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중계 맥켄지 한센선교회 제1회 호주 선교대회

호주 맥켄지 한센선교회 설립 취지와 비전

최승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09/25 [16:15]
1. 설립 배경
 
호주인 최초의 한국 선교사 데이비스

지금으로부터 123년 전, 1889년 10월 2일 빅토리아 호주장로교회의 ‘조셉 헨리 데이비스’(Joseph H. Davies, 한국명 덕배시) 목사가 그의 누이 메리와 함께 한국에 선교사로 입국함으로써 호주장로교회의 첫 한국 선교사가 되었고 한국 선교의 문을 열었다.

32살의 복음주의적인 청년 데이비스는 10월 2일 부산항으로 입항했다가 곧바로 출항하여 4일 오전 11시경 제물포에 도착한 후 서울에서 5개월 동안 한국어를 배운 다음, 3월 14일부터 3주간의 선교여행을 하게 된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한국에 온 지 6개월 후인 1890년 4월 5일, 부활절을 하루 앞둔 토요일 부산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은 호주장로교회로 하여금 한국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의 희생적인 헌신과 죽음의 결과로 호주의 한국 선교가 유지, 계승, 발전되어 지난 123년간 130여 명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일했다.
 
데이비스, 복음의 씨앗

데이비스 선교사는 영적전쟁의 승리가 성령의 도움에 달려 있음을 확신한 뒤, 한국에서는 순수복음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복음의 불길을 되살리려 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와서 한국어를 익히자마자(거리전도자로 제자들을 파송하셨던 예수님의 본을 따라), 길을 다니면서 지역주민을 직접 대하며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선교 일기(3월 26일)에 이렇게 기록했다.
“아침 6시 30분에 문을 막아 놓고서 헬라어 성경을 꺼냈는데 내 시선이 멈춘 첫 말씀이 ‘우리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전 4장 9절)였다. … 결국 나는 나 자신이 구경거리가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그들을 돌려보내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나를 실컷 구경하게 했다.”

또한 데이비스는 선교보고 편지에서는 마치 어린 아이처럼 “아무리 힘들어도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복음쪽지를 주고, 복음 이야기를 나눌 수만 있어도 너무나도 기뻤다”고 고백하는데, 그의 이런 모습들은 그가 자신의 안락한 미래를 뒤로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온 몸과 마음을 바쳐 헌신했던 분이었음을 알게 한다.

19세기 말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굶주림과 헐벗음, 전염병으로 한 번에 수만 명씩 떼죽음을 겪던 그 어려웠던 시절에, 그것도 ‘예수’라는 이름을 전하다가 목이 떨어져나간 사람들이 숱하게 많았던 그 끔찍했던 때에 한국에 들어왔던 젊은 청년 데이비스!

멜본을 떠나 뱃길에 오를 때만 해도 한국 선교의 푸른 비전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선교의 비전을 제대로 꽃피우지도 못한 채 짧은 6개월의 시간으로 선교와 삶을 마감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아쉬움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정녕 복음의 씨앗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젊은 종 데비이스 선교사의 거룩한 죽음을 통해 한국선교의 길을 여셨다. 호주 장로교회의 대대적인 한국선교의 결의와 이후 130여 명의 선교사 파송은 전적으로 데비이스의 희생의 결과였다. 

▲ 한국 출발 전 멜본에서 데이비스와 누이 메리 선교사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데이비스가 죽은지 20년 만인 1910년 호주에서 제수(왼쪽)와 조카가 그가 잠들고 있는 부산을 찾았다.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데이비스 선교사의 일기 ⓒ크리스찬리뷰

2. 설립 동기
 
나환자들의 아버지 맥켄지 선교사

초기 호주장로교회 파송선교사 가운데 한 사람인 ‘제임스 맥켄지’(Right Rev. James N. Mackenzie, 한국명 매견시, 1910-1939 사역) 선교사는 ‘한국 나환자들의 친구’라 불릴 정도로 1910년부터 1939년까지 29년간 나환자들을 돌보았다. 부산에 있는 ‘일신 기독병원’은 바로 그의 두 딸인 헬렌과 케더린에 의해 설립된 것이다.

