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가수 송정미

영혼의 비밀장소를 침투하는 찬양

송기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9/25 [12:00]
음악은 천사의 언어
 
좋은 음악은 살아있는 열정처럼 우리에게 와닿는다. 영혼의 비밀장소까지 침투하여 뜻을 전달하는 음악과 리듬은 어떤 형식이나 색깔이나 해석의 군더더기가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음악을 천사의 언어라고 하는가? 음악은 모든 철학보다, 아니 신학보다 한층 높은 하늘의 계시 같기도 하다. 그래서 시편 여러 곳에는 “새 노래로 노래하라”고 강조하고 있나보다. 음악이 있는 곳에는 사악함이 없다고 한다.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음악 있는 곳에 악마가 깃들지 못한다”는 극찬까지 했다.

영혼 속에 깊은 울림을 던지는 CCM 가수 송정미 사모(청년 사역자이자 푸른나무 한민족교회 곽수광 목사 부인)는 ‘소리의 혁명꾼’이다. 우리에게 16개 언어로 번안된 “때로는 너의 앞에 어려움과 아픔 있지만~”으로 시작되는 축복송으로 잘 알려진 그는 이미 25년 경력의 베테랑 가수이다.

100만 장 이상 음반 판매기록을 가뿐히 세우는 ‘음반계의 큰 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는 화려한 무대보다 소박한 무대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 일 년 중 통상 3개월을 해외공연으로 보내는 그는 특히 선교지 공연 때마다 거의 예외없이 듣는 말이 있다.

“많은 선교사님들 가운데 저의 어느 콘서트에 헌신했다고 하세요. 그리고 앨범을 선물로 받았는데 그걸 듣고 헌신했다는 선교사님들도 계시구요. 마른 막대기를 통해서도 쓰시는 하나님께서 저같이 작은 사람을 통해서도 선교사님들을 돕는 사역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오래 전 러시아 공연을 갔을 때 2만여 명의 관객들이 제 데뷔곡인 ‘축복송’을 러시아어로 번안하여 따라 부르더군요. 음악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어요”

미국, 캐나다는 물론이고,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일본, 아니 우리가 사는 호주까지(이번이 3번째 방문이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고 날아가 디아스포라 한인들과 선교사들을 위로하고 축복한다.

“가수들을 만나 얘기해보면 공연이 끝났을 땐 늘 허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늘 새로운 느낌으로 충만합니다. 특히 공연을 보고간 분들이 자신의 영혼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할 때면 무척 기뻐요” 

▲  영혼 속에 깊은 울림을 던지는 축복송으로 잘 알려진 CC M가수 송정미. 그녀는 소리의 혁명꾼이다. ⓒ크리스찬리뷰

북한도 품어야 하리라

그의 사역은 신앙의 눈으로 보았을 때, 지구촌의 가장 소외층이라 할 수 있는 북한동포까지 확장된다. 이미 청년 사역자인 남편 곽수광 목사가 장애자와 탈북자를 위한 ‘푸른나무 한민족교회’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는 만큼 이 사역은 그에게 또 하나의 소명이었다.

이번 호주에 오기 전에도 영국 장애인 올림픽에서의 섬김과 나눔을 쏟아 부었다. 특히 장애자 올림픽에 처녀출전한 북한을 위하여, 특히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북한대표단은 참가비를 비롯한 일체 모든 경비를 지불할 수가 없어 (사)푸른나무를 통해 북한 장애인 지원사업에 앞장서고 있는 남편과 그리고 런던 한인교회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섬겼다고 한다.

“런던 장애인 올림픽 열기는 대단했습니다. 특히 북한은 제14회 런던 장애인 올림픽에 장애인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참가했습니다. 수영선수 5명이 있었지만 국제 경험, 전지훈련 등의 이유로 남자 50m 자유형 수영경기에 림주성 선수 1명이 출전해 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했지만, 참가 그 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그들과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에 따르면 북한 리분희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은 현정화 감독과 함께 영화 ‘코리아’의 실제 주인공으로,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으로 한 조를 이뤄 남북 모두에 감동을 선사했던 장본인이라고 한다.

