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좌담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창립 20주년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의 사명과 재도약

정리ㅣ김명동/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2/29 [11:49]
▲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역대 사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웃음꽃을 피우며 좌담회를 가졌다.     ©크리스찬리뷰
 
  ▶대담자: 김환기•김은려 사관 (호주 구세군본부, 구세시드니한인교회 협력사관)   
               강정길•남기숙 사관 (구세군토론토한인교회 담임사관)
               한제오•장행심 사관 (구세군아현교회 담임사관)
               이한상•허성은 사관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담임사관)
  ▶사회자: 김명동 (본지 편집인) 
  ▶사진: 권순형(본지 발행인) 윤기룡(본지 사진부장)
  ▶일시: 2016년 2월 19일(금) 오후 3시
  ▶장소: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교육관

▲ 김명동 편집인     © 크리스찬리뷰


사회자: 우선 창립 20주년을 축하드립니다. 오늘 초대 담임사관이셨던 김동진 사관과 동부인을 제외한 역대 담임사관들이 모두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20년의 역사를 모두 가지고 오셨는데  창립 20주년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2대 담임사관이셨던 김환기 사관님이 먼저 말문을 열어주시지요.

창립 20주년에 대한 감회

▲ 제2대 김환기 사관     © 크리스찬리뷰


김환기: 저는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2대 담임사관으로 1997년 11월 30일 초대 담임사관이셨던 김동진 사관과 이•취임식을 가졌습니다. 현재 호주구세군에 소속되어 구제본부에서 일하고 있고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협력사관으로 사역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해서 축하를 드리고요.

이제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가 장년의 나이가 됐습니다. 특별히 20주년의 표어가 ‘예수그리스도에로의 도약’인데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했지만 20주년을 터닝 포인트로 해가지고 새로운 도약과 더 나아가 비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거고요. 구세군의 정체성이 교회가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지역사회를 위한, 세상을 위한 교회이기 때문에 그런 교회로 나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할 것입니다.

강정길: 저는 3대 담임사관으로 2005년 4월부터 2008년 3월까지 3년간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은 구세군토론토한인교회 담임사관으로 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한 본 교회에 대해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그동안 1대부터 5대까지 사역을 하신 모든 사관님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까지 교회가 이 자리에 든든하게 서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기 때문에 지역사회의 영혼들을 구원하며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로 날마다 세워져갈 수 있기를 소망하며 하나님께서 그렇게 복주시고 인도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가 사역할 때 당시에는 이미 전임 사관들의 훌륭하신 사역의 기반 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저희들의 사역은 그 어떤 곳에서보다도 비전을 가지고 단단한 기초 위에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사역하면서 악대가 시작이 되었고 또 저희들이 부족한 가운데에서도 기도운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교회부흥을 일으켜주었습니다. 더 감사드리는 것은 구세군은 전임자 후임자 간에 관계가 돈독할 때 서로 사역에 도움과 플러스요인이 될 수 있는데 김환기 사관님께서 때마다 오셔서 중요할 때에 협력해주셨습니다.
 
저희로서는 첫 이민 사역이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20년이 되었지만 그 역사 속에 한 페이지를 하나님께서 사용하셔서 동참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구세군교회의 미래로의 도약이 정말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시 한 번 힘을 얻는 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제3대 남기숙 사관     © 크리스찬리뷰


남기숙: 할렐루야! 먼저 김환기 사관님한테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까 역대 사관들을 소개하실 때 남자 사관들만 말씀하셨어요. 우리 구세군은 특별히 여사관과 남사관이 동등한 위치에 서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큰 장점이 있거든요. 오늘날의 시드니한인영문(교회)이 여기까지 오기에는 남 사관들만이 아니라 함께 사역한 여 사관들을 꼭 기억해주시기 바랍니다.(일동 아멘)

저는 20주년을 맞이한 시드니한인영문에게 제가 간절히 기도하는 기도제목과 소망은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영적군대로서 더 강력해지고 더 새 힘을 얻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우리 시드니한인영문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20주년을 맞이한 시드니한인영문을 축복하고 또 감사를 올립니다.
 
한제오: 저는 4대 담임사관으로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사역을 감당했고 현재는 구세군아현영문 담임사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으로 시드니에 왔었고 이곳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정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20주년이 됐는데 20주년이라면 어떻게 보면 긴 시간도 되지만, 제가 현재 사역하고 있는 서울 아현영문은 올 7월이면 100주년이 됩니다. 100주년에 비하면 20주년은 아무것도 아니지요.(일동웃음)
 
금번에 역대 담임사관들을 초청한 이 사건을 통해서 감동을 받은 것은 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할 때 그것을 어떻게 기획하고 해 나가야되느냐에 따라서 그 중요성이 더 부각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우리 아현영문에 비해서는 긴 시간이 아니지만 20주년을 이렇게 성대하게 아름답게 또 전임사관들을 초청한 이한상 사관님의 넓은 마음과 목회관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런 아름다움이 20주년을 통해서 계속해서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영향력이 될 것이며 그들에게 더 큰 도전과 아름다운 역사가 될 것 같습니다.
 
