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돌파하라!

강승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1/30 [12:37]

믿음의 반대말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불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된 단어는 ‘사랑하라’ ‘겸손하라’가 아니라 366회 사용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윤달까지 계산하신 것 같다.

주님은 날마다 두려워말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이 믿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교회 다니거나, 성경공부 한다고 믿음이 자생하지 않는다. 믿음은 ‘사실’에 근거를 두고 믿기로 결정할 때 생긴다. 그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하시니까 그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할 때 믿음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은 사실에 근거하지만 그 사실을 정확히 증명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정확히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 안에 하나님이 너무 작다”는 말처럼,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이 나 같은 분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 연구해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 수 없다.

하나님은 신비한 체험으로 이해되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셔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시기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고 말한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예수님은 말했다.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구약의 예언대로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셔서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다.

부활의 표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입증한다. 그 분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 왔다 가셨다! 어두운 이 세상에 참 빛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용서받은 죄인이요,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구원받은 의인인 것이다.

21세기 C. S. 루이스 라는 별명을 가진 톰 라이트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제자들이 ‘인지부조화 장애’(cognitive dissonance)를 앓았다는 사실을 통해 증명되어지기도 한다. 인지부조화 장애란 어떤 사실을 강력하게 믿는 사람이 정반대의 증거에 부딪혔을 때 훨씬 더 강력하게 계속해서 믿는 사실을 말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예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이 실망하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겁쟁이에서 순교자로 변화된 사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믿을 만한 근거가 있기에 우리는 믿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믿기로 결정하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도 않고 자라지도 않는다.

그러면 무엇을 믿기로 결정해야 할까? 먼저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기로 결정해야 하며, 십자가를 보면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믿기로 결정해야 한다. 또한 기도응답을 믿기로 결정해야 한다. 믿기로 결정하고 새로운 선택을 시도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그 믿음이 계속 자라려면 모험을 해야 한다.

하나님이 요구하신 믿음은 순종이라는 모험을 통해 얻게 되고 자라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약속은 ‘기대하는 자에게 응답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음을 보고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하나님이 기도할 때 일하실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통해 응답해 주신다.

마지막으로 믿음이 자라라면 감사해야 한다. 감사는 믿음이 자라게 하는 힘이며,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사람만이 간증하며 하나님 자랑하면서 기뻐할 수 있다. 평상시에는 믿음이나 신념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위기가 닥치면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영적 거인이 된다.

믿음은 두려움을 정복하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기로 결정할 때 믿음은 시작된다. 믿음은 순종이란 모험을 요구한다. 믿음은 기대하는 사람 편에서 일하며 두려움을 돌파하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강승찬|시드니새생명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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