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t we forget’

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글|조경자,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3/26 [11:38]

해마다 4월 25일 안작데이(Anzac Day)를 맞이할 무렵이면 가벼운 흥분에 휩싸인다. 군인 가족이었기에 오는 느낌일까? 처음에는 우리나라의 현충일과 국군의 날이 혼합된 행사로 알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그 의미는 새롭고 크고 무겁게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안작데이 행사는 동트기 전 각 지역 충혼탑에서 백파이퍼(bagpiper)의 연주로 시작된다. 이는 호주와 뉴질랜드 연합군이 제1차 세계대전 때인 1915년 4월 25일 이른 새벽 갈리폴리 상륙작전의 시간적 의미이다.

시드니 행사는 새벽 4시 30분, 시드니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 세나톱(Cenotaph) 전몰 장병 기념비 앞에서 거행되는 추모식을 시작으로 9시경에는 시가행진으로 이어진다.

▲ 안작데이에 마틴 플레이스 전몰 장병 기념비 앞에 시민들이 헌화한 화환들이 가득하다.     ©크리스찬리뷰


노병들의 행진은 당당하다

해가 거듭될수록 그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나 애환을 함께 했던 부대의 낡은 깃발을 앞세우고 불편한 몸으로, 일부는 무게차에, 일부는 휠체어에 의지하여 행진하지만 가슴에 가득히 달린 훈장은 그들을 아직도 빛나게 한다.

▲ 노병들의 당당한 행진     ©크리스찬리뷰


뿐만 아니라 사위어 가는 힘을 살리어 허리를 세우고 늠름히 걷는 그분들에게서 자신들이 스스로를 존귀히 여기는 기개찬 모습이 보여 감동스럽다. 그것은 그분들의 가장 젊은 날의 용맹스러운 발걸음이 참담한 전장의 험난한 구릉을 넘어 왔으므로 얻을 수 있는 고귀한 상급인 것이다. 

 
행진은 계속되고 있다

손주에게 훈장을 달아주고 자랑스럽게 함께 걷는 노병. 아버지의 사진을 들고 행진하는 딸의 모습. 유품인 장화와 총을 싣고 행진하는 말...

저들의 젊은 발걸음이 우리나라의 산야(山野)도 누볐겠구나. 때론 드물게 만나는 그분들 입에서 우리나라 ‘가평’이라는 정확한 지명을 들으며 치열했던 ‘가평전투’의 기억이 아직도 그분들에게 생생하게 자리하고 있음을 느껴본다.

▲ 마틴 플레이스 전몰 장병 기념비 앞을 행진하는 노병들     ©크리스찬리뷰


거리에는 손에손에 호주국기를 든 남녀노소의 많은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환호와 박수로 답례를 한다.

“당신들은 고귀한 분들입니다. 영웅이십니다. 당신들이 그때 그곳에 계셨기에 오늘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깃발이 나부끼는 소리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호주교회의 기념예배

안작데이에 즈음해서 호주교회에서는 기념예배를 엄숙하게 드린다. Ode-Last post-Silence-Rouse~.Last post-, 나팔 취주를 들을 때마다 노을진 들녘 벌판의 황령한 정경이 펼쳐진다. 검붉은색 야생 양귀비가 사랑하던 전우의 피인듯 꽃인듯 흩뿌려져 있는 Flander의 적막한 언덕, 노을은 어찌 저리도 붉게 물들어 있을까!  

▲ 손주에게 훈장을 달아주고 함께 행진하는 할아버지     ©크리스찬리뷰


격전 후의 처참하고 참당한 모습, 얼마나 치열했으면 하루 휴전을 선포하고 숨진 병사들을 매장하기로 했을까!

Ode-, 송시가 낭송될 때는 모윤숙 님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시가 연상되며 내 나라 산야를 누비던 군화의 발소리를 듣는다. 눈물이 핑돈다.

▲ 노병들의 부인들이 호주 국기를 들고 행진을 지켜보고 있다.     ©크리스찬리뷰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모윤숙 

 
산 옆 외다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직임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시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간 마지막 말을...

... 중략 ...

 

 ‘Lest we forget’

▲ 오랜만에 만난 전우와 악수를 나누는 노병     ©크리스찬리뷰


이보다 앞서 일주일 전 토요일에는 마틴 플레이스에 있는 전몰장병기념비 앞에서 헌화식이 먼저 거행된다. 안작데이에 헌화하는 대표적인 화환(chap- lets, wreath)은 물방울 모양이다. 이것은 눈물이나 핏방울을 상징한다.

표면은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수잎(laurel leaves)잎으로 푸르게 감싸고 아랫부분에는 꽃술이 검은, 그래서 검게 보이는 검붉은색 양귀비(poppy) 세 송이를 장식하는데 양귀비 세 송이는 육군·해군·공군을 의미한다. 붉은 양귀비는 위와 위안의 듯이 내포되지만 그보다 Flander 언덕에 피처럼 흩어져 피어있는 야생 양귀비꽃의 기억이 더 큰 상징이다.

▲ 안작데이에 헌화하는 대표적인 화환     ©크리스찬리뷰


꽃 사이 사이에 추모의 뜻을 가진 로즈메리(rose- mary)를 꽂고 호주 국기 생깔인 red. white, blue로 리본을 만들어 장식하고 애도의 뜻이 포함된 보라색 리본에 금색활자로 찍힌 ‘Lest we forget’(당신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리본을 왼쪽 위에서 사선으로 오른쪽 아래로 고정시켜 마무리한다.

▲ 추모 기념비 앞에 놓인 화환들     ©크리스찬리뷰


해마다 돌아오는 4월 25일, 호주의 안작데이

오늘도 우리나라를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전에 읽었던 책 중 한 대목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 본다.

 ...이들에게 현재의 우리 국력에 걸맞는 보상과 따뜻한 원호가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후세들에게 선조들의 희생과 헌신, 공훈이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며 그리하여 우리 후세들의 애국충성이 대를 이어가야 한다. 우리의 조국 자유 대한민국의 영원 무궁한 번영을 위해서.〠

▲ 호주군 제3대대를 이끌고 한국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찰스 그린 중령의 미망인 올윈 그린 여사(89)와 함께 한 채명신 장군.     ©크리스찬리뷰


<채명신 회고록> ‘베트남 전쟁과 나’

에필로그 중에서

 

글/조경자|콩코드장로교회, 시드니문학회 회원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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