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신앙, 바른 교리, 바른 교회 (2)

글|송기태,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08/29 [10:35]

「기독교강요」는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

- 그동안 목사님은 번역사역이 주종을 이루다시피한 것 같은데, 번역을 하시게 된 결정적 계기라든가, 번역의 유익과 보람과 번역에 얽힌 에피소드, 그리고 특별히 애정을 갖고 번역하신 책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중·고등학교(신일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영어를 제대로 잘 배웠고, 대학과 공군장교시절 동안 영어공부에 대한 노력을 계속하였는데, 이것이 후에 번역 생활을 하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 새빛장로교회가 40주 일정으로 개설한 ‘바른신앙을 위한 교의 강좌’에서 열강하는 원광연 목사     ©크리스찬리뷰

 
1982년 7월 말에 전역한 후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중, 그 해 11월에 제 인생을 결정짓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를 아는 어떤 집사님 소개로 생명의말씀사에 가서 번역 시험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합격 판정을 받아, 처음 원고료를 받고 번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나온 제 첫 작품이 씨 에스 루이스의 <네 가지 사랑>이라는 책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기독교출판사들이 매우 영세하여 번역을 생활 근거로 삼을 수가 없는 형편이라, 대개 아르바이트 정도로만 생각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제게는 원고 청탁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저의 번역 생활은 호주로 유학 온 이후에 오히려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특히 크리스찬다이제스트사와 관계를 맺으며 신학대학원마다 교재로 사용되는 신학 전문 서적들을, 특히 개혁주의적인 고전들을 출간하였습니다.

저의 대표작이라면, 무엇보다도 칼빈의 <기독교강요>(전 3권)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2000년에 호주장로교 한인교역자협의회에서 종교개혁기념주일 강연회를 마련하였는데, 그 해에 제가 칼빈에 대해 강연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들에게 조금이나마 칼빈의 맛을 보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칼빈의 <기독교강요> 중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루는 부분을 일부 발췌하여 설교식 구어체로 번역하여 강연 때 배포하였습니다.

성도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후에 크리스찬다이제스트 사장과 대화하는 중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 부분을 출간하자고 하여 2001년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기독교강요>를 번역하여 2003년에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강요>는 기독교 고전 중의 고전이므로, 원문에 충실한 번역 가독성 있는 번역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또한 한국 기독교의 훌륭한 석학들께서 공동으로 번역한 <기독교강요>판이 이미 20여 년 전에 출간되어 나와 있었으므로, 제 자신의 경험으로는 번역이 다소 난해하여 크게 유익이 없었습니다만, 새로운 <기독교강요>의 출간에는 분명한 차별성이 있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저 나름대로 서로 다른 영역본 2개(20세기의 Battles판과 19세기의 Beveridge판)를 함께 놓고 서로 일일이 문장마다 비교하며 나름대로 칼빈의 의도라고 생각되는 것을 파악하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번역작업에 임했습니다.

 

▲ 강의하는 원광연 목사     ©크리스찬리뷰

 
라이드 저희 집 컴컴한 지하 차고에서 원고 작업에 올인하여 매달렸습니다. 또 2002년 8개월 정도 고국에 머물 당시는 온 국민이 월드컵 축구 열기로 뜨거웠을 때였습니다. 저는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서울 은평구의 한 고시원 쪽방에서 원고 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이로 인하여 건강이 많이 나빠지기도 했으나, 이 책의 번역이 나의 사명이라는 일념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의 세밀하신 은혜라 여겨집니다.

