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왜 일어나야 하는가? (5)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1/28 [11:36]

현대교회는 교회가 교회됨을 잃고 그 정체성에 대한 인식자체까지 혼미해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현대교회는 복음을 잃고 있다.

교회가 외형적으로는 많이 성장하고 화려해졌지만 복음은 성장주의와 물량주의에 의해 뒷전에 밀려 그 위에 먼지가 쌓여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구원의 확신과 기쁨을 상실하고 있다. 교회에서 복음적인 설교를 듣기가 어려워지고 구속의 은혜를 선포하는 메시지는 약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회복하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제2의 혹은 제3의 종교개혁시대라고 부르고 싶어한다. 그것은 오늘의 교회현실이 중세시대와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의 어두워진 점에 대한 호된 지적이 아닐까?

교회의 거룩이나 순결과는 거리가 먼 도덕적 타락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찾을 수 없는 반목질시 그리고 화목직책을 맡은 자들의 날카로운 교권다툼 또한 교회의 근본적 존재사명 망각 등에 대한 지적인 셈이다.

하지만 개혁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픈 일은 교회개혁의 필요성이 교회 밖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지만 이것은 마치 옆집 사람이 내집 안방 청소 좀 잘하라고 지적하는 것과 같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맙지만 교회 개혁은 교회 밖의 목소리에 의존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교회 밖의 ‘주문’에 맞추는 형태의 개혁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교회개혁원리가 사회개혁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히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기본원리였던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틀에 맞추어 우리의 잘못된 점을 도려내고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은 개혁자들의 복음이해에서 시작됐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 각자가 먼저 종교개혁자들의 복음 이해, 은혜에 대한 감격, 성경중심적인 사상과 삶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러한 개인의 개혁 없이는 교회의 개혁은 요원하다. 아무리 제도개혁이 있어도 그 제도를 운영할 사람의 개혁이 없으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改惡)이 되고 만다.

개혁을 위한 개혁이 아니라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신실한 기본자세로 갖추어진 개혁이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각 개인이나 교회들이 소금의 맛과 빛의 밝음을 나타내는 회복이어야 한다. 그래야 복음에 비추어 볼 때 비복음적인 것이 제거되거나 고쳐질 것이 아닌가?

앞으로 어떤 제도를 바꾸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해에서 비롯된 깊은 회개와 그로 인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려는 자아개혁, 영적인 회복의 목소리가 커지기를 바란다.

지금은 목회적 방법론이나 제도가 아니라 목회의 주체가 되는 우리들 자신의 개혁이 필요한 때라고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소견을 말씀드리고 싶다. 

병이 심해지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 그래야 수술 같은 큰 치료를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1517년 종교개혁을 기념할 뿐 그러한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지 않아도 되기를 소원한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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