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선교사 벨레 멘지스·마가렛 데이비스·데이지 호킹

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2/28 [14:42]

2020년 11월, 광복회 호주지회 황명하 회장을 인터뷰했다. 황 회장은 2021년 10월이면 한·호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인데 현재 외국인 독립 유공자가 72명이나 됨에도 불구하고 호주인 독립유공자는 한 사람도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황 회장은 본인이 이 일에 관심을 갖고 한국 여성 독립운동 연구소와도 업무 협약을 맺었다고 전했다.

 

이에 크리스찬리뷰가 호주 선교사들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고, 네트워크도 좋으니 광복회 호주지회와 함께 1919년 3·1만세 운동에 참여했던 호주 선교사들의 자료를 발굴하여 독립유공자로 추서하자고 제안했다.

 

2021년 4월에는 황명하, 권순형, 박웅걸, 주경식 이렇게 네 명이 자료 발굴에 대한 과정을 논의했다. 이렇게 시작된 날갯짓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되어 감사하게도 2022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마가렛 데이비스가 애족장(5등급)을 벨레 멘지스와 데이지 호킹이 건국포장의 훈장을 받게 되었다.

 

본지는 호주 선교사 3인이 한국 정부로부터 영예로운 훈장을 받게 된 것을 기념하고

그간의 과정을 역사로 남기기 위해 특별 좌담회를 마련했다. (편집자 주)

 

▲참석자 (가나다순)

•권순형 (본지 발행인)

•박웅걸 (쏜리 힐크레스트 연합교회 담임목사)

•황명하 (전 광복회 호주지회 회장, 현 광복회 해외 홍보대사)

 

•사회·정리 : 주경식 (본지 편집국장)

•사진 : 권순형

•일시 : 2022년 2월 16일(수) 오전 11:00

•장소 : 쏜리 힐크레스트 연합교회 (Thornleigh Hillcrest Uniting Church)

 

▲ 좌담회에 참석한 박웅걸 목사, 황명하 회장, 주경식 편집국장, 권순형 발행인(왼쪽부터)     © 크리스찬리뷰

 

사회자: 호주 선교사 독립유공자 추서에 대한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이게 가능할까 하는 심정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이렇게 결실을 맺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벨레 멘지스(Miss Belle Menzies), 마가렛 데이비스(Miss Margaret Sandiman Davies), 데이지 호킹(Miss Daisy Hocking) 등 세 명의 선교사들이 호주인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게 된 것은 호주연합교단(당시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지금 호주연합교단에 소속해 있다) 차원에서도 축하하고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한국 호주 양국의 외교적 차원에서도 역사적인 일이고, 민간외교적 차원에서도 큰 수훈을 세운 뜻 깊은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먼저 황 회장님께서 이 세 명의 선교사들이 어떤 상을 받게 되었는지 간략하게 설명해 주시죠.

 

최초로 한국 독립유공 훈장을 받는 호주인들

 

황명하 : 네. 먼저 이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2022년 2월까지 전체 독립유공자 숫자는 1만7,066명입니다. 거의 1만 칠천 명 가까이 한국인 독립운동가들이 받았고 이중에서 외국인 독립유공자는 72명입니다.

 

그리고 외국인 독립유공자가운데서도 여성이 받은 경우는 5명입니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많이 적습니다. 미국, 중국 등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이 있지만 호주인이 독립유공자 상을 받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호주로서는 의미있는 일입니다.

 

▲ 벨레 멘지스 선교사 ©CRMA 자료사진     

 

▲ 마가렛 데이비스 선교사 ©CRMA 자료사진   

 

▲ 데이지 호킹 선교사 ©CRMA 자료사진     


더군다나 이번에 상을 받는 분들이 모두 호주 여성 선교사들이라는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마가렛 데이비스 선교사가 독립유공자 5급 애족장상을, 벨레 멘지스, 데이지 호킹이 독립유공자 건국포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회자 : 아무래도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처음 시작하신 분도 황 회장이신데요, 호주 교포들 가운데 아무도 생각을 못하고 있는 이 일에 어떤 계기로 호주 선교사들을 독립유공자로 추서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셨는지 그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황명하 : 기독교인이 아닌 제가 호주 선교사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첫 번째 계기는 광복회 활동을 하면서 외국인 가운데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인물들이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분들 가운데 미국 선교사들이 꽤 있었지요.