장행심: 할렐루야! 제가 주로 하는 사역자체는 성도들과 기도하는 겁니다. 사실 저는 목회를 시작하기 전 그러니까 30년 전부터 저녁마다 기도해오던 것을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게 저를 지금까지 인도해온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요 이곳에서 사역을 할 때도 금요기도회는 제 담당이었는데 저희 남편만 놓고 설교한 적도 있었어요.
 
사람들은 어떤 행사가 있을 때는 많이 모이지만 기도하는 자리에는 오지를 않았습니다. 아무리 울며 씨를 뿌렸는데도 혼자 앉아 하나님께 기도할 때가 많았죠.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그 울음이 하나님이 주신 저의 소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성년이 된 이 교회를 보면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한상: 구세군은 아시다시피 정근제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사역을 하면 반드시 떠나야 하는데 해외사역은 한 텀이 3년이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한 텀을 하고 한 텀을 더 연장해서 5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데 6년이 되기 전에 가야돼서 올 3월에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저희 구세군에는 불문율이 있는데 좋은 사관 뒤에 가면 고생한다, 그런 얘기가 있습니다. (일동 웃음) 앞에서 너무 잘하였기 때문에 뒤에 가서 빛이 안 난다, 오히려 문제가 있는 교회에 가서 정리하는 게 빛이 나고 좋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 제1대 김동진 사관     © 김동진


그런데 이번에 못 오셨지만 김동진 사관 동부인, 김환기 사관 동부인, 강정길 사관 동부인, 한제오 사관 동부인, 뭐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사관들이시고 가장 빛이 나는 사관들이십니다. 그래서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가 정말 복 받은 교회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런 좋은 사관님들이 이곳에 오셔서 많은 일들을 해놓고 가셨다는 겁니다.
 
짧은 기간 3년 기간 그 정해진 시간 동안에 정말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많은 눈물을 흘리셨고 또 많이 뛰어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결과가 오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관들이 앞에 계셔서 그 후임으로 오시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오셔서 더 좋은 일들을 하시고 더 많은 업적들을 남기셔서 현임사관으로 여기 오면서 사실 저는 많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한제오 사관님 후임으로 사역을 감당한다는 게 여긴 부담스러운 일이 아니었는데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저는 여기에 와서 사실 크게 한 일은 없습니다. 앞에 사관님들이 워낙 잘 깔아놓고 가신 거 그것 유지하는 수준으로 온 것 같습니다.
 
20주년을 계획하면서 작년에 저희가 20주년 준비위원들을 구성하고 그분들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의견들을 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한 교회에 20년이라는 그 기간이 사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번에는 뭔가 도약할 때이고 또 새로운 비전을 가지고 새로운 계획을 가지고 또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화되어야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계신 전임사관들을 모두 초청을 한다는 게 비용적인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러나 오래 전부터 이 교회를 섬겨왔던 성도들이 그 이전을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행복해지는 그런 시간이고 또 사명을 회복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초청을 해서 부흥회를 계속하고 있는데 참 은혜의 시간이고 치유받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창립 20년이라는 세월이 현재 저희가 있는 것에 결과가 아니라 이전에 많은 성도들의 수고와 많은 사관님들의 수고가 함께 있고 그 연장선에서 현재 우리가 있다는 사실을 교인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민교회가 아시다시피 성도들이 많이 바뀝니다. 저희 교회도 보면 강정길 사관님이나 김환기 사관님 때 계셨던 분들이 지금 많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가 한국으로 돌아가시는 분들도 많아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현재는 이전 사관들과 성도들 그리고 하나님께서 20년이라는 세월을 함께 하셨다는 것에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지금 새로 나온 교인이라 할지라도 그 사실을 알고 감사하면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이 교회를 아름답게 섬겼으면 좋겠고, 그리고 더 많은 헌신이 있고 도약하는 때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전임 사관님들을 초청을 하고 20주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제5대 허성은 사관     © 크리스찬리뷰


허성은: 할렐루야! 저는 이한상 사관의 그림자입니다. 제가 그림자라고 하는 이유는 다른 여사관들에 비해서 저는 그다지 나타내고 드러날 만한 어떤 능력이 없어서 항상 그림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사역했던 일들이 앞에서 이한상 사관이 말씀하셨던 것처럼 앞에서 사관님들이 하셨던 그 일들에 대해서 좀 더 실속 있게 세분화하는 그런 일들을 해온 것 같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런 거죠. 주일학교가 이제는 영아부와 주일학교로 나뉘었고 청년부가 학생부와 청년부로 나뉘었고 그리고 그곳에서 헌신하실 리더들을 세웠던 것, 그리고 뭔가 불안했던 찬양대를 안정적으로 세워놓은 것, 사실 찬양대가 예배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잘 감당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찬양대를 지휘하면서 노래하는 수준은 어떨지 모르지만 평균 연령을 높이면서 안정적이고 믿음의 찬양을 할 수 있는 찬양대로 완전히 뿌리내리는 그런 일들을 했구나. 돌아보니까 그게 보이네요.
 
