유용하게 사용했던 것으로 상세한 설명과 어휘량은 현재의 사전과 비교해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그리고 독신으로 살면서 한국 여성들을 위해 봉사와 선교활동을 펼쳤던 아그네스 데이비스 킴 선교사가 집필한 ‘나는 한국인과 결혼했다’(I married a Korean)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제임스 게일 선교사의 ‘한국 스케치’(Korean Sketches)에는 초기 한국인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 수록돼 있다. 이 책은 이미 세상에 알려진 저작이기도 하다. 호주 선교사들의 '츌애굽쥬일셩경공과' '포켓용 신약성경'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보고 글 모음’, 권임함 선교사의 ‘타자기’ 등을 비롯해 호주선교사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유품 4백여 점 그밖에 한인교계 인사들이 기증한 족자, 1890년대에 발행된 존 번연의 '천로역정과 거룩한 전쟁'의 합본을 비롯한 1800년대 말~1900년대 초 선교사들이 읽었음직한 다양한 주석류와 서적, 사진, 카메라 등 총 1천여 점의 도서와 물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 1960년대엔 마산 지역의 미망인과 고아를 돕기 위해 호주 가정에서 쓰는 수예품을 만들어 호주에 보내 팔았는데, 그 당시 만들었던 수예품도 이곳에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이날 선교관을 감동으로 돌아본 사람들은 호주와 미국 등 현지에서 내한한 전 호주 선교사와 자손 등 21명이었다. 이들은 기념관 곳곳을 둘러보며 탄성을 터뜨렸고 자신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진 앞에서 “이 작은 아이가 내 어머니, 아버지”라며 연신 기뻐했다.

프랭크 커닝햄 선교사의 손녀딸인 캐서린 넬슨과 증손자 패트릭 넬슨은 할아버지의 사진과 활동사진, 타자기 등을 보며 감격했다. 캐서린 넬슨 씨는 “할아버지 덕분에 한국에 몇 번 왔던 적이 있지만 이번만큼 기쁘고 감동적인 순간은 없었다”며 아들인 패트릭에게 증조할아버지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경남성시화 이종승 대표본부장은 “기념관은 호주 선교사들이 경남 지방 교회에 보여줬던 청교도적이며 헌신적인 신앙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자리이다. 선교사들의 유품을 보면서 그들이 남긴 신앙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품 중에는 분실을 우려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본 대신 사본을 전시했다. 경남성시화는 원본을 보관할 역사관도 따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본은 현재 창원시 합성동 합성교회(구동태 목사)에서 전시 중이라고 하였다.

이 기념관 건립으로 경남 일대 유서 깊은 기독교 유적지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지고, 신앙답사 벨트로 묶일 수 있는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함양군 소재 손양원 목사 생가를 비롯해 창원시 진해구가 추진 중인 주기철 목사 생가, 마산 합포구 무학산에 있는 ‘기도바위’와 함께 창원 일대 기독교 유적지가 바로 이 기념관을 중심으로 각각 30분 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기념관의 공간적 의미는 경남 지역 선교와 순교 현장을 원 포인트로 둘러볼 수 있는 절묘한 위치에 서있는 것이다.

 
▲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과 함께 호주선교사 후손들이 유품들을 살펴보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최상림 목사와 이현속 전도사의 순교기념비 제막식을 갖고 기념촬영을 했다.       ©크리스찬리뷰


 2장, 길 따라, 흔적 따라

이어 선교사들의 숨결과 향기가 묻어있는 '길 따라 흔적 따라' 일주일의 강행군이 시작되었다(이제까지 본지에 소개된 지역과 교회는 생략한다). 구순, 팔순이 넘은 연로한 가운데서도 기쁜 마음으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명문 교육기관으로 거듭난 창신고등학교였다. 이미 훌륭한 인성교육과 월등한 학력으로 경남의 명문 사학으로 자리매김한지 오래된 학교이다.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구석구석에 선교사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고 있는 것이 돋보였다.

역사의 흐름과 함께 이길상(화학자) 이은상(시조시인) 형제를 비롯하여, 김진경(연변과기대 총장), 유명한 ‘산토끼’ ‘오빠생각’ 등 우리 귀에 익숙한 동요를 작사 작곡한 이일래 씨, 한글학자 이극로 박사, 한신대 학장을 지낸 김정준, 조선출 박사 등 출중한 동문들은, 영남을 넘어 한국과 세계의 지도자들로 우뚝 서기도 했다. 창신대 싱어즈팀의 공연과 호텔관광과 교수와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만찬은 더없는 위로가 되었다.

