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론(敎會論) XI

주경식/크리스찬리뷰 | 입력 : 2022/08/28 [23:16]
©Gift Habeshaw


세상 안에서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교회는 세상 안에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그 교회와 세상 사이에는 십자가가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교회로 하여금 세상과의 관계에서 교회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상징(symbol)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세상과 화목하게 하셨으며 또한 기독교 공동체인 교회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고후 5: 18-20).

 

교회는 세상을 향해 문을 열고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자들을 향해 교회의 개방성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역교회의 문들은 꽁꽁 닫혀 있고 세상과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끼리 좋고 우리끼리만 교제하는 것에 너무 치중해 있는 것이다.

 

예배하는 교회는 반드시 세상을 위해 중재해야 한다. 그래서 베드로도 우리의 사명을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기 위함”(벧후1:19)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사실 예수 그리스가 오셔서 제일 처음 외친 사역이 바로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느리라”(마4: 17)였다. 이처럼 교회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나라의 전조와 증인으로서의 교회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교회라면 이처럼 복음 선포가 교회에서 중요한 순위를 차지하게 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과업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에, 일차적인 관심사는 숫자가 아니라 제자 삼는 것과 제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고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도록 하는 데 있다.

 

사실 세계 전체는 교회의 섬김의 사역(diakonia)을 위한 활동의 무대라고 볼 수 있다. 세상을 우리의 교구로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다양한 사역을 통해 세상을 섬겨야 한다. 그중 선교는 주님께서 교회에 부여하신 막중한 사명이라고 볼 수 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성취되어야 할 주님의 대 위임명령이다(마 28:18-20).

 

사도행전 8장에는 잘 성장해가던 예루살렘 교회에 갑자기 핍박이 일어나 흩어지는 장면이 등장한다. 학자들은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일어나 흩어지게 된 것을 사도행전 1장 8절의 말씀을 가지고 해석한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다시 말해, 성령의 권능으로 세워진 예루살렘 교회는 놀라운 속도로 부흥하게 되었다.

 

이처럼 베드로의 권능으로 하루에도 몇천 명씩 모이게 된 교회가 주님의 말씀대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게 되자 성령께서 억지로 유대와 사마리아와 전 세계로 핍박을 통하여 흩으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선교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과 그분이 우리를 세상으로 다시 보낸 목적을 밝혀 준다. 이것은 또한 성부의 목적(Missio Dei)이기도 하다.

 

그리고 누가는 사도행전을 통하여 초대교회의 선교적 확장을 성령의 사역으로 묘사한다.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의 기도로 바울과 바나바를 일차 선교여행에 동참시키신 분은 성령이시다(행 13:2).

 

성령은 바울에게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시했을 뿐 아니라 어떤 곳에서는 다른 뜻을 가지시고 그를 억제하기도 하셨다(행 16:6-7).

 

바빙크가 지적했던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세상으로부터 돌이키어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받고, 그리고 섬김의 제자도를 실천할 삶의 현장인 세상으로 다시 돌이키는 장(場)인 것이다.

 

여기에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셔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나아가도록 성령을 통해 역사하시는 것이다.

 

교회: 선포(kerygma), 교제(Koinonia), 섬김(diakonia)

 

흩어지는 교회가 세상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의 목소리에 묻히는 이유는 사실 모이는 교회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선교를 포함한 섬김의 사역(diakonia)을 잘 감당하면서 교회는 그 성도들의 삶 속에서 선포의 사역(kerygma)을 신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이미 살펴본 대로 교회의 표지인 말씀의 올바른 선포가 이루어져야 하며 성례의 정당한 집행 그리고 권징의 신실한 시행을 가지면서 교회의 구성원들을 세상 안에서와 세상을 향한 그들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고 성숙에 이르도록 잘 양육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섬기는 사역을 하기 위해서 성도를 먼저 온전케 한 후에 하겠다는 생각은 오산이다. 섬김의 사명(diakonia)을 수행하면서 또한 교회는 동시에 그 회중의 삶에서 선포의 사역(kerygma)과 성령을 통한 교제(koinonia)가 온전히 이루어져야 한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세 가지 사역인 말씀/선포(kerygma)와 교제 /양육(koinonia), 그리고 섬김/봉사(diakonia)는 언제나 함께 같던 것을 기억 해야할 것이다.

 

개혁교회의 생명력: 개혁정신

 

개혁교회의 사명은 ‘교회 성장’이 목표가 아니라 항상 개혁되는데 그 생명이 있다. 개혁교회가 개혁되지 않 으면 그 생명력을 잃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은 가? 개인의 신앙도 매일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매일 다시 사는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매일 개혁되어 나가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 교회는 개혁정신 보다는 교회성장이 더 큰 목표다. 자본주의 구조하에서 가장 고상한 가치는 ‘성공’과 ‘재물’이 되었고, 이런 세속화의 정신이 이미 교회에도 만연화 되어 복음보다는 성공이 더 큰 가치로 교회 안에서 인정받고 있는 상황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평가할 때도 복음이 바로 선포되는 교회보다는 숫자상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 소위 교회 성장이 이루어진 교회를 선호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들도 이런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 성장을 위해 무분별한 교회 성장 방법론들을 교회에 들여오고 교회 성장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이다.

 

마이클 호튼이 지적한 대로 교회는 이미 세상에 포로가 되어 버렸다.〠

 

주경식|본지 편집국장, 호주비전국제대학 Director, ACC(호주기독교대학) /ACT 교수

▲ 주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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