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생활

박천순/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05/26 [12:06]
우리의 생활 속에서 가장 빠르게 지나가고 가장 많이 낭비된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아마 시간일 것이다. 마치 수도꼭지를 제대로 꼭 잠그지 않았을 때 계속해서 흐르는 물을 낭비하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간다.

또한 시간의 소중함을 일컫는 말로 ‘세월이 유수와 같다’, ‘세월은 쏜 화살과 같다’ 등의 말을 많이 하며 살아간다. 그렇다고 내일이나 미래를 위하여 오늘을 저축한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리라. 오늘이라는 시간을 충실하게, 유용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내일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나의 것으로 유익하게 만들 때 내일 역시 나의 것으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을 낭비하지 않고 나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먼저 시간을 어디에 쓸 것이냐 즉 무엇을 위해 사용할 것이냐 하는 목적에 관한 문제이다. 목적이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낭비되는 시간일 수 밖에 없다. 이 땅의 모든 것은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고 만들어진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많은 문명의 혜택으로 휴대폰, 컴퓨터, 자동차, 비행기, 첨단의료기기 등은 모두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목적에 맞게 사용할 때 많은 유익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목적을 무시한 채 장식품으로나 다른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낭비일 뿐 아니라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오늘이라는 시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건설적인 건강한 목적이 아닌 시간들은 그저 낭비되는 시간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육체의 소욕과 물질의 풍부를 위해서 시간을 쓰면 건설적이고 건강한 목적이라고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리적인 삶의 이기들은 건강과 물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현대사회를 보라 얼마나 고달픔과 어려움과 문제가 많은지, 인간의 존중은 땅에 떨어져 밟히고 물질이 황제 노릇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마치 여왕벌이 있는 곳에 일벌들이 몰리듯이 물질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려 종노릇하느라 정신이 없는 시대인 것이다.

이것은 파괴적이고 질병에 찌든 목적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고 주객이 전도된 모양의 시간 사용인 것이다.
 
신약성경 에베소서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같이 하지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영혼과 사랑을 위해서 오늘의 시간을 사용해야 한다. 영혼은 한 사람의 본질이다. 이 본질을 무시한 채 껍데기인 육체의 욕망을 위해서 살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삶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본질을 위해서 일하고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육체가 일시적인 것이라면 영혼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육체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이라면 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양심과 같은 것이다.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음식을 잘 섭취해야 하듯이 영혼이 건강하게 잘 성장하려면 창조주를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창조하신 우주의 삼라만상을 통하여 그분을 깨닫거나 그분의 유일한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이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다음은 사랑이다. 영혼이 사람의 본질이라면, 사랑은 삶의 본질이다. 사랑을 떠나서는 삶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태어나고 사랑으로 살다가 사랑 가운데 죽는 것이 일생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위해 살고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최고의 인생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모습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랑을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으나 한 가지만 언급한다면 내가 녹아지는 것이다. 내가 녹아짐으로 나 주변의 사람들이 살아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의 생리는 살아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이웃이 살아난다면 우리는 사랑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시간의 지배를 받고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지배하고 창조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사용해야 하느냐 즉, 시간을 질적으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학생시절에 도자기를 만들어 굽는 공장을 견학한 일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나름 깨달음이 있었던 모양이다. 진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데 얼마나 섬세하고 열중히 작업을 하는지 그 주변에서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그렇게 진지하게, 정성을 다 쏟아 부으며 만든 것을 미련없이 부수어 버리고는 다시 만든다. 본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이 깨버리는 것이다. 이런 자세와 정신을 장인 정신이나 구도자의 정신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의 경지가 그렇게 몰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일반적인 생활 가운데서도 어떤 일이든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하는 장인 정신과 구도자의 모습으로 임한다면 보다 좋은 세상을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즉, 가정에서 자녀를 양육할 때, 교실에서 가르치거나 공부할 때,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때,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람들을 대할 때,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이런 모든 일상에서의 일들 속에서 그런 정신을 가지고 임한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아마 우리가 그리고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져 갈 것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이런 정신과 내공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매우 불안하기만 하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내면보다는 외적인 면에 많이 치우쳐져 있다.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에, 안정적인 면보다는 속도에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사람들은 항상 서두르고 불안정하며, 성급하고 인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의 가정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지 않은가.
 
자녀들의 마음에서, 부모들의 마음에서. 물론 사회생활 속에서는 더욱 냉정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미래의 희망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다 진지하고 성실하게 마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성경 골로새서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라는 말씀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에 깊이 새겨야 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시간은 나의 것 같지만 나의 것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시간은 빌려 쓰는 것이다. 시간의 주인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피조물로서 잠시 하나님으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것이 시간이다. 빌려 쓰고 있는 시간 또한 내 마음대로 얼마를 쓸 것인지 결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 결정도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든지 빌려주신 그 시간을 마지막 그 시간이 다 했을 때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빌린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낱낱이 셈하는 때가 온다는 것이다. 이것을 크리스찬들은 심판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 생각해야 한다. 나는 얼마나 시간을 낭비하고 허비하고 있는가? 왜 낭비하게 되는가? 내 인생의 마지막 때 심판의 자리에서 ‘인생의 낭비한 죄’를 묻는다면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이 얼마나 막막하겠는가?
 
영화 빠삐용에서 주인공인 스티브 맥퀸을 향해 ‘인생을 낭비한 죄’를 묻던 장면은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 아니 지금이라는 시간 외에는 주시지 않았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묻고 생활하는 오늘이 된다면, 이전의 삶보다는 낭비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 것임에 틀림이 없다.〠

박천순|아들레이드은혜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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