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란 명칭부터...

이민교회교육 갱신전략 II

김석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3/24 [11:11]


주일학교란 유아부부터 시작해서 초등부에 이르는 십대 이전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 프로그램을 말한다. 오늘은 ‘주일학교’란 이름만 가지고, 몇 가지 주일학교의 주요 이슈와 필요에 대해서 간단히 살펴본다.

1. 주일학교는 주일학교만의 특수한 필요가 있으며, 일관성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많은 교회들은 중고등부, 어떤 경우에는 청년부까지도 모두 ‘주일학교’란 이름으로 통털어 조직 속에 넣는다. 그나마 청년부를 좀 신경쓰는 교회는 청년부장을 교육부장과 나누어 놓지만, 재정 지출에서는 여전히 같은 교육예산 재정에서 나갈 때가 많다.

그러나 이 모든 부서를 마치 ‘한통속’으로 다루는 태도는 피해야 한다. 왜냐하면 십대 이전의 아이들과 그 이후의 교육 방법과 전략은 달라야 하고, 담당자의 역할과 책임에서도 이들을 완전히 분리시켜 해결책을 찾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프로그램’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언급하겠지만, 이들의 학습방법은 도리어 장년의 그것과 더 비슷하다. 도저히 부서를 나눌 형편이 못되면, 도리어 청소년은 청장년 교육 프로그램의 틀 안에서 한 부서로 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나마 좀 규모가 되는 교회는 주일학교를 나이 별로 조각조각 나눠서 담당자와 부서장을 따로 두고 움직인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각 부서들이 서로 거의 연관 없이 움직인다, 졸업식이나 교회 공동행사에나 만날 뿐이다. 교역자까지 다르면 각 부서가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하는지 서로 파악도 안된 채 알아서 움직이기 일수다. 한마디로 연결성이 없어서, 아이들은 몇 년을 교회학교를 다녀도 체계있는 ‘성장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만히 보면, 인위적으로 나이별로 나눠서 취급하기엔 각각 너무 다양하고, 성장이나 성숙 정도도 다르다. 3학년 하고 5학년이 수준이 비슷할 수도 있고, 같은 2학년끼리도 이야기가 전혀 안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시기엔 남녀도 따로 취급할 필요도 별로 없다.

물론 유치한 수준의 ‘따로 놀기’를 벗어나 남녀 차이를 심각하게 따지기 시작했다면, 이제 ‘십대가 돼간다’는 불길한(?) 조짐이다. 빨리 건수를 만들어서 청소년부 틀안으로 넣어야 한다.

정리하면 주일학교는 ‘청소년과는 분명히 구분된 기대와 관점’에서 ‘학년에 상관없이 각자의 발달과정에 주목하며’ ‘전체 기간을 통털어 연결시키는 프로그램 속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필요는 일반 초등학교가 돌아가는지를 봐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일반 학교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그 수준에 맞는 학업수행능력’을 기반으로 숙제를 내주고,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필요한 경우 개별 아이들의 수준에 따라 월반이나 합반, 보충수업 등이 몇 개 학년을 묶어서도 진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또 일관성 있게 성장을 이끌 수 있도록 보다 연방차원의 ‘총체적인’ 커리큘럼 개발에 나서고 있다.

주일학교 역시, 교회의 편의에 따라 주먹구구로 아이들을 한통속에 몰아넣고 되는 대로 가르치는 것에서 벗어나, 아이들의 학습방법과 능력에 기반을 둔 교육방법과, 아이들이 단계별로 신앙성장의 과정을 가질 수 있도록 ‘큰 틀’의 커리큘럼을 준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2. 주일학교는 ‘학교’로 남아서는 곤란하다.

‘주일학교’란 명칭은 또 다른 중요한 이슈를 떠 올리게 만든다. 주일학교는 보통 ‘주일’에, 주로 부모가 교회에 가는 같은 시간에 하는 아이들 교육프로그램을 떠올린다. 또한 말 그대로 신앙에 대해서 교육받는 ‘학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선생님이나 담당목회자에게 일방적으로 신앙에 대해 배워오는 시간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교육 프로그램을 주일에만 한정하는 것, 그것도 1-2시간 프로그램으로 제한할 때, 신앙교육의 효과가 과연 나올 수 있을까? 많은 교사들이 불평하는 것처럼, 그 짧은 성경공부시간마저도 정신없이 떠들고 산만한 태도로 분위기를 망치고, 생뚱맞은 이야기나 가져오고 별거 아닌 문제로 울고 싸우고, 결국 애들 문제를 가지고 부모까지 끌고와 난리를 만들어내기 일수다.

그러나 이런 문제는 사실 아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친구사이와 가정/부모관계에서 만들어지는 문제들이고, 여기에 대해 교사는 거의 발언권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에게 주어진 주일 1-2시간 가지고는 문제 해결은거녕, 문제를 이겨내기도 힘이 벅차다.

이 점에서 주일학교 교육의 장이 과연 ‘주일 한두 시간에 제한되는 현재 상황’이 과연 건강한지 물어봐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주일학교가 ‘주일’이란 틀을넘어설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주일프로그램의 시간을 늘리든, 주중 프로그램도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 아이들이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다시 말해 학교나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이뤄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아동기’ 교육은 학교나 교사로 이뤄지지 않는다. 역시 부모의 책임이 가장 크다. 주일학교도 마찬가지다 부모를 계몽하고, 참여시키고, 같이 공조하도록 만들지 않으면, 잘해야 '기적이나 우연’밖에는 기대할 거리가 없다. (그것이 기도로 표현된다고 해도, 결국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기대하는 책임을 제대로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식을 가르치는 일반교육도 이런 방향으로 가는 판에 삶과 가치관을 다루는 신앙교육은 오죽할까? 주일학교의 초점은 아이들 교육뿐 아니라, 부모들 계몽과 교육,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가능하도록 돕는 지원사역, 그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부모의 주일학교 자원봉사나 주중 가정활동과 연계되어 움직이도록 짜야 한다는 뜻이다. 부모들에게 주중 학교에서 있는 ’성경공부시간‘나 기독교학교 등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격려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라는 개념의 문제다. 지금까지 학교하면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스폰지처럼 그것을 받아들이는’ 환경을 떠올리기 쉬웠다. 그러나 이미 일반 교육학계에서는 이런 교육환경은 효과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결론을 내린지 오래다. 이제 초점은 교사의 지속적인 훈련과 광범위한 자료 활용, 그리고 아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배움’을 주도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교회학교의 현실은 이미 폐기처분된 과거 학교모델을 유지하고 있다. 교회학교가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마치 선생님의 믿음이나 헌신문제로 취급할 때가 흔하다. 물론 교사 개인의 자질과 자세는 여전히 매우 중요하지만, 과거식 학교모델로서는 아이들에게 신앙에 대한 호감도, 가진 질문이나 이슈에 대한 교육도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그나마 많이 개선되었다는 일반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그렇게 지겨워하는데, 주일학교가 재미없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 점에서 주일학교도 이제 아이들 교육 자체만큼이나 ‘교사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야 하며, 교회학교의 필요를 위해 다양한 외부리소스들을 활용하도록 하여, 개 교회 학교가 가진 역량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동시에 아이들에게 ‘참여중심’의 교육방식을 도입하여, 질문을 당연시하고, 아이들이 답을 찾는 과정에서 곁길로 좀 가더라도 지켜봐주는 ‘여유’도 필요하다.〠 (계속)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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