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의 4지역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1/30 [14:26]

예루살렘의 4지역 

구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아르메니아 지역’, ‘유대인 지역’, ‘기독교 지역’그리고 ‘무슬림 지역’ 등 4개 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르메니아 지역에는  ‘야고보교회’가 있고, 유대인 지역에는 ‘통곡의 벽’, 크리스찬 지역에는‘성분묘교회’그리고 성전산에는‘바위 돔’ 등 3개 종교의 성지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한 종교도 아니고 3개 종교의 성지이니 다른 곳보다 3 배의 평화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실상은 3 배 이상의 문제가 있는 지역이다.  대체 ‘예루살렘’은 이들에게 무엇인가?  어떤 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모든 것이 될 수도 있다.

▲ 예루살렘 4지역 지도. 구 예루살렘은 성벽으로 둘러 싸여 4지역으로 구분되어 있다.     ©김환기


아르메니아 지역 (Armenian Quarter)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아르메니아를 보면 아주 작고, 터어키를 제외하고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작은 나라들에 둘러 싸여 있다. 이렇게 작고 힘이 없을 것 같은 나라가 어떻게 예루살렘 한쪽 지역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지 신기하기만 했다. ‘아르메니아 지역’여기저기 붙여 있는 ‘터키’에 대한 ‘항의 포스터’를 보고, 아마 터키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아르메니아 민족은 노아의 방주 신화로 유명한 지금의 터키 동부 지역의 ‘아라랏산’ 근방에 거주하면서 고도의 문명생활을 누려왔다.  301년부터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나라이다. 아르메니아 교회가 예루살렘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5세기부터인데, 1311년 아르메니아 지역이 예루살렘에 생겨났다. 

오스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주위의 국가들이 모두 이슬람으로 개종할 때도 끝까지 개종을 거부해 나중에는 근방에서는 아르메니아 민족만이 기독교 민족으로 남았다. 15세기 경부터 오스만 제국이 중동과 발칸 전 지역을 정복하면서 아르메니아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기 시작했다.

아르메니아는 이때부터 조직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특별히 1915년에 발생한 터어키의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아르메니아 민족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현재 아르메니아 민족이 전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유는 90년 전에 일어난 ‘아르메니아 대학살’ 때문이다.

학살을 피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현재 모국에는 300만 명이 남아 있고, 전세계 107개국에 900만 명의 디아스포라 아르메니아인들이 살고 있다. 대량학살이 자행되는 동안 모슬렘으로 개종하지 않은 아르메니아 교인들의 대량 이민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지역의 아르메니아 교인들이 늘게 된 것이다.

아르메니아인들의 최대 성지는 아르메니안 구역의 ‘성 야고보 교회’다. 이곳이 바로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최초의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린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2명의 야고보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하나는 예수님의 동생으로 초대 주교였던 성 야고보와 예수님의 제자 요한의 형인 야고보로 이들 2명의 시신이 이 교회에 묻혀 있다. 예수의 동생이며 초대 주교였던 야고보의 무덤은 교회 안 강단 밑에, 그리고 참수형을 당한 요한의 형제 야고보의 무덤은 교회 당 좌측에 있다. 

 
크리스찬 지역 (Christian Quarter)

크리스찬 지역에는 성분묘 교회( Church of the Holy Sepulchre)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골고다언덕과 그의 무덤을 보존하기 위하여 33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의 지시로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이곳은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십자가의 길)의 마지막 장소이기도 하다. 교회가 위치한 곳 지하에 세 개의 나무 십자가와 못 한 개,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쓰인 팻말이 발견되어 10년 동안 교회를 세웠다지만, 수차례 파괴와 재건 거듭되어, 오늘날의 건물은 대부분 십자군 시대에 지어진 것이다. 

지금은 무려 6개의 기독교 종파가 '성분묘교회'를 나누어 관리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무슬림이 교회를 열고 닫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 성지이지만 무슬림이 관리하는 곳이 또 있다.  감람산 위의 '승천교회'이다. '성분묘교회'는 입장료가 없는데 '승천교회'는 있다. 무슬림이 기독교 성지를 관리하며 먹고 산다!  아이러니칼하지 않은가!  뭐 이것뿐인가, 많은 무슬림들은 기독교 성물을 팔아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종교고 뭐고, ‘뭐니뭐니’해도 ‘머니’(Money)가 최고인가 보다!

 
유대인 구역 (Jewish Quarter) 

유대인 구역에서는 제2의 성전 시대의 유물을 엿볼 수 있다. 로마에 의하여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유일하게 남은 곳은 ‘서쪽 벽’(Western Wall)이다. 로마 시대에는 유태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고, 비잔틴 시대에는 일 년에 단 한 번 성전 파괴 기념일에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 유대인 구역에 있는 통곡의 벽     ©김환기


유태인들은 그날 이곳에 와서 그들 민족이 분산됨을 슬퍼하고 그들 성전이 폐허 됨을 통곡하였기 때문에 이 벽을 ‘통곡의 벽’(Wailing Wall)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러한 관습은 수세기에 걸쳐서 계속되었는데, 1948년부터 1967년까지 이 지역이 요르단 영에 속하게 됨으로써 유태인들은 다시 방문이 금지되기도 했다. 유태인들은 6일 전쟁 시 이 지역을 탈환하므로 이곳은 범 국가적인 즐거움과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앞의 넓은 공터를 수천 명이 기도할 수 있도록 다듬어 놓았다. 통곡의 벽 반대쪽에는 황금 사원이 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렸던 곳이고, 솔로몬 성전이 있었던 곳이다. 통곡의 벽 주변에는 통곡의 벽 터널, 독특한 데이비드슨 센터, 웅장한 카르도와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뚝 솟은 다윗의 성 등 중요한 유대인 유적이 있다. 

 
무슬림 지역 (Muslim Quarter)

예루살렘에서는 무슬림 지역이 가장 크고 번화하다. 그 중에서도 ‘다마스커스’(Damascus) 성문이 제일 복잡하다. 딱히 무슬림 지역으로 구분되지는 않지만 ‘바위 돔’(Dome of Rock)이 있는 곳인 성전산도 무슬림이 관리한다. ‘통곡의 벽’ 우측 입구를 따라 성전산에 오르면 ‘엘악사’ 회교사원과 ‘바위 돔’을 볼 수 있다.

서기 638년 이곳을 통치했던 아랍인들은 성전산의 큰 바위 위에서 자신들의 최고의 선지자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전설에 따라 그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는 바위를 종교적으로 기념 및 보존하기 위해 서기 692년 당시 예루살렘의 통치자인 ‘압둘 말리크’는 대사원을 건축했다. 

오늘날도 성전산 위에 우뚝 서 있어 예루살렘의 대표적 건축물이 되고 있는 '바위 돔'이 바로 그것이다. 지름이 78피트, 높이가 108피트인 돔은 구리와 알루미늄의 특수 합금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태양빛이 비칠 때는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반사된다.

1958~1964년 사이에 사원의 돔을 교체하면서 황금색 칠을 하여 '황금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모하메드가 승천했다는 바위도 이 바위사원 안에 있기 때문에 모슬렘에서는 메카, 메디나와 함께 예루살렘을 3대 성지로 꼽고 있다. 얼마 전 바위의 돔은 새 단장을 하게 되었다.

요르단의 후세인 왕은 650만 달러의 사재로 돔을 24K의 순금으로 씌우게 했다. 1993년 시작된 공사는 15개월간 계속되어 1200장의 얇은 순금 판이 돔 위에 입혀져 진짜 ‘황금 돔’이 되었다.〠

 

글/김환기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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