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원주민 선교는 한국인이 맡아야

글|라호윤, 사진|김성주 | 입력 : 2013/09/30 [11:54]
 
▲ 원주민선교인식여행에 참가한 목회자 일행.      © 김성주
 
“목사님들 어서 오세요!” 8월 13일 화요일 아침 8시 30분, 콩코드(Concord)에 있는 호천장로교회에서는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KMIA|Korean Mission for Indigenous Australian, 이하 선교회)의 정기모임이 있었다. 호주 원주민 선교를 위해서 매달 한 번씩 회원들이 모여서 선교에 대한 여러 가지 일들을 상의하고 결정한다.

이번 모임은 ‘목회자 선교인식여행’을 위한 두 번째 예비모임이었다. 선교회 회원들이 뜨거운 환영과 축복으로 선교인식여행에 참여할 우리 일행들을 맞아 주었다. 선교회 회장 주정오 목사(열린문교회)로부터 선교회의 목적과 선교인식여행에 필요한 여러 가지 주의사항들을 전해 들었다.

선교회는 호주 원주민 선교에 뜻을 둔 8명의 목회자들에 의해 설립이 되어 다음과 같은 주된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첫째는, 정기 세미나를 통해서 호주 원주민 선교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원주민들의 삶을 보는 선교인식여행이 그 두 번째 사역이며, 세 번째는 원주민 종족을 입양하여 각 지교회와 연결시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는 일을 하며, 마지막으로 웹사이트(www.kmia.net.au)를 통하여 원주민 선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선교의 중복투자를 막고 선교지를 개척하는 매우 중요한 일들을 감당하고 있다.

필자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삶을 알아보려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 여행에 지원했으나 두 번의 예비 모임을 통해서 좀 더 구체적인 원주민 선교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Alice Springs로 가다
 
8월 19일 월요일 아침, 시드니 공항 국내선 대합실에 도착했다. 호주에 발을 딛고 산지 꽤 오래 되었는데 국내선을 타기는 처음이었다. 잠시 후 일행들이 도착했다. 이날 선교인식여행에 참여한 일행은 김성주 목사(새빛장로교회) 이영식 목사(한민장로교회) 유종오 목사(행복한교회) 김종찬 목사(엘림장로교회) 고형민 목사(시드니꿈이있는교회) 이일동 목사(형통한교회) 이정환 선교사(어린이전도협회) 라호윤 목사 (넘치는교회) 그리고 AIM(Australian Indigenous Ministries)대표인 트레버 레갓 목사(Rev. Trevor Leggot)였다.  

시드니를 출발한 비행기는 세 시간 반을 날아 Alice Springs에 도착했다. 일행 중 인식여행이 처음인 5명의 목회자들은 “와, Alice Springs다.”라며 환호했다. 짐을 찾아 대합실을 나오자 Robby라는 AIM 전임 사역자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시드니에서 이곳까지 중형 버스를 운전하고 왔는데 거기에는 우리가 5박 6일 동안 먹을 음식들을 채운 트레일러가 달려 있었다. 더욱이 이곳까지 3일 동안을 달려와 우리를 맞아 주었다는 말을 듣고 깊이 감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헌신이 이 인식여행을 위해서 준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임을 느낄 수 있었다.

곧 바로 차에 오른 우리 일행은 Stuart High Way를 타고 약 7시간을 달려서 Tennant Creek에 도착했다. 그날 밤 우리 일행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숙면을 할 수 없었다. 아마도 다음 날부터 펼쳐질 새로운 일들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던 것 같다.
 

▲ 테난트 크릭 AIM교회 화요 성경공부를 마친 후 원주민 성도들과 함께.      © 김성주
 
한 알의 밀알
 
화요일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 일행은 이곳에 있는 한 광산을 방문하게 되었다. 1870년대 Adelaide에서 Darwin까지 연장 3,600km의 전신주를 세우던 당시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게 되었고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금광을 캐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화려했던 금광을 뒤로 한 채 우리는 Eugene과 Ruth Freudigmann의 집에 초대되어 갔다. 이 부부는 AIM의 팀 사역자들로 이곳 원주민들을 섬기고 있었다. 남편인 Eugene은 귀 전문 의사이고 그의 아내인 Ruth은 간호사이다. 이들 부부는 Tennant Creek을 중심으로 반경 약 800km를 사역지로 삼고 원주민들의 청각의 문제를 치료하고 예방하는 사역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그 날, Eugene은 타지에서 사역 중이라 만날 수 없었고 그의 아내 Ruth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그녀를 통해 원주민들의 삶의 모습과 그들의 언어, 그리고 어떻게 Tennant Creek의 원주민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는지를 듣게 되었다.

