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3/24 [10:25]

부인주의(否認主義  Negationism)라는 용어가 있다. 일반적으로 널리 공인되고 받아들여진 역사적인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입장을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터키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부인하는 것이나 신나치 주의자들이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것이나 일본이 종군위안부를 부인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 등이 있다.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도 이 그룹에 속한다.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은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부터 1917년 사이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을 죽인 사건이다. 프랑스 러시아 캐나다 등 20여 개국 이상에서 이는 사실로 인정받고 있으나 터키는 이를 부인할 뿐아니라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에 대한 부인주의가 입법화되어 있어서 이 사건을 인정하는 모든 종류의 표현이 불법이다.

터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가  이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가 국가모독죄로 기소되고 극우파의 위협을 견디다 못해 결국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이 사건이 얼마나 민감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터키가  유럽에 근접해 있고 적극적으로 가입하기를 원하나 EU가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아르메니아인 대학살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프랑스는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부인금지법을 제정하여 위반시 징역 1년과 벌금 4만 5천 유로를 물릴 수 있도록 하였다.

홀로코스트는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2차대전 중 나치독일에 의해 유대인을 비롯한 집시와 장애자들 600만 명이 학살당한 것이다. 이를 부인하는 그룹이 있다는 사실에 독자들은 경악할 것이다. 그러나  엄연히 실재한다. 

2006년 이란이 수도 테헤란에서 개최한  홀로코스트 학술회의에서 홀로코스트는 실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과장된 것이라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었다. 참고로 그 회의에서 폴란드의 악명높은 수용소 <트레블린카>의 모형을 보여 주면서 “독가스실이 있었다는 것은 순전한 거짓말”이라고 주장한 리챠드 크레그라는 사람이 호주학자였다는 것을 알아두자. 또한 오스트리아를 위시한 EU국가들은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3년형에 처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삼켰던 만행을 침략이 아니라 하고 종군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치 않고 보상을 회피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라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몰지각한 인사들 중에 일본의 만행을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이런 황당한 주장이 다시는 없도록 우리도 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새로울 것도 없다. 복습하는 뜻으로 정리해 보면 우선 기절설이 있다. 예수님은 온전히 죽은 것이 아니라 잠시 기절했을 뿐인데 서늘한 바위굴 속에 넣어 두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는 것이다.

독자들 중에 혹시 이 주장에 동조하는 분이 있다면 부디   <로이드  존스>목사가 의사였던 지식과 경험을 살려 쓴 글을 꼭 읽어 보기 바란다. 예수님이 확실히 운명했던 사실이 과학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도적설이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 다른 곳에 숨겨 두고는 부활했다고 거짓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제사장을 위시한 당시의 기득권 그룹이 군인들의 입을 돈으로 매수하면서 그들에게 일러준 변명이었다.

환상설이 있다. 돌아가신 예수님을 너무 그리워한 나머지 증인들이 환상을 보고 실제인 듯이 소문을 내었다는 것이다. 당시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지 오매불망 주님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또한 부활한 주님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대면하였다. 대화도 하고 여행도 하고 만지기도 하고 식사도 함께 했다. 하늘로 올라가는 장면은 최소한 500명 이상이 동시에 보았다. 이들이 모두 환상을 본 것이라는 주장은 부활했다는 주장보다 더 신뢰하기 어렵다.

신화설이 있다. 예수의 생애자체를 기독교의 신화로 매도하는 것이다. 이 부류가 부인주의의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 주장에 동조하는 독자가 있다면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나 총독 빌라도, 분봉왕 헤롯, 데제사장 가야바의 존재도 신화일까. 갈릴리나 유대나 사마리아나 예루살렘도 상상에나 나오는 지방이나 도시일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이상의 주장들이 사실이라면 지난 2000년 동안의 기독교는 허구 위에 세워져 존속한 셈이고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순교자들은 거짓을 위해 생떼같은 목숨을 버린 셈인데 그런 일은 로마의 법과 힘으로도 가능할 수 없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을 의심없이 믿고 찬양하며 부활이 주는 의미를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화시키기 원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오셨다. 대제사장 가야바나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 내가 부활했노라 시위하지 않고 막달라 마리아를 먼저 찾아 주신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에 사로잡혀 고생하던 가엾고불쌍한 여인이었는데 주님이 고쳐주어 나음을 입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위로와 평안을 얻었고 고귀한 존재감을 회복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자신보다  주님을 더 사랑했다. 그 사랑이 마리아를 골고다까지 동행하게 했고 이른 새벽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런 마리아를 주님이 찾아 오셨다. 그리고 가장 먼저 만나 주셨다. 주님은  자신의 위대한 승리를 가슴에 사랑을 품고 진심으로 주님의 안위를 염려하는 이름없는 여성도에게 최초로 나타내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복된 사명을 주신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실패하고 무너진 사람을  찾아오셨다. 주님이 베드로를 찾아 주신 것이다. 스승을 부인하고 버렸다는 비통함을 안고 다시 갈릴리로 돌아가 고기를 잡던 그에게  주님이  오신 것이다. 비록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물을 던지고는 있지만  결코 편히 집중할 수 없었을 그에게 주님이 찾아온 것은 그를 비난하고 책망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를 어루만지고 회복시켜 그의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죄책감에 쌓여 고뇌하며 일생을 보내도록 놓아두지 않고 다시 세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다. 주님이 여전히 그를 사랑하며 자기의 양을 먹일 적임자로 믿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박해자를 찾아 오셨다. 주님이 바울을 찾아 주신 것이다.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열심이 특심이었던 사람으로  그날도 그일을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이었다. 비록 격렬히 반대하고 저항하는 자라도 주님은 얼마든지 사로잡아  자기의 자녀로 삼을 수 있고 얼마든지 자기의 사역자로 세울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이다.

무관심보다는 오히려 맹렬한 반대가 주님을 더 쉽게 만나게 한다는 역설을 증명한 조우였던 셈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혹은 주님을 부인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혹은 주님을 핍박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님이 먼저 그런 사람을 찾으시므로.

터키와 아르메니아 출신의 두 연극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악수한 기록으로 기네스 북에 올랐다. 그들은 영하 3도의 춥고 비바람이 부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탕과 물과 차만 마시며 무려 43시간 동안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두 나라가 아르메니아인 대학살로 인하여 반목하고 질시하는 현실을 안타까와 하면서…

이번 부활절에 내가 손내밀어 잡아야 할 사람은 사람은 누구일까. 혹시 그쪽에서 먼저 손내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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