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교회, 거기서 희망을 본다

“배의 메타포를 통해서 본 마가의 교회론”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11/26 [10:54]
▲정지홍 목사 ⓒ크리스찬리뷰

부흥과 성장을 거듭해 오던 한국 교회들이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에만 담임 목사직 세습, 불투명한 교회 재정과 공금 횡령, 목회자의 성추행, 폭행, 금권 선거,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교회 건축과 이에 따른 로비와 특혜 등의 소문으로 교회에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같은 문제들은 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데 있다. 이에 마가복음에 나타나 있는 ‘배’의 메타포를 통해 예수가 실재한 예수의 교회를 고찰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찾아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 교회를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최초의 교회 예수의 교회

교회의 핵심은 예수의 ‘부르심’이다(고전 1:2). 그렇다면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 곳은 갈릴리다. 예수의 부르심이 갈릴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예수가 처음 제자를 부르신 것은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막 1:16)였다. 그리고 마가는 갈릴리에서 부르심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바다로 물러가시니 갈릴리에서 큰 무리가 따르며…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3:7;13-14).

여기에서 중요한 인사이트는 장소가 ‘갈릴리’였고, 예수가 ‘열둘’을 세웠고, 예수가 그 열둘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셨고 또 ‘보내셨다’는 것이다. 먼저 예수가 제자들을 부르신 곳이 갈릴리였다는 것은 최초의 교회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리차드 알렌도 주장하기를 “첫 번째 교회의 표상은 열두 제자” 라고 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초의 교회인 갈릴리 교회를 예수가 직접 세웠다는 것이다. 최초의 교회가 예수의 교회라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교회의 본질은 모든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 교회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 

예수의 교회는 구별된 공동체였다. 예수의 교회의 구성원은 예수를 따르는 ‘큰 무리’ 중에서 예수가 원하는 ‘열둘’이 전부였다. 오직 ‘열둘’만이 교회로 부르심을 받았다. 즉 예수의 교회는 ‘큰 무리’들과는 거룩하게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였던 것이다.

마가는 배의 메타포를 이용해 이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배에는 항상 예수와 열둘만이 승선했다. 예수와 열둘을 제외한 누구도 배에 함께 오르지 않았다. 예수와 동행하며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종횡무진 건너는 ‘특권 받은 내부인들’, 오직 구별된 열두 제자에게만 하나님 나라의 신비가 열려 있었다. 그것은 곧 이 세상에 여태껏 존재하지 않았던 예수의 교회를 이루는 신비였다. 그 신비는 세상에는 열려지지 않은 신비였고, 그 신비가 최초의 예수의 교회인 갈릴리 교회를 이루게 되었다. 
 

예수의 권세가 드러나는 교회
 
구별을 위한 구별만은 의미가 없다. 예수 당시에 바리새인도 구별된 집단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무리들로부터 구별된 공동체이지만 동시에 예수와 ‘함께 한’ 공동체이어 한다. 예수와 ‘함께 한’공동체는 무엇보다 예수의 권세가 드러나는 교회다.

마가 당시에 로마 황제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러나 마가에에 있어서 온 세상을 죄지우지 할 것 같았던 로마 황제의 권세도 예수의 권세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마가는 이 같은 예수의 권세를 통해서 자신의 공동체를 격려하고자 했다.

교회는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도 외부로부터의 박해와 고난은 끊이질 않고 내부로의 혼란도 가중되고 있었다. 뿐만아니라 로마의 권세에 의해 베드로와 바울이라는 위대한 지도자도 잃었다. 마가 공동체의 믿음은 바다 위에서 요동하는 배처럼 크게 흔들리는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의 권세로 공동체의 불안과 염려를 잠재우고, 교회의 참된 지도자는 권세 있는 예수라는 사실을 각인시킴으로써 공동체를 격려하고자 했다.