“리분희 선수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어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장애인 탁구선수팀 감독을 맡으면서 조선장애자체육협회 서기장까지 겸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가 해마다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콘서트를 성황리에 지속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펼치는 이 공연은 연말에 며칠씩 계속되는 콘서트이다. 그는 ‘특화사역’으로 대상을 넓혀 하루는 선교사를 위하여, 하루는 탈북자를 위하여 공연한다고 하였다.

“북한의 문이 열리면 그들의 문화에 맞는 노래를 해야 합니다.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들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현대화시킨, 그들의 정서를 품어야 합니다. 북한을 품으려면 탈북자를 먼저 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때 그의 공연에는 북한 예술단 소속이었던 공훈배우들이 게스트로 출연한다고 하였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교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마음에서다.

공연장에는 기독교인들뿐 아니라 비신자들과 불교신자 등도 찾아온다. 또 어린이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연령층도 다양하다. 어떤 관객은 반항적인 생활태도로 속을 썩이던 사춘기의 딸이 공연을 본 뒤 달라졌다고 고마워했다. 어느 여성은 공연을 본 뒤 낙태경험을 반성하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전해오기도 했다고 한다. 

▲ 시티주안교회 목요찬양 8주년 축하찬양콘서트에서 열창하는 송정미 ⓒ크리스찬리뷰

음악은 영원한 언어
 
초등학교 6학년, 안이숙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두꺼운 책을 읽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정도로 조숙했던 그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기타를 받았다. 독학(?)으로 기타를 공부, 방과 후에는 늘 피아노와 기타로 찬양하며 지냈다.

이미 그 당시에 미국에서 소개된 CCM 음반들을 접하기도 했다. ‘마라나타’ 등의 음악을
들으며 자신의 꿈을 가꿔나갔다. 급기야는 세화여중 1학년 때, 여름수련회 마지막 날 타 들어가는 모닥불 앞에서 선교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또한 ‘평생 찬양하며 살고 싶어요’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천국 가서도 영원히 부를 언어가 음악이고 찬양임을 깨달았다.
 
여고 2학년 때, 그가 출석하던 반포침례교회의 교육전도사는 미국 남침례교의 음악선교사에게 그를 추천하여 본격적인 가스펠 음악의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음악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번째 선생님은 ‘성령님’이고, 두 번째 선생님은 ‘거울’이고, 세 번째가 ‘나’란다.”
그리고 1986년 연세대 음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대학교 1학년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의 등장인물인 가수 ‘레이첼’에게 소외된 자들에게 소망을 주는 모습에 도전을 받게 되었다. 또한 SOUL이라는 당시 기독연합서클의 전도여행과 예배모임에서 활동, 도시와 낙도선교 전도여행을 통하여 소외된 자들에 대한 부담을 품게 되었다.

선천적으로 목이 약한 그는 성대결절로 노래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이로 인해 87년 말에는 학과 실기시험조차 치르지 못했다. 의사로부터 “두 달간은 절대 말하지 말라”는 진단이 내려졌을 때 한없는 절망과 슬픔을 겪어야 했다.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깊은 내면의 영적인 교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훈련을 가지면서 신앙고백과도 같은 유명한 ‘축복송’을 만들게 된다.

88년 뮤지컬 ‘Godspell’에서 소냐의 역을 맡으면서 숨겨진 재능과 ‘끼’를 발견, 무대에서의 경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얼마 후, CAM 주최 제 1회 전국 대학생 복음성가 경연대회에 참가, 노기돈의 ‘귀한 이름 예수’를 불러 금상을 수상하여 상금 전액을 SOUL을 통해 결핵환자를 돕기도 했다.

