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은 쉽니다

홍관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7/25 [10:38]
세상 여러 곳을 다니다 보면 주로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어느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는데 우연히 시선을 끄는 글귀가 있었다. 그것은 식사 메뉴가 아니라 ‘주일은 쉽니다’라는 글귀였다. 그것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붙여 있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이 음식점 주인은 확실한 크리스찬이구나 하는 직감이 들었다. 일요일을 주일이라 부르며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고 사는 사람이 성도요 주일 인생이다.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8회 세계올림픽이 열렸을 때 영국의 육상 대표선수로 출전한 ‘에릭리들’은 진실한 크리스찬이었다. 그가 “주일에는 뛰지 않는다”는 신앙원칙을 세우고 살았다.

에릭리들은 100m경기의 금메달 유망주였다. 그런데 경기 일정이 주일 오후로 잡히자 단순히 “주일에는 뛰지 않는다”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며 ‘조국을 배반한 위선자’,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없이 출전을 포기하고 그날을 평소처럼 교회에서 봉사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에릭의 이러한 결정은 주일성수를 위한 자기 희생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어려움 속에서 그냥 두시지 않으셨다. 그는 며칠 후 자신의 종목이 아닌 400m경기에 출전했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마다 “저렇게 달리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러나 그는 예상치 못했던 세계신기록과 함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에릭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처음 200m는 내 힘으로 뛰었고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현대교회가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이 성수주일을 저해하는 모습들이 독버섯처럼 퍼져서 이젠 아예 관념화된 듯하게 주일예배를 여러 차례 나누어 드리고 저녁예배는 아예 없어져 버렸다. 예배마다 자리가 텅텅 비면서도 1,2,3부로 나누어 드리는 예배는 마치 이른 아침 잠시 예배를 드리고 골프장으로, 피크닉으로 나아가서 자신의 안락을 일삼는 문을 열어 줌으로써 주일성수 개념이 사라져 버리고 있다.

한술 더 떠서 다변화되는 현대사회에서 주일을 일요일로 국한할 것이 아니라 교인들의 편의를 생각하여 토요일이나 일요일 양일 중 하루를 택해서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이런 인본주의적 주장을 슬그머니 펼치고 있는 분도 생겨나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북한 공산권에서 주일을 지키다가 감옥에 갇히고 심지어 순교까지 당하는 선배들을 보았다. 북한 공산당은 신자들에게 주일을 지키지 못하도록 정책을 세워서 주일에 작업 동원을 하였다.

우리 한국교회 교인들은 누구나 ‘주일’이라고 하지 ‘일요일’이라 하지 않는다. 이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렇게 부른다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하고 생각되겠지만 일요일과 주일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주일(主日)은 ‘주님의 날’ 주님께서 보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초대교회 신도들로부터 지켜오는 기독교의 전통이다. 아무리 변화되는 시대라고 해도 주일성수의 올바른 실천이 선행되었으면 한다.

성도의 기업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의 마음에 ‘주일은 쉽니다’, ‘주일에는 뛰지 않습니다’라는 신앙의 결단이 이루어져서 Sunday-only Christian이 아니라 Lord’s day - centered Christian이 되었으면 한다. 〠

 

홍관표|크리스찬리뷰 편집고문, 시드니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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