그러나 세분화되어지고 리더들이 세워졌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아서 부족한 것이 있는데 다음 사관님이 오시면 더 풍성한 것들로 세워지고 더 세분화되어서 더 멋진 연결된 조직을, 마치 세포 하나하나들이 완전히 커서 장성한 그런 성인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꿔봅니다.
 
구세군의 특징
 
사회자: 구세군이라고 하면 유니폼이나 브라스밴드, 자선냄비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사실 구세군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령관이니 사관이니 영문이니 병사니 장관이니 하는 명칭도 생소하고요.   

▲ 제2대 김은려 사모     © 크리스찬리뷰


김은려: 구세군은 1865년 영국 감리교 목사인 윌리엄 부스에 의해 시작이 되었고 구세군(The Salvation Army)이란 이름이 붙여진 건 1878년입니다. 구세군은 조직의 구조를 상징적으로 군대식으로 정했는데 성직자를 사관, 신학교를 사관학교, 교회를 영문, 교인을 병사 또는 군우라고 부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세군교회를 통해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일정기간 잘 출석하게 되면 예비병 준비반에서 예비병 교육을 받은 후에 예비병으로 입대식을 갖게 되며, 그 후에 병사준비반에서 교육을 받고 구세군 병사 서약서에 서명한 후에 병사 입대식을 갖게 됩니다.
 
병사들은 일정기간 하사관으로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후에는 각자의 재능과 역량에 따라 교회의 직분을 받고 봉사하게 됩니다. 구세군 병사로서 사관으로 헌신하게 되면 사관후보생으로 훈련을 받게 되며, 사관후보생 선발회의에서 엄격한 선발과정을 거쳐 사관학교에 입교하게 됩니다.
 
구세군은 두 개의 모토가 있는데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 ‘한 손에는 빵, 한 손에는 성경’입니다. 구세군은 신학적으로 웨슬리안니즘이고요, 영혼구원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교회 개교회 중심이 아닌 국제적인 조직을 가지고 있고 현재 세계 127개국에서 구세군의 활동이 똑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역사지만 구세군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사역을 하는 단체이고 감리교와 같은 계통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사회자: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의 탄생 과정에 대해 설명해 주시죠.
 
한제오: 한국에서 구세군교회를 다녔던 김혜경 씨가 캠시에서 선교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청년들을 모아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답니다. 저희 교회 김희숙 사관의 언니되시는 분인데 제가 시드니에 간다니까 청년시절에 아름다운 일이 많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캠시 구세군교회에 가서 혹시 우리가 모일 장소를 제공해줄 수 있겠느냐 물어보니까 와서 하라, 그래서 캠시 구세군교회에서 모임을 가졌는데 20-30명 되더라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동생인 김희숙 사관, 그 당시는 사관님이 아니셨지요. 김희숙 사관님이 언니를 도와서 하다가 한국에 요청을 했답니다. 그때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서 김동진 사관님을 파송해서 시드니한인교회가 설립이 되었다는 겁니다.
 
▲ 제3대 강정길 사관     © 크리스찬리뷰


강정길: 그 이전에 이런 스토리가 있습니다. 제 큰 형님되시는 강금열 사관과 지금 이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안원자 사관이 한국의정부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는데 안원자 사관님의 사촌오빠 가족들이 시드니에 많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시드니에 구세군한인교회를 세우는 것이 어떻겠느냐 서로의 의견교환이 있어서 한국구세군본부에 의사타진을 여러 번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해외에 한국구세군교회를 개척한다는 계획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거절을 당했던 차에 고 강금열 사관과 안원자 사관이 사관직을 사직하고 시드니로 건너왔습니다.
 
사회자: 잠깐만요. 그러면 안원자 사관님이 큰 형수가 되시나요?
 
강정길: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두 분이 덜위치 힐 구세군교회를 출석하면서 그 교회 담임사관과 의견을 나누면서 호주구세군본부에 의사타진을 했는데 이곳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있었지만 한국구세군에서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죠. 그러다가 1987년 12월 25일 강금열 사관님이 이곳에서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그때 구세군한인교회 개척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왔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런 후 하나님의 섭리로 1993년도에 이곳에 구세군한인교회 사역이 시작이 된 거죠.
 
