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얼굴> “<천국은 확실히 있다> 같은 책이 전형적 미혹”

전정희/교회와신앙 | 입력 : 2011/04/30 [07:22]

   
“어떤 영적인 현상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니면 미혹의 영의 장난인지를 분별하는 척도는 성경이다.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면 안 된다는 논리로 냉철한 성경적 검증과 분별을 거부할 때, 교회 안에는 봇물 터지듯 온갖 종류의 사이비 가르침과 미혹하는 영의 역사가 밀려들게 될 것이다”(p.17).

현 고려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인 저자는 이 책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박영돈 지음, IVP)을 성령과 성경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성경을 통해서만 성령의 근본적인 사역이 무엇이며, 그 사역의 특성과 패턴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오늘날 소위 ‘성령운동’을 한다는 이들이 성경으로 입증될 수 없는 영적인 현상을 비판하면 성령의 역사를 훼방한다고 겁박한다”며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한다는 생각으로 성경적인 검증을 회피하는 것은 오히려 성령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지적한다. 진리를 혼잡하게 하는 미혹의 영이 활개 치는 영적인 세계에서 진리의 잣대를 가지고 다양한 영적인 현상을 진단하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중대한 사명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본서에서 최근 한국교회에 일어나고 있는 영적인 현상들을 성경적으로 파헤쳐 그 오류들을 조목조목 짚어낸다. 소위 금니소동, 쓰러지는 현상, 천국증언, 예언, 방언, 치유, 성령의 불세례 등 성도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는 문제들이다.

예를 들어 ‘천국증언’에 대한 저자의 설명을 보자. 그는 토마스 주남이 쓴 <천국은 확실히 있다>(서울말씀사) 같은 천국증언 책이 “전형적인 미혹의 영의 역사”라며 “천국을 봤다거나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단의 상투적인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친구들이 고통 받는 장면을 보았다고 한다. 그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슬퍼하는 자신을 위로하며 주님이 이렇게 말씀했다고 한다. ‘딸아, 너는 나를 위해 쓰는 책에 이 체험을 반드시 기록하여야 한다. …너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옥의 실상을 경고해야만 한다.’ 이 대목에서 베일에 가려진 미혹의 영이 그 모습을 슬며시 드러낸다. 주님이 하셨다는 이 말은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과는 아주 다르다”(p.21).

(눅 16:27에서) 주님은 죽어서 실제 천국을 경험하고 지옥을 목격한 사람이 살아서 지상으로 돌아와 그 본 것을 증언해도 별 효과가 없다고 하셨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계시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 성경에 분명히 밝혀진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또한 일부 성령운동이나 성령의 사역자들에게서 성령의 인격성을 손상시킴으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드는 이단자의 얼굴이 자주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최근 성령운동에서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해준다는 말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역자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성령충만한 은혜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흘러나가고, 그의 안수를 통하여 방언, 예언, 병고침의 은사들이 전수된다고 한다. …성령의 은사 또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부여되는 선물이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인간이 안수한다고 이 선물이 하사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통해 성령충만과 은사가 전수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것이며 성령을 자신의 원대로 움직이는 시녀로 취급하는 ‘성령모독죄’를 범하는 것이다”(p.73~74).

입으로는 삼위 하나님을 고백할지라도 성령을 마구 끌어당겨 사용하거나 남에게 자유롭게 전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취급하는 이는 실제적으로 성령의 인격성을 무시하는 이위론자, 즉 이단자라는 주장인데, 그러므로 성령을 사역의 성공이나 자기실현을 위한 동력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반기독교적일 뿐 아니라 이단적인 행위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방언문제 역시 저자가 다루는 중요주제다. 최근 방언 열풍의 기폭제가 된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규장)와 이를 비판한 옥성호 집사의 <방언, 정말 하늘의 언어인가>(부흥과개혁사), 그리고 다시 이를 반박한 김동수 교수의 <방언은 고귀한 하늘의 언어>(이레서원) 등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양측의 입장을 요약한다.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에 미치는 폐해는 엄청나다. 교인들 모두가 방언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은사체험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완전히 획일화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다른 이도 반드시 경험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대단한 무례를 범하는 것이다. 비록 다른 이들도 자신이 누리는 은혜를 동일하게 경험하기를 원하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지라도 그런 행위는 자신의 잘못된 확신을 따라 다른 이들을 강압하려는 교만의 말로다. 그러므로 이런 가르침은 필연적으로 영적인 우월의식을 낳고, 그 반대급부로 영적인 열등의식과 소외감을 불러일으키며, 급기야는 그로 인한 갈등과 혼란을 조장한다”(p.178).

그러나 저자는 본서에서 은사에 대한 지나치게 치우친 견해와 은사의 남용을 비판하면서도 은사 그 자체를 부인하거나 은사사역의 중요성을 무시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은사를 성경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성경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이외에도 ‘뒤틀린 성령의 음성’, ‘성령의 얼굴에 나타나는 수줍음’, ‘치유는 과연 하늘의 터치인가’, ‘방언은 과연 하늘의 언어인가’, ‘성령의 불세례를 받았는가’, ‘오순절로 돌아가는 길’ 등 총 6장의 주제로 구성된 본서는 각 장의 끝에 토론을 위한 질문을 제시했다. 가령, “왜 복음전파자들이 복음의 약하고 부드러운 방법을 저버리고 기적의 전법과 초능력을 도입하여 사람들을 압도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되는가?”, “방언만은 예외적으로 모든 교인들이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성경적인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복음사역자들은 비록 느릴지라도, 사역의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아도 정도를 따라 주의 일을 해야 한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역하는 것은 바울이 에베소교회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겸손과 눈물과 오래 참음으로 일하는 것이다.(행 20:19, 31)”(p.52).
 
 
출처ㅣ전정희/교회와신앙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