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세 번이나 비껴간 순간 “하나님을 경험했다”

- 실미도 현장의 유일한 생존자 양동수 장로 -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5/31 [11:19]

필자는 6년 전, LA에서 전혀 뜻밖에 호주에서 사역하다 LA동양선교교회 부목사로 있던 현승학 목사의 안내로 소위 '한국체험'이란 미명으로 어느 극장에서 ‘실미도’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영화를 LA에서 본 것이다. 그때의 그 얼얼함이란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 "우째 이런 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한국 영화사의 진기록을 세우며 방영된 '실미도'는 1968년 4월에 창설됐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684부대’ 또는 ‘김일성 주석궁 폭파 및 김일성 암살부대’의 처음과 나중을 다루고 있다. 이 부대는 그해 1월 21일 북한특수부대(124군 부대)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한 것이 직접적인 창설 계기가 됐다.


분노한 박정희 대통령은 보복조치로 특수부대 창설을 명령했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명을 따랐다. 인원은 남파 무장공비와 똑같은 31명으로 구성했고, 인천에서 서북 방향으로 24km 떨어진 실미도가 훈련 장소였다. 훈련 목적은 북한 주석궁 침투, 독도법, 산악훈련, 폭파기술, 암살 방법 등을 익혔고 체포되면 죽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훈련 중 7명이나 사망할 정도로 혹독한 훈련이었다.

그러나 실전명령만 기다리며 묵묵히 참아온 3개월간의 훈련이 끝나도 작전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다. 보급과 지원도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옥같은 훈련을 3년이나 더 받으며 침투명령만 기다렸다. 그 사이 중앙정보부장은 김계원을 거쳐 이후락으로 바뀌었고 남북 대치국면도 화해분위기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느덧 실미도 특수부대의 존재가치도 사라졌다. 684부대는 임무가 필요 없게 되었다.


 
영화에서는 중앙정보부의 부대 해체지시에 위기감을 느낀 훈련병들이 실미도 탈출을 감행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 훈련병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사실은 혹독한 훈련에 대한 보상과 미래가 없어졌다는 데 대한 분노 때문에 총을 들었다는 게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1971년 8월 23일 새벽 6시, 실미도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훈련병(특수공작원)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24명의 기간요원 중 6명만이 살았을 뿐, 18명이 현장에서 사살되고, 24명의 훈련병(특수 공작원)들은 3년 4개월 만에 실미도를 빠져나오던 중 2명은 실미도에서 기간요원과 교전으로 사망하였고, 22명이 무의도를 건너 고깃배를 탈취하여 인천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청와대로 가서 박정희 대통령과의 면담이 목적이었다. 인천 송도 조개 고개에서 버스를 탈취, 서울로 진입하면서 군경과의 충돌로 2명이 죽었다. 다수의 민간인과 군경도 총격전에 희생됐다.

이날 서울은 발칵 뒤집혔고, 시민들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마침내 서울 대방동에까지 이르렀으나 버스가 노량진 유한양행 앞 가로수에 받혀 멈춰서자 이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쌍방간에 교전 중 수류탄이 터지면서 폭사하며, 자폭한 것이다. 16명이 현장에서 죽었고, 6명이 체포됐으나 이들 중 2명은 병원에서 죽고, 4명은 다음 해에 총살형에 처해졌다. 남북대치가 첨예했던 1970년대 초의 대한민국의 정치적인 정체성 자화상을 다룬 영화가 바로 '실미도'였다.

 

실미도, 31명의 '인간병기' 제조공장

그러나 역사 속 실미도는 30여 년 가까이 ‘익명의 섬’으로 머물러야 했다. 침묵을 강요한 권력과 진실에 대한 망각 때문이다. 영화 속 실미도는 현실에선 아주 가까이 있었다. 서울에서 인천 신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다.

영화에서는 실미도 부대원 31명이 강인찬(설경구 분)이나 상필(정재영 분) 등과 같이 사형수나 무기수 같은 강력 범죄자들로 구성된 것처럼 돼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당시 조사 자료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대원의 직업은 암표장사, 소매치기, 택시 기사, 포장마차 주인, 권투선수, 미군부대 종업원 등 각종 전과자가 절반 가량됐지만 대부분 ‘잡범’ 수준이었고, 기혼자 2명을 포함해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특수 공작원 31명에 대한 훈련은 공군 2325전대 209파견대가 맡았다. 영화에서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31명의 훈련병들에게 교육대장 김재현 대위(안성기 분)는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고 외친다. 이때부터 냉철한 조 중사(허준호 분)의 인솔 아래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 훈련'이 시작되고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했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 위에 역력히 비쳐 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김일성 장군…” <다음호 계속>

 

글/송기태(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두란노선교교회 담임목사)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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