 

그래서 ‘순국선열의 밤’ 행사 같은 것을 할 때 저는 일부러 그분들의 어록들을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차차 호주 선교사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2014년도에 권 발행인이 발행한 ‘KOREA: Then and Now’(한국: 근대와 현대 사진) 도록을 통해서입니다. 한국문화원에 갔다가 ‘한국근현대 사진전시회’에서 사진들과 도록을 접하면서 호주 선교사들이 찍은 근대 사진들을 보며 아, 이거다! 하고 직접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부산진 일신여학교 기념관에 3.1운동에 참여한 선교사 3인이 전시되어 있다.    

 

▲ ‘KOREA: Then and Now’(한국근현대사진전) 도록 표지;     © 크리스찬리뷰


여기에는 한 가지 배경이 있는데 제가 2008년부터 호주에서 광복회 호주지회를 설립하고 활동을 해왔는데 한국 국가보훈처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2010년인가? 호주에 한국 정부의 대표단이 왔었어요. 그때 방문한 사무관이 그러는 거예요.

 

▲ 동래여고 박물관과 부산진일신여학교 기념관. 동래여고 교정에 일신여학교 만세운동 기념비가 세워져있다.            © 크리스찬리뷰

 

“호주에서 독립 기념행사 같은 것을 할 때 한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요청하면 이르쿠츠크(러시아 주도) 같은 작은 주 도시라 하더라도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곳이기 때문에 지원금이 일차적으로 나가지만 호주는 독립유공자가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호주는 배당금이 할당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서러웠고 속상했습니다. 그래서 호주에는 한국 독립운동을 위해 힘쓴 인물이 없을까? 그때부터 고민하고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인터넷도 뒤지고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 관련 내용들도 찾아보며 쭉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어떻게 선교사들을 알겠어요. 다 공부를 해서 알게 된 거죠. 삼일운동과 관련된 호주 선교사들은 없을까? 그러면서 일신여학교가 관계있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러면서 벨레 멘지스, 마가렛 데이비스, 데이지 호킹으로 좁혀진 거죠.

 

그런데 어쨌든 권 발행인의 사진 도록을 보고 확신을 했습니다. 이렇게 당시의 사진이 존재하는 것을 보니 자료들을 찾을 수 있겠다 확신이 선거죠.

 

권순형 : 제 기억에 맨처음에는 벨레 멘지스와 마가렛 데이비스 두 명만 의논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바라 마틴(민보은) 선교사가 왜 두 사람만 하냐? 일신여학교와 관계된 분은 데이지 호킹도 있다. 그래서 데이지 호킹은 민보은 선교사님의 추천으로 함께 추서하게 됐습니다.

 

황명하 : 제가 한국에 있는 한국 여성독립운동 연구소의 심옥주 소장과 소통을 할 때 심 소장도 일신여학교와 관계된 데이지 호킹을 이미 알고 있더라고요. 아무튼 이렇게 일신여학교로 좁히니까 세 명의 선교사가 그려지게 되었습니다.

 

독립유공자 훈장 공훈 추서를 위한 자료 찾기

 

박웅걸 : 제가 이전에 크리스찬리뷰 영문편집위원을 하면서 일제 강점기 때의 호주 선교사들의 편지나 선교 활동들을 접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도전도 받고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많은 공부도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에 황 회장님과 미팅을 가지면서 속으로는 과연 이게 될까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그랬던 것은 제가 크리스찬리뷰 일을 도우면서 옛날 기록들을 많이 접했는데 호주 선교사들이 일제 강점기 때 선교활동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주경식 편집국장이 나누어준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이 세 명의 선교사들이 직접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뛰어들지는 않았지만, 당시 적지 않은 일신여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이 세 명의 선교사의 보호 속에서 교육을 받아 왔고 그분들을 통해 민족의식이나 자유, 인권의식들에 대해 생각이 트이게 되었으며 세 명의 선교사는 만세운동 때문에 일본경찰에 잡혀 취조도 받았습니다.

 

그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꼭 직접적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해야만 독립운동이라 할 수 있는가? 학생들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그들에게 옳은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깨우쳐준 선교사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호주장로교 선교부에서 발행한 크로니클 잡지 pdf 파일. 본지 주경식 편집국장은 6천여 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검토, 만세운동 자료들을 찾아냈다.©CRMA 자료사진   

 

그리고 얼마전 세 명의 선교사들이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아, 어마어마한 일이 성사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가서 수고한 선교사들과 그분들의 자손들에게도 얼마나 큰 자긍심으로 남겠습니까? 참 가슴 뿌듯해집니다.

 

권순형: 저도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좋은 역사자료들을 만들 수는 있겠구나 생각했지 훈장까지는 생각을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황 회장님께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자료가 제일 문제겠구나, 자료가.

