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전 (Temples in Jerusalem)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1/11/28 [15:05]

감람산(Mount of Olives)에서 예루살렘 구도시(Old City)를 보면 성전은 간데 없고 '바위사원'이라 불리는 ‘오마르 모스크’만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그날 예루살렘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하며 찬양과 기쁨의 춤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찬양 속에 거하는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성서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은 세 차례에 걸친 성전 건축과 파괴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받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하늘에 있는 ‘성막’(Tabernacle)을 보여 주었다. 시내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 생활에 필요한 ‘이동식 성전’인 ‘성막’을 지었다.

‘지성소’(The Most Holy Place)에 ‘법궤’(Ark of Covenant)를 안치했다. 법궤 안에는 ‘돌판 십계명,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가 있었다(히 9:4). 법궤는 하나님이 임재하는 자리로,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실 때 법궤에서 만나 주셨다 (출 25:21-22). 모세는 모든 계시를 법궤에서 받았다(출 25:22).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면서, 성막이 아닌 성전(Temple)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성전은 성막(Tabernacle)의 발전된 형태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세 번에 걸쳐 세워졌다. ‘솔로몬 성전’(BC.959; 왕상6:1-38), ‘스룹바벨 성전’(BC.516; 스6:15-18), 그리고 신약시대의 ‘헤롯 성전’(BC.20-A.D.63)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과 운명을 같이 하고 있다.  성전이 파괴되는 때가 곧 나라가 멸망하는 때이다.

▲ 감란산에서 예루살렘 구도시를 바라보면 ‘오마르 모스크’만 찬란한 황금빛을 발하고 있다.     ©김환기


 제 1 성전 – 솔로몬 성전

통일 왕국의 왕으로 등극한 다윗은 수도를 헤브론(Hebron)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예루살렘은 정치, 경제, 군사의 중심이었지만 부족한 게 한 가지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흩어진 12지파의 마음을 하나로 묶을 ‘법궤’(Ark of Covenant)가 없었다.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는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작했다. (수 15:9, 대상 13:5-6)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의 통치를 뜻하는 것으로, 다윗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를 소망했다. 뜻은 좋았지만 법궤를 옮겨오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법궤를 옮길 때 레위지파의 고핫 자손이 직접 메어 옮겨야 했다.(민 4:15, 7:9)

그런데 블레셋 사람처럼 소가 끄는 수레로 이동하다가 웃사가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법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간 머물게 된다. 오벧에돔의 집에 축복이 임하자, 다윗은 다시 법궤를 이동할 것을 명령했다.  드디어 법궤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자 다윗은 너무 기뻐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다윗은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건축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피를 많이 흘린 다윗의 손을 통해 성전이 건축되기를 허락하지 않으셨다. 

성전은 아들인 솔로몬에 의해 건축된다. 솔로몬 성전의 총공사기간 7년 6개월 만인 BC 959년에 성전이 준공되었다(왕상 6:1-38). 

성전이 준공된 지 373년 만인 BC 586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제3차 침공 때 남 왕국 유다의 멸망과 함께 완전히 훼파되었고, 성전의 금, 은, 놋 기명과 보물들은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다.

▲ 솔로몬 성전     ©김환기


제 2 성전 – 스룹바벨 성전

바벨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는 포로들은 모두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칙령을 발표했다. 이른바 ‘고레스 칙령’이다.(BC 538) 1차 귀환은 총독이었던 ‘스룹바벨’, 2차 귀환은 학자이자 제사장인 ‘에스라’, 3차 귀환은 ‘느헤미야’의 영도 하에 이루어졌다. ‘스룹바벨’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하였고, 에스라는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켰고, 느헤미야는 무너진 성벽을 중수하였다.  마침내 제 2 성전인 ‘스룹바벨 성전’은 BC 516년 경에 준공되었다.

멜본에 있는 구세군 시설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 멜본 시내 한복판에 ‘614 구세군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이사야 61장 4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전인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지역사회를 섬기는 3R 운동을 펼치고 있다. 3R이란 이사야 61장 4절 말씀을 의지하고 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Rebuild),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Restore)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Renew) 것이며.”

내가 방문한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300여 명이 넘는 ‘거리의 사람’들이 교회에서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어제까지 거룩했던 ‘교회’가, 오늘은 ‘소외된 자’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커다란 ‘식당’으로 탈바꿈 한 것이다. 지금도 614 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로 3R의 Vision을 품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  마치 귀환한 지도자들이 민족을 품에 안고 ‘성전을 재건하고, 무너진 마음을 회복시키고, 무너진 성벽을 중수’ 했던 것처럼….

▲ 혜롯성전 앞에서 필자(오른쪽)     ©김환기


헤롯 성전 (Herod’s Temple)

이방인 ‘이두매’(Idumea) 출신인 헤롯왕은 유대인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제 2 성전’을 확장 건설하였다. 옛 성전 터전 위에 BC 20년에 착공하여 외형은 9년 만에 완성되었으나 세부공사는 AD63년경에야 비로소 완성되었다.  근 80년이 넘게 걸려 세워진 이 헤롯성전은 완공된지 불과 수 년 후인 AD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성전에 있던 금들이 화재로 녹아 돌 사이에 스며들었고, 로마 군인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모든 돌을 다 헤쳐버려 돌 위에 돌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헤롯 당시 성전의 바깥 벽 중 일부 약 450m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The Wailing Wall)이라고 부른다.

이는 유대인이 이곳에 와서 성전이 파괴된 것과 나라를 잃은 자신들의 처지를 슬퍼하여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거룩한 장소이다. 오스만 시대부터 이스라엘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이 이곳에 순례차 와서 소원이 적힌 쪽지를 벽의 돌 틈새에 끼워 가며 기도를 하고 있다. 지금 유태인들은 제3 성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제3 성전이 완성되는 날에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법궤’ 없는 성전이 聖展일 수 있겠는가?  ‘법궤’ 대신 메시아가 직접 오신다는 것일까?

다음 호에는 유태인의 한이 서려 있는 ‘통곡의 벽’과 예루살렘 ‘8개 성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도행전 3장에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켰던 미문은 굳게 닫혀 있다.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고 해서 ‘동문’, 아름답다고 해서 ‘미문’(美門) 이라 불리는 ‘황금 문’은 ‘메시아’가 올 때 열릴 것이라 한다. 〠

 

김환기 | 호주구세군 다문화 및 난민 조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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