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동기 부여

이민교회교육 갱신전략II

김석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1/26 [11:43]
2014년 한 해 동안 이민교회 교육 갱신 지상 세미나를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2015년 새해인사를 드린다. 별로 재미있게 글을 쓰지 못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다양한 피드백과 문의로 기고를 계속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 주신 분들이 있었다. 독백처럼 내고마는 것이 일상사인 교민 언론에서 이런 대우가 흔하지  않기에, 더 유익한 내용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송구함만 더할 뿐이다. 어쨌든 이 연재는 7년 전 멜본에서 목회하면서 처음 시도했던 ‘이민교회 교육 갱신 지상세미나’의 연결판으로서 다음과 같은 구조로 연재될 것임을 알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1. 이민교회 교육현실 구조적 이해
  2. 교사대학 지상강좌: 성경신학, 복음전도법, 기독교세계관, 다문화대화법, 청소년신학,
     어린이신학, 기독교변증
  3. 교사 영성관리, 커리큘럼 계획과 적용, 기타 행정문제
 
지난 일 년간 1.이민교회 교육현실의 구조적 이해와 2.교사대학 기본 7과목 지상강좌까지 마친 셈이고, 이제는 마지막 3.교사영성관리, 커리큘럼 계획과 적용, 기타 행정문제가 남은 셈이다. 지금까지 원리를 다루었다면 이제는 행정이나 현장 이야기를 할 것이다.
 
바라기는 이 글을 읽는 목회자나 교사들 중에서 아래 이메일로 현장에 관련된 고민이나 질문을 던지면, 보다 ‘현장’에 알맞은 조언들로 내용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멜본과 시드니 등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통해 위의 내용들은 일일 세미나, 교사대학, 특별예배 등의 다양한 포맷으로 강의 내용이 전달된 바 있고, 계속해서 필요한 교회와 교단들에게 그렇게 할 계획이다. 여러분의 계속적인 관심과 문의를 바란다.
 
under.broomtree.ministry@bigpond.com
 
교사의 영성관리 (1): 동기가 무엇인가?
 
교사의 영성관리란 교사가 교육을 하기 위해 계속적으로 어떻게 동기부여를 해 나가고, 내용을 채워나갈 것의 문제다.
 
그럼 가장 건강한 동기부여란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약간은 다르겠지만 자신을 바꾸어 놓은 주일학교 선생님을 떠올리며 감사의 마음으로 그들의 길을 따라가기 원하기 때문에 시작하는 ‘빚진 자’의 모습이 아닐까? 혹은 아이들을 직접 키우면서 자녀신앙교육의 어려움과 중요성을 직접 체험한 뒤, 이 고민을 다른 가정과 나누기 원하는 ‘부모’의 마음은? 가장 흔하지 않을까 싶은 것은 애들과 잘 어울리니까 교사를 하는 ‘친구’의 모습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셋 중 뭐가 더 낫다 못하다 이야기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그러나 신앙의 내용과 무게, 필요를 살펴보면, 신앙의 모든 행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은혜의 ‘빚진 자’로서 움직일 때 비로소 은혜가 된다. 은혜가 신앙 생활과 사역의 중심이 되지 않을 때, 아무리 많은 노력과 성과도 자기우상이나 만족, 자랑 혹은 쉽게 좌절과 자기 비하로 이어진다. 교사는 ‘은혜’에 빚을 되갚은 사람이다.
 
부모의 모습은 어떨까? 전문교육학자들은 부모만큼 자기 자녀에 ‘객관적이지 못한 교육자’는 없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그럴 주장할 만큼 ‘객관적인 답’이 없는 것이 교육이다. 결국 교육은 학과 내용과 눈에 보이는 결과도 중요하지만 대상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같이 삶을 나누는 것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과 삶의 경험은 누구보다도 ‘부모’가 잘 한다. 바로 이 때문에 부모의 자리를 어떤 전문가도 대신할 수 없다. 아이들에 대한 포기하지 않는 사랑과 고민 정도를 볼 때, 교사를 하려면 ‘부모’의 자세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은혜의 사람, 부모 같은 사람은 아이들에게는 별로 어필하기 힘들다. 아이들은 과감하고 멋지고, 뭔가 튀고, 우리 부모와 다른 사람일수록 호감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좀 더 아이들과 통하는 사람, 아이들과 잘 어울리니까 내가 교사를 해야지 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 젊은 교사들은 주변의 강권과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교사직에 나선다. 별로 이상적인 동기처럼 보이지는 않아도, 적어도 교회학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 체널’이다.
 
