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산실, 헤브론병원 소아심장센터

내 입과 혓바닥이 빨간색이 되었습니다

권순형/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5/12/28 [11:32]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어린이들을 초청하여 개최한 감사 축제에서 선교사들과 기념촬영를 했다.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 심장수술 어린이 초청 감사축제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 복잡한 심장병이 있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한두 걸음을 걷는 것도 어렵고 숨이 차서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기만 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18살 때 헤브론병원에 와서 정말로 기다리던 심장병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 손과 손톱은 언제나 청색이었고 혓바닥도 입술도 까만색이었습니다. 수술 후 마취가 깨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나는 누나에게 내 혀를 보라고 자꾸 입을 벌렸는데 누나가 너무 기뻐하며 거울로 내가 볼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내 혀는 빨간색으로 변했고 손도 까만색은 어디로 가고 핑크색으로 예쁘게 바뀌었습니다. 그때 나는 얼마나 기뻤는지 막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지난해 12월 3일, 캄보디아에 있는 헤브론병원은 동 병원 심장센터에서 수술받은 60여 명의 환자와 가족들을 초청하여 열린 감사 축제에서 팔로사징증(TOF) 환자였던 라몬 군(20)은 간증을 통해 자신을 살려 준 하나님과 헤브론병원에 감사했다.

 
▲ 헤브론병원이 개최한 심장수술 어린이 초청 감사 잔치 전경     © 크리스찬리뷰
 

팔로사징증은 치료를 받지 않는 경우, 치명적일 수 있는 선천성 심내결손증으로 △우심실과 좌심실 사이의 중간 벽에 구멍이 있는 심실 중격 결손증 △좁은 폐 유출로 (심장과 폐를 연결함) △우심실 비후 △대동맥의 방향이 바뀌고 심실중격결손과 겹침 등 4가지 심장 결손을 가져온다.
 
이 질환은 청색증을 일으키며, 이것은 순환하는 산소량이 부족해서 피부가 푸르스름한 색을 띠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통상적으로, 산소화된 혈액은 피부를 분홍색으로 보이게 만들며, 이 병태의 증상은 출생시에 현존한다고 한다.
 
이철희 선교사의 사회로 진행된 감사 축제는 한국과 캄보디아 양국 국가 연주에 이어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는 환영사를 통해 “지난해 8월 헤브론병원에 소아심장센터를 개소하고 60여 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이 수술을 받았다”며 “오늘 이 자리는 여러분들의 귀중한 생명과 심장을 헤브론 심장센터에 맡겨준 것에 감사하는 자리이다.”라고 말했다.

 
▲ 행사를 진행하는 김우정 선교사와 이철희 선교사(왼쪽)     © 크리스찬리뷰
 

이어 헤브론 심장센터에서 수술받고 새생명을 얻은 라몬 군과 쓰레이 빗 양(9)의 엄마 폴 위치카 씨의 감동적인 간증이 있었으며, 캄보디아 국립은행 HE 스레이 체아 사무총장,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 회장 김남수 교수(한양대), 국민은행 최재우 캄보디아 법인장, 캄보디아 보건부 HE 오반딘 사무총장이 축사를 전했다.

 
▲ 헤브론병원에서 심장 수술 받은 어린이와 가족들을 소개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심장 수술 촬영을 위한 4차 사진선교
 
지난해 ‘헤브론병원 24시’ 사진전을 준비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캄보디아로 작품 촬영을 위한 사진선교 여행을 다녀왔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그동안 심장 수술 장면을 촬영하지 못해 기회를 기다리던 중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Global Children's Heart Network) 팀이 11월 28일부터 12월 4일까지 헤브론병원에서 수술 일정이 잡혔다는 소식을 접하고 4차 사진 선교를 떠나야겠다고 마음의 결정을 했다.  
 
그러나 12월 호 발행과 카렌다 통관과 배포 등의 일정이 겹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는 형편이었다. 늦어도 11월 29일(일)에는 프놈펜에 도착해야 하는데 일정을 맞추기에는 너무나 시간이 촉박했다. 아무튼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그 후에 떠날 수 있으면 비행기를 타리라 마음을 먹고 12월 호 배포를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인쇄소로 향했다. 