다음 해 89년, 제8회 극동방송 주최 전국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이유정 작사 작곡의 ‘오직 주만이’를 불러 대상을 받았다. 대학 4학년 여름, 미국 덴버에서 열리던 C.A. Seminar (크리스천 아티스트 세미나)에 참가, 미국의 크리스천음악을 접한 후 커다란 문화적인 충격과 음악적인 수준차로 회의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프리카에서 온 어린이 합창단의 노래 'He’s got the whole world'를 듣고 한국에서의 음악사역자의 부름을 다시 확인했다고 한다.

1990년 선교한국대회에서 OM 선교회의 총재, 조지 버워의 설교와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에 대한 음악선교의 비전을 품었다. 이듬해 1991년 데뷔앨범 ‘잃어버린 영혼을 향하여’를 발표하고 그해 류관순 기념관에서의 2회 공연 ‘송정미 라이브 콘서트’는 기념관 건립 이래 그 당시 최고 관객동원 기록을 세웠다고 한다.

다음 해 92년 4월에는 KBS홀과 지방공연을 다니게 된다. 공연 후, 캐나다 토론토 YWAM의 제자훈련학교(DTS)에서 매일 시편을 묵상하며 ‘복 있는 사람은’이라는 시편앨범을 준비하고 93년, 시편 ‘복있는 사람은’을 발표하면서 청년 선교에 헌신한 곽수광 목사와 결혼, 유학차 다시 캐나다로 떠나기도 했다.

1994년 하와이 YWAM 의 제자훈련학교(DTS)를 마친 후 찬송가 앨범 ‘이전보다 더욱’을 준비, 찬송가의 본고장, 부흥운동의 시발점인 미국에서 음악사역자로 존경받고 있는 ‘마이클 카드’의 프로듀서인 필 내쉬(Phil Naish)와 함께 만들게 된다. 믿음의 선배들이 불러온 어제의 노래들을 오늘의 음악 담아 95년 ‘이전보다 더욱 - Hymns’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적으로, 음악적으로 한층 더 깊이 성숙해져갔다. 특히 KOSTA 사역을 통해 예배사역의 흐름과 비전-치유와 격려, 회복시키는 사역-을 품었다. 그러면서 14년 동안 총신대 교회음악과 교수로 후진을 양성하기도 했다. 

▲ 시티주안교회 창립 9주년 기념 미니콘서트에서 영감넘치는 찬양을 부른 송정미 ⓒ크리스찬리뷰

시대의 아픔에 동참

그의 음악은 교회음악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리고 대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해 저문 저녁 서울역 뒤 어디쯤 거기 좁은 계단 저들 앉아있네/한 손엔 뭔가 들고 쭈그리고 앉아 아무 생각 없이 무얼 기다리나/기차는 떠나고 미동도 없이 저들 갈 곳 없어 처연히 앉았네”(4집 앨범 수록곡 ‘서울역’ 중에서)

“서울역이라는 곡을 듣고 전 울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그들(노숙자)의 모습을 보고 외면했던 저의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carrot@explore.kwangwoon.ac.kr).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듣기를 원한다. 송정미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알기를 원한다. 우리 안에 있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받기를 원한다”(flora720@nownuri.net).

네티즌들의 반응이 뜨겁다. 이제까지 우리가 들어온 대중가요와는 사뭇 다르다. 거리의 노숙자 등 소외된 사람을 감싸고, 낙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더불어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하면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어요. 단순히 귀가 즐거운 음악이 아니라 영혼을 치유하는 음악이라고 할까요. 꼭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가야 사회운동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노래를 통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꼭 찬양의 노래만이 아닌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대중적인 노래들을 발표할 생각입니다. 무조건적인 사회비판이나 직설적인 사랑노래들이 너무 많아요.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정갈한 노래도 들려줘야 하잖아요”

다음 날 출국을 앞둔 늦은 밤까지 조근조근 얘기하는 그를 대하면서 노래를 통해 세상과 교감하는 ‘영원한 청년 멘토-송정미’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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