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했던 시간들

Pastoral Essay

김환기/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3/08/01 [15:13]
 
▲ 합덕교회 30주년 구령회에서 말씀을 전한 김환기 사관.   © 김환기
 
한국에서 온 한 통의 이메일
 
시드니의 가을이 깊어가는 어느 날 한국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구세군합덕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박현배 사관에게서 온 것이다. 개영 30주년 특별 구령회를 준비 중인데 강사로 나를 초청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합덕교회는 20년 전에 내가 목회했던 곳이다.

메일은 그 동안 잊고 지냈던 합덕교회의 아름다운 기억들을 새록새록 생각나게 했다. 허리가 많이 굽었던 김 부교님은 건강하신지, 새벽기도에 나오지 않으면 사택까지 와서 기필코 나를 깨우던 오 부교님은 잘 계신지, MBC 앵커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액자를 만들어 안방에 걸고 흐뭇해 하던 장 부교님은 아직도 그곳에 계신지… 메일의 마지막 부분을 읽을 때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참고로 본 교회에서는 사관님을 초청하긴 하지만, 왕복 비행기 값은 부담할 수 없으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숙박 및 식사는 본 교회서 대접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메일을 읽고 또 읽고 고민하던 중, 국제적인 일이니 정식으로 공문을 통해서 요청해 달라고 부탁했다. 공문은 한국 군국을 통하여 호주 동군국에 접수되었다. 접수되고 얼마 후 우연하게 동군국 사령관을 만났다. 사령관은 한국에서 부흥회 초청이 왔다고 하며, 동군국에서 비행기 표를 끊어 주겠다고 했다. 할렐루야!
 
▲ 구세군 합덕교회 전경      ©김환기
 
한국 행 비행기
 
6월 10일 오전 7시 55분 시드니 발 인천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서울에 도착 예정 시간은 17시 25분이다. 시드니가 서울보다 한 시간 빠르니 비행시간은 10시간 30분 정도이다. 한국은 이상 기온으로 6월임에도 불구하고 30도의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했다.
나는 시드니의 겨울 옷을 벗고 맨 뒤쪽 복도 자리에 앉았다. 비행기 안의 밀폐된 공간에서 10시간 30분 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보통 스트레스가 아니다.  어른인 나도 그런데 아이들은 오죽하겠는가!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한 가족이 있었다. 비행기를 처음 타본 아이가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통로를 이리저리 오가며 뛰어 놀자, 스튜어디스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 그렇게 뛰어 놀고 싶으면, 나가서 놀아라!”

지루함을 잊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타면 영화를 본다. ‘광해’가 눈에 들어 왔다. 친하게 지내는 후배 사관이 추천했던 영화이다. 그는 이 영화를 보고 사관으로서 재헌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고 했다. 그 만큼은 아니었지만 재미는 있었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Beautiful Creatures’, ‘루시’ 등 무려 4편을 보았다. 아쉬운 것은 ‘루시’가 거의 끝날 무렵 착륙 준비 중이니 seat belt를 착용하라는 기내 방송이 있었다. 안타깝게도 ‘루시’를 다 보지 못하고 내려야만 했다.
 
▲ 구세군 음암교회 전경      ©김환기
 
합덕 30주년 기념 특별 구령회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나!’ 이번 집회의 주제이다.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우리는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하나’란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와 같다. 12일 ‘믿음 공동체’, 13일 ‘성령 공동체’, 14일 ‘선교 공동체’란 주제로 사흘간의 말씀을 증거했다.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회중이 말씀을 기대하는 이상으로 나도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대한다. 그래서 나는 듣는 자세로 전하고, 배우는 자세로 가르친다. 개인적으로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가르칠 자격도 없다고 생각한다. 

16일 주일에는 학생 특별 구령회를 가졌다. ‘장애가 축복이 된 두 사람’이란 제목으로 로마서 8장 28절을 의지하여 말씀을 증거했다. ‘강영우 박사’와 ‘닉 부이치치’에 관한 이야기다. 두 사람 모두 시드니에서 만났고, 그분들에 대한 글을 썼다. 강영우 박사를 만나서 이야기할 때가 참 인상적이었다.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나의 외모뿐 아니라 내면까지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강 박사님 정말 보이지 않으세요”라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2012년 2월 24일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유작으로 ‘내 눈에는 희망만 보였다’가 발간되었다. ‘닉 부이치치’를 처음 만난 2012년 3월 3일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인터뷰를 하기 위하여 닉을 만나러 갔다. 닉을 보는 순간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다. 주저하고 있는 나에게 닉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국말로 반갑게 맞아 주는 것이 아닌가!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장애를 축복으로 승화시킨 사람이다. 
 