그리고 감사한 것은 1988년 1월 1일 큰 형님 장례식 참석차 이곳에 왔었습니다. 와서 어린 조카 4명을 부양하면서 불법체류로 4년 반을 시드니에서 살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성결교회에 출석했는데 내가 구세군에 다시 헌신을 해서 큰 형님이 3년밖에 사역을 못했지만 남긴 사역의 유업을 내가 이어가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덜위치 힐 구세군교회를 출석하여 병사입대를 하고 1992년 한국으로 귀국을 해서 사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만인 2005년도에 내가 큰 형님이 뜻을 두었던 시드니한인영문에 담임사관으로 오게 된 거죠.
 
사회자: 안원자 사관님이 복직을 하신 후 제가 인터뷰를 한 기억이 나는데요. 안 사관님에 대해 보충설명을 해주시지요.
 
강정길: 안원자 사관님은 남편의 소천으로 이미 구세군 사관직을 사직했습니다. 사역자로서의 소망은 있었지만 사역자로서의 길을 가지 못하고 타 교회 권사로 사역을 하고 있던 차에 장행심 사관님께서 오셔서 안원자 사관님의 복직을 지방본영과 이곳 군국본영을 통해 진행시켜 주셔서 다시 구세군사관으로 복직을 해서 이교회 협력사관으로 사역하고 계시는데 이 일은 제 개인적인 큰 은혜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볼 때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이곳에 오셔서 꿈을 가지고 기도했던 그 자그마한 눈물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오늘 구세군한인교회 20주년을 시작하게 했던  작은 씨앗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하나님이 안 사관님을 다시 세우셨고 사역케 하심은 뜻이 계셔서 구세군한인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섭리가 계속해서 지금까지도 구세군한인교회에 흘러가고 있다 이렇게 저희들이 볼 수가 있겠습니다.
 
교회와 사회에게 기여한 점은
 
사회자: 그러니 인간의 앞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자는 그 그물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위대하심이요 택함 받은 자의 막중한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다음으로는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재임 시 역점을 두고 사역했던 부분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그리고 추억될만한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김환기: 10년도 더된 일이지만 지금도 개인적으로 강정길 사관님과 동부인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는 것은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저분들을 통해서 밴드가 시작 됐거든요. 그래서 아시는 것처럼 성시화대회 거리행진 때 지금도 구세군밴드가 선두에서 이끌어가고 있어요.
 
그리고 초대 담임사관이신 김동진 사관님은 제 일 년 선배이신데 청년사역에 역점을 두셨어요. 그런데 제가 올 때는 한국에 IMF가 터졌을 때입니다. 이때 청년들이 많이 교회를 떠났죠. 그러는 가운데 일 년이 지난 1998년 12월 중순 경 어느 분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찾아뵙고 싶다고요. 자선냄비 기간인데 그분이 찾아왔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더군요.
 
99년 1월 1일부터 제가 구세군교회에 등록을 할 테니까 잘 지도편달 바랍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고 계세요. 그분이 해군대령으로 예편을 하시고 선장으로서 세계를 다니셨던 문필가 김연려 집사님 동부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중심으로 해서 그때부터 장년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제 재임기간 동안 아마 그분을 통해 장년부가 정착이 되고 교회가 기틀을 다지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강정길: 제가 2005년부터 사역을 했는데 사실은 이민사역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뚜렷한 사역의 비전이나 방향을 쉽게 정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 중반부터 성령사역에 대한 강한 부름과 또 성령님에 대한 강한 열망이 성도들 간에 퍼져갔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2년 정도 지난 후에 저희들의 모든 사역의 방향이 성령운동으로 몰고 갔습니다. 그러다가 놀랍게도 2007년도부터 전교인이 기도운동에 참여하면서 매일 저녁 기도운동 방언의 역사들을 통해서 성도님들이 많은 성령체험을 하게 됐습니다.
 
당시 에피소드중의 하나는 이곳 호주 구세군 사관이 놀랍게도 자기교회 청년들을 데리고 수요예배 때마다 참석을 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분들은 뭔가 호주교회에 임하는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하고 수요예배 후에 청년들을 데리고 저희 교회에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린 것인데 그분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걸 보면서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초대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지금도 역사하시는구나, 그럴 걸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성령사업이 후임으로 오신 한제오, 장행심 사관님을 통해서 계속 기도운동으로 이어졌죠.
 
그런데 사실 제가 이곳에서 성령사역을 마치고 귀국할 때 장행심 사관님이 저에게 비전을 주셨습니다. 장행심 사관님은 저에게 한국구세군 청년운동에 크게 쓰임받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사관님이 저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칭찬이나 그런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어떤 사명으로 들렸어요. 그래서 한국에 가서 교회사역을 하면서 백일작정기도회를 계속하면서 그곳에서도 성령체험을 했습니다만 2005년부터 사역을 하면서 마지막까지 초점을 맞춘 것은 성령사역이었습니다.  
 