나병은 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당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인데, 맥켄지 목사가 한국의 선교사로 들어왔을 당시 한국에는 많은 나환자들이 있었지만, 적절한 치료나 보호 없이 멸시와 천대를 받고 있었다. 이런 까닭에 이들을 위한 사역은 몹시 필요하고도 매우 절실한 것이었다.

나환자에 대한 한국의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영국 ‘구라선교회’는 시대적 요청이라는 사명감으로 나병선교회를 조직하고, 1909년 부산에 ‘나환자 수용소’를 건립했다.

당시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어빈(Irvin)에 의해 부산 감만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1909년 부산지역이 호주장로회 선교구역으로 정해져 운영권이 호주선교부에 이관되었다. 그러던 차에 때마침 1910년 2월 한국에 들어온 맥켄지 선교사가 이를 도맡게 된 것이다. 맥켄지 선교사는 1912년 5월, 나환자 수용소의 이름을 ‘상애원’이라 칭하고 상애원 원장으로 공식 취임하였다.
 
나환자들의 희망 상애원의 확장과 활동

맥켄지는 목사와 의사로서 나환자들에게 쏟은 정성이 지극하였다. 처음 20여 명으로 시작된 나환자수용소는 1911년 40명의 환자를 돌보는 것으로 늘다가, 상애원으로 공식 정비된 이후 1914년에는 80여 명으로, 이후 1938년에는 650여 명까지 늘어났다. 1930년대 전국의 나환자 수는 2만 명 정도였는데 이 가운데 1/3에 해당하는 6~7천 명이 경상남도에 집중하여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맥켄지의 상애원 운영은 더 큰 관심과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다.

상애원은 삶의 여건을 개선하고 약물 치료를 통하여 사망률을 감소시키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였다. 1917년부터 피하주사(대풍자유)를 사용한 이후 25%의 환자 사망률을 2%로 줄이는 놀라운 성과도 거두었다. 상애원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병원이 아니라 스스로 자활하는 생활공동체 기능과 신앙 수련과 복음을 전하는 선교공동체 역할을 담당하였다.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의 출범

맥켄지 선교사는 1931년 한국에서 의사면허증을 받았으며 나환자를 위하여 평생을 몸 바친 삶에 대하여 “나환자들을 위한 선교사역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침울하고 맥이 빠진 것은 결코 아니다. 진실로 세월이 지나갈수록 나환자 가운데 살면서 사역하는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선교 사역은 없다”고 했다. 그 후 1939년 6월 30일 선교사 직을 은퇴하고, 귀국하여 1956년 7월 1일, 91세로 별세했다.

‘호주 맥켄지 한센 선교회(MLMA/The Mackenzie Leprosy Mission in Australia Incorporated)’는 한국의 나환자들을 위해 수고의 땀을 흘려 헌신했던 맥켄지 선교사의 ‘희생적 사랑과 선교정신’을 이어받아 세워지게 되었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 아시아지역에 있는 한센 환자들에게 ‘치료제 지원’과 ‘경제적 자립’, ‘자녀교육’, ‘영적 회복’ 등을 통해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주기 위한 목적을 갖고 2011년 5월 호주 NSW 주정부 Fair Trading (INC9895329)에 등록, ‘비영리법인 자선단체’로 인가받아 설립되었고, 최근에는 호주 국세청으로부터 DGR 승인을 받았다.  

▲  부산, 경남지방에서 일했던 호주 선교사와 가족들. 왼쪽 앞줄 끝에 서 있는 사람이 제임스 노블 맥켄지 선교사이다.(1915년경)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매견시 목사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상애원이 개발되기 전 부산 용호동 상애교회에서 바라본 한센인 정착촌과 오륙도 ⓒ크리스찬리뷰

