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0-20의 인생들

글|정원준, 사진|박태연ㆍ권순형 | 입력 : 2011/08/29 [10:47]
목요일의 재회

“안녕하세요, 정 목사님! 제가 목요일 날에는 못 내려갈 것 같습니다. 방 구하기가 쉽지 않네요. 한국에서 오시는 손님들 부탁합니다.”

▲ 창신싱어즈 환영만찬장에 스코틀랜드 전통의상을 입고 나온 더글리스 로버트슨 목사(오른쪽)가 창신대학 강병도 총장과 강정묵 총장대행을 소개하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권순형 발행인의 전화였다. 방 구하기도 쉽지 않지만 매번 행사 때마다 시드니에서 멜본으로의 여비가 만만치 않음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후원하는 것도 아니고 자비량으로 경비를 충당하려니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내 자신도 그동안 가까이서 교제를 나누었지만 빡빡한 살림으로 잡지사를 운영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을 몰랐었다. 내 개인적인 일에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조금이나마 힘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남의 장소로 향했다.

일 년 만의 재회는 흥분되고 정겨웠다. 지난해 ‘경남 선교 120주년 기념관’ 개관식 참석차 호주 선교사들과 한국에 갔을 때 창신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내 생애에 있어서 감동적인 순간들이 몇 번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창신싱어즈와의 만남이었다. 호주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병원, 그리고 학교들을 방문했는데 안내하는 분이 우리 일행을 창신대학 강당으로 안내했다.

▲ 창신싱어즈 단원들에게 선물을 증정하는 로버트슨 목사.     ©크리스찬리뷰

환영음악회를 준비했다고 했다. 우리는 인사치레로 몇 곡 부르는지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정식 음악회였다. 그때 우리 일행은 30여 명 정도였다. 1천 여  명은 앉을 수 있는 그 큰 강당에 덩그러니 30명이 앉은 것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민망했던지. 그런데 선교사와 가족들을 대하는 음대 교수들의 자세는 달랐다. 정식 드레스를 입고 성의를 다해 노래를 불렀다. 1시간 가량 진행된 음악회는 내 생애 최고의 음악회였다. 마치 감동적인 영화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었다.

그 귀한 분들이었기에 멜본에서의 음악회가 몹시 기다려졌다. 호주인으로는 최초로 한국 선교를 떠난 데이비스 선교사가 목사 안수를 받고 파송예배를 드렸던 멜본 스카츠교회(Scots'  Church)에서 준비한 환영 만찬장에는 창신대학 설립자 강병도 명예총장, 강정묵 총장 직무대행, 창신싱어즈 교수들과 스카츠교회 담임목사 부부 및 교우들이 참석하여 인사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했다.

본 행사는 금요일과 토요일 시작되지만 목요일 저녁 만찬을 통해 호주교회에서 얼마나 이번 행사에 정성을 쏟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환영을 나온 더글라스 목사(Rev. Douglas Roberston)는 스코틀랜드 정통 복장을 입고 일행들을 맞이했다. 그리고 창신 싱어즈를 위해 선물도 준비했는데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꼭 그 모습이 작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본인들이 받은 그 한국식대로 주는 것이었다. 보통 호주 사람들이 그런 선물들을 하지 않는데 정성껏 선물 가방을 한 사람씩 전해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아, 문화란 서로에게 배움을 전해주고 삶의 스타일에 영향을 주는구나!’ 하는 작은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다. 창신싱어즈는 내일의 공연을 앞두고 목을 아껴야 됨에도 호주교회의 정성에 보답하고자 헤어지기 전에 두 곡의 노래를 선사했고 거기에 모인 우리 모두는 감격에 사로잡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얘들아, 오늘 한국에서 음악하시는 교수님들이 와서 음악회를 하신단다. 작년에 아빠가 한국에 갔을 때 들었는데 정말 멋있더라. 준비하고 함께 가자꾸나.”

▲ 경남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구동태 감독은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 멜본에서 목회하고 있는 한인교회 목회자 부부를 초청, 캔터베리장로교회 교육관에서 만찬을 베푸는 섬김의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각종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서 아이들을 유혹했다. 성악이라는 것이 사실 요즘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음을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야 했다. 맛있는 것을 사 준다느니, 가지 않으면 내일 밥 없다느니 각종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서 아이들을 설득했다. 