남기숙: 시드니한인영문에서 사역할 때 가장 감사하고 싶은 것은 정말 사도행전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그것이 귀한 일들이었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깨달은 거지만 그동안 저는 강 사관님과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괜찮은 사람들이라서 저희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는 성장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저희들이 이룬 것이라고 은근히 자만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얼마 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되돌아보면 우리 시드니한인영문에 그런 성령의 역사와 더불어 우리 성도들의 회개가 일어났고 가정이 변화되고 심령이 변화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갈망하는 영적인 부분에 있어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크게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이 그냥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이 괜찮은 사관들이 아니라 우리 교회 성도들이 괜찮은 분들이셨던 거예요. 성도들의 아름다운 영혼,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런 갈망 속에서 성령님께서 역사하셨고 또 그런 것을 통해서 교회가 성장한 겁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한제오: 하나님께서는 모든 담임사관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그때그때마다 부어주셔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제 전임사관이신 강정길 사관님도 이곳에서 목회를 하실 때 참 기초를 탄탄하게 잘해놓으셨어요. 교인들과 잘 어울리며 재미있게 목회를 하셨죠. 그래서 교인들이 많이 모여들었습니다. 저는 성향이 내성적이어서 사람을 잘 못 사귀는 그런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팀 목회를 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저는 담임사관으로 제 아내는 목양담당 사관으로 김환기 사관님은 교육사관으로 그리고 중간에 재 임관하신 안원자 사관님이 저희들을 많이 도와주셨죠. 그런데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아까 강정길 사관님이 이곳에 와서 말씀과 기도사역에 역점을 두고 목회를 하셨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 목회자들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저희도 역시 두 분이 했던 것처럼 말씀과 기도에 중점을 뒀습니다. 늘 끊임없는 기도생활과 말씀연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거든요. 그랬더니 역시 마찬가지로 부흥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좀 어르신들을 섬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분기별로 효도관광을 시켜드렸죠. 그러면서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을 시작했어요. 일 년을 하고난 다음 구역조직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일부에서는 반대했지만 성경공부를 했던 사람들이 해보자, 이렇게 해서 12개 목장이 시작되었는데 그때 일들이 생각이 납니다.
 
그런데 제가 좌담회를 하면서 감동을 받은 것은 아까 허성은 사관님이 자기를 그림자다 이렇게 애기를 하셨거든요. 제가 5년 만에 여기에 와보니까 그림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다. 저도 늘 찬양대에 대한 고민도 많았는데 찬양대라든가 영아부라든가 주일학교를 조직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걸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아, 하나님께서 그때그때마다 사관들을 통해서 주시는 은혜가 있었구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구세군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단점이라고 하지만 이것이 또 장점이지 않는가. 시드니한인교회에서 필요할 때마다 필요한 사관을 보내주셔서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 하나님, 그래서 20년을 되돌아보면 모든 사관들의 사역이 모두 아름답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제4대 장행심 사관     © 크리스찬리뷰


장행심: 그렇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을 돌이켜 볼 때 시드니에서의 목회가 참 행복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저는 영어를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하나님은 왜 나를 시드니로 보냈을까 많이 기도하면서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남기숙 사관님처럼 목회를 잘 할 수 있을까. 아니더라고요. 남기숙 사관님이 하신 사역은 하나님이 그 분에게 주신 거였고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손을 얹고 기도할 때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은혜를 주셨어요. 아픔도 있었습니다. 저희가 많이 믿고 의지했던 찬양사역자가 있었는데 신사도운동단체에 빠져 많이 힘들었어요. 결국 저희 곁을 떠났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어 눈물을 흘렸더니 하나님이 저희들을 깨우쳐주셨어요.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요. 그런 후 세 개의 찬양팀이 생겨났어요.
 
또 하나 기억이 나는 것은 강정길 사관님이 벌여놓은 일이 있었어요. 금요일이면 여기에서 10시에 출발해서 캔버라까지 갔다가 밤 12시가 돼야 돌아오는 사역이었어요. 1시간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8시간을 투자해야만 했습니다. 결국은 구세군교회가 개척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희에게는 참 보람이었고 즐거웠습니다.
 
