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60주년 호주 참전 용사 이메일 인터뷰 (II)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5/31 [11:12]

▲ CCM가수 조수아 초청 콘서트에 참석한 참전 용사 부부와 문광식 목사(오른쪽)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존 자렛트 회장이다.     © 크리스찬리뷰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


올해로 한국전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한국민이나 저희 참전용사가 함께 한국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새로운 우정의 결의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호주에서 한국전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국에 대하여 잘 알지는 못하였지만, 자유 우방국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참전에 지원하였고, 1952년도에 한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 때 저의 나이는 19살이었습니다.

제가 속한 부대는 전후방을 드나들며 전우들의 군복을 세탁하는 이동 세탁장 운영과 그들이 이동 막사에서 샤워를 할 수 있는 이동 샤워 시설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1956년에 호주로 귀국하였으니까 한국에 머문 기간은 4년 정도였습니다.

저는 참전 당시 호주 육군 병기부대(Royal Australian Army Ordnance Corps) 소속이었습니다. 호주 군인들은 가장 용맹한 군인들로 이름을 떨쳤고 많은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많은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잘 알려진 가평전투입니다.

▲ 존 자렛트 회장     © 크리스찬리뷰
 
저는 그 당시 가평에서 가까운 지역에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가평 전투에 가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동료들을 통하여 그 당시 상황을 많이 들었습니다.


3대대들은 치열한 전투를 마치고 잠시 후방으로 돌아와 터키 군인들과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중국 인민군들이 들이 닥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상자들이 나왔고 부상자들을 탱크로 실어나를 정도였습니다. 친구 한 명은 탱크를 운전하였는데, 인민군들이 탱크 위로 사방에서 올라와서 탱크를 380도 돌리며 인민군들을 떨어 트리고 후퇴할 정도였습니다.

급작스런 공격으로 일단 후퇴를 하였지만 다시 그 고지를 탈환하여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고, 다시 공격을 시도하였지만 의외로 너무 많은 인민군이 포진하고 있어서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결국 다시 원래의 고지를 탈환하였지만 희생자가 너무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A, B, D 중대가 있었는데, A중대는 가운데, B 중대는 왼쪽에, D 중대는 오른쪽 언덕에 있었습니다. 공군의 지원을 요청하여 미공군이 지원을 하였는데, 목표 지정 표지를 잘못 놓아서 D 중대에 잘못 발포를 하여 희생자가 생겼습니다. 다시 인민군쪽으로 표지를 돌려 놓아서 나중에는 제대로 인민군을 향하여 발포하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 한국 전쟁 당시 존 자렛트가 참전했던 육군 병기부대원들의 기념 촬영     © John Jarrett
 
저는 직접적인 전투요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전투에 가담한 군인들보다는 고생이 심하지는 않았습니다. 주로 함께 움직였던 포병들의 고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동하며 샤워시설을 설치하였는데 그 과정만으로도 정말로 힘이 들었습니다.


한국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였던 호주군들에게 특히 겨울 추위는 감당하기 어려운 기간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따뜻한 호주에서 살다가 1952/53년도 겨울에 한국에 도착하였는데, 처음에는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도 그곳 겨울이 얼마나 추운 날씨인지에 관하여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따뜻한 여름을 보내고 있다가 도착한 한국의 한 겨울은 한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나이가 어렸고, 또 처음으로 전쟁터에  파병된 저로서는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들이 충격이었고, 모든 것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습니다.

군인들도 무척 힘들었지만 나의 눈에는 모든 것이 파괴된 상황 속에서 아무 것도 제공되지 않았고 도움을 얻지 못하였던 어린이들과 노인들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들이 당면하였던 고통과 그 가운데서도 연명하며 생존하여 나가는 모습은 차마 눈으로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그 자체가 저에게는 충격이여서 지금도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잠시 한국에 남았다가 호주로 돌아왔습니다. 전쟁이 휴전된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난 1995년도에 저와 저의 부인, 그리고 몇 명의 전우들이 함께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달라진 한국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평과 부산에서 가졌던 참전 기념식은 지금도 깊은 감동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물었습니다. 만일 누가 “전쟁이 당신에게(우리에게) 준 교훈은 무엇인가?” 그 질문을 받고 저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 지 잘 모르겠지만 꼭 한마디 해야 한다면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마십시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전쟁은 참으로 모두에게 비극입니다. (참고적으로 다시 총을 들고 여러분의 나라에 참전하기에는 저도 너무 늙었습니다.)

▲ 존 자렛트 회장이 촬영한 한국 전쟁 전후 서울 거리의 모습. 위부터 미군 전투기가 서울 상공을 날고 있으며, 중앙청과 광화문, 동대문 거리의 모습들이 한가롭다. 맨 아래 사진은 외국인들을 위해 비원을 오픈했다고 영문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 John Jarrett
 
전역 후에 휴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심한 고통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처음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사람들과 특별한 연결이 되지 않았기에 혼자 정신적인 공허감을 이겨나가기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에는 다른 참전용사들이 단체를 형성하고 함께 서로 만나고 교제할 수 있는 시간들이 많아지면서 쉽게 적응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학교에 가서 어린이들에게도 한국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들이 나에게 많은 힘과 회복을 주었습니다.


참전용사회를 통하여 서로의 고충과 우정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정말 큰 자산입니다. 호주 각 주에 한국전 참전 용사회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인터넷의 도움으로 서로 잘 소통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많은 참전용사들 중에는 아무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에 몇 명이나 되는 지에 관한 정확한 숫자를 아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끝으로, 한국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 뿐아니라 한국전에 참전한 모든 용사들이 유엔군으로서 한국전에 참전한 것과 또 한국인들이 이룩한 현재의 일들, 그리고 지금도 이루어나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모두 진심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글/존 자렛트 한국전쟁 참전용사 연합회 아들레이드 지회장
번역/문광식 아들레이드장로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 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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