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 입장에서 바라본 호주복음주의의 장점과 문제 (끝)

호주복음주의의 성격에 대한 비판적 고찰과 한인교회가 넘어야 할 과제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2/12/26 [11:23]
3.종합하며

스튜어트 교수는 호주 복음주의가 세가지 영역에서 호주사회와 문화를 형성하는데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첫째, 19세기 전반에 걸쳐 호주의 국가 정체성이 형성되는데 지속적이고 필수적인 공헌을 했다. 특별히 교육분야에서 기독교의 공헌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뛰어나다. 교육적인 부분에서 복음주의가 공헌한 부분은 인정 받을 만하다는데 필자도 동의한다.

두 번째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강조이다. 성경에 대한 권위가 인정받았기 때문에 호주역사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예언자적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평가 한다.

세 번째로 스튜어트 교수는 복음주의자들의 영적 갈급함, 부흥에 대한 갈망을 꼽는다. 실제 이런 부흥운동으로 말미암아 원주민들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소수계층에도 희망을 주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외에 필자는 에큐메니칼 입장에서 본 호주 복음주의 운동의 긍정적인 면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 몇몇 근본주의의 영향으로 연합에 제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에큐메니칼 입장에서 본 호주에서의 복음주의 연합운동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비록 성공회가 주도권을 잡고는 있었어도 개신교 여러 분파가 호주에 유입된 후 이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연합하는 일들에 주저하지 않았다. 이것은 호주가 가지고 있는 토양 자체가 분파 중심의 기독교를 양산해 내는 배경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 분파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양산되어 호주로 유입되었고 다행스럽게 호주는 자생된 기독교 분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캐나다에서 통합된 교단이 먼저 나오기는 했지만 신학이 다른 회중교, 감리교, 장로교가 하나가 되어 호주연합교단을 이룬 것은 세계 기독교 역사에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모든 개신교 분파가 복음주의라는 운동 아래 다 하나가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호주 초기 기독교 역사부터 개신교는 연합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교파를 초월한 연합운동은 부흥을 가져오는데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선교사를 파송하는데도 교파가 연합하여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등 세계 교회에 모범적인 모델들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카톨릭과도 연합하여 사회개혁 등에 한 목소리를 내었던 것을 볼 때 호주의 복음주의 연합 운동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 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두 번째, 호주 복음주의 운동은 몇몇 탁월한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평신도와 기독학생 네트워크가  더 큰 영향력을 펼쳐 나간 평신도 중심의 복음주의 연합운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스튜어트  교수 자신도 호주의 부흥은 지도자가 주도적으로 이끌고간 부흥이 아니라 자생적 또는 지역적으로 평신도 중심으로 퍼져 나갔던 경우가 더 많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호주의 복음주의 부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기독학생회(IVF)를 비롯한 SCM(Student Christian Movement), SV M(Student Volunteer Movement)운동 등 기독학생들의 연합운동들의 역할일 것이다. 이런 연합 기독학생운동들은 호주교회에 균형잡힌 신학으로 세상에 참여를 하게 하였고, 뿐만 아니라 많은 선교사 들을 배출해 내어 세계선교에 이바지하였다.

J.M 힉슨(호주인은 아니었지만 평신도로 호주를 방문) CH. 내쉬를 포함한 많은 평신도들이 호주의 복음주의 부흥의 주요 역할들을 감당했고 C.H 내쉬는 기독학생 네트워크를 조성하고 복음주의 교육기관들을 세워 호주 전역으로 부흥의 불씨를 나르는 주요 도구역할 을 감당했다.

세 번째, 호주 복음주의 연합운동이 가지는 긍정적 평가는 호주 복음주의 연합운동은 역사적으로 볼 때 비교적 균형잡힌 모습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어 왔었다는 것이다.

호주 초기에 들어왔던 대부분의 개신교 분파는 영국의 국교에서 나올 때 건전한 신학과 세상에 대한 바른 안목을 가지고 나왔던 개신교였기 때문에 이런 개신교 분파가 연합하여 호주에서 건설적으로 말씀, 성령 그리고 세상이라는 깃발 아래 신학과 기독교 정신을 구현하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있다.

이것을 스튜어트 교수가 말씀, 성령 그리고 세상이라는 안목으로 통합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은 적절한 정의이다. 그렇다고 호주 복음주의가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튜어트 교수 또한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스스로 평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영역에도 문제는 있었다. 세상이 관련되는한, 호주 복음주의자들은 신학을 달리하는 이들과 협력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모습이 흔치 않았다. 복음주의자들은 말씀에 비중을 두되 건강한 복음주의에 필수적인 다른 요소(예를 들어, 영성훈련이라든지 가난한 이에 대한 교회 사역에 대한 관심)들을 배제하지 않은것에 어려움을 느꼈다.”