이한상: 먼저 허성은 사관이 말했지만 전임 사관께서 워낙 탄탄하게 다 채워놓고 가셨기 때문에 저희가 여기에서 하는 일은 실속을 채우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 목회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했던 부분이 있다면 셀의 뼈대를 단단히 세우는 일입니다. 한 사관님이 목장을 세우시고 조직적으로 하셨지만 그것이 아직까지는 완전히 뿌리가 내려진 상황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셀을 개편하고 셀 리더들을 교육하고 그리고 셀 리더들을 따르게 하는 그러한 일들을 중점적으로 해왔습니다. 그리고 목회의 방향성이라 한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런 부분에 대해 많아 강조해 왔습니다. 설교도 그렇고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삶을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이민자들의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비켜가고 싶은 그런 일들이 많은데 거기에 대해서 믿음으로 담대하게 부딪쳐 정직하게 살자. 또 우리가 구세군으로 군복을 입고 살고 있는데 바르게 살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하면서 살지는 말자. 그것들을 기억하면서 내실을 기하는데 저희가 중점을 두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김환기: 구세군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모이는 교회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우리 구세군은 오히려 흩어지는 교회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모이는 교회가 방주역할을 한다면 흩어지는 교회는 구조선의 역할을 강조합니다. 그런 입장에서 구세군의 교회들은 실천적이고 구체적으로 사회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저희 교회같은 경우 밴드는 성시화 행진뿐만 아니라 안작데이라든지 또 외부에서 요청을 할 때마다 가서 헌신하고 있습니다. 꼭 기독교 단체만은 아닙니다. 그리고 벨모아공립초등학교와 NSW주 공립초등학교에 우리 교회에서 음식을 공급해 주고 있고요. ‘붉은 방패’라고해서 매년 5월 마지막 주에 각 집을 방문하여 모금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시드니주안교회 진기현 목사님께서는 매년 50여 명의 교회 청년들을 보내주셔서 도와주고 있어요. 신학생들도 많이 오고요. 그러니까 이것이 개교회의 운동이 아니라 호주사회 속에서 구세군의 운동이기 때문에 많이들 도와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선냄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작년 같은 경우는 성도님들뿐만 아니라 목사님들도 많이 참여를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구세군은 개교회 중심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한상: 저희 교회는 다른 한인교회와 다른데 어려우신 분들이 많이 전화를 합니다. 얼마 전에는 방글라데시에서 오신 분이었는데 먹을 것이 없는데 도와달라는 전화를 주셨어요. 먹을 것을 사들고 갔죠. 저희는 먹을 것이 없다고 그러면 무조건 사들고 갑니다.
 
집에 가보니까 그야말로 정말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아이는 있는데요. 그래서 냉장고 세탁기를 버스 뒤 좌석을 다 떼어내고 실었습니다.
 
사실 구세군에는 필요 없는 물건을 주려고 전화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가는데 냉장고 세탁기 침대 있으니까 가져가겠느냐고요. 그렇게 기증받은 물건들을 나눠주는 거죠. 아무튼 짐을 실었습니다. 그날이 1월이었는데 42~43도 되는 아주 더운 날이었어요. 가면서 종교가 뭐냐고 물으니까 무슬림이래요. 구세군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니까 센터링크에서 정보를 얻었다고 그래요.
 
버스로 서너 번 왔다 갔다 짐을 날랐는데 얼굴에는 땀범벅이고 게다가 2층이었어요. 세탁기가 무척 무겁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중에 물어보더라고요. 돈 받고 일하냐고요. 아니다, 난 자원봉사 하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이 더운 날 나를 도와줄 생각을 하느냐 그때 제가 뭐라고 얘기했느냐면 난 크리스찬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도와주는 것이 나의 사명이고 이것이 내 임무다. 그랬는데 그 사람이 너무 감사하다고 자기 집에 초청해서 밥을 같이 먹고 싶다고 그러더라고요. 우리 구세군의 사역이 그런 사역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강정길: 저희 같은 경우 이곳에서 사역할 때는 조선족들이 많았어요. 그들의 경우 영어통역도 필요하고 취업 등 여러 가지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한데 그런 분들이 다른 교회에 다니시다가 구세군에 오시더라고요. 그중 한 분 같은 경우는 저희가 여러 번 통역도 해드리고 집을 얻어주고 물품 등으로 도움을 주곤 했는데 이분이 도움이 필요할 때는 오지만 도움이 어느 정도 충족이 되면 안 오고 그래요.
 
그런데 구세군의 선교 선언문에 보면 도움이 필요하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차별 없이 돕는다. 이런 선교 선언문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어떤 기대를 가지고 대가를 바라면서 돕는다면 반드시 실망을 하는데 그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정신으로 도움을 주고 사업을 할 때는 실망도 있지만 우리 구세군의 본분을 잘 이루었다고 하는 그런 보람이 크기 때문에 구세군이 150년간 시드니한인교회에서도 20년간 그런 사역을 지속해오고 있다고 믿습니다.
 
남기숙: 저는 사역했던 일중에 정말 잊을 수 없는 그런 사역이 있는데 우리 교인 한 분이 불법체류자이셨어요. 거의 7년 동안이나 얘기를 못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분이 교회에 헌신하고 충성하는 분이셨는데 어느 날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서 이민성에서 사람이 나와서 그분을 데려갔어요. 이민성에서 사람이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우리는 정복을 차려입고 달려갔거든요. 가보니까 이민성 직원들이 집을 포위하고 있었고 아이들 두 명이 있었는데 무서움과 공포에 떨며 울고 있었어요.
 
