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를 위한 변증학

이민교회교육 갱신전략II

김석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4/09/29 [14:43]

변증학이란 질문을 가장 설득력있게 답하는 방법을 찾는다. 이점에서 모든 성도는 변증학적이기 마련이다. 초대교회의 전도법은 일종의 ‘능동적 궁금유발’ 전략이었다. 말하자면 사람들에게 ‘저 사람이 왜 저렇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라는 질문이 생기도록 만들고, 이를 통해 ‘복음’을 전달할 기회를 가졌다. 이것은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초대교회 최초의 전도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항상 의도가 있기 마련이다. ‘저 사람, 왜 저래? 이상한 거 아니야?’식의 의심적은 혹은 부정적인 의도가 있다. ‘저 사람, 대단해, 뭐가 저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을까?’식의 탐구적인 혹은 긍정적인 의도도 있다. 우리가 같은 답을 해주어도 의도에 따라서 반응은 전혀 다를 수 밖에 없다. 이점에서 ‘답’하는 방법은 ‘분위기’에 민감해야 찾을 수 있다.
 
교사는 기본적으로 학생에게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학생은 이에 대해 질문이 생길 수 있다. 물론 요즘처럼 ‘생각없이 사는 사람’이 많은 시대에는 질문을 가지는 학생자체도 귀하다. 대부분은 질문할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 배운 내용에 대해서 관심이 없거나 파악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교사는 세 단계에 다른 ‘변증학’적 과제를 만나게 된다.
 
첫 단계는 ‘가르칠 내용’에 관심을 끌어드리는 방법이다. 이것은 주로 ‘교습법’이 담당하는 과제인데, 보다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과제다. 교회학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무심한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를 ‘자명’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따로 교육기법이나 설득방법이 동원되지 않아도 성령께서 알아서 깨닫게 하신다는 식이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지난 번 ‘대화법’에서 이야기했듯이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문화 속에서 남의 것을 걸러서 받아들인다. 이점에서 교사역시 학생들의 ‘문화’를 염두에 두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을 시도해야 한다. 이것을 따로 신경 안쓰다 보니까, 그나마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가장 잘 통한다는 젊은 무경험자 청년교사를 선호하기도 하는데, 문제는 이들이 전하는 내용이 부실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때문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경험이 많은 부모같은 교사들이 아이들의 문화를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전달법’을 익혀 이들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다. 이점에서 보다 성숙한 교사의 활용을 위해서는 ‘교습법’의 강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둘째 단계는 ‘가르친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확인하는 단계다. 이것은 테스트를 통해서 점검되는데, 여기서도 잘 모르는 문제를 제대로 설명해주고, 교정해주어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신학적 지식과 목회적 관심이 적절히 합쳐져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복음의 진리를 나부터 바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남의 실수나 문제를 지적할 입장에 갈 수 없다.
 
이 단계에서는 ‘교사 훈련’이 담당을 한다. 교사가 교사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 성경과 신학적 지식을 더 깊고, 제대로 쌓는 단계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은 결국 상대에 대한 ‘양육적 관심’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상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면박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틀린 것과 오류를 교정하여 더 낫게 만들려는 관심과 사랑 말이다. 이점에서 모든 테스트나 점검은 보다듬고, 격려하는 목회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질문과 반박에 대하여 답을 주는 것이다. 논쟁적일 수 밖에 없는 이 단계는 제대로 시비를 걸기 위해 나오기도 하고, 질문과정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생겨서 나오기도 한다. 후자면 좋겠지만, 전자인 경우에도 대상의 영적 성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비를 거는 이에게 진실한 자세로 대할 때, 많은 경우 진리의 무게를 그 자세자체를 통해서 느끼기도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단계를 극복하면서 신앙은 더 자라고, 더 성숙하고, 기존의 자신보다 더 높은 단계로 나가기 때문이다. 이 단계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변증’의 단계다.
 
가장 뛰어난 교사는 ‘좋은 교습법’을 배워,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더 나가서 질문과 평가를 통해 ‘전달된 내용’이 제대로 자리를 잡았는지 확인하고 계속적으로 교정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 높은 단계의 교사는 교육 내용에 반발하는 반응과 질문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해 준다.
 
이러한 단계까지 오려면 왠만한 신학지식으로는 곤란하다.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질문은 ‘셋은 누구랑 결혼했어요?’부터 예수님의 족보는 왜 복음서마다 다른지? 아니면 담배를 왜 피우면 안되는지? 까지 다양하다. 때문에 교사변증학은 질문자체를 예상하고 준비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어쩌면 교사자신이 끊임없는 현장경험과 이를 통한 자기학습을 통해 얻어지는 결과이다. 어쨌든 이 장에서는 효과적인 변증을 위해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한다.
 
1. 변증으로 사람의 마음이나 확신을 바꾸어 놓지는 못한다. 이점에서 변증은 보다 장기적이고 점진적인 변화, 그리고 주변에 분위기 조성을 위한 방법일 뿐, 당장 상대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와 아집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특히 복음과 관계된 내용, 하나님의 특성 같은 것은 우리가 비교하거나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이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속에 있는 ‘일부 논리적 요소’들을 끄집어내어, 기독교가 가진 풍성함을 전달하는 것 뿐이다.

2. 변증은 기본적으로 의심이나 질문의 정당성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 절대라고 생각되는 진리나 가르침에 대해서도 의심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는 것을 건강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의심이나 질문은 문제에 대한 관심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보다 더 교육적으로 나은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사가 답을 못해준다 할 지라도, 질문을 던지는 문화자체는 긍정해주어야 한다.
 
3. 변증은 모든 것에 답을 제공할 수 없다. 가장 기본적으로 성경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대부분 무관심하다. 이것은 성경의 초점이 ‘구원’에 맞춰져 있기 때문인데, 어쨌든 성경의 침묵이나, 내 개인의 한계에 대해서 인정하고 할 수 있는 한 최선으로 답해주는 것에 만족한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한계에서만 나오는 문제는 아니다. 변증에서 제공하는 답은 우리가 가진 상상력과 지식을 동원한 '제안'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서 첫 인간이 누구와 결혼했는가의 문제가 나올 때, 그것이 아담계와는 급이 다른 인간의 존재로 설명하거나, 성경에는 언급되지 않은 여동생의 존재로 설명하거나 할 수 있지만 정답은 성경의 저자를 만나게 될 때까지는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하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변증적으로 제시한 답과 '진리'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동시에 주변적 질문보다는 성경자체의 주제와 본질에 초점을 다시 맞춰주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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