 
▲ 캄보디아 보건부 HE 오반딘 사무총장이 축사를 전했다.     © 크리스찬리뷰
 

보통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10시에 잡지를 픽업하여 배포하는데 조금이라도 빨리 배포하려는 마음에 일찍 인쇄소에 도착했지만 크리스찬리뷰 12월 호는 어디에 숨어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매니저를 찾아 물었더니 “오후 4시에나 완성된다”는 말을 남기고 공장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정시에 나와도 일정을 맞추기 힘든데 6시간이나 늦어진다니 캄보디아 일정은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힘은 들었지만 밤새 시드니 거리를 누비며 이틀간 배포를 마치니 11월 26일(목) 밤이 되었다. 헤브론병원 김우정 원장께 전화하여 심장 수술팀 일정에 변동이 없는지 확인하고 29일(주일)에 도착하겠으니 게스트 하우스 배정과 공항 픽업을 부탁하고 다음 날 새벽에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입했다. 출발 이틀 전에 티켓팅을 하니 가격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갈 수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었다.

 
▲ 헤브론병원에서 대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전도하는 콩픈 전도사     © 크리스찬리뷰
 

시드니공항에서의 헤프닝
 
이틀간 밀린 업무들을 처리하고 29일 아침 일찍 시드니공항으로 나가 체크인을 하려고 여권을 제시하니 콴타스 직원이  방콕-프놈펜 간 좌석이 연결되지 않아 예약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분명 나는 자리까지 예약했고, itinerary도 받았는데 그런 문제가 생겼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Flight Centre에 가서 티켓팅할 것을 권유했다. 그때 시간이 오전 8시 45분 경. 한 시간 후면 내가 예약했던 콴타스 항공을 타고 떠날 시간이었다. 그동안 시드니공항에 수도 없이 다녔지만 그곳에 Flight Centre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아무튼 Flight Centre 직원의 도움으로 타이항공으로 티켓팅을 마친 후 출국장으로 달려가 10시에 출발하는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밤새 한잠도 못자고 새벽에 공항으로 나왔더니 피곤이 겹쳐 좌석에 앉으니 잠이 쏟아졌다. 물론 비싼 항공료를 지불했지만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심장 수술 촬영을 예정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눈을 떠보니 모든 승객들은 이미 기내식을 마친 상태였다.

 
▲ 헤브론병원에 입원 중인 환자 가족들의 망중한     © 크리스찬리뷰
 

방콕 공항에서 프놈펜행 연결편을 기다리는 동안 이메일을 검색해 보니 몇 달 전  캄보디아 라이프대학에 자비량 교수(선교사)로 부임한, 호주 대사를 지낸 신효헌 장로께서 주말에 헤브론병원으로 나를 만나러 오시겠다는 연락이 있었고, 프놈펜 공항에 도착하니 신청사가 오픈되어 쾌적한 분위기 속에서 입국 수숙을 마칠 수 있었다. 이날 공항에는 수영로교회에서 파송한 한규현 선교사가 픽업을 나와 반가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헤브론병원 숙소에 도착 즉시 여장을 풀고  카메라를 메고 병실을 둘러보니 입원실은 주일 저녁이라 그런지 환자들은 별로 없고 평온함만 가득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전남대학교 흉부외과 정인석 교수가 룸메이트로 같이 지내게 되었다.  인사를 나눈 후 심장수술 촬영을 위해 시드니에서 왔다고 말하고 협조를 구했더니 그는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팀의 일원으로 전남대학교 흉부외과 팀을 이끌고 왔다면서 자신이 수술을 집도하게 되는데 최대한 촬영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헤브론병원에 촬영을 오면 나는 24시간 동안 병원 구석구석을 다니며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우잠을 자야만 했다. 이번에도 자정에 입원실을 둘러보고 새벽 2시에 환자들이 왔는지 정문에 나갔다 다시 입원실을 둘러보고 4시에 다시 정문 앞으로 나가 5시에 진찰표를 나눠줄 때까지 촬영하고 잠시 들어와 촬영한 사진을 다운로드 받고 받데리를 충전 시킨 후 7시에 아침식사 한 후 대기 중인 환자들을 촬영하고 한국 선교사와 캄보디아 의사들의 아침 일정에 따른 QT와 회진 장면들을 한 주간 동안 지켜 보았다.