저 나름대로 번역 철학은, 성실히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번역의 냄새를 가능한 만큼 줄여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인데(이를 ‘dynamic equivalence’라 하는데, 영어 성경 중에서도 NIV 등이 이를 적용한 것입니다. 또한 기독교를 공격하는 유명한 김용옥 씨의 책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책 중에 ‘번역의 시공간성’이라는 백 여 페이지의 글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글만큼은 이런 철학을 설명해주는 것으로 뛰어난 글이라고 보며, 번역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읽어야 할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철학을 충실하게 적용하려고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만 2년의 작업 끝에 드디어 마지막 탈고했을 때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기독교강요>의 작업은 제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제가 가르쳤던 몇몇 청년들에게 책을 읽어보라고 했는데, 모두들 한결같이 큰 유익을 얻었다는 이야기들을 해요. 제 나름대로 ‘나는 과거에 신학공부를 하면서도 읽기가 힘들었었는데, 신학 지식도 없는 평신도들이 이해하고 유익을 얻을 정도가 되었다면 커뮤니케이션에는 성공했구나’라고 생각하며 감사하였습니다.

후에 한국의 월간 <기독교사상>에서 제 기독교강요를 소개하는 글을 좀 써서 보내달라고 하여, 보내어 2004년 6월호인가에 그 글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몇 년 후 한국 방문 길에 총신, 합신 몇몇 교수님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제 책에 대해서 높이 평가하며, 한국교회를 위하여 정말 큰일을 했노라고 치하하는 말씀들을 듣고 큰 보람을 얻기도 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를 포함하여 몇몇 교회들에서 저의 <기독교강요>를 교재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크리스찬다이제스트사 책들 중에 제 <기독교강요>가 수년째 베스트셀러 중에 속해 있는 것과, 또한 인터넷 서점에서 그 책에 대한 독자들의 수많은 댓글들을 보면서 많은 격려를 받고 있습니다.

그 외에 17세기 청교도 강해자로 유명한 <매튜 헨리 주석> 시리즈 중에, 창세기와 마태복음, 민수기와 신명기를 번역 출간하였습니다.

특히 마태복음은 빼곡한 작은 글씨로 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으로 번역 작업에 많은 수고가 들어간 작품입니다.   그리고 찰스 스펄젼 목사의 그 유명한 <Lectures to My Students>라는 설교학 책을     <스펄젼의 설교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하였는데, 그의 풍부하고 화려한 영어 스타일과 온갖 인물들과 성경본문들이 특별한 인용 표시도 없이 무단히 등장하는 통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을 가능한 대로 찾아 역주를 달아주고, 성경 인용문은 일일이 찾아서 한글개역성경의 번역에 맞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제게는 한글 성경 소프트웨어가 없었습니다.

그 외 특별히 애정을 갖고 번역한 책으로는 마틴 로이드존스의 <True Happiness>라는 시편 1편 강해서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시편 1편에 대한 네 차례 설교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사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마틴 로이드존스의 그 방대한 설교들이 마치 한 권에 집약된 듯한 책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 개혁주의 성경신학에서 기념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프린스턴의 게할더스 보스 박사의 책 <성경신학> 작업에는 정말로 무진 노력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그의 사상에 깊이가 있기 때문이거니와, 그가 네델란드에서 자라나 후에 미국으로 이민 온 분이어서 그의 영어 스타일이 아주 독특했습니다. 그러니 여러 차례 읽고 곰곰이 생각해야만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설교집 <은혜와 영광>의 작업과 함께 제게는 가장 힘들었던 작업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원광연 목사의 역서들. 원 목사는 29년 동안 60여 종의 기독교 서적을 출간(번역)했다.     ©크리스찬리뷰

