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의 사랑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1/25 [12:38]
고통이나 어려움, 고난이나 슬픔을 당한 타인에 대해 위로하고픈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말 중에 동정과 공감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동정과 공감. 영어로는 sympathy and empathy입니다.
 
동정과 공감, sympathy and empathy.우리말이나 영어나 단어도 비슷하고 그 뜻도 상대를 긍휼히 여긴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하지만 동정과 공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위치입니다. 지금 위로가 필요한 사람과 나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가 그 차이가 동정과 공감으로 나뉘게 됩니다.
 
동정은 고통과 슬픔을 당한 사람에 대해 불쌍한 마음을 품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됐다”, “어떻게 하니?”, “많이 힘들지?”라고 위로합니다. 물론 진심으로 위로하고 이 또한 긍휼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나의 위치는 여전히 제3자로 어려움을 당한 사람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이것이 동정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다릅니다. 공감은 고통과 슬픔을 당한 사람과 '공감- 똑같이 느끼는 것'입니다. 내가 슬픔을 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위치가 곧 그 사람과 동일한 위치가 되는 것이 공감입니다.
 
그래서 공감의 말은 이렇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 <다모>에서 히트를 쳤던 유명한 대사이지만 공감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내가 직접 당한 고통이나 슬픔이 아니었지만 상대방과 똑같이 아프고 똑같이 슬픈 것이 공감입니다. 내가 곧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신영복 교수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숙명여자대학교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 강사로 있다가 1968년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단 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20년 20일 동안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8년에 전향서를 쓰고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을 후에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세상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다.           


함께 맞는 비
 
지난 1월 15일에 타계한 고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로 이 시대를 깨우는 지성이셨습니다. 그분이 쓰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옥중에 있을 때 쓴 글들을 모은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1988년도에 출간이 되었으니 거의 30년 가까이 된 책인데요, 저도 청년 시절에 감명 깊게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책에 '함께 맞는 비'라는 글이 있는데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慰勞)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동정과 공감의 차이가 잘 나타나는 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누군가 비를 맞고 있을 때 동정하는 사람은 우산을 펴고 들어줍니다. 그래서 비를 피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이것도 친철을 베푼 것이고 자비로운 처사가 분명합니다.
 
하지만 공감하는 사람은 함께 비를 맞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함께 비를 맞지 않는 동정의 위로는 따뜻하지 않다고 합니다. 우산을 내려놓고 비를 맞는 사람과 함께 비를 맞을 때 그 위로가 진정으로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과 위치가 동일해졌기 때문입니다. .
 
신영복 선생은 후에 이런 말도 했습니다. “동일한 입장이 최고의 관계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동일한 입장이 되는 것, 그래서 비가올 때 함께 비를 맞는 것, 이것이 공감입니다.

▲ 신영복 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라
 
성경의 가르침도 동정이 아니라 공감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5).
  
옛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부패한 본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남이 잘 되고 성공하고 기쁜 일이 생기면 그 사람과 함께, 그 사람처럼, 그 사람이 되어서  즐거워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사촌이 땅을 사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은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십니다. 단지 제3자의 입장에서 위로하고 동정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의 입장에서 울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완전한 공감, 성육신
 
성경에서 공감의 대표적인 사건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신 성육신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우리와 같이 종의 형체를 지니신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물론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슬픔, 굶주림과 목마름까지도 똑같이 경험하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심판을 우리를 대신해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와 완전한 공감을 이루셨습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이루신 완전한 공감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2천 년 전에 예수님만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와 완전한 공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이제는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나와 완전한 공감을 이루고 계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십니다. 그렇게 나와 공감을 이루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한복음 13:34).
 
그동안 우리의 사랑이 동정에 머물렀다면 예수님이 공감을 이루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새로운 계명입니다.
 
우리가 새 계명으로 말씀하신 공감의 사랑을 실천한다면, 그래서 타인이 아플 때 나도 아프고, 비가 올 때 함께 비를 맞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교회는 물론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이 세상도 분명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을 믿습니다. 〠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광고
광고

  • 포토
  • 포토
  • 포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