 
▲ 심장수술을 받은 가족들이 수술 결과에 만족하며 기뻐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긴장감 도는 심장 수술방
 
월요일 아침 8시, 오늘은 2건의 심장수술이 예정되어 있는데 제반 준비로 인해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다. 정인석 교수가 이끄는 심장팀은 캄보디아 마취과 의사와 함께 협력하여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마취 방법과 시스템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생명을 다루는 문제이기 때문에 서로의 방법과 의견을 조율해가며 진행하느라 보통 신중한 태도들이 아니었다.
 
수술은 완벽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수술방은 수술이 시작되기 전에 긴장감이 나돌았다. 무균상태에서 진행는 수술은 집도하는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수술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무균 처리된 수술도구나 수술보 등을 만지거나 건드리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한다. 심장수술은 의사와 간호사,  인공심폐기 엔지니어, 중환자실 간호사 등 10-12명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나는 수술복을 입고 헤어캡과 마스크를 쓰고 카메라 2대를 메고 수술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마취팀은 수술할 환자를 마취시키고 있었고, 수술대보다 조금 높은 위치 정면에 발판을 놓고 자리를 잡았는데 아무래도 집도의 뒷편 위치가 좋을 것 같아 자리를 옮겨 카메라 앵글을 들여다 보니 24-70mm 렌즈만 사용해도 촬영하는데 전혀 불편할 것이 없어 보였다.
 
마취가 끝나자 정 교수가 바로 수술을 시작했다. 전기톱으로 가슴을 절개하자 심장이 힘차게 움직이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내 몸 속에서도 심장이 쉬지 않고 64년 동안 저렇게 힘차게 뛰고 있음을 생각해 보니 참으로 심장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오묘한 창조의 섭리를 새삼 느낀 감동의 순간이었다.

 
▲ 호주 대사를 역임한 신효헌 장로(왼쪽 3번째)가 헤브론병원을 방문했다.     © 크리스찬리뷰
 

정 교수는 일시적으로 심장을 멈추게 하고 그동안 인공심폐기를 사용하여 체외순환을 시킴으로써 심장 이외의 신체 타 장기에 혈액과 산소를 공급시키는 개심수술을 시도했다. 이날 첫번째 환자는 72분 동안 심장을 멈추게 하고 수술했으며, 보통 2시간 정도까지 인공심폐기를 사용하여 심장수술을 한다고 한다.  
 
즉 상공정맥과 하공정맥에 카테터를 삽관하여 전신에서 돌아오는 정맥혈을 인공산화기로 뽑아낸 후, 산소와 결합시켜서 다시 인공펌프가 동맥으로 혈액을 주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처치하는 조작이 몇 가지 필수적인 것으로써 첫째는 혈액 응공의 방지를 위해 항혈액 응고제인 헤파린을 투여하는 것이고, 둘째는 인공산화기에서 생기는 혈액 외의 가스 방울을 제거하는 것이며, 셋째는 수술 도중의 인공심폐기에 의한 폐의 휴식 및 체온 하강이다.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는 이번에 헤브론병원에서 전남대학교 정인석 교수팀이 소아 심장병 환자들(5명 개심술, 비개심술 2명, 동맥관 개존 시술 2명, 심장정밀검사 2명)에게 수술과 시술을 하였으며, “팔로씨 4징을 비롯한 대혈관전위, 단심증, 동맥간증 등 복잡하고 수술이 어려운 환자가 너무 많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라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 헤브론병원 소아심장센터 수술방 전경     © 크리스찬리뷰
 

또한 정인석 교수는 “수술 결과가 어려운 경우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헤쳐 나갈 것이다. 그러나 우선 한정된 시간과 인적 자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락수술조차 해 본적이 없는 캄보디아에 더 많은 인적, 물적, 시간적 봉사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또한 정 교수는 “재정 후원자들, 소모품과 약품을 후원하여 준 기관과 제약회사, 그리고 휴가를 반납하고 재능기부로 헌신해 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라고 밝혔다.  

 
▲ 심장 수술 중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 소아심장센터 
 
2007년 가을 개원한 헤브론병원은 특별히 소아 심장병 환자들이 한국의 심장재단들과 헌신적인 사랑으로 수술을 담당해 준 대학 병원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돌아오는 기쁨이 있었다. 2008년 백병원 김용인 교수의 수술로, 어려운 환경에서 힘들게 살아오던 12세의 싸비가 건강을 찾게 되면서 심장수술이 시작되었다. 이후에도 몇 차례 더 백병원을 통해 수술이 진행되다가 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분당 서울대병원, 전북대 병원 등을 통해 38명의 어린이들이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심장 수술을 받기 위해 아이들이 한국으로 가는 것은 비용도 많이 들뿐만 아니라 말이 통하지 않고 음식도 다르고 너무나 다른 기후 때문에 심장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받아야하는 스트레스가 많은 점들을 고려하여 지난 2014년 8월, 헤브론병원에 소아심장센터를 개소했다.