 
▲ 기독교선교박물관을 방문한 호주 방문단은 안대영 관장의 풍금반주에 맞춰 찬송을 합창했다. 이 풍금은 왕길지 선교사가 순회 전도할 때 사용했던 것이다.           ©크리스찬리뷰

10월 3일 주일에는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에 각각 연고에 따라 흩어져 예배를 드렸다.마산 문창교회, 부산진교회, 초량교회, 진주교회 등지에서 주일 낮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는 양곡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리며 따뜻한 환영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10월 4일(월)부터는 본격적인 길 따라 흔적 따라 찾아 나섰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통영(구 충무시)이었다. 충무교회 임교호 목사와 장로들이 미리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 부인 공덕귀 여사를 비롯 청마 유치환 등의 기독교계 인물을 배출한 교회이다.

충무교회는 시골교회답지 않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푸짐한 오찬은 경상도 인심을 마음껏 발휘하고도 남았다.

이어 호주 선교사들의 혼이 깃든 100년 전통의 사등교회를 거쳐 호주장로회 선교부 예원배 목사의 한국 선교 25주년을 기념하여 설립된 예원배 목사 기념교회(Rev. A. C. Wright's Memorial Church)인 해운대 교회에서 선교사의 흔적을 찾았다. 교회 통로는 온통 선교사와 교회 역사의 기록물로 살아있는 교훈의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 호주선교사가 세운 창신고 방문 기념 촬영       ©크리스찬리뷰

10월 5일에는 일신병원, 부산진교회, 왕길지 기념관은 기막힌 선교벨트였다. 역사의 보존도 참으로 훌륭했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병원과 교회였다. 역사의 현  장에서 과거와 현재의 가교로 이음새 역할을 하고 있는 부산진교회 이종윤 목사는 참으로 행복해 보였다. 왕길지 기념관에서 작은 이벤트가 있었다.

일신여학교 교실을 재현해 놓은 그 자리에서, 선교사의 딸로 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니고 대전 국제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쉐른 포드(Ms. Sherrin J. Ford, 한국명 노혜영) 씨가 동요 '산토끼'를 기억해낸 것이다. 그와 함께 한 조용애 집사가 산토끼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해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호주 선교사의 영향을 받은 창신학교 출신 작가 쓴 '산토끼'를 호주 선교사 딸이 유쾌하게 부르는 절묘한 하모니였다. 기자가 '학교 종'의 멜로디를 들려주니 기억이 난다고도 했다.

 
▲ 양곡교회에서 열린 저녁예배에 참석한 호주 방문단           ©크리스찬리뷰

부산진교회 묘역에 묻힌 선교사의 갓난 자녀, 한국에 태어나자마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한국 땅에 묻힌 애기들 묘역 앞에서 박웅걸 목사(본지 영문 편집장)의 인도로 때늦은 추도예배를 드렸으며, 그 '어린 아이'의 증손녀격인 조지아 씨가 헌화를 했다.

한 군데라도 더 둘러보기 위해 꽉 짜놓은 수학여행보다 더 빡빡한 일정에도 선교사들은 지칠 줄 모르는 노익장을 과시하여, '젊은이'들을 부끄럽게 했다. 풍성한 사료로 가멸찬 눈요기를 시키며, 머리를 역사의 물결로 샤워시키는 기독교역사박물관, 그리고 갈비탕으로 뱃속을 훈훈하게 해준 창대교회(옛이름 상애교회)는   '한센'이라는 아픈 상흔을 딛고 일어서 21세기에는 65세대 실버타운 원룸 아파트와 함께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천형'이라 일컫던 병마 때문에 고향 부모형제 집을 떠나온 그들을 거두어준 사람들인 바로 1909년 대영구라회 심익순, 어을빈, 사목사, 매견시 네 선교사들의 희생적인 헌신과 이어 1929년 손양원 목사가 전도사로 부임하여 이들에게도 복음의 씨앗이 심겨지고 열매가 맺혀졌다.