예수의 권세는 곧 ‘가르치는 권세’와 ‘다스리고 구원하는 권세’로 나타났는데, 배에 탄 예수는 하늘의 진리를 가르쳤고, 배에 오른 예수는 광풍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녔다. 마가에게 있어서 권세는 곧 계시였는데, 이는 계시의 장소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가 타고 있는 배로 바뀌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종말론적 사명이 있는 교회 
 
예수의 교회는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명이 있는 공동체였다. 사명이 있는 교회는 다분히 종말론적 교회다. 이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1:15). 그래서 예수도 “곧 부르시”(1:19)고 제자들도 “곧 그물을 버려두고”(1:18) 예수를 따랐고, “아버지마저도 품꾼들과 함께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갔다(1:20).

이 전도의 사명은 예수와 함께 갈릴리에서 배를 타고 이루어졌다(2:13; 4:1; 5:1-17, 18, 21-43; 6:32-44, 54-56; 7:31-37; 8:10-12). 즉 마가는 배의 메타포를 통해서 자신의 공동체가 즉각적이고도 종말론적인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했다. 

 
현대교회를 위한 제언 

예수의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는 공동체’였고 ‘예수의 권세가 드러나는 공동체’였고 ‘종말론적 공동체’였다. 이것은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교회의 본질이다.

오늘날 세상의 바다에 떠 있는 현대 교회에도 물이 들어오고 광풍이 불어온다. 성장제일주의와 세속화의 물결이 그것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점점 빛을 잃고 맛을 잃어가고 있다. 세상을 예수께로 인도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손가락질당하고 있다. 이유는 교회의 본질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의 위기는 구체적으로 첫째,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세상과 똑같이 권력을 탐하고 세상과 똑같이 세습을 하고 세상과 똑같이 세속화되어 가고 있다. 교회의 구성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당 안팎의 삶이 구별되는 대신에 세상 속에서는 구별이 되지 않는다.

둘째, 현대 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예수를 잃어버렸다는 데 있다. 교회는 예수가 ‘함께 하는’ 교회이어야 하고 예수의 권세가 드러나는 교회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 교회는 예수 없는 거대한 교회로, 그리스도 없는 몸이 되어가고 있다.

예수 없는 교회의 몸은 비대해져 가는데, 교회의 머리인 예수는 자꾸만 작아지고 있다. 예수의 권세도 사람들의 목소리에, 또 사람들이 휘두르는 교권주의에 묻혀가고 있다. 마치 유대 성전 권력자들처럼 예수 없는 교회를 ‘꾀하고’(2:8) 있는 듯하다. 온갖 프로그램은 난무한데 예수가 없다면, 목회자의 권세가 예수를 압도한다면, 장로들의 정치력이 예수의 가르침을 넘어선다면 더 이상 교회라고 할 수 없다.

셋째, 현대 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종말론적 사명을 잃어버렸다는데 있다. 교회가 천년만년 살 것처럼 현실을 탐닉하려는 유혹에 빠져 있다.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9:5)를 외치며 현실에 주저 앉아 초막이나 짓고 건물을 세우는데 빠져 있다. 교회는 배를 타고 온 지방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는데, 종말의 ‘때가 찼지만’ 여전히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 잇속만 챙기기에 바쁘다면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이 같은 현대 교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교회가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을 찾는 것 뿐이다. 이를 위해 예수가 최초로 세웠던 예수의 교회를 다시 들여다 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수의 교회가 보여준 교회의 본질은 이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하게 유효하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마가의 공동체가 아니라 우리들의 공동체다. 현대 교회도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교회다. 그렇다면 현대 교회는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교회, 예수의 권세가 드러나는 교회, 종말론적인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믿음의 배를 타고 순례의 항해를 해야한다.

마가의 공동체와 마찬가지로 예수의 부재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 교회도 외부로부터 광풍이 불어오고 내부의 혼란도 찾아올 것이다. 믿음의 배를 노젖기가 힘에 겨울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한 여정이 되겠지만 예수의 교회의 본질을 회복해 간다면 온 천하만민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교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의 교회, 거기에서 희망을 보아야 한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blog.daum.net/goodseedchur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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