▲ 구세군 백화산 수련원      ©김환기
 
음암 100주년 특별 집회
 
6월 23일 주일은 구세군음암교회 100주년 특별 집회를 인도했다. 언덕 위에 아름답게 지어진 음암교회는 사방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다. 교회 2층에는 역사 전시실이 있다. 그곳에는 이현직 사관이 1913-1915년까지 초대 소대장(담임사관)으로 봉직했다는 기록이 있다. 올해가 음암교회가 개영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음암교회는 한국 구세군은 물론 세계 구세군사에도 찾아 볼 수 없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음암교회에 교편을 잡고 있었던 김기철 정교란 분이 계셨다. 김정교는 서산 지역 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 교회가 없었던 간월도, 부남, 칠전, 부성, 율목, 예덕 등 6 개 지역에 교회를 개척했다. 뿐만 아니라 큰아들과 큰딸을 제외한 8명의 자녀 중 6명이 구세군 사관으로 헌신했다. 이중 두 명(김선자, 김애호)은 은퇴하셨고, 한 명(김경호)은 소천하셨으며 남은 3명(김운호, 김선호, 김찬호)은 현직에 계신다.

큰 아들인 김준호 씨는 현재 선교정교로 음암교회를 섬기고 있다. 식사 중 “정교님은 왜 사관이 되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묻자, 얼굴에 미소를 띄며 “사관이 될 자신이 없었습니다”라고 겸손하게 대답하는 것이다. 아마 큰 아들의 책임감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정교의 막내 동생인 김찬호 사관은 일 년 후배이다.

나는 김 사관과 함께 ‘국제사관대학’을 같이 갔었다. 김 사관은 혼자 있으면 기도했고, 함께 있으면 다른 사람을 섬겼다. 김찬호 사관뿐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관들도 같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 김기철 정교의 삶을, 자녀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 구세군 대천교회      ©김환기
 
뜻밖의 선물들
 
시드니를 떠날 때 계획에 없었던 뜻밖의 많은 선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합덕 집회를 마치고 백화산에서 열리는 3박 4일간의 NCD(Natural Church Development) 세미나에 참석했다. ‘자연적 교회 성장’(NCD) 세미나는 미국과 한국은 물론 세계각국에서 적용하고 있는 교회 성장원리이다. 용어 그대로 인위적이 아닌 자연적인 교회 성장의 원리에 대한 세미나이다. 그곳에서 몇몇의 동기사관을 만날 수 있어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대천으로 향하였다. 대천교회에 철야기도회를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철야기도회에는 70여 명의 교인들이 참석했다. 밤 9시에 시작한 집회는 12시가 넘어도 끝나지 않았다. 출국 전날인 6월 30일에는 남서울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히브리서 4:14-16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구세군 예배의 특징’이라는 제목으로 피차간 은혜로운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시드니에서 만난 탈북자 부부를 담임사관에게 연결시켜 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식사 후 ‘서울제일교회 청년집회’를 위하여 급하게 떠나야만 했다.
 
다시 시드니로
 
인천 공항은 전세계 공항 서비스 평가에서 8년 연속 세계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관문이다. 이곳에는 이용자들을 위한 많은 편의시설이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1층 밀레니엄 홀이다. 상시로 ‘문화와 하늘을 잇다’라는 주제로 문화공연이 열린다.  7월 1일 출국하는 날은 HUE라는 듀엣 공연이 있었다. 마중 나온 친구와 함께 감미로운 크로스오버 음악을 들으며 한국에서 지낸 시간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 각종 문화공연이 열리는 인천공항 1층에 있는 밀레니엄 홀     ©김환기

3주 동안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정말 행복했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행복했던 것은, 모든 일정을 마치면 갈 곳이 있고, 그곳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땅의 삶을 마치면 갈 곳이 있고, 그곳에 우리를 기다리는 분이 있기에 오늘의 삶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날을 알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그곳을 믿고 이곳에서 사는 사람이 복된 사람이다. 〠
 
김환기|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
호주구세군 한인사역(Korean Ministry) 및 수용소 담당관(Chaplain, Detention Cen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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