 

그래서 주 편집국장과 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김동숙 사모께 이야기해서 작년 초에 셋이서 NSW 주 도서관에 갔습니다. NSW 주 도서관 고문서 보관실에는 쉽게 들어갈 수 없어서 주 편집국장 사모께 부탁을 드린거죠.

 

그곳에서 한나절을 찾았지만 필요한 자료들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호주장로교 여선교부 아카이브실을 생각한 거죠. 호주장로교 여선교부 아카이브가 멜번에 있는데 작년에 코비드 때문에 락다운이 되어 저희는 움직일 수도 없고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바바라 마틴(민보은) 선교사를 통해 아카이브에 접촉한 거죠.

 

그때 멜번에 살고 있는 김태희(광복회 청소년 민족캠프) 학생이 수고를 많이 했습니다. 여기서 저희가 움직일 수가 없으니까, 김태희 학생이 호주장로교 여선교부 아카이브에 관계된 분과 연락을 하며 당시의 호주 장로교 선교부에서 발행하는 잡지 크로니클(Chronicle) pdf 파일을 받아서 저희에게 보내준 거죠. 그것을 저희가 받아서 여기서 번역 작업을 했습니다.

 

▲ 고아원과 학교를 운영했던 멘지스 선교사를 도운 보조교사 서매물(오른쪽)과 멘지스 선교사(가운데). 왼쪽은 여성반 보조 장금이. ©CRMA 자료사진.     

 

황명하 : 권 발행인이 바바라 마틴 선교사님을 소개해 주셔서 그분이 김태희 학생에게 누구를 컨택해봐라, 어디를 가봐라 알려주어서 자료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락다운으로 멜번을 갈 수 없는 형편에서 민보은 선교사님과 김태희 학생이 없었다면 자료를 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분이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사회자 : 공훈추서를 위해서는 증거자료들을 첨부해야 하는데 한글 자료, 2차 자료보다는 일차 자료(Primary source)가 중요한데 저희는 멜번에 갈 수 없는 상황에서 두 분이 도와 주시지 않았다면 일차 자료를 얻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작년 5월에 김태희 학생으로부터 일차 자료를 받았는데, 이게 다 pdf 영어 파일이고, 분량도 많았습니다.

 

그 많은 자료 중에서 일신여학교가 설립된 1895년 자료와 만세운동과 관련이 있을 법한 1918년, 1919년 1920년, 그리고 신사참배 반대로 일신여학교 폐교와 관련된 1938, 1939, 1940년 자료들을 선별해 보니 6천여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었습니다. 다행히 작년 6월 시드니가 락다운 되어 밖에 나갈 수 없는 상황이 펼쳐져 제가 꼬박 2주 동안 움직이지 않고 Korea, Il Shin Girl’s School, Belle Menzies, Margaret Davis, Daisy Hoking 단어들을 중심으로 4천 페이지 정도의 크로니클 자료들을 읽었습니다. 다행히 1919년, 1920년도에 만세운동과 관련한 자료들을 발견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황 회장님께 보내 드렸죠.

 

권순형 : 저도 자료가 중요하니까 혹시해서 동래여고(구 일신여학교) 박물관 담당 박성일 선생께 연락했는데 없다고 하면서 자료 찾으면 오히려 자기네한테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동래여고를 여러 차례 가보았기 때문에 거기에 많은 선교사들의 유품과 데이비스 선교사 사진들도 있고 일신여학생들의 만세사진도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 분 선교사들의 만세운동 관련 자료들은 없다고 했습니다.

 

사회자 : 저도 PDF파일을 받기 전에는 부산진교회 김경석 장로님을 비롯해서 관련 자료들을 소장하거나 소식들을 알고 계실 분들에게 나름대로 연락을 취해 보았는데 모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연락드린 분들 가운데는 세 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만세운동에 관련되어 있다고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아서 긍정적이었습니다.

 

박웅걸 : 저도 과연 될까 생각했다가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적잖게 놀랐습니다. 이게 가능했구나.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번 호주 선교사 독립유공자 훈장소식과 함께 그동안 호주 선교사들이 한국땅에서 일궈낸 다른 역사적 사실들도 조명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실은 호주 선교사들이 일제 강점기 때뿐만 아니라 군사독재하에서도 노동자 등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일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사실들도 부각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 아시는 대로 일제 강점기 때 호주 선교사들이 당시 인간취급도 못받았던 나병환자와 백정들과 함께 공동체를 형성해 그들을 섬기고 도왔습니다. 이제 문민정부 시대에 이런 사실들이 다시 조명된다면 어마어마한 교육적인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찰스 멕라렌 호주 선교사 공훈 추서 계획

 

사회자 : 이제 세 명의 호주 선교사들이 오는 3월 1일 한국으로부터 독립유공자 훈장을 받게 됩니다.

