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우리 영혼은 잠을 자는가, 천국 가는가?

장운철 | 입력 : 2010/05/17 [07:41]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11) - 요 11:11
                                                          
                                                                                      
질문 하나 던져 본다.
“사람(기독교인)이 죽으면 그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그 영혼은 어떻게 될까? 첫째 하나님께로 간다, 둘째 잠을 잔다. 무엇일까?”

지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던져 본 질문이다. 물론 그들은 모두 답을 알고 있었다. 주관식으로 문제를 냈다면 평상시 알고 있던 대로 답을 말했을 것이다. 객관식으로 낸 게 올무였다. 자신감이 떨어졌다. ‘하나님께로 간다(또는 천국간다 등)’로 그 답을 알고 있던 게, ‘잠을 잔다는 건 뭐지’ 등으로 순간 멈칫거린 것이다.

이 때 다음과 같은 성경구절들을 제시하면서 영혼은 하나님께로 가는 게 아니라 ‘잠을 자는 것’이라고 주장하면 어떨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 11:11, 개역개정)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행 7:59-60, 개역개정)


   
성경구절까지 제시했으니 할 말이 없어지게 됐다. ‘신약만 그럴까’라고 한 번 더 질문을 해보는 이에게는 단 12:2 등을 제시할 수도 있다. 더욱 올무에 단단히 걸려들게 된 꼴이다. 그런 후 ‘당신은 성경을 잘못 배웠다. 정확히 배우는 곳으로 가자’고 권한다면 설득력이 있게 된다.

최근 한 이단 서적을 읽었다. 물론 연구 차 일부러 시간을 내어 접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도 ‘영혼은 잠잔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다. 잠잔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잠자는 장소가 필요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천국과 낙원을 분리시키고 말았다. 낙원은 천국에 들어가기 전의 한 중간 단계로 설명을 했다. 그리고 그 낙원에서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잠을 잔다고 한 것이다. 재미있는 주장이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간 자가 아직까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우니 일이 계속해서 잘못되어진 셈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이 과연 잠을 자는 것인지 아니면 기존에 알던 대로 하나님께로 가는지 그것이 밝혀지면 해결될 것이다.

정답은 다음과 같다. 사람(기독교인)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간다는 게 맞다. 기존에 알고 있던 대로다. 그렇다면 ‘잠 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죽었다’는 것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오늘날 한국에서는 ‘죽었다’는 것을 ‘돌아가셨다’로 표현한다. 종교적 의미까지 담긴 문학적인 표현이다. 영어권에서도 마찬가지다. 죽었다는 단어가 분명히 있음에도 ‘gone’이나 ‘pass away’ 등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거친 용어들을 부드럽게 표현함으로 부담을 줄이려는 것이다.

성경에도 완곡어법은 자주 사용된다. 예를 들어보자. 아브라함이 한 종에게 일을 시키면서 맹세하는 장면이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뼈(허벅지, 개역개정) 밑에 넣으라”(창 24:2, 개역성경).

‘환도뼈 밑에 손을 넣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 생식기 있는 곳에 손을 넣으라는 것이며 이것은 후손을 두고 맹세한다는 엄숙한 행위를 표현하는 말이다.

성경은 이미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영혼이 하나님께로 감을 여러 곳에서 설명하고 있다. 살펴보자.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 5:8).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빌 1:23).

사도 바울은 죽음 이후에 주님과 함께하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며 그것을 소망하고 있다. 누가복음 16장 22-23절의 나사로와 부자 사건도 마찬가지다. 죽은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에 가 있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아브라함 품은 유대인들이 흔히 쓰는 어법으로 천국에 들어갔음을 말한다(그랜트 오스본, <누가복음>LAB주석시리즈, 성서유니온, 2003, p.633).

   
▲ 베르나드 루이니 <세례요한의 목을 들고 있는 살로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이를 명확하게 언급해주고 있다. 살펴보자.

“인간의 몸은 죽은 후에 티끌로 돌아가고 썩게 된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죽지도 않고 잠 자는 것도 아니고 불멸의 실체로서 곧바로 그 창조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전도서 12:7 등 참조)”(박윤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영음사, 1989, p.203).

박일민 교수(칼빈대학교)도 ‘잠잔다’는 표현에 대해 “죽은 사람의 육체 상태가 자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에 불과하다”며 “자는 사람들이 깨어나는 것처럼, 죽은 사람도 장차 부활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박일민, <초보자를 위한 신학입문>, 성광문화사, 2001, p.211). 루이스 벌코프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경은 믿는 자가 사후에 즉시 의식적 생활을 향유하는 것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눅 16:19-31, 23:43, 고후 5:8, 빌 1:23, 계 6:9)”며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잠잔다’는 소위 영혼수면설을 정면으로 거부했다(루이스 벌코프, <기독교 교리 요약>, 소망사, 2005, p.229).

성경 한 구절의 의미를 명확하게 아는 것은 이단들의 계속되는 공격으로부터 자신과 교회를 보호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출처/장운철(교회와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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