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수

최성은/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5/26 [12:16]
▲ 자료사진     © 국민일보

4.16 세월호 참사는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다양한  화두를 던졌다. 발생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순간순간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애통해했고 분노와 좌절을 맛보며  고뇌를 거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누구도 그렇다는 확신을 얻지 못함으로 인해 발밑의 기초가 허물어지는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양한 화두 가운데서 내게는 ‘평형수’가 준 의미가 컸다.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웠던 선박과 관련된 ‘평형수’라는 용어가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던 것이다.

평형수(ballast water)는 운항시 선박의 무게 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의 밑바닥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넣는 바닷물이다. 모든 배는 적당량의 평형수를 싣고 있다가 배가 왼쪽으로 기울면 물을 오른쪽으로 옮겨 배의 중심을 잡고 균형을 유지시키고 반대로 오른쪽으로 기울면 왼쪽으로 옮겨 바로잡는다고 한다. 말하자면 평형수는 배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을 때 원위치로 되돌아 오게 하는 복원력을 유지하는 생명수인 셈이다.

이 평형수는 반드시 규정대로 채워 운항토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 여객 선사들은 이를 준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규정대로 채우면 배의 무게 중심이 낮아져 복원력은 좋아지지만 배의 흔들림이 심해져  승선감이 떨어지고 평형수 무게에 비례하여 연료 소모가 늘어나고  또 그만큼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양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배는 실을 수 있는 무게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이 무게는 최대치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 탑재할 수 있는 무게는 그보다 훨씬 적다. 세월호는 6천825톤까지 실을 수 있으나  출항시 적정 재화중량 총수는 3천790톤이다.

조사에 의하면 그날 세월호는 3천608톤을 실었다고 한다. 이는 적정치를 넘기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상세히 들여다 보면  놀랄 만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호에 허락된 적정치 3천790톤은 화물과 여객 1천 70톤, 평형수 1천700톤, 연료 560톤, 청수 290톤, 식량 170톤을 포함한 것이다. 그런데 세월호는 그날 화물과 승객만  2천 톤 이상을 실었다. 나머지 1천790톤 가운데 거의 절대치여서 줄일 수 없는 연료, 청수, 음식 등의 무게 1천20톤을 빼면 평형수는 580톤 정도에 불과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1천700톤을 실어야 하는 평형수를 580톤 밖에 싣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급격한 변침으로 기울어진 배가 평형수 부족으로 복원되지 못하고 침몰하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평형수를 줄일 때 별일 있으랴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늘 이렇게 해왔지만 문제없었다는 안일한 판단이 참사를 불렀을 것이다. 불법을 행하나 형통하고 정상이 아닌데도 순조롭다면  그때가 사실 가장 큰 위기인데 아무도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누구도 평형수를 점검하지 않았다. 해경도 항만청도 해운조합도 아무도 감시 감독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사가 평형수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충격적일 정도로 평형수를 줄이고 그 대신 화물을 과적한 것은 이윤 때문이다. 선사가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사람과 화물을 최대한 많이 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형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연료나 음료수나 식량은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제주까지 11톤 트럭을 옮길 경우 70만 원이 든다고 한다. 1천 톤을 기준으로 계산해 보자. 평형수 1천 톤을 실어 봤자 돈도 되지 않을 뿐아니라 연료지출이 많아져 비용만 늘어난다. 그러나 화물 1천 톤을 실으면 편도 7천만 원, 왕복 1억 4천만 원의 수익이 생긴다. 이 탐욕이 평형수를 빼고 화물을 싣게한 것이다. 돈을 사랑함이 일 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은 언제나 진리이다.

우리는 지금 작은 배를 타고 인생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그 바다는 바람도 거세고 파도도 높다. 뱃길은 맹골수로 만큼이나 험하다. 우리는 노련한 선장이 아니므로  배는 항상 위험하게 흔들린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타고 있는 배에 꼭 필요한 평형수도 살펴보지 않은 채 과속으로 달리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를 세우고 평형수를 점검하여 채워 넣는 것이다. 양심이 평형수이다. 양심을 회복하자. 상식이 평형수이다. 상식을 회복하자. 법이 평형수이다. 법을 존중하고 지키자.
 
무엇보다 우리가 채워야 할 평형수는 하나님의 원리이다.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계시되어 있다. 하나님의 원리는 목표를 이루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로마는 결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사과 한 알이 익는데도 시간이 걸린다. 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득히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빨리만 외치며 내달리고 있다. 시간을 과도히 단축하려는 욕구가 우리의 배를 기울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원리는 수고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부단히 노력하고 힘써야 한다. 수확의 기쁨을 맛보려 하는 이는 반드시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가꾸고 키우는 수고를 쏟아 부어야  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원리는 그 수고와 노력도 정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양심에 어긋나거나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법을 어기는 방법으로 목표를 이루고자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원리를 뒤따르는 것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너무 많이 기울어져 있다. 기독교적 가치관은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대체되고 있다. 우리는 행복은 추구하되 성화는 추구하지 않는다. 면류관은 사모하나 십자가는 원치 않는다. 우리는 오염되어 있고 순수함을 잃었다. 우리는 너나없이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각에도 평형수가 필요하고  우리의 행동에도 평형수가 필요하다. 우리의 신앙에도 평형수가 필요하다. 평형수가 요구되지 않는 곳은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정에 맞게 평형수를 채우는 일이다. 탐욕과  조급함으로 인하여 의도적으로 혹은 생각없이 비워 버리고 던져 버린 가치들을 다시 찾아  채워 넣어야 한다.비록 시간이 걸리고 힘들고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하나님의 원리로 살아가도록 자신을 세워야 한다.

세상에 사나 세상에 속하지는 않아야  할 우리들이므로 항상 평형수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최성은|시드니선민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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