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신학의 내용

김석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4/29 [11:28]

앞에서 말한 어린이 주일학교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테크닉’이나 ‘자료’가 아니다. 변화무쌍한 현실 앞에서 어떤 기준으로 나갈 것인가를 정리하는 것이 더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설 때에 다양한 자료들을 필요에 따라 종합, 선택할 여지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린이 신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
 
이번 달은 성서유니온의 ‘Theology of Childhood'와 에스탭 교수의 ‘Childhood Transformation'이란 자료를 바탕으로 기본적으로 어린이 신학에 필요한 내용들을 정리해 본다.

1. 어린이 신학은 보편적 인간 가치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어린이 신학의 출발은 하나님이 인간을 어떤 가치로 두셨는지를 살펴보는데서 시작해야 한다. 이것은 ‘어린이’만의 신학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문제다. 이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창조명령’이라고 불리는 구절을 통해 가장 잘 요약되어 있다.

여기서 나오는 의미는 1)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독특한 창조물로서, 어떤 인간에게서도 외형, 조건, 능력에 상관없이 가지고 있는 가치, 2)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세계 전반의 운명을 책임진 관리자, 3) 모든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육을 위해 기본적인 생식이 필요한 존재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 땅의 운명을 결정지을 인간이 바른 책임감을 가지고 지도자로서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첫째와 세 번째는 모든 아이들에게 적당한 보호와 공급이 당연히 공급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거의 모든 교파가 이견이 없다.


2. 어린이 신학은 인간의 죄성에 대한 이해를 포함해야 한다.

어린이 신학의 내용에는 죄성에 대한 이해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교육적으로 맞고 있는 ‘실제 상황(해결해야 할 문제)’을 설명하고 정의한다는 면에서 중요하다. 여기서부터 어쩔 수 없이 신학입장에 따른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원죄의 영향과 개인의 책임에 대한 정의에 따라, 아이들에 대한 접근방식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개인에게 원죄의 영향을 작게 보면, 다시 말해 아이들을 더 선하게 보는 쪽은, 구체적인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한 회심보다는 보편적인 인격, 윤리교육에 관심을 더 가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죄를 강조할수록 양육이든 구체적인 신앙고백에 따른 결단을 강조한다. 죄성이 세상을 지배를 받는지에 대한 관점에 따라, 세상과 관계하는 정도도 바뀐다.

예를 들어 인간의 죄성에 모든 학문과 세상을 ‘더 강하게’ 지배한다고 생각할수록, 주류학문이나 세상과의 관련을 거부하고 부정하는 내용으로 가르치기 마련이다. 반대로 죄성이 세상에 미친 영향이 부분적이라고 생각할수록 세상적 학문, 특히 주일학교에서는 교육학이나 심리학의 결과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이 장에서는 어떤 입장이 맞는지를 따지지는 않겠지만, 어떤 입장이든 내 교회와 주일학교가 어떤 입장에 서 있는지를 분명히 점검한 뒤, 그 입장에 맞추어 일관성 있는 접근을 해야만 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3. 어린이 신학은 인간의 회심에 대한 이해를 정리해야 한다.

이 문제는 무엇이 회심 혹은 칭의/성화인지에 대한 정의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도 각 교회가 속한 신학적 입장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회심 문제는 죄성 문제보다는 교단별 차이가 덜 심한 편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회심의 문제에 있어서 가장 극단에 있던 입장들이 그동안 많이 조화된 결과이기도 하다.

더 쉽게 말하면, ‘운명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던 칼빈주의자들도 개인의 회심과 전도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자기결정’에 강조를 두었던 알미니안주의자들도 하나님의 섭리를 더 많이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또 다른 변화는 회심의 과정이 단순히 지적 동의가 아니라, 지정의 모든 영역의 변화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더 많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감정’이 중심이 된 회심중심의 문화와 ‘의지’가 중심이 되는 양육 중심의 문화가 서로를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경험되는 양육과, 결정적인 개인의 결단이 요구되는 회심이 모두 강조되어야 한다.


4. 어린이 신학은 교회와 어린이의 관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주님의 몸으로서 교회는 기본적으로 말씀으로 성도가 서로 양육되는 자리다. 이점에서 아이들 중에서 적어도 분명한 회심의 결단이 있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는 아이들의 자리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며, 교회의 역할에 대한 참여나 의견개진 정도도 이에 맞춰서 조정되어야 한다.

특히 각 교회가 가진 신학적 입장을 분명히 해서 각 전통이 가진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유아세례를 중심으로 하는 경우 유아세례 이후 학습과정을 잘 준비해서 개인의 결단과정을 분명히 거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반대로 헌아식 전통의 교회는 가족의 역할을 더 분명히 각인시켜 가족의 신앙교육 참여를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린이의 ‘시기’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부모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개인의 결정과 사고의 여력이 부족하게 여겨지는 시기가 단축되는 ‘조로화’현상이 널리 발견되고 있고, 이것은 ‘양육’이 집중적으로 필요한 기간과 ‘회심’을 강조해야 할 시간대를 바꾸어 놓고 있다. 이점에서 교회는 개인별 차이와 함께, 전반적인 조로화 현상 앞에서 아이들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접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결론

어린이 신학은 위의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몇 가지 명제로 정리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러한 내용을 기준으로 각 교회는 커리큘럼, 교사훈련방향, 교육계획을 계발하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미 나와있는 수많은 교제들도 나름대로 장단점이 다 있지만, 각 교회가 필요한 내용을 찾기 위해서는 적어도 지도자들은 선택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교회의 자원이 소용되지 않고서는 이리저리 널뛰기만 하다가 아무런 축척된 결과도 만들지 못한 채, 아이들을 세상에 보내야 하는 상황에 몰리기 십상이다. 날로 영적으로 혼란해지는 이 시대에 어린이 신학에 대한 정립과 정리가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고 하겠다. 다음 시간에는 어린이 신학의 다음 단계인 ‘청소년 신학’에 대해 다루어 보고자 한다.〠 <계속>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