 
▲ 중환자실에서 캄보디아 간호사가 심장수술을 받은 어린 환자를 집중 관리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원장은 “한국에서 심장병 진단을 위해 교수들이 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꿈을 갖고 아기를 품에 안고 새벽부터 달려왔던 부모들, 어렵게 선택되어 한국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다가 그 몇 개월을 기다리지 못해 먼저 세상을 떠난 아이들, 비용 때문에 7세 이상의 아이들은 보호자 없이 혼자 팀에 합류하여 한국에 가야하는 규정에 따라 어린 것이 눈물 한 방울 흘려보지도 못하고 애써 엄마의 얼굴을 피하며 떠나던 쏘리아가 생각났다.”며 “쏘리야는 치료가 진행되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단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아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말하고 “심장 센터가 이 땅에 세워져 이런 마음 아픈 일들을 다시는 겪지 않게 되었고 더 많은 생명들이 더 빠른 시기에 신속한 치료를 받고 건강을 찾을 수 있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고 회고했다,
 
헤브론병원 소아심장센터는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인공심폐기, 심혈관 조영장비 등 최첨단 시설을 지원해 국내 병원이 해외에 세운 첫 심장수술 시설이며, 캄보디아 최초의 소아심장센터이기도하다. 센터를 연 뒤 지금까지 총 60명 이상의 심장병 환아들이 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

 
▲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김성례 간호사(선교사)가 어린이 심장수술 환자를 엄마의 심정으로 돌보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자선병원인 헤브론병원은 그동안 무료 진료를 해왔는데 2014년부터 병원이 자립해 현지인에 의해 운영될 수 있도록 혈액검사 등 일부 비용을 유료화했다. 하지만 비싸진 않다. 심장센터의 수술비도 현지 병원의 100분의 1도 안되는 100달러(약 10만 원)에 불과하다.
 
이전에 캄보디아에서 심장수술이 가능한 곳은 프놈펜 칼메트병원이 유일했다. 이곳에서는 한 해 100명 가량이 수술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 성인이다. 소아심장병의 경우 간단한 치료만 할 뿐 수술은 엄두도 못 낸다.
 
센터 개설엔 최정연 교수(64,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의 공이 컸다. 최 교수는 2009년부터 헤브론병원에서 단기 의료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그는 심장병 어린이를 한국으로 보내 수술을 시키기도 했지만 비용이 많이 들고 소수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점이 안타까웠다.

 
▲ 심장수술 받은 아기가 애처로워 잠 못이루는 엄마     © 크리스찬리뷰
 

이에 최 교수는 2년 전부터 모금을 시작해 기업체 등의 도움으로 4억 원을 모금해 심장센터를 열 수 있었다. 분당서울대병원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헤브론병원에서 심장병 환자 200여 명을 치료했으며 29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수술했다.
 
최 교수는 “고기(의료 혜택)를 주는 대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진정한 해외 의료봉사라고 본다. 센터가 생겨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게 된 점이 무엇보다 기쁘다”고 말했다.

 
▲ 세계소아심장네트워크팀은 헤브론병원 소아심장센터에서 11명의 심장병 환자에게 수술과 시술을 실시했다.     © 크리스찬리뷰
 

감동적인 간증들
 
다음의 글은 지난해 12월 3일 헤브론병원에서 심장수술 받은 어린이들과 가족들을 초청하여 개최한 제2회 감사 축제에서 김우정 원장의 환영사와 함께 라몬 군과 쓰레이 빗 양의 엄마 폴 위치카 씨의 간증을 정리한 내용이다.

 
▲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장 김우정 선교사 환영사
제2회 심장 수술 어린이 감사잔치에 오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오늘 두 번째 심장 수술 어린이 감사잔치에 오신 심장병 어린이와 가족 여러분을 환영하며 감사드립니다. 바쁘신 중에도 이 좋은 감사잔치에 참석해 주신 임찰리 부총리실의 HE  삼낭, 보건부의 HE 오반딘, 국립은행의 HE 스레이 체아, 국민은행 최재우 법인장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주간에는 특별히 심장 수술을 위하여 한국에서 글로벌 소아심장 네트워크팀이 오셨습니다. 대표이신 김남수 교수님 감사합니다.
 
