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와 교회

박천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4/27 [10:20]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하여 나름대로 가족들의 마음이 부풀어 오르는 달이기도 하다. 가정은 누가 만드셨을까? 하나님은 이 땅에 인류를 창조하시고 인류가 살아가는 동안 ‘가정과 나라’라는 이 두 공동체를 세우셨다. 최소 공동체의 단위는 가정이고 최대 공동체는 단위는 나라이다.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되 공동체로 부르신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개인이 공동체 속에서 무시되지 않고 개인은 또한 공동체를 허물지 않는 것이다. 한 개인은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태어나고 공동체에 속해서 살다가 공동체에서 죽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개인은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공동체는 우리가 평생을 살아 가면서 서로 공유해야만 하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공동체를 통해서 많은 상처와 어려움을 느끼며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공동체는 꼭 필요한 것인가, 이 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만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인데 왜 이렇게 어렵고 힘들까? 역사 이래 지금까지 계속된 고민이기도 하다. 과연 여기에 해결책은 영원히 없는 것인가? 그 이유와 해결책을 몇 가지로 나누어 보고자 한다.
 
첫째, 공동체는 원석이 만나는 것이다.

개인들이 필요에 의해 서로 만나서 공동체가 이루어지는데, 각 개인은 그야말로 개성이 뚜렷한 원석 같은 것이다. 개인의 성장배경, 배운 지식이나 생각, 경험, 등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나게 되면 갈등이 일어나고 각자의 모난 부분이 서로 부딪히면서 깨지는 아픔이 있는 것이다.
 
어려서는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최소한의 공동체를 배우고 이해하게 된다. 그 후 학교나 사회공동체를 통해서 자신의 모난 부분이 점점 드러나고 또는 다듬어지면서 깨닫게 되고 성장하게 된다. 그래서 공동체를 통해서 가장 성숙한 사람을 찾아볼 수 있고, 함께 어우러지는 공동체로서 한 사회의 일원으로 그 사회와 시대가 요구하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이다.
 
둘째, 공동체는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모든 우주 삼라만상은 질서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질서를 따라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약 질서가 없는 우주를 생각해 본다면,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대로 혼돈과 공허와 무질서일 것이다. 질서대로 움직이는 자연은 참으로 아름다움의 극치를 자랑하고 있다. 이렇게 함께 어울려 질서 있는 조화는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공동체 안에서의 질서는 공동체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질서를 통해서 우리는 삶의 질을 높이게 된다. 이것은 우리의 생각을 올바른 질서로 먼저 바로 잡아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삶의 질서는 말이나 생활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다. 마음의 생각이 먼저 질서를 가지고 있으면 생활과 삶의 질서는 잘 잡히게 된다.
 
교통의 질서를 생각해 볼 때 신호등이나 도로 표지판을 통해서 자동차들은 원활하게 주행하게 된다.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질서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엉킴과 사고를 방지하고 목적지에 도착하도록 한다. 이와 같이 질서는 공동체가 서로 소통하며 보다 삶의 질을 높이는 목표나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때론 이 질서가 나에게 불편하고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것은 공동체의 질서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고 공동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공동체는 협력을 배우는 것이다.
 
인생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느라 다른 사람들과 좋지 못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자라면서 기본적인 협력을 배우게 된다. 가정이라는 공동체에서 혼자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행복을 잃어버릴 것이다.
 
아니 가정공동체의 행복을 빼앗아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협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협력은 그 공동체의 생명이 되는 것이다.
 
또한 어떻게 협력하느냐에 따라 그 공동체가 행복하냐 불행하냐가 판가름이 된다.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며 인내하며 협력한다면 행복한 공동체로 성장하겠지만, 서로 갈등하고 시기질투하며 마지못해 협력한다면 불행한 공동체로 점점 쇠퇴해져 갈 것이다. 공동체의 협력은 바로 공동체의 행복이 되는 것이다.
 
협력이 없는 공동체는 곧 공동체의 상실이다. 사실,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 참으로 많은 문제와 갈등이 있다. 아니 얼마든지 문제나 갈등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와 갈등이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중요한 것은 이 문제와 갈등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있는 것이다. 그 문제와 갈등들을 협력하여 잘 처리하므로 더 나은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는 반면에 그 문제와 갈등을 잘못 처리하여 공동체에 손상을 입히고 깨어지는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이다.
 
넷째, 공동체는 목적이 있는 것이다.
 
목적이 없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류에게는 소명, 부르심이 있고 그 소명에 따라 사명이 있기에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며, 거기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왜냐하면 목적이 없는 곳에는 목적을 이루는 달성의 의미와 가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함에 있어 주의해야 할 것은 얼마나 빨리 크게 성장했느냐crm1505p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올바르게 건강하게 달성했느냐에 있는 것이다.
 
요즘에는 얼마나 빨리 얼마나 크게 성장했느냐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그 후에 오는 후유증과 후 폭풍으로 인해 오히려 이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하지만 좀 느리고 좀 작더라도 올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한다면 그 후에는 진정한 보람과 후세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체의 목적 달성에 있어서 치명적인 것은 외부에서 포위하고 방해하는 수천의 세력보다 공동체 내부의 방해자 한두 명이 더욱 큰 해를 입히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체는 친밀함으로 서로를 보호하고 신의를 지켜주어야 하는 책임이 따르게 된다.
이상과 같은 공동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접하고 경험하는 공동체라고 볼 수 있다.
 
이보다 독특한 공동체가 하나 있다. 이 공동체는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무리들로 하나된 공동체로서 교회라 불러지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교회공동체이다. 독특한 것은 교회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즉, 이 땅의 모든 교회공동체는 예수님의 몸으로서 하나이다.
 
그러므로 교회공동체는 서로 몸의 지체가 되어 서로 돕고 몸인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머리 되신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이 뜻하신 것을 받들어 이루어 가는 것이 교회공동체가 살아가는 목적이라 하겠다.
 
기독교의 치유와 영성과 공동체를 통해서 영원한 삶의 시작인 복음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하고 보다 높은 열정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추구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교회공동체의 사명이다. 이 마지막 시대의 희망은 최고의 사랑공통체요, 소망 공동체임을 가르쳐 주는 교회공동체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공동체는 점점 그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가지의 불법과 테러, 유혹과 이단사상들이 과거의 어느 때보다 많아 졌다. 게다가 IT(정보기술)발달과 인터넷, 그리고 미디어의 첨단으로 인해 지구촌이 되어 나라의 국경을 초월하고 세대 간의 갭을 뛰어 넘어 많은 사건사고와 시시각각으로 엄청난 많은 이슈들과 피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회공동체가 분연히 일어나 이 시대를 섬겨야 할 때이다. 혼탁한 세상의 빛으로, 부패한 세상의 소금으로, 죄악의 종으로 매여 있는 이에게 진리의 자유로, 절망으로 사망 가운데 있는 이에게 생명의 부활로 섬기며 희생하는 것이다. 또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교회공동체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생명공동체의 삶이 되어야 한다. 이 교회공동체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인도하시는 이는 예수님이시다. 이 공동체의 중심 축은 사랑이고 사랑이 성장할수록 성숙한 인격이 되어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수가족공동체이다. 〠

박천순|아들레이드은혜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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