3.선교적 사명
 
지상 최대 주님의 명령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은 지상 최대의 주님의 명령이다. 하나님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하나님의 이름을 잃어버린 모든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다. “차라리 내가 더 빨리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주님을 만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지 않고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오래 살기를 원한다.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오래 살아야 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바울의 말처럼 빨리 죽는 것이 더 좋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조금 더 오래 살도록 남겨두신 이유는 궁극적으로 주님의 선교 명령을 감당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이 명령은 사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이다. 우리의 연약한 힘으로 이 거룩한 일들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내가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명령이다. 그래서 선교는 사실 교회가 하는 것이 아니다. 교인들이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를 사랑하고 전도하는 것, 선교하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것이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선교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우리가 선교 명령을 받들어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나는 내가 왜 목사가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다. 선교를 하라고 하나님께서 목사로 세우셨음을 믿는다. 우리는 선교하기 위해 지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내가 왜 존재하며, 공부하며, 사업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세포적으로 말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어떤 사람은 너무 흑백 논리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가 병들었든지, 건강하든지, 부자이든지, 가난하든지, 능력이 있든지 없든지, 우리 모두는 선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맥켄지 한센 선교회와 한국교회에 주신 사명

지난 120년 동안, 폐허와 절망의 땅을 새로운 소망의 땅, 희망과 복음의 땅으로 바꾸는 일에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며 섬김과 헌신을 아끼지 않은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정신을 이어받아 설립된 한센 선교회는 이 거룩한 사역을 한국 주변의 동남아 지역으로 확대하고 지속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주님께서 주신 사명이라 확신한다.

맥켄지 한센 선교회를 통해 중국 연변 조선족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센병 환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센 전문인 선교사를 파송하기 위한 사역을 비롯, 연변에 한센인을 위한 복지 센타를 세우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사역은 123년 전 호주교회에 복음의 빚을 진 한국교회가 함께, 더불어 감당해야 될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복음에 빛을 전해주고 한국전쟁에 일조했던 호주의 교회들과 연합하여 선교 사명을 감당하다가 이 선교의 바람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으로 아름답게 번져나갈 기대도 가져본다. 특별히 호주 한센선교회가 그 불씨가 될 수 있기를 한센선교회의 한 선교회원으로서 희망해 본다. 

▲   상애원 입주 허가를 기다리는 한센환자들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선교 우편물을 개봉하는 맥켄지 선교사와 자녀들(1923년)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해방전 부산지방의 한센 환자와 가족들 ⓒ크리스찬리뷰 자료사진

▲    MLMA이사장 최승일 목사의 발제 강연(시티주안교회) ⓒ크리스찬리뷰

4. 사역 방향
 
초기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정책

정병준 교수(호남신대 역사신학)는 한•호 선교 12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에서 “해방 이전의 호주 선교사 활동과 선교정책 연구”란 주제로 호주 선교사들의 초기 한국 선교 정책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발제했다.
  1)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2) 전도와 사회봉사를 크게 분리시키지 않은 점,
  3) 선교사들의 뜨거운 복음주의 신앙과 함께 넓게 열린 사상과 신학,
  4) 초창기 호주 선교사들은 다수 석사학위를 소지한 최고 엘리트들로 선발한 점,
  5) 한국에서 복음을 수용하기 어려운 경남지역에서 봉사와 섬김을 앞세워 선교함으로 기독교에 대한 반발을 크게 줄이고 선교에 기여할 수 있었던 점 등을 언급하며 한반도 초기 선교정책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호주 한센선교회의 사역 방향

본 선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렵고 연약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던 것처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 빈민국의 신음하는 한센인들을 돕는 사역을 지속적으로 펼쳐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초기 호주 선교사들의 은혜로 한센병을 치료받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이명남 선교사의 간증이 본 선교회를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된 만큼 지금까지 자비량으로 한센 선교를 감당해 온 이명남 선교사를 후원하는 사역과 함께, 이명남 선교사와 같은 10명의 한센인 전문 선교사를 발굴하고 파송하는 것을 목표로 달려갈 것이다.
 
