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동기 부여

교사의 영성관리(2): 교회차원의 대책

김석원/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2/23 [16:57]
지난 호에 우리는 교사의 자세를 간단히 '내가 이미 받은 은혜를 갚는 자의 마음, 부모의 헌신과 포기하지 않는 마음, 서로 연결하기 위해 대화하려는 자세'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민교회 학교의 위기는 실제로 이러한 마음을 유지하기가 매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혜에 빚진 마음은 억지로 만들 수 없는, 십자가 은혜를 제대로 체험한 사람만의 고백이다.
 
다행히도 많은 교사가 그런 마음으로 직분을 맡지만, 계속해서 보충은 없는 소진만을 강요당하면서 결국 '은혜'를 상실하고, 의무감으로 버티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의 마음, 특히 부모같이 포기하지 않는 사랑도 억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동원이 쉬운 청년부원을 교사로 동원하는 것이 일상적인 현실에서, 혈기왕성한 젊은 교사들에게 그런 마음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그나마 다행히 이들로 인해 '소통이라도 원활해' 지면 다행이랄까?
 
교회 차원에서 교사들의 초심을 유지하고, 격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일까? 교사훈련의 필요성은 이미 언급했으니, 보다 더 근본적이면서도 가장 간절한 대책을 이야기해 보자.
 
1) 예배, 기도, 말씀, 교제 같은 기본이 다시 살아나도록 '자원'을 재조정하고, 2) 프로그램에 대하는 기대치와 초점을 재정립해야 한다.
 
1) 예배, 기도, 말씀, 교제의 회복
 
예배, 기도, 말씀의 회복은 신앙의 기본이다. 그러나 교사에게는 이것도 큰 부담이다. 교사직에 필요한 시간과 노력만으로도 벅찬다고 하소연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교회 시스템, 다시 말해 예배, 기도, 교제, 말씀 생활을 제대로 하려면 보통 성도가 뛰어다녀야 할 몫이 많은 구조 때문이다. 예배 위원으로 수고도 해야 하고, 구역장도 해야하고, 밥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실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 방식이 너무 복잡해지고, 거창해진 것이 아닐까 하는 질문 말이다. 어쨌든 주어진 상황에서, 교회는 교사들의 수고를 줄이는 통합 운영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예배는 전적으로 수혜자로서 교사들의 충전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기도모임이나 말씀연구시간도 예배 안에서 모두 소화될 수 있도록 기획하는 시도도 필요하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아무리 교사가 적어도 교회는 교사 예배를 제공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너무 적은 수가 모이면 맥도 빠지고, 주일에는 안그래도 정신이 없지만, 진심으로 교회의 미래와 교육을 걱정한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실제로 교사예배만 제대로 되어도 교사훈련의 필요가 훨씬 줄어든다.
 
교제의 경우도 교회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 교사층은 대부분 교회에서 열심이 있는 그룹에 속하기 때문에, 구역활동에도 자주 동원된다. 열정과 여력이 된다면 말릴 이유는 없지만, 그런 초능력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기대되는 많은 역할 속에서 집중이 필요한 교사직은 가장 쉬운 희생양이 된다. 교회는 당장은 좀 어려워도 교사가 다른 모임, 활동에 책임을 맡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교사만 따로 구역을 만들어  '교육셀'처럼 운영하는 교회도 존재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중소형교회에서는 적용하기 힘들고, 교사들도 다른 교인과의 교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적어도 교사들이 예배나 교제를 통해 '충전'되려면, 말 그대로 충전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2)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 재조정
 
그러나 이러한 교회차원의 지원이 있던 없던, 결국 개인 영성을 관리하는 책임은 교사 자신에게 가장 많이 있다. 실제로 많은 교사들이 이를 위해 예배 자세를 가다듬고, 기도와 말씀연구에 힘쓰고, 교제에 참여하며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 가장 초를 치는 것은 교육현장이다. 날이 갈수록 불복종적이고 산만해지는 아이들과 무책임하면서도 까다로운 부모 사이에서 교사들은 좌절한다. 옛날 선배들이 경험했다는 '영적 새싹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 은 먼나라 이야기처럼 들리고, 고난을 통해서 성숙에도 다다르기 전에 먼저 쓰러져 버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다행히도 교육현장에서는 여전히 변화하는 아이들이 있고, 교사들을 지원하며 같이 신앙교육에 고민하는 부모는 있다. 그러나 그런 미담은 극소수고 당연히 기대하기는 힘든 것이 현실이다. 동기부여를 교육현장이나 학생에서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이 점에서 교회 교육현장의 초점은 이제 아이들이 아니라 교사와 가정으로 옮겨져야 한다. 실제로 신앙교육은 결과를 단기적으로 얻기 어렵다. 아이들이 몇 개의 구절을 더 외고, 예배시간에 성가대에 몇 명에 아이들이 서 있고, 전도집회에 동원된 아이들이나 선교여행에 몇 명이 다녀왔는지를 가지고 신앙교육이 잘 되었는지를 말하는 것은 착각이기 쉽다.
 
도리어 신앙교육의 결과는 그런 행사나 반짝 효과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전달되는 교사 자신의 신앙 인격과 영성에 결정된다. 그러기에 아이들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만큼, 교사와 가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이제 교회는 주일학교를 '교사가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는 곳', ‘가정의 교육을 지원하는 곳’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장의 효과와 반응에 연연하지 말고, 아이들보다 교사와 가정 교육지원에 더 많은 자원이 배분되어야 한다. 이 말은 교육을 단순히 주일학교에서 이뤄지는 일로 보기보다는 이제 신앙가정과 교회공동체 전체차원에서 이뤄지는 활동을 이해하자는 뜻이기도 하다.
 
가정예배를 위한 지원, 기도하는 어머니 모임, 어머니 학교, 아버지 학교 이런 모든 건강한 가정프로그램은 이제 교육사역의 일환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교육투자의 일부로 취급되어야 한다.
 
결론
 
이번에는 교사영성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교회차원의 방안들을 이야기해 보았다. ‘모태신앙 청소년’들이 교회로 돌아왔는데, 당시 호주 교회 곳곳에서는 일대일로 청소년들을 붙들고 교육했던 지역교회 목회자들이 있었고, 이 아이들이 자라서 20세기 말 세계복음주의 역사의 큰 영향을 미친 지도자들이 되었다.
 
여기에는 뾰족한 커리큘럼이나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복음으로 제대로 무장된 진지한 인격들이 개인적으로 미친 꾸준한 영적 영향력만이 있었을 뿐이다. 매주 행사와 사역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 간절한 모습이다.〠

김석원|크리스찬리뷰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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