일 년 반전에 우리는 제1회 심장 수술 어린이 감사잔치를 하면서 한국에 가서 심장 수술을 받았던 100여 명의 아이들 중에 50여 명을 초청하여 감사잔치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생명과 심장을 외국인 의료진에게 맡겨준 것이 고맙고, 그래서 한국에 가서 수술을 잘 받고 건강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감사하는 자리이었습니다.
 
이후에 헤브론병원에는 심장센터가 생겼고 일 년 반 동안 60여 명의 심장병 어린이들이 헤브론 심장센터에서 수술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귀중한 생명과 심장을 헤브론 심장센터에 맡겨준 것에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그리고 캄보디아의 많은 심장병 어린이들을 더 잘 수술하고 치료하는 헤브론 심장센터가 되기를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헤브론 심장센터를 통하여 심장수술과 치료를 잘하는 캄보디아 의료인들이 훈련되고 배출되기를 기대합니다.
 
헤브론 심장센터의 오늘이 있기까지 많은 도움과 후원을 주신 국민은행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의료장비와 인력지원을 아끼지 않은 분당 서울대 병원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산대 양산병원과 성안 심장재단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심장 수술은 수술 의사 한 사람 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10명의 의료진이 한 팀으로 뭉쳐야 가능한 수술입니다. 마찬가지로 심장센터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하고 여러 기관과 단체가 힘을 합쳐야 심장센터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캄보디아 정부와 사회 각층의 관심과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간증하는 라몬 군     © 크리스찬리뷰
 

심장수술 환자 라몬 이야기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심장에 여러 가지 문제가 같이 있는 복잡한 심장병이 있었습니다. 아기 때부터 한두 걸음을 걷는 것도 어렵고 숨이 차서 친구들과 놀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친구들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보기만 하면서 부러워했습니다. 우리는 4남매인데 저는 둘째로 태어난 아들입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집에는 아버지와 누나와 동생들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가정은 아버지만 일을 하고 식구가 많아 살아가기 어려운 가난한 집입니다. 나를 돌보아 줄 엄마는 없고 누나가 항상 곁에 있었습니다.
 
저는 심장병을 고치기를 원했지만 병원에는 가보지도 못하다가 쿤테아보파라는 스위스 사람들이 세운 병원이 심장병 수술을 한다고 알게 되어 처음으로 그 병원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은 안하고 약만 2년 동안 주면서 계속 먹게 했습니다. 별로 병이 좋아지지 않았고 그 병원에서는 캄보디아 국립병원 칼메트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했습니다.
 
다시 칼메트병원에 가서 치료를 시작했지만 그 병원에서는 3개월분 약을 주고 검사하고 다시 3개월 약을 주고 검사하면서 4년 동안 똑같은 일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병을 고칠 수도 없었고 시간이 많이 지났습니다.

 
▲ 감사 축제 후 라몬과 누나가 김우정 원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 크리스찬리뷰
 

그러다 4년 만에 외국인 의사가 너의 심장병은 ‘아주 심각한 병’인데 수술이 안 되는 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힘들었습니다. 큰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는데 ‘헤브론병원’에 가보자고 했습니다. 헤브론병원에서 김우정 원장님을 만났는데 일 주일 후 수술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식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원장님은 가난한 우리 집을 보았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숨이 차서 헉헉거렸고,  손가락과 입술과 혓바닥이 모두 까맣게 보였습니다. 친구들과 놀지도 못하고 학교에 들어갔지만 공부는 할 수도 없었고 학교에 가기에도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6학년을 마치고 집에서 지냈습니다. 그때 저는 18살이 되었습니다.

 
▲ 축사를 전한 인사들     © 크리스찬리뷰
 

헤브론병원에서 정말로 간절히 기다리던 심장병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손과 손톱은 언제나 청색이었고 혓바닥도 입술도 까만색이었습니다. 수술하고 정신이 돌아 왔을 때 제가 있던 방에는 기계도 많았고, 내 몸은 온통 주사 바늘이 꽂혀 있어서 내 몸을 보니 겁이 나기도 했고 두려웠습니다.
 
