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중에 만난 한 권의 책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10/05/31 [11:20]
 
                                                                                 글/김연려

 
영어교수가 추천한 책


1950년 9월 29일 서울중앙청 광장에서 서울 수복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이날 맥아더 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다. 6.25동란 발발 후 3개월 동안 필자는 진해와 창원 중간에 위치한 성주사에서 진해군항

방어를 담당한 해군사관학교 대대에 예속된 한 분대의 말단 생도로 근무했다. 입교한지 15일, 일본군이 남긴 99식 소총을 한방도 쏴보지 못 한 체 전쟁대열에 가담했었다. 그러나 서울이 수복되자 바로 우리는 학교로 복귀하여 정상교육이 시작되었다.

귀교하여 놀란 것은 입교식 때 못 보았던 서울에서 피난 온 10여 명의 저명 대학교수들이 우리학교에 부임한 것이다. 어떤 이는 해군중위 또 대위도 되고 한편 장교 대우 문관도 있었는데 관사도 배당하여 가족들과 함께 정착할 수 있었다.

초대 해군 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학문과 문화 부문에도 식견이 있었던 분이라 교수, 음악가 등 각 방면의 지식인들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교수로 특채했다. 물론 휴전이 되자 대학교수들을 각기 대학교로 복귀하도록 배려했다.

60년 전 일이라 신임 영어교수의 성함을 기억 못하는데 첫 시간 강의에서 영어책은 덮은 채 함석헌 선생을 주제로 2시간 내내 강의했다. 다음은 간추려 본 내용이다.

“평북 오산중학을 졸업하고 동경으로 유학 가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귀국하여 모교인 오산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함석헌 선생은 김교신(金敎臣)주필이 발행하는 종교잡지 성서조선(聖書朝鮮) 61호 1932년 2월부터 1935년 12월 83호까지 22회에 걸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聖書的 立場에서 본 朝鮮歷史)”를 발표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역사

강의가 끝난 후 학교 도서관에 달려가보니 이 귀한 한 권의 책을 서가에서 발견 할 수 있었다. 우리 7기 동기 80여 명 중에 크리스찬이 처음에는 필자뿐이었던 것 같다. 학업 외에도 수다한 잡일에 매달리는 최하위 생도들, 일명 보텀(bottom)신세인데도 틈을 타서 이 책을 독파했다. ‘성서적입장에서 본 한국역’, 필자가 읽은 책은 1950년 3월에 개정증보판으로 책명이 ‘조선’에서 ‘한국’으로 바뀐다.

당시 20세가 된 본인에게 쇼킹한 영향을 안겨주게 된 내용이 무엇일까? 함 선생이 집필 당시 31세 젊은 나이로 성서적 사관(史觀)으로 쓰여진 이 책은 그때까지 배워온 한국 역사와는 해석이 달랐다. 많은 역사적 사실을 하나님의 뜻으로 바꾸어 볼 때 고난의 역사가 한국민족을 사랑하고 연단하는 섭리(攝理)로 바라보게 되어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이제 팔순이 되었어도 내가 가장 기억하고 영향을 받은 책으로 주저 없이 이 책을 거명해 오고 있다.

 


함석헌 선생의 시국강연 

해군장교로 서울 해군본부에서 근무 중이던 50년대 후반에 필동의 어느 회관에서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처음 들을 기회가 있었다. 두루마기 고무신 차림에 흰색 긴 수염의 외모는 당시의 정권에 맞서 씨알과 민중 속에서 외치는 말씀으로 강연 장소는 청중으로 차고 넘쳤다. 이날의 강연은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명을 한층 더 깊이있게 가슴에 담아준 기억이 새롭다.

1987~1988년 상선 선장시절 1년 근무 후에 3개월씩 휴가로 지낼 때 함석헌 선생께서 원남동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라는 신문 기사를 접하고 문병 차 방문했다. 다행히 따님의 양해로 함 선생을 뵈울 수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호주로 이민 와서 바쁜 정착과정에서, 수원에 있는 계명고등학교 교장을 지낸 박광하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박 교장의 초청으로 버컴힐(Baulkham Hill)에 있는 자택으로 초대받아 방문했다. 서재로 들어갔는데 6권으로 된 두툼한 ‘성서조선’(聖書朝鮮)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옆에 함석헌 전집도 있었다. 이민올 때 한국에서 갖고 온 장서이다. 앞서 소개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가 수록된 시리즈 책들이다.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들은 본 교민들

박광하 교장 자택 방문은 우리에게 함석헌 선생을 둘러싼 화제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했다. 박 교장은 고려대에 재학 중이던 1960초에 함석헌 선생의 강연을 세 번이나 청강했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한 번은 장준하 씨와 함께 함석헌 선생이 강연장인 신설동 소재 대광고등학교 강당에서 강연 중의 일화이다.

두루마기에 고무신 그리고 긴 턱수염의 선생님이 강연 장소에 나타났는데도 참석한 대학생들이 떠들었다고 강연에 앞서 꾸중을 듣고서야 시작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일을 박 교장은 생기가 있던 젊은 날을 회상하며 말을 이어갔다. 필자도 모교인 대광고등학교 강당에서의 이야기라 더 관심이 쏠린 것 같다.

시드니 구세군교회에 함께 출석하는 김고환 군우도 대구에서 함석헌 선생의 강연 장소에 고교시절 담임선생님이 왠지 자기만을 데리고 YMCA회관에 데려갔는데 그때 받은 인상이 너무도 강했다고 했다. 어디에 젊은 학도들을 끌어드리는 그 무엇이 있는 것일까? 현재 70대 안팎의 세대들에게는 함석헌 선생의 고난의 생애가 뱃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등대와 같은 존재로 젊은 뇌리에 새겨졌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젊은이들이 갖지 못한 어른을 모신 것만으로도 감사한다. 

함석헌 선생의 사진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함석헌 기념사업회, 함석헌 평화포럼 등 여러 곳에서 대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www.google.co.kr/image에는 7,940매의 함석헌 선생의 사진들이 있어서 꼭 전재해 오고 痼?사진들이 수 없이 많았다. 이번에 독자들에게 선보인 사진은 지구촌 남반부 시드니에서 직접 대할 수 있었던 두 권의 책의 표지를 사진기에 담아 온 것이다.

 

김연려/시드니구세군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필자는 1971년 대령으로 21년만에 해군을 떠났고 상선선장으로 15년간 지구를 돌았으며, 88년 호주로 이민와서도 한국선급 검사원 등으로 일한 속칭 바다의 사나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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