그런 후 부교님(집사)이 빌라우드수용소에 붙잡혀 가면서 사관님 기도해 주세요, 그러면서 저의 손을 잡았을 때 기도를 하는데 뜨거운 눈물이 내 손등에 떨어졌어요. 그때 제 마음이 너무너무 아팠어요. 그래서 그분은 빌라우드수용소로 가게 되고 그때가 밤 12시인데 저는 성전으로 와서 ‘하나님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펑펑 울면서 기도를 했어요.
 
정말 이분은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셨어요. 교회 청소 다 맡아 하시고 못 쓰는 물건 다 자기 창고에 보관해 놓았다가 유학생들 살림 다 챙겨주시고 마음 따뜻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분이셨거든요. ‘하나님 왜 그러셨어요?’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어요. ‘교회가 기도하게 하라’ 그날이 화요일이었는데 그 다음 날 수요예배 때 성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해서 무조건 예배에 참여하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 부교님을 도우시기를 원하시는데 바로 우리의 기도가 필요하다.
 
당시에는 새벽기도회가 주말에 있었는데 온 성도들이 함께 40일 새벽 작정기도를 시작했어요. 사정으로 나오지 못하는 분들은 집에서 같은 시간에 기도를 한다든지 한 끼를 금식한다든지 그렇게 기도를 하였는데 그 이후로 매일 새벽기도가 시작이 된 거죠.
 
그러면서 우리 구세군 성도들이 탄원서에 서명을 했고 또 호주구세군 지방장관 사령관님이 이분에 대한 신원보증을 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는 이민담당관이 이분은 곧 나오게 된다는 얘기만 믿고 기다렸는데 갑자기 이민성에서 그분이 2주 안에 나가야된다는 거절통지서를 받았어요.
 
그러나 저는 포기할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이렇게까지 기도하게 하셨는데 모든 성도들을 실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저는 믿었지요. 사관님에게 우리가 다시 한 번 구세군 사령관님의 편지를 받아서 요청을 해보자. 그리고 사령관님을 만나 부탁했고 사령관님이 써주신 그 편지가 이민장관에게 개인적으로 전달이 돼서 이민성에서 우리 구세군의 공신력을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체험하게 됐습니다. 지금은 그 가정이 이곳에 안착하게 되었고 자녀들도 잘 성장해서 선교사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장행심: 당뇨병 환자가 왔었어요. 자기는 인슐린주사를 맞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슐린주사를 사가지고 보관해 놓았어요. 몇 번 오더니 안 오시는 거예요. 알고 보니 그분의 목적은 돈이었어요. 구세군이 지혜롭다는 것이 바우처가 있는데 의약품만을 살 수 있는 바우처, 어린이용품 만을 살 수 있는 바우처, 생필품만 살 수 있는 바우처가 있는데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 바우처를 줍니다. 그런데 이 바우처는 다른 용도로는 사용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우리 구세군의 특이한 점은 다른 분들이 오셔서 설교를 하거나 강의를 하잖아요. 사례비를 안 줘요. 저는 모르니까 한국식으로 하려고 했더니 여기 지방영에서 얘기하는 거예요. 아니, 설교를 하는 사람이 감사해야지 우리가 주면 되겠느냐는 거지요.
 
한제오: 우리는 모든 재정이 본영으로 들어가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 돈을 쓰는 게 아니라 관리만 해줘요. 그런데 비용에 지출된 돈은 영수증을 일일이 다 체크를 합니다. 영수중 처리가 미흡하잖아요, 약간만 미스가 있어도 돈이 안 들어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재정이 투명하고 정확합니다.
 
앞으로의 당부와 바람은 무엇인가?
 
사회자: 결국 이런 한인사회의 환경과 토양 속에 뿌려진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라는 씨앗이 발아해서 지난 20년을 지나 이제 성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20주년을 기념하고 회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으로의 20년을 어떻게 맞이할 것이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당부의 말씀을 해주시지요.
 