잠시 후 의사 선생님이 누나를 만나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누나에게 내 혀를 보라고 자꾸 입을 벌렸는데 누나는 너무 기뻐하면서 내가 거울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수술 후에 손도 핑크빛으로 돌아왔고 혓바닥도 빨간색이 되어 얼마나 깜짝 놀라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지금은 아주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있던 입원실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뻐해 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수술 받은 곳이 얼마나 아픈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때 나는 아무 생각이나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수술을 받았다는 것만 생각해도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 감사 축제에서 간증하는 라몬 군     © 크리스찬리뷰
 

저는 주일마다 누나와 같이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지켜 주시고 사랑하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습니다. 지금은 잘 걷고, 가고 싶은 곳도 가고, 이제 야간에는 영어 학교를 시작했습니다. 아직 다시 한 번 더 수술을 해야하지만 하나님께서 저를 고쳐 주셨음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과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간증하는 쓰레이 빗 엄마 폴 위치카 씨와 쓰레이 빗(오른쪽)     © 크리스찬리뷰
 

TOF 환자 쓰레이 빗 엄마 <폴 위치카의 이야기>

저는 까뽕스프에 살고 있는 9살 된 딸 쓰레이 빗의 엄마 폴 위치카입니다. 제 앞에 서 있는 아이가 쓰레이 빗입니다.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아주 심한 심장병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심장도 나쁘고 심장에 있는 혈관에도 문제가 있고, 저는 잘 모르지만 아픈 곳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기가 1년 9개월이 되었을 때 심장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는 숨을 쉬고 물을 먹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나는 항상 아기를 안고 있어야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놀지도 못하고 학교도 못갔습니다. 아기를 치료할 수 있을까 해서 쿤테아보파 병원에도 가보았습니다.
 
그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조금은 좋아지는 것 같았는데 다시 칼메트병원으로 가보라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칼메트병원에 가면 도움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갔는데 저희는 병원에 치료비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집이어서 그곳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헤브론병원에 가보라고 해서 헤브론병원을 찾아갔더니 밤 12시가 지났습니다. 우리는 밤새 기다리다 아침에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 심장 수술 후 폐에 물이 차서 생사의 기로에 있었던 쓰레이 빗이 간호사들의 집중간호를 받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김우정 원장님은 “우리는 이 아기를 치료할 기계가 없어요. 치료비를 대줄터이니 칼메트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칼메트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가난한 우리에게 1불도 깎아 주지 않고 그 돈을 모두 받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칼메트병원에 가서 검사와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헤브론병원에 다시 찾아가서 우리 딸 아이를 치료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름을 적어 놓고 1년을 기다렸습니다. 헤브론병원의 의사들과 직원들은 모두 친절하게 우리를 대해 주었고, 좋은 소식이 있을 때까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기다리면서 기도했습니다. 아이가 8살이 되었을 때 “헤브론병원에 심장센터가 생겼으니 이제 수술할 수 있게 되었다”며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아이는 심장에 문제가 너무 많아서 큰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이가 수술방에 들어갈 때 참으로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아이가 마취에서  깨어날 때 얼마나 기뻤는지요. 죽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수술 후에 아이는 얼마나 심한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어렵고 힘든 수술을 잘 끝냈지만 수술 후에 폐에 물이 차면서 극도의 어려움으로 빠져 들었습니다.
 
병원의 의료진은 온갖 방법을 다해서 생명을 살려보려고 노력했지만 마지막에는 그 생명이 살아날 것을 아무도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은 모두 ICU에서 아이의 침대를 지켜보고 기도실에서는  이 아이를 위해 기도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거의 포기했던 순간에 아이는 기적처럼 다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매일매일 좋아지고 혼자 기계를 끌고 병원을 걸어 다녔습니다. 지금 옆에 서 있는 것처럼 숨도 안 차고 건강하고 힘도 있고 색깔도 모두 좋아졌습니다.

 
▲ 건강을 찾은 쓰레이 빗이 심장 수술을 같이 받은 남자 친구와 환하게 웃고 있다 .    © 크리스찬리뷰
 

아기 때는 손을 보면 거북이처럼 보여서 마음이 아프고 희망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예쁘고 건강해서 학교도 가고 자전거를 혼자 타고 친구들과 뛰어다니기도 합니다.
 
딸 아이는 이제 두 번째 수술은 안해도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때 한 번에 나쁜 곳을 다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딸이 다시 살아나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글ㆍ사진 / 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