 

물론 호주에서의 행사는 앞서 소개한 대로 5월 3일 멜번 PWMU(Presbyterian Women’s Missionary Union, 호주 장로교 여선교부)에서 호주 선교사 훈포장 전수식을 갖으며,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2022년 3.1 일 독립유공자 훈포장이 나갈 예정입니다.

 

황 회장님께서 이번 벨레 멘지스, 마가렛 데이비스, 데이지 호킹 등 세 명의 독립유공자 훈장추서 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과 함께 앞으로 찰스 멕라렌 선교사도 독립유공자 훈장에 추서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황명하 : 이번 훈포장 전수식이 끝나면 곧 찰스 멕라렌(Dr. Charles I. McLaren) 선교사도 공훈을 추서하려고 합니다. 찰스 멕라렌 선교사는 최초의 호주 정신과 의사로 한국에 와서 배돈병원 원장으로 섬기면서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일제로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태극기를 흔들거나 만세운동을 하지 않았지만 신사참배에 반대했다는 것은 신앙적인 의미이기도 하지만 일제의 정책에 반대하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 로버트 고든 멘지스 (Robert Gordon Menzies) 호주 연방 제12대 총리. 호주 초기 선교사였던 벨레 멘지스가 그의 고모였으며, 조카인 그는 멜본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기독학생연합회장을 맡았던 신앙인이었다.    

 

당시 호주선교회가 운영하던 배돈병원은 교원들과 학생들이 만세운동에 가담하여 체포되거나 감시를 받아왔고 호주 선교사들도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해 일본당국의 미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감시 하에서도 일본의 압력에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한국인 환자들을 돌보고 섬겼으며 신사참배 정책에 반대하다가 추방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찰스 멕라렌 선교사도 추서 작업을 빨리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자 : 그리고 황 회장께서 발견하신 것 중 하나가 1950년 한국전쟁이 났을 때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에 파병을 결정했고, 1960년 한국의 국력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한국과 호주의 수교를 맺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한 당시 로버트 맨지스 호주 연방총리가 벨레 멘지스의 조카인 것을 알고 아마도 고모의 영향으로 로버트 맨지스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인 생각을 갖고 한국을 도왔다는 합리적인 추론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점으로 볼 때 벨레 멘지스를 포함한 호주 선교사들은 한국으로서는 은혜의 천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나 여기까지 정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참석하셔서 공훈 추서과정의 일들을 나누어 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에필로그

 

사실 맨 처음, 벨레 멘지스, 마가렛 데이비스, 데이지 호킹 등 세 명의 여성 호주 선교사들을 한국의 독립유공자 훈장에 추서하려고 한다는 계획을 나누었을 때 이게 가능할까? 의아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던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이 세 명의 선교사가 직접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함께 부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만세운동과 관련되어 몇 달씩 옥고를 치른 것도 아니기에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실제 발로 뛴 흔적이나 자료를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 장로교 여성 선교부, 크로니클 선교잡지를 조사하면서 이들이 당시 어려웠던 한국의 식민지 현장에서 겪었던 수많은 일들을 낱낱이 다 기록할 수 없어서 그렇지 학생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한국의 아픈 현실에 동참했다는 행간의 뉘앙스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실제 공훈추서한 내용에는 세 명의 선교사는 일제 강점기 당시 3.1절 만세 시위운동에 참가한 일신여학교 학생들을 도운 것과 독립만세 운동에 사용할 태극기 깃대를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시위 후에 일제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폐기하는 등 학생 보호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취조받은 내용을 추서했다.

 

당시 일신여학교가 주도한 만세 시위는 부산, 경남지역 3.1운동의 효시가 되었고 시위에 참여한 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 등 12명은 이미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이곳에서 성경과 영어, 조선어 등을 포함한 근대 교육을 받으며 개화의식을 길렀고 남녀평등의식과 민족의식, 자주 독립정신도 배웠다. 뿐만 아니라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많은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와 여성 지도자들(양한나, 박순천, 주경애, 공덕귀, 박차정-김원봉 아내 등)이 일신여학교를 통해 배출되었다.

 

한국의 국가 보훈처는 “당시 호주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은 일제시기 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내는 모태가 됐 다”면서 2020년 3.1절을 맞아 벨레 멘지스, 마가렛 데이비스, 데이지 호킹 등 세 명에게 독립유공자 훈장을 포상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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