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환자들의 친구’ 매견시 목사 자서전-5

부산, 때 묻지 않은 어린이들

제임스 노블 맥켄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9/25 [12:19]
치유된 젊은이들 사회로 진출

우리 「나병선교회」가 부산에 온 후로 정말 처음으로 경축해야 할 날이 왔다. 나병에 걸린 5명의 아이들이 나병 증세를 분명히 나타내지 않은 건강한 사람으로 판정을 받고 「나환자의 집」에서 「건강한 어린이집」으로 이주하게 된 날인 것이다. 이 다섯 명의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우리 수용소에 들어왔으며 오랫동안 나환자로 식별되어왔던 흉터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하여 이 다섯 명은 천벌과도 같은 무서운 병을 더 이상 건강한 이웃에게 전염시키지 않은 건강한 사람이 되어 사회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선교회는 「나환자의 집」에서 병이 치유된 젊은 청년들이 사회에 나가서 직업을 가지는 것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랐으며 정말 그들을 자랑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그들을 만나러온 사람들을 매혹시킬만한 밝은 얼굴과 희망이 가득한 기쁨으로 넘쳐있었다. 사회에 나가 직업을 가진 그들에 대한 사회의 반응은 대단히 만족스러워 우리에게 용기를 심어 주었다. 우리 아이들을 받아드린 고등학교 교장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당신들이 보낸 소년들은 공부에는 그리 영리하지 못하지만 그밖의 모든 일에는 정말 훌륭한 예수님의 양들입니다. 만일 가능하다면 더 많은 어린 양들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강한 기독교적 정신을 가진 소년을 원합니다.
또한 우리의 「건강한 어린이 집」 에서는 4명의 소년을 구세군의 직업학교에 보냈더니 그 학교에서 상업과목을 가르치는 한 교회가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신들이 보내주신 소년들은 정말 좋은 어린 양들입니다. 우리 학교 교육에 점차로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성실하고 부지런한 어린 양들이 다른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 기쁩니다.

그러나 그 후에 대단히 슬픈 일이 생겼다. 「우리의 집」에서 보낸 4명 중의 한 학생이 아깝게도 직업훈련을 마치기 전에 죽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른 3명의 학생에 대해 설명하면 한 학생은 고등학교 교육을 2년간 받아 직업훈련을 마치면 부산 시청의 전기과에서 근무할 것을 약속받고 그리고 그는 부산의 야간학교에서 가난한 아이들을 위하여 가르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다른 한 학생은 양복 짓는 일을 배우고 있었는데 구세군 악대의 지휘자가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목사가 되기를 결심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였으며 학비는 신문팔이로 조달하였다. 그는 전쟁 때문에 신학교가 폐교되어 신학공부를 할 수 없게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서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는데 전쟁이 끝날 무렵 다시 신학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린양은 구세군 직업학교에서 직업훈련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와서 목공일로 개인사업을 시작하였다.  

▲  호주 선교사 자녀들(1930년대, 부산)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열매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우리 선교회는 부산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받아 돌아와 보니 옛날의 나환자 수용소는 많이 못쓰게 되었고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목수는 재료만 공급해 준다면 자기 손으로 이 집을 수리하겠다고 편지로 제안해 왔다.

집 수리가 완전히 끝난 후 우리는 그에게 수리비를 주었더니 그는 수리비를 계산하지 않고 우리 선교단이 지난 날 그들에게 한 일에 대한 조그마한 감사와 사랑의 표시로 받아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그는 벌써 부산 지방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이름있는 일꾼이었다.

우리 「건강한 어린이집」에서 자란 두 소녀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명과 용기를 주었다. 두 소녀는 처음에는 「나환자의 집」에서 살고 있다가 나병증세가 사라진 다음 「건강한 어린이의 집」으로 옮겨졌다. 이 두 소녀는 우리 선교단이 운영하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간호직업학교에 입학하였는데 그 성적이 아주 훌륭하였다.