다섯 부족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진정한 크리스찬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 정말 기뻤다. 그녀의 고백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원주민들이 하나님께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다려 준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성격과 성품을 이해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사역을 나누는 그녀의 얼굴에는 시종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그녀의 말은 인자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마치 신약성경에 나오는 브리스길라를 연상케 했다.

특히 이날 함께 참석한 한 원주민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Tennant Creek AIM교회의 원주민 리더인 Richard Drivers였다. 올해 나이 62세인 그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었지만 탁월한 영적 지도력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아주 중요한 리더였다.
 
그는 어릴 때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으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대부분의 원주민들이 그렇듯이 술에 취해 소일하며 소망 없는 인생을 보내게 되었다.
 
▲ 우리 일행을 위해 직접 사냥한 야생 터키와 빵을 구울 준비를 하는 해롤드 부부.      © 김성주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잠을 자다가 어느 침입자가 휘두른 칼에 목을 베었다. 1~2mm만 더 깊이 베었으면 생명을 잃을 뻔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자신을 위험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을 만나 그분에게 전 생애를 드리며 살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그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왔다. 안구 뒤에 종양이 발생해 뇌수술을 했지만 결국 그는 시력을 잃고 말았다. 그럼에도 그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 분을 위해서 살기로 한 약속을 지키며 전심으로 주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다.

그는 육신의 눈을 잃어서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그 대신 영의 눈을 열어 말씀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깊이 묵상하며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체험하는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했다. 그의 간증 가운데 아주 감명 깊었던 것은 자신에게 칼을 휘둘러 상처를 입혔던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으로 품어 예수를 믿게 했고, 심지어는 그를 양자로 삼아 지금도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이 교회를 부흥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하며 마음 깊이 감동을 받았다. 그는 지금도 교회의 영적 리더로 많은 원주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은혜의 성경 공부
 
그날 저녁, Tennant Creek AIM교회에서는 화요성경공부 모임이 있었다. 이들의 성경공부 모임을 참관하던 우리 일행은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다름이 아니라 여성반 성경공부 모임에서 아프리카의 르완다를 돕기 위한 헌금을 하며 기도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원주민 교회가 다른 나라를 위해서 선교한다는 사실에 적잖게 놀랐다.

남성반 성경공부의 주제는 ‘용서’였다. ‘용서’, 이 단어가 원주민들에게는 매우 무거운 단어였다. 우리는 이들에게는 복수만이 있을 뿐 용서라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들의 나눔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성경을 찾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직접 삶에 적용하는 모습에 우리 일행은 그저 감동할 뿐이었다.

‘다른 이를 용서할 수 있게 기도해 달라’는 한 원주민 형제의 기도 부탁에 가슴이 뭉클했다. 성령께서 참으로 이 원주민들을 사랑하시고 이들의 삶을 인도하시며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이 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3천 명 정도가 사는 이 지역을 감당할 수 있는 성령의 귀한 도구로 쓰임 받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 Harold의 아이들과 함께      © 김성주
 
Harold 가족과의 만남
 
수요일 아침, 우리 일행은 엘리오트로 향했다. 테난트 크릭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이곳은 원주민 6백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었다. 우리는 이 지역의 유일한 크리스찬인 해롤드(Harold)를 만날 수 있었다. 48세인 그는 전직 경찰이었고 지금은 센터링크에서 일하면서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 컨트리 음악을 통해서 찬양 앨범을 만들어 보급 할 정도로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다.

점심 식사 후에 우리는 인근에 있는 길이가 약 40km나 되는 길다란 호수가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우리는 Harold가 입양해 키우고 있는 그의 자녀 7명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민물조개와 우렁을 잡았고, Harold 부부는 직접 잡은 야생 터키와 자그마한 자라를 구워 우리에게 주었으며 또한 원주민들이 먹는 빵을 손수 만들어 숯불에 구워 주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며 원주민 한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일행에게는 굉장한 경험이었다.

이곳 Elliott을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 있는 6백 명의 영혼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내 마음을 적시고 있었다. 그날 잠이 오질 않았다.
 
우리의 사명
 
목요일 아침, Alice Springs로 출발하기 전 우리 일행은 Elliott AIM교회당에 들어섰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호주 내지선교회에 의해 세워진 이 교회는 지금은 한 사람도 찾아오지 않는 교회가 되어 버렸다. 교회 안에 잔뜩 쌓인 거미줄과 먼지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우리 일행은 Alice Springs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Devils Marbles에 들러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위대함을 보며 감동했고, 외계인이 출몰한 적이 있다고 알려진 Wycliffe Well에도 잠시 들렀다.

