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그리스도인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8/27 [16:22]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아마 특별히 유별나게 튀는 아름다운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외모나 밖으로 들어나는 형식을 말하는 것은 더욱 아닐 것이다. 일상의 삶 가운데 행동과 말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고 예수의 성품이 은은하게 나타나는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은 이런 사람이다.

첫째, 가끔씩 남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어색한 몸짓으로나마 건전한 유머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어 보면 어떨까? 경박하거나 천박한 세속적 우스갯소리가 아닌 잔잔한 메시지가 담겨있어 상대를 감동시키는 고품격 유머 말이다.

예수님이 작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모습이 아마 그런 모습이셨을 것이다. 세배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급한 성격을 표현하시면서 그의 별명을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다.(막 3:17) 한국식으로 해석하며 천둥번개돌이 같은 놈들이라는 뜻이 아닐까!

미국 하버드대와 UC샌디에이고 대학 공동연구팀의 발표에 의하면 유머가 많은 사람이 옆집에 살면 34% 정도 행복지수가 올라가고 1.6km 이내에 거주하면 14%가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를 영국의학저널에 발표했다. “최악의 삶을 최고의 성공과 행복한 인생으로 바꾼 예수님, 그 중심에는 인류에 대한 사랑과 유머가 있었다.”<예수의 고품격 유머>라는 책의 저자의 마지막 결론의 말이다.

둘째, 흔한 것 같지만 결코 흔하지 않은 솔직한 진실이 담긴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근심에 가득 차 있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그늘이 져 있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당신은 웃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라고 진심을 담아 말하는 사람이면 충분히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다. 세상 사람은 립 서비스에 식상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이 삭개오에게 그렇게 다가가신 것이다.

늘 죄책감과 소외 가운데 살아가던 그에게 예수님께서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실 때 자기를 향한 예수님의 진심이 어린 관심을 그는 느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매력은 진실을 말하고 말씀하신 대로 사셨다는 것이다.

셋째, 현재 자기에게 주어진 것들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아름답다. 버렸다가 다시 찾는 물건처럼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과 환경을 그렇게 취급할 때가 흔히 있다. 필요할 때는 적극적으로 찾다가도 당장 필요를 못 느끼거나 이용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태도가 돌변하는 것은 얼마나 추한 모습인가!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모르다가 떠나가면 그리워하고 소중해 하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때로는 주어진 환경과 사람들 때문에 몸도 힘들고 마음도 아프지만 내게 주어진 것은 모두가 소중한 것임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마음과 눈을 가진 사람은 아름답다.

넷째, 가늘지만 낚싯줄처럼 견고한 용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름답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감이나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바라보는 사람도 가슴에 뜨거운 것이 일어난다. 나도 저 사람처럼 살아야지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된다. 그 인내와 용기의 아름다움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상황을 보며 용기를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바라보며 용기를 얻는다는 것이다. 발 아래 땅을 신뢰하듯이 변함없이 예수님을 신뢰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아름답다. '이제 끝이야'라고 할 때 한 번 더 부딪혀 보라. 그게 진정한 용기이다.

다섯째, 자신과 남들의 실수를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다. 예수님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용서로 표현되는 지극한 사랑이다. 우리가 서로 용서한다는 것은 나도 완전하지 않다는 겸손한 신앙의 고백이다. 자신에게 친절하고 스스로를 용서하는 사람은 얼굴에 평안의 미소가 번진다. 용서는 그 잘못을 죄가 아닌 잘못된 행위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용서한 것은 잊고 용서 받은 것은 기억하며 감사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여섯째,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충고 대신 함께 해결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름답다. 상대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서 그것을 보여주며, “자, 이렇게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잖아요. 다시 한 번 해보세요.”하며 격려해 주는 사람이 아름답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그렇게 사랑하셨다. 비판이나 충고, 방법론이나 대안 제시는 많은 경우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옆에 있어 주고 필요한 경우 작은 것이라도 조용히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다.

일곱째, 칭찬에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 아름답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그만큼 칭찬은 상대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일이 있다면 그게 바로 격려와 칭찬이다.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은 남에게도 관대하다. 스스로를 칭찬 할 줄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칭찬 할 수 있는 너그러움도 있게 마련이다. 진심이 어린 칭찬은 모두에게 진정한 승리를 안겨준다. 칭찬은 사람을 키우고 관계를 긍정적으로 결속시킨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칭찬을 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은 아름답다.

여덟 번째, 자기 마음의 상처를 대면해서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 아름답다. 늘 도피하고 회피하는 인생은 초라하다. 인생은 후회도 있지만 만약 그대가 상처에 직면하며 주님을 치유를 기대한다면 당신은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사람이다. 직면한다는 것은 사건과 일의 책임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용기 있는 행위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일을 경험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직면하며 극복하고 성장하느냐이다. 상처 속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드러내고 직면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름답다.

아홉 번째,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이 아름답다. 많은 사람이 가르치려고만 든다. 말하려고만 하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많이 선생이 되지 말고 배우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남보다 앞서갈 수 있는 비결은 끊임없이 배우는 것이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배워야 할 사람이다. 배우되 무엇을 배웠는지도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삶과 인격을 배우는 제자들이다.

열 번째, 무엇보다도 믿음의 사람이 아름답다. 믿음은 스스로의 힘으로만은 존재할 수도 없고 삶을 지탱해 나갈 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겸손한 사람의 모습이다. 절대자이신 하나님 앞에 작은 자기를 알고 인정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있을까? 믿음이라는 그런 것이다. 창조주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고 피조물의 자리에 스스로를 세우는 것, 그런 그리스도인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대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이 드러나는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가 무엇일까? 직설적으로 간단하게 말하면 복을 받는 삶이 아닐까! 죄 용서와 영생도 복이고 건강과 부도 복이다. 하늘의 신령한 복도 땅의 기름진 복도 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의 내용이요 모습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가장 우선적이며 최고의 복은 소유적인 복이 아니다. 존재론적 복이요, 관계론적 복이다. 그 후에 주어지는 복이 소유적인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삶은 대부분 존재 속에서 흘러 나오면 관계 속에서 표현된다. 소유는 그 아름다움을 위해 주어진 도구들이다. 위에서 나열해 본 몇 가지는 모두 존재의 변화와 관계 속에서 누릴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아름다운 복의 모습들이다. 자, 이제 다시 한번 도전해 보지 않겠는가?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지지 않겠는가? 〠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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