은혜 갚는 자의 마음, 부모의 헌신 그리고 어울리기 즐기는 친구로서..
 
문제는 여러분이 어떻게 교사가 되었든, 혹은 교사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든, 이 세 가지 동기를 결국에는 모두 가지지 않고서는 제대로 교사직을 하기 힘들다. 은혜 갚는 자의 마음, 부모의 헌신적인 마음, 그리고 같이 어울리기 좋아하는 친구의 마음이 교사에게는 전부 필요하다.
 
뒤집어 말하자면, 우리가 더 이상 교사직을 하고 싶지 않을 때, 주일학교를 쳐다보기도 싫어지는 바로 그 순간, 이 세 가지 동기 중에 뭔가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더 건강하고 효과적인 교사가 되기 원한다면, 내 안에 동기 중에서 이 세 가지 중 뭐가 ‘빠져있는 지를 돌아보고’, 식고 빠진 부분에 불을 당길 시점이란 뜻이다.
 
은혜는 넘치는데, 부모같은 인내도 친구 같은 대화능력도 없다면 곧 교사직에 한계를 느끼고 좌절할 것이다. 어쩌면 이때는 부모의 마음을 배우고 경험하기 위해 잠시 동안이라도 교사직을 내려놓고 주변 가정을 깊이 살펴보거나 자기 가정에 더 집중하여 자기 아이들과 씨름해야 할 때인지 모른다.
 
부모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정죄하고 화내고 지적하고, 대화하기 거부한다면, 이제는 은혜의 복음 속으로 자신을 집어 넣을 때다. 우리의 존재가, 우리가 신앙하는 이유가,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켜 주어야 하는 이유가 사실 내가 너무 공짜로 받은 것이 많아서임을 바로 깨달을 때, 우리의 교육은 은혜의 지평 위에 서게 된다.
 
은혜도 넘치고, 부모의 마음도 있지만, 아이들과 공감할 수 없다면, 주일학교 교사직은 여러분에게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즐기며 재미있게 할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면 커리큘럼에 매이는 것보다, 아이들과 더 시간을 보내고 뒹구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공감’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경험에 비추어보면 세 가지에도 ‘순위’가 존재한다. 첫째가 없이는 다른 두 가지를 회복해야 할 동기부여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다. 바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은혜다.
 
결국 아무리 부모같은 마음과 청년같은 매력이 있어도 은혜가 없이는 ‘복음교육자’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우리가 전해야 할 메시지 자체가 없는 사람이 무슨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은혜가 없이는 부모들이 빠지기 쉬운 아집과 자존심 싸움에도 쉽게 휩쓸리고, 대화는 금방 내용없는 ‘새인필드 코미디 같은’ 허무한 유희로 끝나기 십상이다.
 
그 다음은 부모의 마음이다. 교육이 결국 개인의 인성과 내면을 다루기 원한다면, 아무리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잘 통하는 것처럼 보여도, 부모들이 보이는 진지함과 헌신, 동행의 각오가 없이는 교육의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아이들과의 대화능력’ 공감능력은 셋째에 불과하다. 대화나 공감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뤄지며,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시간이 걸려도 서로를 잇는 방법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은혜와 사랑으로 계속 나간다면 말이다.
 
이런 세 가지 필요를 보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떠오르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우리를 은혜로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자신을 버리는 사랑을 보이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과 성도들, 우리를 이어 서로 영적으로 돕고 자랄 수 있도록 연결해 주시는 성령님.. 이점에서 우리 안에서 회복되는 것은 단순히 은혜, 부모, 친구의 마음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신 성령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다음 호에는 이러한 동기를 가지고, 그 내용을 채워가는 실제 방법을 생각해 보자.(계속)〠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