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진 십자가

박조향/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2/28 [14:52]
▲ 구세군라이드교회는 창립 2주년을 맞아 병사 입대식과 부교 임명식을 가졌다. 박조향 부교에게 임명장을 전달하는 지방장관 미리암 그루예스 사관.     © 크리스찬리뷰


80대 노인인 친정 어머님이 태평양을 건너 사랑하는 손자 손녀를 보러 오셨습니다. 커다란 여행 가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쵸코파이, 새우깡, 꼬깔콘 등 모두 아이들이 좋아했던 과자들을 할머니는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아이들은 고향의 맛, 추억의 과자들을 반가워하며 즉석 파티가 벌어졌습니다. 그리웠던 한국 과자를 먹느라 시끌벅적한 손자 손녀를 바라보는 할머니는 12시간 가량의 비행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얼굴에는 행복한 함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사실 한국식품점 가격이 모두 비싸게 느껴져 한국제품에 손이 가지않던 시절 얘기입니다.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친지들은 우리 가족이 호화 이민을 갔으니 걱정없다고 안심하고 있었답니다.

 

이민이라는 게 우리의 생각대로 되는 만만한 게 아니였습니다. 40대 중반까지 막힘없이 거침없이 살아왔고 그 성과는 확실했으니 착각하고 오만해졌던 거지요.

 

막힘을 모르던 인생이 호주에 오니 사사건건 모든 게 느리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안되는 것도 많아 슬슬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한국을 떠날 때 호주의 알미늄 샤시를 서울 지하철 업체에서 납품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으니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몇 달 만에 성사된 미팅에서 "이 비지니스는 국가 대 국가의 차원이지 개인이 관여할 수 있는게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성격이 급한 남편은 다 포기하고 자영업을 시작했지만 한국에서 수출이 왕이던 시절 대기업 바이어로 큰소리만 치고 다니던 독불장군이 손님이 왕이라는 상황에는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 부교로 임명받은 성도들로부터 서약을 받는 김환기 담임사관     © 크리스찬리뷰

 

멋진 관광지인 달링하버에서 반듯한 가게를 열어 운영한지 5년여 만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비싼 임대료와 직원들 임금, 물건값을 주고 나면 늘 적자였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애꿎은 아들들에게 볶아댔습니다. 후회하고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느라 집안 분위기는 지옥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저는 오로지 아이들이 아빠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에만 신경이 곤두서 있었습니다.

 

때로는 스트레스와 모멸감에 죽고 싶을 만큼 힘들고 가정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친정어머니는 이미 모든 상황을 감지하고 아무도 모르게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한국으로 떠나시기 전날 아이들에게 눈물로 안수기도를 해 주시며 “얘들아 내가 함께 있어보니 네 아빠 말이 하나도 틀린 게 없더라. 가장인 네 아빠가 크나 큰 시련을 겪는 중이니 너희들이 아빠가 하라는 대로 ‘예예’ 하면서 도와드려야 한다. 억울하고 답답하면 엎드려 기도해라. 주님께서 다 해결해 주실 거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다둑임에 굳어있는 아이들 얼굴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에미야, 너희 가정 십일조를 제대로 안할 때부터 조마조마하더라. 애비가 네게 주는 생활비에서 내는 십일조는 진정한 십일조가 아니다. 회사 수익 전체의 열의 하나를 바쳐야 진정한 십일조란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해보아라.

 

성경에 하나님 말씀을 시험해 보라는 구절은 말라기의 십일조 얘기 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네. 이젠 수입이 없어 계산 할 것도 없으니 잘 할께요"라고 답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에미야, 애비는 너로 인해 예수 믿고 네 뒤를 따라 구원의 길에 들어선 하늘 백성이다. 네 십자가는 네가 져야 한다"라는 말씀을 유언처럼 남기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남편과 부딪히기 싫어서 한국으로 피하려고 벼르던 중에 시드니를 떠날 수 없는 중대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 신장 기능에 이상이 생겨 투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이 가정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이였습니다. 언제나 내 등 뒤에서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투석은 매일 밤 9시에 시작하여 다음날 아침 6시에 기계를 끕니다. 이에 관련된 모든 일, 의료처치 준비부터 마감까지 남편이 초긴장 상태로 진지하고 꼼꼼하게 잘 수행해 주고 있습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에 고무되어 정성을 다해 간호를 해주는 남편 덕분에 지금 제가 순조로운 일상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팬데믹 1년 전에 갑자기 제 고관절에 문제가 생겨 일어서지도 못하고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최고의 영감 간호사가 그때부터 온갖 집안 살림까지 떠맡게 되었습니다. 24시간 지속되는 통증으로 인한 시달림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두 분 사관님의 간절한 기도와 담임사관님의 새벽기도 말씀 묵상이 크나 큰 위로와 치유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쏟아지고 천둥이 쳐도 제 곁에서 말씀과 기도로 붙들어 주시는 그 사랑의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2년 여의 고통의 시간에 기도해 준 교우들에게 감사하고 주일마다 음식을 만들어 보내주신 교회 교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동문 친지 여러분들의 사랑의 기도와 위로도 큰힘이 되었습니다.

 

▲ 부교로 임명받은 성도들과 병사로 입대한 성도들이 NSW/ACT 지방장관 미리암 그루예스 사관과 기념촬영 (2021. 4.11)     © 크리스찬리뷰

 

남편은 제가 누워서 예배 참석 못할 때도 스스로 구세군 유니폼을 세탁해 입고 1시간 30분씩이나 걸리는 교회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습니다. 주일마다 교회 안내를 맡아 정성껏 봉사하는 모습이 흐뭇합니다.

 

몇 주 전부터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하나님 만나러 출석하였습니다. 첫 예배날 내 아버지의 집을 찾은 탕자처럼 한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저를 살려주신 뜻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착한 딸이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내 십자가를 억지로 지는 순간, 그 십자가를 남편이 지도록 신의 한 수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남편의 지극정성에 누구보다 두 아들과 딸이 제일 기뻐합니다.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화목해졌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친정어머니의 만족스런 웃음 소리가 들려옵니다.〠

 

박조향|구세군라이드교회 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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