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멀티센서리 예배인가? (3)

햄버거 대접받기는 처음입니다!

문문찬/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9/29 [14:38]
“하하하, 목사님한테서 햄버거를 대접받기는 처음입니다!” 수영선수(?) 추 권사님의 말씀이다.
 
시드니 해변과 공원은 교인들과 함께하는 데이트 장소가 되기에 충분했다. “시드니에는 기도 없이도 살 수 있다.” 아마 이 말이 그래서 나온 듯하다. “목사=권위” 공식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려 애썼다. 솔직히 돌아보면 잠 못 이룬 날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모여 즐거워하며 많이도 웃었다. 아직도 그 목소리들 내 귀에, 그 모습들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다.
 
마치 그 새벽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마리아의 그 놀란 모습처럼 말이다.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난 생각한다. 그러는 동안 우리 속에 자리한 어두움이 서서히 물러갔다고… 교회 예배 역시 “듣기만 하는 예배”가 아니라 “보기 좋은 멀티센서리 예배”를 정성껏 준비했다. 어둡고 권위적인 강대상을 “투명한 목회”를 상징하는 아크릴 강대상으로 바꿨다. 그러는 동안 소위 내가 말하는 ‘정감목회’가 자리를 잡으면서 교회 여기저기서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새 자동차도 사 주셨다. “요즈음 연합교회, 많이 달라졌다면서요?” 한번도 연합교회 예배 문턱을 밟지 아니한 캠시 이발관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지난 5년간 내 머리를 손질해 주신 그 분의 말씀은 정겨운 가위소리와 함께 마치 잘 어우러진 반주음악 같았다. 난 유명한 설교자는 아니었다. 카리스마를 갖춘 채 밀어붙이는 그런 행정가도 아니었다. 난 거저 5년 동안 “자상한 정서요법목사”(A Sensitive Therapy Minister)가 되려 애썼다. 그리하여 한동안 잃어버린 송별예배 잔칫상까지 대접받고 교회를 떠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목회다. 하여 나의 시드니 목회 마침표는 누가 뭐라 해도 나에게 있어 ‘행복’이요 ‘기쁨’이다.
 
미국의 새들백교회 목사는 한동안 목회 침체의 늪에 빠져 목회를 포기할 정도에 도달한 적이 있었다. 물론 기도도 해 보고 별 다른 방안을 시도해 보았지만 별효과가 없었다. (좀 심한 표현이지만, 기도발도 닿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하와이 해변에 별장을 소유한 친구가 찾아와 별장 열쇠를 던져주며 물장난(?) 실컷하고 돌아오라는 제안을 했다. 그동안 목회생활에 고달픈 온 몸을 자연 속에 파묻고 흠뻑 스포일(Spoil)시켰다. 정서목욕을 하고 돌아온 것이다. 마치 장난감 차를 돌릴 힘조차 소진한 채 허우적거리던 재충전용 에너자이저(Energiser) 전지가 새 힘(Recharge)을 얻고 돌아와 이 시대 지구촌 가장 유명한(?) 목사 중 한 사람이 된 셈이다.
 
정서리듬을 회복한다는 것은 한 사람에게 있어 놀라운 축복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조차 마치 에덴에서 쫓겨난 채 문밖에서 방황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오묘한 “오감의 세계”(A world of 5 senses) 맛을 즐기지 못한 채 다른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평생 맴돌기도 한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한 교황 집무실에는 이러한 글들이 빼곡히 자리하고 있다—“소란스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침묵 안에 평화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목소리가 크고 공격적인 사람들을 피하십시오. 그들은 영혼을 괴롭힙니다.” “당신 본연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가식적인 모습이 되지 마십시오.” “사랑에 대해서 냉소적이 되지 마십시오. 아무리 무미 건조하고 꿈이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은 잔디처럼 돋아나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불행에서 자신을 보호하려면 영혼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자신에게 관대해지도록 노력하십시오. 당신은 나무나 별들과 마찬가지로 우주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이곳에 머무를 권한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주는 그 나름의 질서대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문문찬|본지 영국 지사장, 영국 감리교회 런던연회 포리스트지방 목사

*지난 9월호 필자의 기사 중 표현상 시드니한인연합교회에 부정적인 인상을 초래한 바 있다면 정중히 사과 올립니다. 하지만 필자의 목회 중 그 시작은 힘들었지만 결국 ‘행복목회’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회고였을 뿐입니다. 또한 여러분의 교회는 여전히 저의 기도 안에 있습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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