 
그 분의 책을 끝내고 이어 같은 프린스턴의 벤자민 워필드 박사의 설교집을 작업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의 영어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아는 분에게, “보스에게서 워필드에게로 넘어가니 마치 자갈길을 걸어가다가 포장된 도로로 들어서는 것 같았다”고 표현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게 신학공부를 계속하여 학위를 받고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잘 어울리는데 어째서 그렇게 하지 않았냐고 질문하는 분들도 있고, 가까운 분들도 그것을 아쉬워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이 문서사역이 그 어떤 사역에도 못지않은 중요한 사역의 분야라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저를 이런 분야로 사역하도록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상스럽게도 제가 그런 쪽으로 움직이려 해도 일이 잘 되지를 않고, 계속해서 문서사역으로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 아내는 제발 이제 번역을 그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기도 했으나, 후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시니 문서사역이 제 사명인 것 같다며 저의 사역에 대해 마음으로 동의하고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일선 교회를 목회하는 일도 모두 중요한 일이지만, 제가 이 문서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떠나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방면에서 많은 열매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고국에서 저의 책을 통해서 저를 알고, 제 사역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는 일을 접할 때면, 정말 마음에 큰 감사와 기쁨이 넘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2년 가까이 17세기 청교도 윌리엄 거널(William Gurnall)의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라는 대작을 완역하는 작업 중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싸움에 대해 이 책만큼 놀라운 가르침을 주는 책이 더 이상 없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방대한 내용 속에 번뜩이는 예지와 말씀에 대한 정통한 이해가 충만합니다. 이 책은 한국어로 출간할 시 최소한 2,000페이지 정도는 될 정도로 방대한 대작입니다.

1982년부터 지금까지 29년 동안 저의 사역을 통해서 출간된 책을 합하면 대략 60여 종 정도 될 것입니다. 평균 잡아 1년에 2권 정도의 책이 출간된 셈입니다. 또한 그 책들 대부분이 최소한 400페이지를 넘는 대작들이니, 그 원고량을 계산해보면 권당 400페이지만 잡아도 200자 원고지로 최소한 150,000매는 될 것입니다. 지금 와서 보니 굉장히 많은 작업을 했다고 생각되지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행하신 일입니다. 저로서는 그 하나님을 찬양할 따름입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한 이 작업을 계속해갈 것입니다.

2007년 한국의 어느 기독교 신문사의 부탁으로 저의 번역 인생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부분이 제 심정을 잘 대변해준다 하겠습니다. 이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블로와의 피터(Peter of Blois)라는 13세기의 한 신학자는 고대의 신학자들에 대한 감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마치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 있는 난장이들과도 같다. 그들 덕분에 우리는 그들보다 더 멀리 바라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이 남긴 이 보배들을 부지런히 섭렵함으로써, 우리는 오랜 세월과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하여 묻혀 버린 그들의 고귀한 생각들을 취하게 되고, 이를테면 그것들을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에로 다시 일으켜내는 것이다. 이러한 감사의 마음이 내게도 가득하다. ‘나 같은 난장이에게도 영적 거인(巨人)들의 어깨 위에 잠깐씩이나마 서 보는 기쁨을 주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주의 은혜에 의지하여 계속 난장이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리라 다짐한다.」”

 
땀과 수고가 요구되는  문서사역  

정말 특별한 사역으로 교계에 큰 공헌을 하셨군요.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사역이지요. 그럼 문서 사역의 중요성과 앞으로 바라는 기대 같은 것도 들려주십시오.

 “문서 사역은 겉으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사역입니다. 땀과 수고가 요구되지만 무슨 특별한 명예나 이득도 기대할 수 없는 분야가 이런 문서 사역이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사역은 교회의 영적 상태를 결정짓는 정말 중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영적 상태는 목회자의 영적 상태에 달려 있는 것이며, 목회자의 영적 상태는 크게 두 가지로, 신학교와 책에 따라 좌우된다 하겠습니다.

목회자 후보생들이 신학교에서 좋은 신학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책을 성실하게 읽고 섭렵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후에 교회의 강단이 견실하고 또한 풍성해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문서사역은 어찌 보면 교회의 사활이 걸린 중요한 분야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실정은 이런 문서사역을 상대적으로 경시하는 풍토라 하겠습니다. 요즘 들어 환경이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하나, 이를 위한 전문기관이나 이에 헌신하는 전문인이 태부족인 것 같습니다.

교회들이 소속 교단의 신학교는 돕고 협력하지만, 크게 전체 한국교회를 바라보면서 이런 문서사역에 투자하고 협력하는 교회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바라기는 영성과 실력을 두루 갖춘 훌륭한 인재들 중에서 이 어렵고 힘든 문서사역에 평생 헌신할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것입니다.”〠 <계속>

 

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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