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Memorial Service for Lucy G. Lane(nee Mackenzie)

최승일/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9/29 [14:40]
▲ 맥켄지한센선교대회 기간 중 멜본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맥켄지 사진전시회에 루시와 실라를 비롯, 서두화, 민보은 선교사와 최승일 목사 부부가 관람하고 있다.(2012년 9월)     © 크리스찬리뷰

Mrs. Lucy Georgia Lane,
We take today as an opportunity to say a big thank you for all that she has done to support the leprosy mission. We pay our respects to her father Rev. James Mackenzie, the founder of this Ministry and for bringing the gospel into Korea during a time of darkness.
 
It was 96 years ago in 1918 that Lucy was born in Korea, a land which at the time, was full of idols, poverty and corruption. She lived in Busan until the age of 18. It was a blessing, in itself, that her family were able to live in our country for that amount of time.
 
Upon reflection, we try to understand the many challenges Lucy would have faced living as a Missionary child in a foreign environment and working hand in hand with people suffering leprosy. The Mackenzie family specifically chose to support a minority group in need who were turned away by their own people.
 
So just like we remember the works of Lucy’s father Rev. James Mackenzie, we continue to associate her name in our memories.
 
It remains fascinating the difficulties Lucy and her sisters Helen and Cathy would have experienced during the foundation of the Busan Ilshin Hospital.
 
We are grateful that four years ago, in the centenary of Rev. Mackenzie ministry in Korea, Lucy was able to take the opportunity to visit Busan. A city that she considered her hometown.
 
Arriving at Seoul Incheon Airport, Lucy was excited to meet old friends. Unfortunately due an accident at the airport, she was rushed to Severance Hospital in Seoul. Without a complaint, lying in hospital, she would recall fond memories of times spent as a teenager in Busan with great love and expression.
 
I also remember she loved humming along to the Korean hymn, “The time we will meet again” and would ask the praise team to sing it for her when I visited her in the hospital. There were also moments where she would tear up at the thought of God’s love and grace that he had poured into her life.
 
The greatest impression that I was given from Lucy at the time was when she spoke of the Korean community her family was serving. We all know to this day the extent the Mackenzie missionaries went to serve those in need. They were indeed a great blessing to our people, but Lucy was adamant that the time and opportunity she had to serve God in Korea was the greatest blessing for the Mackenzies themselves.
 
It only seems like yesterday that I met Lucy in Melbourne. In fact, it was two years ago that she was jumping with joy to hear that the Korean-Australian community would continue the leprosy mission. As joyous as our encounter was, words cannot express my sorrows to know that Lucy is no longer here with us.
 
However, I am grateful in thought that Lucy would have reunited with her family in God’s Kingdom and is in peace living in the arms of God our Father.
 
See you soon Lucy. We will miss you. We pray that we will all meet again in heaven.
 
And to those here remembering Lucy today, I pray that God’s grace and peace be with you.
Rev. Eric Choi
Chairperson of The Mackenzie Leprosy Mission in Australia

사랑하는 루시 여사님,

먼저 감사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어둡고 캄캄하기만 했던 이땅에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 오신 맥켄지(한국명 매견시) 선교사님의 딸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96년 전인 1918년 당시 조선은 참으로 가난하고 우상으로 가득찬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땅에 당신은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18세까지 사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이 비록 아버님과 같이 사역은 하시지 않았더라 하더라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여름이면 무더위와 겨울에는 매서운 추위라는 환경 속에서 선교사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당시 한국인은 누구도 만나기를 두려워했던 한센병자(leprosy)들을 위하여 헌신하신 아버님과 함께 이땅에서 사셨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맥켄지 선교사님을 기억할 때마다 당신의 이름 루시도 기억할 것입니다.
 
부산 일신병원을 세우고 평생을 헌신한 언니 헬렌과 케시와 함께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언니들과 나누었을 수많은 이야기들이 무엇이었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본인의 고향은 부산이라고 그리워하며 4년 전, 맥켄지 선교사님이 한국땅을 밟은지 꼭 100년이 되던 2010년에 한국을 찾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생애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 생각하며, 태어난 집과 옛친구들을 만나려는 기대에 부풀어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는데 그만 공항에서 사고를 당해 세브란스 병원 안에만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불평하지 않고 평안한 모습으로 병원에 누워 계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가 병원에 방문할 때마다 옛이야기도 들려주셨고, 부산에서의 기억과 여학생 때의 얘기를 하시며 행복해 하시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때 마침 찾아준 병원 직원 찬양팀의 찬양을 들으시다가 너무 좋아하시며 특별히 찬양팀에게 ‘우리 다시 만날때까지’ 찬송을 읊조리시며 이 찬양을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을 들으시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맥켄지 목사님 가족이 부산을 떠나실 때 교회에서 마지막 부른 찬양곡을 그때까지 기억하고 계셨고, 그 가족이 한국 사람을 도운게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받았노라고 그래서 늘 감사의 마음을 갖고 계시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2년 전 멜번에서 다시 만났을 때, 매 목사님의 뜻을 이어 한인들이 한센선교회를 시작한다는 소식에 기뻐하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선한데, 이렇듯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다니 마음 한편 그 선한 모습을 다시 뵐 수 없다는 서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천국에서 가족들과 기쁨으로 만나고 주님의 품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실 것을 믿기에 감사드립니다.
 
루시 잘 가세요. 저 하늘나라에서 꼭 다시 만나 뵙게 될 것을 기도합니다.
 
여기 모여 루시 여사를 환송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평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최승일|호주 맥켄지한센선교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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