당면 과제

무엇보다도 기도와 물질로 동역할 후원자들을 찾는 일이다. 활발한 국내외 홍보로 한센선교회가 한국교회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중ㆍ장기 사역 방향
1) 호주 맥켄지 한센선교회의 국내외 홍보
 맥켄지 선교사는 100여 년 전 한국의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길거리의 수많은 한센인들을 긍휼히 여겨 돌보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은인(恩人)이었다.
2) 후원교회, 후원기관 및 개인 후원자 꾸준한 모집
 하나님께서 한국에 부어주신 경제력과 한국교회에 주신 믿음과 열정이 있고 동참할 교회와 개인들이 충분히 있다고 믿는다. 한국교회와 함께 이 선교 사업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3) 한센복지센터 건립 (중국 연변)
 장기적으로는 이곳을 한센인 선교의 전초기지로 삼고, 아시아 지역의 한센인 복음 전파 사역에 구심점을 이루어 나갈 것이다.
 한센인 복지 과제 - “새로운 삶의 공동체”
  ① 치료제 지원
  ② 경제적 자립 교육 및 지원
  ③ 자녀 교육 지원
  ④ 영적 회복
4) 한센 전문인 선교사 발굴 및 파송
 본 선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센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다.
5) 한센인 단기선교 프로그램 육성
 청년 대학생들과 개인 봉사자들을 동원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돕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이 되었으면 한다.
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통해 오히려 돕는 사람들의 신앙과 삶에 유익이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돕고 내가 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중장기 사역 방향을 가지고 더욱 겸손히 기도하면서, 미력하나마 맥켄지 선교사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빛을 동남아 한센인들에게 갚아나가는 선교회가 되도록 (본 선교회 초대 이사장으로서) 힘을 보태겠다.
 
5.결론
 
사랑과 믿음, 헌신의 용기를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한 때
나병환자로서 최초로 장로 안수를 받은 이성곤 장로가 맥켄지 선교사를 회고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담대하고 용감했어요. 상애원에 문제가 있으면 총독부를 찾아가 따지고 꼭 해결하셨어요.”라고 말하면서 “호주 선교부에서 이 병원을 설립해 놓으니까 그야말로 생명이 살아나고 영혼이 살고 육신이 살아난 겁니다.”

1900년 초 당시 사회에서 소외받고 있던 한센인들의 육체를 치료하고 영혼 구원에 주력했던 상애원에는 사랑의 가슴과 담대한 믿음, 헌신의 용기를 가진 맥켄지 선교사가 있었다. 그렇게 어둡던 한국 땅에 한줄기 사랑과 희망의 빛으로 서 있었다. 그 사랑의 빛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빛을 발견하고, 그 수고와 섬김의 헌신이 썩어져가는 육체와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는 구원의 열매를 맺게 했다.

이 사랑과 헌신을 오늘날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필요로 한다. 특별히 한반도가 속한 동남아시아 곳곳에서 그 사랑과 구원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이 아직도 많이 있다.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따뜻하고 지속적인 돌봄 속에 한센인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전해지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이를 위해 사랑과 믿음과 헌신의 용기를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한 때이다.
 
이제는 선교의 빚을 갚을 때

육체와 영혼을 살려내는 이 귀한 사역을 위해 누군가의 기도와 후원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생명, 천국 복음 전파와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어가는 시대적 선교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믿음의 용기를 내어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귀하신 믿음의 동역자들을 거룩한 사역의 장으로 감히 초청한다.
고백하건대, 처음 이사장직 제안 받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섬김의 일로 나아가라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셨던 마음을 또 다른 분들에게도 주셨으면 좋겠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될 인생

우리의 삶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갈6:7). 성경은 이것을 계속 강조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성령을 심는 사람은 영생의 열매를 거두고, 육체를 위하여만 심는 자는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가난과 고난 속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을 심고, 복음을 심을 때 아름다운 영생의 열매들을 거두게 될 것이다.

6. 마치며
 
이 발제를 맥켄지 선교사의 말로 맺고자 한다.

“나는 드릴 만한 타고난 재능도, 돈도 없었기에 64년 전 나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다. 그리고 그분은 결코 나를 저버리지 않으셨다. 만약 내게 100번이라도 다시 생명이 주어진다면, 나는 매번 해외선교의 현장을 선택할 것이다.”

여러분들의 삶의 자리에 항상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최승일|MLMA이사장, 상도교회(서울)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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