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이 담긴 사과의 아름다움

정기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11/26 [10:14]
“오늘 우리는 이 땅의 원주민들과 인류역사에서 가장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문화에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행해졌던 학대와 잔혹사를 반성합니다. 특별히 강탈당한 세대의(stolen generations) 사람들에게 행해졌던 학대를 반성합니다. 이것은 우리 국가역사의 오점의 시기였습니다. 이제 과거의 잘못을 바르게 함으로 역사의 새로운 장으로 돌아서서 미래를 향해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동료 호주인들에게 깊은 슬픔과 고통과 상실을 유발시켰던 계속 이어져 온 정부와 국회의 법들과 정책들에 대해 사과합니다. 우리는 특별히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고향으로부터 강제로 격리를 경험해야 했던 원주민들과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의(Aboriginal and Torres Strait Islander) 어린이들에게 사과합니다.

강탈당한 세대들과 뒤에 남겨진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가 겪었던 고통, 아픔과 상처에 대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미안합니다(We are sorry.). 가족의 깨어짐과 분리를 경험했던 아버지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사과합니다. 미안합니다. 자랑스런 사람들, 그리고 자랑스러운 문화에 가해졌던 무례한 행위와 그들의 품위를 떨어뜨렸던 수치스러운 행동들에 대해 미안합니다.

우리 호주 국회는 국가를 치유하는 한 행위로써 드리는 이 사과를 마음으로 받아 주시기를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이 장면을 지켜 보던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을 충격에 휩싸였고 과거의 상처로 고통 속에 신음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에서는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2008년 2월 13일 호주는 세계를 향해 그리고 이 땅의 원래 주인이었던 호주 원주민들에게 그들과 그들의 조상들이 저질렀던 역사의 과오에 대해 진심이 담긴 아름다운 사과를 했다. 호주 국회의사당에서 전 호주의 수상 케빈 러드(Kevin Rudd)에 의해 행해진 이 공식적 사과는 심오한 감동을 주는 하나의 거룩한 예식이었다.

  이 먼진 날을 호주의 유력 일간지인 <The Australian>은 ‘사과의 날, Sorry Day’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정말 아름답고 멋진 날이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필자는 호주가 꽤 괜찮은 나라라는 은근한 자부심이 들었었다. 이 사과가 구체적으로 나오기까지는 매우 긴 세월이 걸렸고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 주제는 1997년 Mick Dodson과 Ronald Wilson의원이 제출한 가족들로부터 강제로 격리되어야만 했던 호주 애보리진과 토레스 스트레이트 아일랜더인 어린이들에 대한 국가 보고서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이 안건은 상정되자마자 즉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결론을 내리기까지 원주민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이들의 증언에 전례 없는 권위와 우선권이 주어졌다. 많은 원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진상을 규명하는데 수천 시간이 소비되었다. 

적어도 10명 중 세 명의 원주민 어린이가 국가기관이나 양육가정, 입양가정들이나, 원하지 않는 고용의 형태로 가족들로부터 강제격리가 되어 길고 지루한 기약 없는 불행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 밝혀지자 많은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런 은폐된 진실과 함께 강탈된 세대에게 행해졌던 정신적, 감정적, 그리고 의료적 남용과 중독의 문제와 투옥과 폭력, 자살과 자기 학대의 비극적 문제가 공개되자 국민들은 수치와 분노를 느꼈다. 이런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치며 사과는 이루어졌고 적어도 과거의 잘못은 인정되었다.

물론 이런 한 번의 공식적인 사과로 인해 형제 시민들에게 행해졌던 문제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은 산재해 있고 새로운 문제들은 멈추지 않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오를 인정한다는 그 자체이다. 스스로 잘못 행하고 있음을 시인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죄로 인해 추함의 모습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아름다움으로 역전되는 순간은 바로 이 사과의 순간이다. 뉘우침의 순간인 것이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추한 인간도 아름답다. 나로 인해 상대가 느꼈을 고통과 아픔을 깊이 공감하며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조용히 고개를 숙이는 사과의 순간, 얼마나 숭고한 아름다움인가! 서로를 향해 긍휼의 마음이 솟아나고 화합의 눈물이 섞이는 은혜의 순간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지난 16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대인 보상회의에서 독일이 동유럽에 살고 있는 유대인 대학살의(Holocaust) 연로한 생존자들에게 추가보상을 합의하고 서명한 것은 참으로 용기 있고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독일은 60년 전 룩셈부르크에서 나치와 히틀러의 죄악에 대한 독일과 그 국민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보상을 약속했다. 그리고 그 이후 성실하게 약속을 지켜왔다. 그리고 지난 60주년 기념식이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에서 엄숙하게 거행되는 가운데 독일의 재무상은 다시 추가책임을 지겠다고 서명을 한 것이다. 그것도 배상을 받아야 하는 대상들의 입장을 섬세하게 고려해서 맞춤식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독일 국민의 대표로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아직도 모든 유대인 피해자들의 이름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철의 장막에 가리워져서 살았기 때문에 보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그들은 나이에 맞게 맞춤 식 보상이 필요합니다. 그들이 잿더미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시기는 그들의 젊은 시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늙었습니다. 늙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그들은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습니다. 젊은 날의 강제 노역과 굶주림의 영향을 늙은 그들이 여전히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강탈당했고 사랑하는 가족과 이별했으며 그들의 부모와 자녀들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상실과 공포의 기억 속에 살았습니다.”

이 협의와 약속으로 인해 소외되었던 8만 명의 동구권 유대인들이 보상을 받게 되고 10만 명의 나치 피해자들이 가정 돌봄 봉사를(Home Care Services) 받게 된다. 아름답지 않은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의 표현은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고 그것을 사과하는 것이다. 사과의 내용을 실천하는 것이다.

사과하지 못하는 자는 추하고 비겁하다. 일본이 바로 그런 이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달라도 너무 다른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대응태도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며 과거의 왜곡과 잘못이 수정되기를 갈망하듯 우리 인생의 자취를 더듬으며 내가 저지른 무관용, 무관심, 미움과 증오들을 묵상하고 반성해야 한다.

은혜를 입었어도 은혜를 잊고 당연히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줄로 착각하며 어리석은 당당함으로 고개를 바짝 쳐들고 살아가는 추한 사람일 수가 있다. 세월이 흐르고 있다. 기회들이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과할 기회가 지나가고 있다. 용서를 구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미래를 향해 전진할 기회들이 지나가고 있다.

케빈 러드 전 호주 수상이 강탈당한 세대의 책임자인가?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이 홀로코스트의 주범인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책임을 지고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하면 생명의 강은 다시 회복이 된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책임감 있고 진심이 담긴 사과를 할 수 있는 용기의 사람들이 될 수 있다면 그는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겠는가!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다. 진심이 담긴 아름다운 사과와 책임 감당으로 마감해 보지 않겠는가?
 

정기옥|안디옥장로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