▲ 제4대 한제오 사관     © 크리스찬리뷰


한제오: 목회는 다 똑같다고 생각을 합니다. 초대교회가 말씀과 기도로 사역했던 것처럼 앞으로 말씀과 기도사역에 중점을 둔다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건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김환기: 교회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적재적소에 좋은 사관님들을 보내주셔서 여기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후임사관님도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가운데 오실 거라 믿고 지금까지 헌신하셨던 모든 사관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또 이 교회가 계속해서 성장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정길: 현재 캐나나 이민교회들의 고민은 이민자 수가 점점 줄어들어서 더 이상 한국으로부터의 이민자 수로 교회를 채워가지고 성장해 나간다는 것은 어렵다는 겁니다. 아마 그런 현상은 호주도 그런 현실에 직면하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시드니한인교회는 20주년을 넘어가면서 이 지역의 한인들을 뛰어넘어 좀 더 다문화권에 있는 영혼들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사역의 지경이 넓혀져야 되고 그러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확보하는 것이 아마도 우리 구세군한인교회가 향후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면서 개발해 나가야되는 과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3월에 오시는 후임 사관께서도 이러한 쪽에 더 좀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를 하면서 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지금처럼 시기적절할 때마다 일꾼들을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남기숙: 저는 시드니한인영문이 20년을 맞이하면서 시드니에 구세군교회가 현재 하나밖에 없는데 더 성장하고 부흥해서 제2, 제3의 구세군교회가 세워져서 많은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그런 사역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하겠습니다.
 
장행심: 이제 시드니구세군교회가 청년이 됐으니까 영혼을 살리는 일에 주저하지 말고 힘차게 뛰어 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건 안 될 거야가 아니라 무조건 될 거야 그러면서요. 특별히 지금 이한상 사관님이 신혼부부를 위한 사역을 잘하고 계시는데 정말 좋은 교회로서 믿음의 명문가가 많이 나오는 시드니한인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제5대 이한상 사관     © 크리스찬리뷰


이한상: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이 앞으로도 인도해주실 줄로 믿습니다. 또 사관들에 의해서 이 교회가 도약하고 발전하기도 하지만 주님께서 진정한 주인이 되시고 그리고 성도들이 합심하여 수고하고 헌신할 때 교회는 성장하리라 믿습니다.
 
저는 사관들이 목자가 아니고 개의 역할이라고 하는데 세퍼트라고 이야기합니다. 양이 있고 예수님이 목자가 되시고 저희는 양치기 개의 역할을 잘 감당해야하는데 그러한 사관님들이 계속 이곳에 오셔서 이 교회가 날로 부흥되고 도약하는 그런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회자: 눈물로 씨를 심으면 기쁨으로 단을 거둔다는 말씀대로 초창기에 몇 성도가 눈물로 겨자씨를 심듯 말씀의 씨앗을 뿌렸더니 이제는 그 겨자씨가 어느덧 자라서 공중에 나는 새가 깃들 만큼 되었으니 오직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섭리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새 힘을 얻고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가듯 힘차게 사역을 감당하는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가 되어 지금까지 이룬 것보다 더 큰 일들을 이루어 주님께 크게 칭찬 받으시길 기원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사관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기념예배, 병사 입대식,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를 갖고 앞으로 사역의 지경을 넓혀 나아갈 것을 다짐했다.     © 크리스찬리뷰


*이글을 정리하는 동안 구세군시드니한인교회 초대 담임사관을 지낸 김동진 사관이 창립 20주년 축하의 글을 보내왔다.

시드니한인영문 창립 20주년을 축하드리며

“시드니 주 3회 운항” 광고가 광화문 사거리 대형 전광판에 뜰 무렵 1993년 11월 27일 시드니에 첫발을 디뎠다. 12월 12일 유학생 서너 명으로 첫 예배를 드리긴 하였지만, 2년이 흐른 1995년 12월 28일 호주구세군에서 정식교회로 인정받는 창립예배를 John Gowans사령관의 인도로 드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처음 2년은 교회 뿌리를 내리기보다 지역사회에 다가가며 구세군의 이미지를 그려가는 시간이었다. 영어회화교실, 건전가요 부르기, 한글학교 등 교민사회와의 접촉점을 만들어갔다.
 
한편 일찍이 다문화 사회를 이룬 호주의 풍토 속에서 이민자들로 살아가는 우리이기에 함께한 타민족을 이해하며 교류하는 일에 즐거움을 더해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어느 이민사회든 모국에서보다 더 복잡하고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기 마련이다.그래서 이민교회는 언제나 그 중심에 있어야 하기에 이민목회가 정말 쉽지 않다. 교민들이 어려운 만큼 목회자도 그 짐을 지게 된다. 개척사관으로 감사한 것은 후임 사관들이 군우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분들의 수고를 주께서 기억하실 것이다. 하지만 현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If we are to better the future, we must disturb the present." 
(만일 우리가 미래를 향상시키려 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현재를 흔들어 놓아야 한다.)
 
이는 창립자 부인 캐서린 부스(Catherine Booth)의 말이다. 그렇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사람에겐 더 나은 미래가 없다. 오늘 이민사회와 교회의 현실은 녹녹치 않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보며 창립자의 열정으로 불태울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나은 미래가 있다.
 
이제 개척 22년, 창립 20년이면 보다 청년의 기백과 야성을 지니고 더욱 이민사역의 다양한 선교적인 과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 일에 구세군한인교회가 앞장서 주기를 기대한다.

김동진 사관|한국구세군 본부




정리/김명동|크리스찬리뷰 편집인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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