스튜어트 교수 스스로 내린 평가대로 호주 복음주의 운동의 여러 가지 공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스튜어트 교수는 초기 호주 복음주의 내 분파주의를 살펴볼 때 교파마다 자신의 특별한 신앙이나 가치, 기준 등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고자 다투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보지만, 필자는 호주 복음주의 운동이 정부와의 관계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호주의 기독교는 앞에서 보았듯이 회중교회, 침례 교단, 웨슬리 감리 교파, 칼빈파 감리교회 등 다양한 개신교가 들어 왔지만 처음 호주에 들어와 이미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었던 교파는 카톨릭과 앵글리칸(성공회)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성공회가 호주의 국교가 되지 못함으로 다른 기독교 교파들이 이로인해 교파 스스로 힘을 얻고 자기 목소리들을 내었다. 뿐만 아니라 호주 초기 정부는 종교들을 자기들의 주도 아래 두었고 초기 교회의 선교나 교육 등은 철저하게 정부의 간섭 아래 이루어졌던 호주 기독교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원주민 선교나 교육에 있어서 여러 교파들에게 공정하게 기회를 주지 않고 그때 그때 편향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이 복음주의 내 연합운동에 때로는 다른 소리를 내게 하였고, 스튜어트 교수가 복음주의 통합의 성취로 평가하고 있는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도 모든 교파가 다 참석하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을 볼 때 호주 복음주의 내 연합 운동이 갖고 있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호주 복음주의 운동의 역사는 에큐메니칼적인 관점으로 볼 때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명백히 신학이 다른 세 주요교단이 하나가 되어 연합하여 한 교단으로 통합된  사실 하나만으로 호주의 에큐메니칼운동은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주요 부흥시기나 선교에 있어 모든 교파들이 다 하나가 된 것은 아닐지라도 함께 연합하여 부흥을 갈구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점은 한국교회 더 나아가서는 한인 이민 교회가 깊게 숙고해보아야 할 내용이라 생각한다. 
 
▲심포지움에서 예수마을 대표 장경순 목사가 스튜어트 피킨 교수와 통역을 맡은 김석원 목사를 소개하고 있다.(왼쪽부터) ⓒ크리스찬리뷰


결론 (한국교회, 한인 이민교회를 바라보며)

개혁주의 신학의 기수로 알려진 칼빈은 교회일치를 위해 헌신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교회일치에 대한 사상은 많은 학자들의 연구들을 통해 이미 증명되었고 교회 연합에 대한 칼빈 의 견해는 특히 ‘기독교강요’ 4권 제1장과 2장에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를 가리켜 ‘공교회’(catholic church), 혹은 ‘보편교회’(universal church)라 부르는데,이는 그리스도께서 여러 갈래로 찢어지지 않으시는 이상 두 개나 세 개의 교회가 있을  수 없다.”

칼빈은 특히 참된 교회라면 모든 경건한 자들의 어머니로서 연합을 유지해야 할 사명이 있음 을 강조하며 교회가 서로 연합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 한 소망, 한 사랑, 그리고 한 하나님의 성령 가운데서 함께 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칼빈자신도 그 당시 카톨릭으로부터 나온 개신교회가 성만찬 논쟁으로 여러 교회로 갈라져 새로운 분파를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

칼빈의 저서나 설교들을 보면 교회가 갈라져 여러 분파로 나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칼빈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는 분파주의로 굳어지고 교회의 일치와 화합은 염원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로교 분파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장로교만 하더라도 수십 가지 분파로 나누어져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나누어진 장로교가 신학사상과 신앙적 이슈에서보다는 교권이나 현세적 욕심으로 갈라지는 경우가 더 많다는 데 있다.

에큐메니칼 입장에서 볼 때 한국교회는 너무 폐쇄적이라 할 수 있다. 이민교회의 현실 또한 여기에 크게 차이나지는 않는다. 지금 시드니에만 250개가 넘는 한인 이민교회들이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인 이민교회들이 부활절 연합행사에 함께 참석하는 비율은 저조한 형편이다.

한인이민교회들이 연합하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유를 한두 가지 이유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가장 주된 이유는 그동안 뿌리 깊게 박힌 개교회주의 와 자기 교단신학에 빠져있는 폐쇄성이 주된 요인이라고 생각된다.

신학이 다름에도 불구하고(어떻게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가 한 이불을 덮을 수 있단 말인가?) 한 교단을 이룬 연합교단을 볼 때 하나님 나라라는 공통된 주제를 향해 하나가 되었던 호주연합교회의 모범은 한국교회가 연구하고 도전받을 수 있는 모델임이 분명하다.

앞에서 살펴본 대로 호주 복음주의운동의 부흥뒤에 숨어 있었던 것들은 교회가 연합하여 부흥을 갈망하며 함께 기도함으로써 시작되었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교단 통합차원까지는 아니더라도 부흥과 선교를 위해 교파를 초월하여 함께 연합하고 힘을 모았던 호주기독교의 에큐메니칼 운동은 한인이민교회에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생각된다.

이민교회는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 그 장점 중 하나는 한국상황과 비교해볼 때 교단에 종속되는 부분이 한국 교회보다는 비교적 자유로운 점이다. 우리는 교단의 신학이 주는 유익함을 소유하면서도 다른 교단들과 연합하여 ‘하나님나라’라는 거시적인 비전을 가지고 충분히 함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호주의 부흥의 역사들을 살펴볼 때 대도시보다는 도시외곽 지역의 지역교회들에게서 부흥이 많았던 것을 우리는 앞에서 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대도시와 떨어진 지역사회에서는 교파별로 모이지 않았다. 교파를 초월하여 목회자들이 지역 교회들을 섬겼던 내용들을 보면 교파보다는 부흥에 대한 갈망과 사회의 변화에 더 큰 관심들을 가지고 연합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의 최대 관심은 무엇인가? 부흥이 우리의 최대 관심인가? 사회의 변화를 기대하는가? 우리의 연합을 통해 하나님나라가 진정 이 땅에 이루어지길 소원하는가? 그렇다면 지역 교회들끼리 연합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기꺼이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경식 교수 ⓒ크리스찬리뷰

주경식|시드니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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