이들 두 소녀는 어린 시절부터 나병으로 「우리의 집」에 와서 몇 년간 치료를 하고 건강진단서가 발부되었다. 그후 그들은 건강이 좋아져서 인생도 크게 바뀌게 되었다. 위의 두 소녀가 아닌 다른 한 소녀는 참으로 비참한 상태에서 우리에게 와 「우리의 집」에서 10년간을 우리와 같이 살았다.

그의 다리와 팔에 나타난 나병 자국 때문에 그는 동네에서 쫓겨나서 「나환자의 집」 이야기를 듣고 우리를 찾아왔다. 상당한 세월이 지난 후에 이 소녀는 「증세 없음」이라고 판정받고 「건강한 어린이 집」으로 옮겨졌으며 선교부가 운영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다니고 있으면서 장래에 간호사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구세주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성경을 읽고 있었으며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자기가 받은 큰 은혜에 대하여 항상 감사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우리에게 찾아왔다. 여덟 살과 다섯 살의 두 소년은 그들의 어머니가 「우리의 집」에 살고 있는 환자였고 두 소년은 거지생활로 배고픔을 달래고 잠은 부엌에서 자는 형편이었는데 내가 이때까지 본 떠돌이 중에서 가장 더럽고 애처로운 아이들이었다.

그들을 불러 목욕을 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고 식사를 하게 하였더니 곧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변하였다. 그들은 우리와 함께 살아가면서 점점 아주 똑똑한 매력있는 아이로 변해갔다.

우리의 「나환자의 집」과 「건강한 어린이 집」 출신의 여섯 친구들이 이곳을 방문하는 것만큼 기쁜 일도 없었다. 변종택이라는 청년은 우리들이 처음으로 보낸 구세군 직업학교 목공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다. 그는 과정을 수료한 후 그곳에 남아 일을 하고 있었는데 휴가를 얻어 그의 아버지를 만나보기 위해서 구세군 대위의 편지를 가지고 부산에 온 것이다.

대위가 쓴 편지의 내용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감명과 감사의 마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 편지의 내용인즉 이 소년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신데 대하여 항상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이 소년은 성의를 다하여 훈련을 받아 훌륭하고 믿을만한 기술자가 된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에 관한 일은 주로 맥켄지 부인의 몫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봉사하는 일 자체를 그렇게 즐거워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우리의 집」에는 많은 가족이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빠짐없이 자신의 인생항로에 가장 아픈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에게 왔다. 그중에는 마음이 선함보다 악함에 젖은 사람이 많았고 그 몸은 신체적인 결함으로 불구가 많았으며 문제들이 많이 발생함으로 잘 돌보아 주어야 할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그 일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기쁨과 감사가 넘치게 할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사랑에 굶주려왔기 때문에 자신이 받는 사랑과 양육에 대한 응답을 우리는 바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불우한 병에 걸려 몸이 부서진 상태에서 건강을 되찾고 잃었던 힘을 돌려 받으며 상한 영혼이 복음의 힘으로 되살아나게 되고 어린이들이 나병의 비참함과 하등  인간 취급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 여러 방면에 걸쳐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시민이 되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성탄절은 어른이나 어린이들이 함께 즐겁고 행복한 날이다. 여기에 「부산에서 예수님의 생일 지키기」를 쓴 맥켄지 부인의 글을 소개한다.

크리스마스라는 낱말은 넓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어린이들의 마음 속에 기쁨과 행복한 미래의 꿈을 새겨주는 요술과 같은 말이다.  크리스마스는 한국말로 성탄절이라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나신 날이라는 뜻이다. 부산에 있는 우리의 「건강한 어린이 집」에 사는 모든 아이들은 이 날을 일 년 중에 가장 기쁜 날로 여기고 마음을 조이며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나이가 든 소년과 소녀들은 크리스마스 날에는 새벽 일찍부터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지방교회의 젊은 아이들과 같이 찬양대를 조직하여 신자의 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성탄 노래를 불렀다.(주:새벽 찬양) 동리의 많은 집을 찾아다니기 위하여 찬양대를 여러 조로 나누어야 했다. 우리들이 사는 선교사의 집에도 새벽 찬양대가 찾아오는 집으로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추운 겨울 새벽에 담요를 덮어쓰고 우리 「건강한 어린이 집」의 아이들의 찬양소리를 알아듣고 행복에 젖어 있기도 했다.
 