 
▲ 충무교회 임교호 목사(오른쪽)는 초기 당회장을 지낸 커닝햄 선교사의 증손자 패트릭 넬슨 군에게 당회록에 서명한 커닝햄 선교사의 당회록을 복사해 액자에 담아 선물했다.            ©크리스찬리뷰

10월 6일에는 구 상애교회 자리와 부산의 절경 오륙도를 주마간산으로 훑으며 UN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한국과 호주가 혈맹의 국가임을 증언하는 현장이었다. 깨끗하게 잘 단장된 묘역이 눈길을 끌었다. 많은 동행한 선교사와 후손들은 무명의 호주 군인의 묘를 한참이나 바라보며 쓰다듬기도 하였다.

오찬시간에 맞춰 도착한 초량교회 역시 역사의식에는 두 번째 가라하면 서러울 정도로 역사관을 잘 정리해두었다. 특히 새로 교회 증축공사를 하는 와중에도 역사관은 허물지 않고, '호주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보여드리고 난 다음 그날 오후에 헌다고 하여 왠지 찡했다. 1920년대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온몸을 던져 나라와 교회를 지켰던 강대상에 서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부산으로 피란 온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이 교회에서 구국기도회를 갖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초량교회를 소개하면서 "호주 선교사에게 받은 가장 큰 은혜는 해방 후 호주 선교회 소속 교회 부지를 한국 교회가 인수하려 할 때, 20년 전의 가격으로 팔라고 하자, 선교회에서 숙의를 거듭하여 선교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니 한국 교회의 요청을 받아주자"고 결정한 것이라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실을 감안하면 호주 선교부의 결단은 참으로 '바보같은 지혜로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선교회, 선교사들의 사랑을 먹고 자라온 것이다.

 
▲ *거제도에 있는 사등 교회를 찾아간 방문단 일행이 교회 설립 100주년 기념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해운대교회는 금년 2월 예원배(Rev. Albert C. Wrigt)선교사 기년관을 개관하고 각종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10년 전 매각 위기에 처했던 부산진일신여학교 건물이 원형을 복구, 지난 4월 기념관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울산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다녔던 쉐른 포드 씨가 당시 부르던 동요 '산토끼'를 부르며 율동을 보여주고 있다.(사진 설명 위에서 아래로)        ©크리스찬리뷰


 
3장 '열매' 출판기념회

10월 7일(목),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서 ‘호주 선교사가 뿌린 복음의 열매’(이하 열매) 출판기념회가 교계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그동안 본지에서 한·호 선교에 관하여 취재한 글들과 한·호 선교 관련 논문, 그리고 한·호 성시화 관련 글들을 집대성하여 640쪽으로 엮은 책이다. 이 열매가 발행되기까지는 본지 권순형 발행인이 20년 넘게 현장을 채록한 각종 자료들과, 김명동 편집인의 발글, 고신대 이상규 교수의 논문들을 비롯하여 한·호 선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된 감신대 이덕주 교수 등의 논문들이 피와 땀의 씨줄과 날줄로 엮여있다. 이 책이 발행되기까지는 호주 선교사의 간접적인 시혜자라 할 수 있는 부산 출신 시드니새순장로교회 이규현 목사의 물심양면의 지원도 큰 몫을 차지했다.

이 ‘열매’는 1889년 한국에 첫발을 딛고 6개월간 사역을 펼치다 33세의 나이로 순직한 데이비스 선교사의 사역을 시작으로 마산 공원묘원에 건립되는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 기공예배’까지의 역사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특히 데이비스 선교사의 여권과 비자, 추모 설교문, 당시 교세 통계 등을 담고 있어 교회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부산진교회 묘지에는 맥켄지 선교사의 아들 제임스, 맹호은 선교사의 딸 캐서린, 예원배 선교사 부인 니븐 여사의 묘가 있다. 가운데 있는 비석은 제임스(앞면)와 캐서린(뒷면)의 비석으로 한 개의 비석에 두 명의 이름을 기재해 놓았다.  ©크리스찬리뷰

박종순(충신교회) 목사는 설교를 통해 “바울이 복음 앞에 빚진 자의 심정으로 복음전파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수천 킬로를 여행했다. 이 명령에 순종한 120여 명의 호주 선교사들도 죽음을 무릅쓰고 한국에 와서 생명의 복음을 전했다”고 설명했다.