Alice Springs에서는 이곳에서 사역하는 Phil과 Cathy선교사 부부와 그의 아들 Joshua를 만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이곳 Alice Springs에는 약 3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13개의 다른 민족들이 있고, 인구의 약20%가 원주민이다.

선교사 부부는 주일마다 버스로 약 160km나 되는 거리를 운행하면서 원주민들을 교회로 데려오지만 정작 그들은 교회 버스에 내린 후 바로 쇼핑을 하러 가 버리기 때문에 사역이 참 어렵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정부에서 제공해 주는 생활 보조금이 있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일을 한다든지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고, 그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Phil과 Cathy선교사의 사역은 매우 힘겨워 보였다. 올해 이곳에 온지 4년째인 그들은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 원주민 사역에 무척 회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웠다. 지역의 특수한 환경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지금 무언가가 잘못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과 더불어 원주민선교 사역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이날 대화 가운데 트레버 목사는, 이제 원주민 선교는 한국인들이 맡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원주민들과 백인들 사이의 벽을 허무는 일을 한국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부터 억압과 핍박을 받았던 가슴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극복한 민족이기 때문에 그것이 원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큰 장점이 된다는 트레버 목사의 말에 우리 일행은 크게 공감했다.

우리는 Phil선교사 가족을 격려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헤어져 그날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 알리스 스프링스의 식당에서 Phil 선교사 가족과 함께(왼쪽에서 6,7번째가 Phil, Cathy 선교사 부부 그리고 8번째가 아들 Joshua)      © 김성주

하나님의 창조
 
금요일 아침, 우리는 Uluru(Ayers Rock)로 향했다. Uluru로 가는 창밖의 풍경은 Alice Springs의 북쪽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북쪽으로 올라갈 때는 큰 키의 나무들을 자주 볼 수 있었고, 기온도 훨씬 높았다.

또한 처음 보는 뾰족한 탑처럼 생긴 수많은 개미집들이 있었다(참고로 개미집들은 기본적으로 30cm 이상이었는데, 개미가 1년에 약 10cm정도를 쌓는다고 하니 얼마나 오랜 시간들을 소비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Alice Springs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서는 키 작은 나무들을 볼 수 있었고, 기온도 쌀쌀했다. 그리고 더 이상 개미집을 볼 수 없었다.

드디어 467.8km를 달려 도착한 지구의 배꼽이라 불리는 에어스 락(Ayers Rock)은 엄청난 크기의 모래바위로 그 모습이 장엄했다. 높이 348m, 둘레 10Km나 되는 웅장한 위용을 한 에어스 락 앞에는 등반 시 주의사항이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2013년 6월까지 4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아주 위험한 등반길을 쉬엄쉬엄 오르면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광경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 왔다. 정상에 서서 바라보는 바위 밑의 모습들, 그리고 멀리 펼쳐진 아름다운 장면들을 가슴에 깊이 담고 내려왔다. 우리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레 찬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우리 일행은 에어스 락에 비치는 석양을 보았고, 해가 진 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하늘에 뜬 수많은 별들과 은하수를 보았다. 그 가운데로 흐르는, 우리를 보호하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볼 수 있었다.

텐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었다. 월요일부터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원주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았다.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실행함에 있어서 호주 원주민들을 제외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드니를 향하여
 
토요일 아침, 우리 일행은 Alice Springs 공항으로 출발하여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 무렵 시드니에 도착했다. 이로써 5박 6일의 원주민 선교인식여행은 막을 내렸다. 이번 한 주간은 참으로 은혜와 도전의 연속이었다.

보통 우리는 이런 여행을 ‘단기선교’라고 부르지만 한인 호주원주민 선교회에서는 왜 ‘선교인식여행’(Mission Awareness Trip)이라고 부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선교여행은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번 여행을 통해 우리는 호주 원주민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볼 수 있었으며, 원주민 선교에 대한 거룩한 부담을 가지게 되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이 사역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할 것이다. 작은 것에 충성하는 자에게 큰 것을 맡기심을 믿는다.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됨도 믿는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우리가 느낀 감동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도록 선교인식여행을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끝으로 이번 선교인식여행을 위해서 물심양면으로 협력해 준 여러 교회 지체들과, 매일 기도해 주신 한인 호주원주민선교회(KMIA) 회원들, 여행기간 동안 힘써 섬겨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새로운 꿈과 비전을 갖게 하신 우리 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린다. 할렐루야! 〠
 

글/라호윤|넘치는교회 담임목사
사진/김성주 새빛장로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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