그들이 「우리의 집」에 오기 전까지는 그들이 얼마나 슬펐으며 희망이 없는 어려운 속에서 살아왔던가? 그들이 지난 날의 비참한 상태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이「건강한 집」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 「집」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 예수님의 사랑 때문에 세워진 것이었으니 그 사랑의 근원이신 예수님의 생일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그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건강한 어린이 집」에 사는 아이들에게 가장 행복한 크리스마스 행사 중의 하나는 선교사의 집에 함께 모여 크리스마스트리 축제를 여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와 그들의 가족에게도 아마 가장 행복한 행사였을 것이다.
 
그들은 시간에 맞추어 그들의 의부모와 함께 선교사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들의 밝은 얼굴은 모두에게 행복이 저절로 퍼져 나가게 했다. 한국의 습관으로는 집안에 들어갈 때 신발은 현관에 벗어두고 들어가서 방안의 의자에 단정하게 앉는다.

아이들은 흥분된 눈으로 먼저 구석에 세워져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로 향하고 다음에 식탁에 마련되여 있는 음식으로 향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때까지 아무도 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면 모두가 뜨겁게 아멘 하고 그때부터 파티의 즐거움이 시작되는데 그들의 찻잔이 얼마나 빨리 비워지는지 모른다. 그들은 평소에 차를 마시는 일은 거의 없었고 일 년에 단 한 번 오늘뿐이였다. 그들은 빨리 찻잔을 몇 잔이고 비웠으며 음식보다 더 좋아했다.

식사가 다 끝난 후에는 오락 순서가 시작되였다. 크리스마스 노래를 합창하고 성경구절이 나이 많은 소년과 소녀들에 의해서 암송되고 나이 어린 아이들은 유치원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그때 갑자기 "쿵쿵" 하고 문을 크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오! 행복하고 흥분된 순간이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무거운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쿵쿵 거리며 나타난 것이다. 그때 한 어린 아이가 앉아있는 의자 위에서 놀라 뛰면서 겁에 질려 울기 시작했다. 이 어린 아이는 산타클로스를 처음 보았던 것이다. 이 처음 보는 옷차림과 콧수염에 놀란 것이다.
 
그러나 조금 나이들은 아이들은 그 전에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울고 있는 동생에게 큰 보따리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설명해주며 달랬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영국, 스코틀란드,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및 뉴질랜드에 살고있는 친절한 사람들이 우리 「어린이 집」을 기억하고 선물을 보내왔는데 착한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것을 바란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이들은 ‘착한 어린이’라는 말에 약간 불편한 눈빛을 그들의 의부모에게 보냈으나 친절한 의부모들은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곧 어린이들은 산타할아버지가 큰 보따리에서 하나씩 소포를 꺼내어 소포에 적힌 아이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면 산타할아버지가 부르는 자기 이름을 듣고 기쁨에 넘쳤다.

두 명의 소년은 이름을 불렀으나 그곳에 없었다. 그들 중 한 소년은 먼 학교에 가 있었으므로 휴가철에 이곳에 올 수 없었고, 또 다른 한 소년은 생계를 위하여 돈벌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 파티가 끝나는데 한국의 장로 한 분이 끝나기 전에 기도를 올렸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선하심이 가득한 목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바라는 아이들의 소원은 그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하여 주시는 것이라고 간절히 기도 드렸다.

그들은 한국식의 아름다운 절을 하면서 "안녕히 계십시오"라고 인사말을 남기고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우리들은 그 답례로 하나님께 감사를 돌렸다.

「건강한 어린이 집」이 이런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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