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합니다

정지홍/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6/08/29 [10:52]
얼마 전 브라질 리우에서는 올림픽이 폐막을 했습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 화제도 많았습니다. 세계적인 육상 스타 우사인 볼트는 100m, 200m, 400m 계주에서 소위 ‘트리플 트리플’이라는 위업을 달성했고, 골프에서 박인비 선수는 올림픽에서 금메달까지 거머쥐면서 여자 골퍼로는 유일하게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라는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은 최상의 기량을 발휘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합니다. 무수한 경쟁을 이기고 금메달을 딴 선수들이 시상대에 올라 국가가 울려 퍼질 때면 그 모습이 아름답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지난 8월 16일 여자 달리기 5천 미터 예선에서 금메달 시상식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그 감동의 주인공은 뉴질랜드 선수 햄블린과 미국 선수 타고스티노였습니다.
 
그들은 예선전에서 탕~ 하는 출발 신호와 함께 결승선을 향해 질주했습니다. 5천 미터 중 3천 미터를 통과할 즈음 뉴질랜드의 햄블린 선수가 넘어졌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어서 남은 2천 미터만 잘 달리면 결선에 진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4년 동안 구슬 땀을 흘리며 준비했던 올림픽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햄블린은 큰 실망감에 트랙에 넘어진 채로 얼굴을 파묻고 울었습니다. 그런데 햄블린 선수만 넘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햄블린이 넘어질 때, 미국의 타고스티노 선수가 햄블린의 발에 걸려 함께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먼저 일어난 타고스티노 선수가 트랙에 엎드려 울고 있던 햄블린에게 다가 손을 잡고 말합니다.
 
“괜찮아? 일어나 함께 달리자!”
 
그리고는 햄블린의 손을 잡아 일으켜 줍니다. 몸을 웅크린 채로 울고 있던 햄블린는 타고스티노의 손을 잡고 일어났습니다. 두 선수는 이날 처음 만난 사이였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일어나 나란히 달리는데, 미국의 타고스티노 선수가 다리를 심하게 절룩거리더니 이내 쓰러집니다. 타고스티노의 부상이 더 심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뉴질랜드의 햄블린 선수가 다가가더니 “괜찮아? 달릴 수 있겠어?”하며 타고스티노 선수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두 선수가 다시 달렸습니다. 절룩거리며.
 
그러는 사이에 이미 다른 선수들은 보이지도 않고 1위로 달리던 선수는 그들을 한바퀴 차이로 추월을 했습니다. 햄블린은 앞서 달리면서 뒤 따라오는 타고스티노를 수시로 돌아보며 외쳤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  햄블린 선수가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고 뒤이어 들어오는 꼴찌 선수 타고스티노를 향해 두 팔을 벌려 포옹을 하며 맞아주었습니다. 그렇게 두 선수는 길고도 길었던 5천 미터를 완주했습니다.
 
햄블린의 기록은 16분 43초 61, 타고스티노의 기록은 17분 10초 02. 이미 결승선을 통과한 다른 선수들에 비해 형편 없는 성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날 육상 경기장에서 기록은 의미가 없었습니다. 기록보다 더 큰 감동을 선사한 두 선수를 행해 관중들은 일제히 기립을 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놀라운 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5천 미터 예선을 주관했던 경기 감독관이 햄블린와 타고스티노 두 선수에게 결선 진출 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또 한 번의 감동이 리우의 육상 경기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만일 햄블린나 타고스티노 두 선수 중 한 명이라도 홀로 남겨졌거나 달렸다면 이 같은 감동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넘어졌지만 함께 일어서고 함께 달렸고 함께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큰 감동을 선사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답고 놀라운 결과를 낳습니다. 사람끼리 함께 하는 것이 이토록 감동적이라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겠습니까?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요셉이 그 증인입니다.
 
다 끝나버린 인생, 요셉

 
야곱은 네 명의 부인을 통해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요셉은 그 중 열한 번째로 야곱이 노년에 얻은 늦둥이였습니다. 요즘에도 부모들이 늦둥이 낳게 되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더우기 요셉은 네 명의 부인 가운데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부인,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이 얼마나 특별했겠습니까? 
 
성경은 야곱이 “여러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편애했고, 그 편애는 옷으로 나타났는데,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채색옷은 일을 할 때 입는 옷이나 평상복이 아닙니다. 소매가 길고, 화려한 색깔로 디자인 된 정장 외출복이었습니다. 그 옷을 입고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형들은 언제든지 일을 할 수 있는 짧은 민소매에 작업복 차림이었습니다. 그래서 옷만 놓고 보면 요셉이 그 집의 장자였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동생인데도, 형들이 편안하게 말도 못합니다. 그러니 요셉이 오죽이나 미웠겠습니까?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노예로 팔았습니다. 이때 요셉의 나이가 열일곱 살입니다. 17년 동안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아들이, 이제는 목에 사슬을 칭칭 감고 손과 발이 묶인 채로 애굽에 끌려가는 비참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신세가 바뀌어도 어떻게 한순간에 이렇게 바뀔 수가 있어요?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린 인생이 된 듯 합니다.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여러 조상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행7:9). 하나님께서 애굽에 팔려간 요셉과 함께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전에는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시지 않았을까요? 요셉이 애굽의 노예로 팔려오기를 기다리셨다가 하나님이 그때부터 요셉과 함께 계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부터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요셉과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시거나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그렇다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계셨다는 성경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요셉이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해주던 아버지도 없고, 채색옷도 없고, 자유도 없고, 누구도 의지할 수 없는 비참한 노예가 되었습니다. 정말 이제는 하나님 밖에는 믿을 데가 없습니다. 그때서야 요셉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받을 때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의지할 것이 없고, 가장 밑바닥 인생인 노예가 되었을 때,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을 믿을 수밖에 없을 때에,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요셉의 이야기는 온통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다는 이야기 뿐입니다.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을 때에도,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줄 때에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똑똑해서 애굽의 총리가 되고, 머리가 비상해서 간수장이 모든 일을 그의 손에 맡긴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운이 좋아서 애굽의 총리가 되고 범사에 형통하게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요셉이 언제나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떠나시거나 우리를 버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이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1분 1초도 무의미한 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생이 가장 가치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사는 사람이야말로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의 요셉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정지홍|좋은씨앗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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