콘서트의 날

이민생활하면서 이런 음악회를 가족들과 함께 할 기회가 쉽지 않기에 마침 무료로 진행되는 이번 창신싱어즈 연주회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또한 인터넷과 게임에 빠져있는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큰아들 녀석은 아빠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고 막내딸은 엄마와 함께 하고픈 마음에 동행했지만 쌍둥이 큰딸은 숙제가 있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다.

이제 머리가 컸다고 엄마 아빠와 함께 동행하지 않은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너무 아쉬웠다. 아이들만 탓할 것도 아니다.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콘서트에 가자고 광고했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여보, 아세요? 멜본에서 나가수 공연이 열린데요. 그런데 그 표가 벌써 매진됐데요.”


▲ 만찬모임에서 인사하는 구동태 감독과 사회자 남일우 목사, 통역 남기영 목사 (오른쪽부터).     ©크리스찬리뷰

요즘 한국에서 유행인 ‘나는 가수다’가 이곳 멜본에서 열리는데 한인회 관계자들 주변으로 벌써 표가 동이났다고 아내가 놀라움을 표시한다. 무료로 공연을 연다고 해도 시큰둥한 성악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과 너무 대조가 돼 마음이 씁쓸했다. 거기다 왜 이리 빗방울은 거세지는지 공연 시간을 앞두고 멜본의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불안감이 더했다.

애써 정성들여 준비한 음악회가 그릇칠까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교회 강단은 사람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의외로 호주 사람들이 많이 와서 음악회는 열기를 더해갔다.

“목사님, 저희 창신싱어즈 최근 공연 중에 이번 만큼 연습을 열심히 한 적이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 맥켄지 선교사의 딸 루시와 실라 여사가 만찬에 참석, 오랜만에 한식을 즐겼다.     ©크리스찬리뷰

나중에 한 교수의 말처럼 그분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음악회였다. 함께 한 스카츠 성가대의 수준 높은 성가 또한 인상 깊었다.

둘째 날은 전날 함께 하지 않은 큰 딸에게 나의 의지를 단호하게 비쳤다.

“오늘도 함께 하지 않으면 아빠 화낼 거다. 너를 사랑해서 아빠가 좋은 구경시켜주고 싶은데 아빠의 마음을 몰라주면 용서할 수 없어.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

너무도 단호한 모습에 당황한 큰딸은 훌쩍거리며 마지 못해 뒤를 따랐다. 아, 성악이여! 이를 어쩐단 말인가! 어쩌다가 자극적인 것을 좋아하는 이 시대에 찬밥 신세가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 연주회를 마친 후 기념촬영     ©크리스찬리뷰

“이번 공연을 통해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음악 선교사이십니다. 이 심정으로 힘드시겠지만 좋은 공연 많이 부탁드립니다.”

창신싱어즈들에게 진심을 담은 마지막 인사말이었다. 큰딸 또한 마지못해 따라왔던 처음과는 달리 음악회가 끝나고 왜 어제 자기를 데려오지 않았냐고 어처구니 없는 항변을 늘어놓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복음도 그렇고 좋은 것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모를 수 있다. 그러나 포기하기보다는 우리 부모들이나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전해야 하는 사명이 필요함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다.

정해진 공연이 끝났음에도 앵콜 송을 두 번이나 더 요청했던 관객들을 보며 마음 한켠에 뿌듯함이 몰려왔다. 무엇이나 진심은 통하는 것이나 보다.

“목사님, 이번 공연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고 했던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이 안 알아준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최선을 다한다면 그 열정이 감동을 전해주게 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멘토와의 마지막 밤

모든 영화나 연극마다 주연이 있다면 그것을 뒷받침하며 극을 살리는 조연이 있는 법이다. 이번 콘서트의 주인공들은 창신싱어즈 멤버들이었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한국에서 온 목회자들이 있었다. 경남 지역에서 이름만 되면 알만한 분들이기에 이분들의 협조와 헌신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번 저의 방문은 그저 식사 대접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호주 선교사들과 이민교회 목회자들을 대접하기 위해 귀한 시간을 낸 구동태 감독의 고백은 입서비스가 아니었다. 행사기간 동안 후배 목회자들에게 아침마다 토스트를 구워 섬기고 우리 일행이 가서 쉬는 곳마다 본인이 직접 섬김의 본을 보여주었다.