박 목사는 “지금 세계는 우리 한국교회를 부르고 있으며 그 명령에 순종하고자 2030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계획을 세웠다”며 “한국교회가 복음전파의 잠에서 깨어나 세계선교의 위대한 과업에 매진함으로써 국력을 신장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매’를 발간한 권순형 본지 발행인은 “우리는 개신교 선교 초기에 한국 땅에 있었던 언더우드나 아펜젤러의 이름은 알았지만 호주 선교사들의 발자취에 대해선 죄스러울 만큼 둔감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천연두와 풍토병, 심장병 등으로 쓰러져간 호주 선교사 126명의 이야기를 그나마 한 권의 책에 담아낼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발행 소감을 밝혔다.

▲  신익균 장로와 양지동산을 설립한 호주 선교사 노승배 목사(Rev. Barry Rowe)가 기술을 익히는 장애인들을 격려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권 발행인은 “앞으로 이 책이 호주가 한국 선교를 위해 흘린 땀과 희생, 순교의 피를 알리고 후손들에게 신앙의 표본을 제시할 수 있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이날 신효헌 전 호주 대사는 서평을 통해 "호주 선교사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이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제는 한국교회가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 찾는 노력이 계속 되서 이 책이 증보판, 영문판으로도 발간되길 바란다. 또한 호주 선교사들의 주택, 시설, 묘원 등을 복원해 신앙의 산교육장으로 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호 선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발행한 '기념총서'답게 한·호 선교 관련 내용 가운데 우리가 추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어 한·호 선교 역사의 원자료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특히 호주 첫 한국 선교사인 조셉 헨리 데이비스의 추모 설교문(1890년 5월 8일 멜본 투락교회), 1900년도 한국 교계 통계 등이 공개돼 향후 한·호 선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될 것이다.

 
▲ 초량교회 역사관은 호주 선교사들에게 받은 사랑과 은혜를 전시하고 있으며, 주기철 목사가 사용하던 강대상을 보존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영어와 한국말로 축사를 한 바바라 마틴 선교사는    "책이 너무 잘 만들어졌다. 아는 사람도 많이 나오고 재미있는 사진, 새로운 것들이 많다. 한국과 호주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날 휘날레는 참석한 모든 선교사와 그 후예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는 것으로 끝났다.

▲ 10월 초에 발행한   '열매'        ©크리스찬리뷰


에필로그,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이제 잔치는 끝났다! 잔치 뒤의 으레 따르는 허전함이 없는 것이 이번 드라마의 장점이다. 무엇보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사라질 뻔한 사료들이 한자리에 모이고, 한 책으로 집대성된 것이 가장 귀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이번 기간 동안 필자의 룸메이트이자 통역으로 봉사한 박웅걸 목사는 의미깊은 말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가 10월 초에 발행한 호주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의 '열매' 출판기념식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박종순 목사           ©크리스찬리뷰

"이번 행사를 진행하면서 선교사들의 후손들이 모두가 세상적으로는 훌륭하게 잘 풀렸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에 신앙을 갖지 않은 시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 분들 가운데 선조들이 이역만리 길을 찾아와 이룬 선교의 열매를 보고 신앙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번 드라마가 펼쳐지는 동안 가장 신난 두 사람이 있었다. 바로 존 브라운(한국명 변조은) 목사의 아들 마이클 브라운(한국명 변선태)과 알란 스튜어트(한국명 서두화) 목사의 아들 크리스토퍼 호 스튜아트(한국명 서형일)이었다. 이들은 나란히 한국에서 출생하여 역시 오랜만에 고향 땅을 찾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바쁜 여정 가운데서도 밀양을 찾아 초등학교 시절 걸프렌드(?)를 만나기도 하였고, 지리산 선교사 휴양지를 방문하기도 했다. 일신병원을 방문했을 때, 크리스는 법인 사무국 앞에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이곳이 내 어릴 적 집이었고, 내 침대는 이곳에 있었다"고 하며 감격해 했다. 특히 크리스는 방문기간 내내 참가자들을 인터뷰하고 사진도 찍어 작은 저널을 만들어 일일이 나눠주기도 했다.

▲ 한.호 선교 120년 기념총서로 발행된 '열매' 출판기념회에는 호주 선교사와 선교사 후손들이 참석하여 축하했다.     ©크리스찬리뷰

이후 이메일을 통하여 들려오는 각종소식들은 이미 한가족이 되었음을 증언하고 있었다. 역사의 매듭을 묶고 풀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아름다운 워밍업을 하며 새로운 도약대로 나아가야 할 때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경주, 그 경주는 멈출 수도 없고, 멈춰서도 안 된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선교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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