“감독님,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모든 행사를 마치고 구 감독의 방을 방문했다. 귀한 멘토와의 만남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나는 마지막 밤을 그렇게 보냈다.

“감독님, 아시겠지만 이민 목회자로서 고충이 있다면 귀한 경험이 있는 선배 목사님과의 만남을 갖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때로 어려움이 있을 때 조언을 구하고 싶지만 이민교회 여건이 그렇지 못합니다. 피곤하시겠지만 조언 부탁드립니다.”

▲ 멜본한인교회교역자협의회는 귀국 전날 창신싱어즈를 초청, 환송만찬을 베풀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엘리야의 영성을 사모했던 엘리사처럼 목마름으로 그동안 고충을 털어 놓았다.  감사하게도 구 감독은 세시간에 걸쳐 그동안의 목회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해주었다. 짧은 지면상 다 늘어놓을 수는 없고 중요한 요지만 전하고 싶다.

“정 목사, 첫 번째 이민목회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했을 때 직장을 구해 주는 등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움을 받은 사람 중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다 떠났지요. 왜 그런지 아세요? 도움을 주었던 나의 마음에는 늘 ‘내가 너에게 도움을 주었지’라고 생각하고, 도움을 받은 사람은 ‘내가 저 목사에게 도움을 받았는데’라는 부담감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사람의 위치도 환경도 변하는데 이 마음으로는 함께 할 수 없게 돼죠.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위치의 나를 바라봐주길 원하는데 상대가 과거의 도움을 준 것으로 바라보니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떠나게 되는 겁니다.“

그동안 왜 도움을 준 사람들이 교회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정 목사, 자신의 부족함으로 나는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러지 마세요. 하나님은 목사님을 사랑하시고 쓰시려고 하는데 왜 정 목사 스스로 ‘나는 부족하니 하나님께서 나를 원하시지 않을 거야’라고 하십니까? 그건 하나님을 박스 안에 가둬 놓고 스스로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관점을 갖는 겁니다. 그건 진정한 하나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정 목사를 사랑하시고 지금 쓰시는 겁니다. 갈등하지 마시고 기쁨으로 열심히 그분의 일을 하세요.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그분이 자신의 일을 위임하셨다는 것이.”

그리고 은퇴를 2년 앞둔 선배는 2-6-2의 법칙을 말해 주었다.

“어느 모임이든 2-6-2의 법칙이 존재합니다. 100명의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긍정적인 사람 20, 중간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 60, 그리고 부정적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 20이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수를 차지하는 60의 사람들은 변동적이지요. 긍정적인 20이 강하면 그쪽으로 따라오고, 부정적인 20이 강세를 이루며 그 쪽으로 기울어 집니다. 그래서 20의 긍정적인 사람들을 잘 교육하고 훈련하면 나머지 60은 따라오게 돼 있지요. 100명의 사람을 다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긍정적인 20의 사람들을 잘 훈련시키십시요.”

소돔 성이 의인 열 명이 없어 망했듯 이 세상이든 교회든 모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20의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들이 세상의 무지와 비난 가운데서도 자신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사명을 굳건하게 감당하고 있다면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이번 창신싱어즈 콘서트를 통해 나는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와 교회를 이끌어가는 청향제와 같은 긍정의 20 인생들을 보았다. 그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며 내 인생은 어디에 속해야 하는지 나 자신에게 도전해 본다.

끝으로 창신싱어즈 연주회를 위해 일일이 열거하지는 않지만 차량봉사와 안내, 식사 대접 등으로 수고해 주신 여러 교회와 성도들께 주최측을 대신하여 감사드리며, 귀국 전날(9일) 창신싱어즈를 초청, 만찬을 베풀고 격려해 준 멜본한인교회교역자협의회(회장 김동지 목사, 총무 황규철 목사)에 특별한 감사를 전한다.〠

 

정원준|크리스찬리뷰 객원기자, 멜본우물교회 담임목사
박태연|크리스찬리뷰 사진기자/ 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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