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09/26 [11:48]
▲ 변상욱 대기자는 호주 일정을 마친 후 출국 전날 본지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 크리스찬리뷰


변상욱 대기자, 한국 언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언론인, 한국민주언론상, 한국방송대상, 송건호 언론상, 한국방송대상 공로상 등 일반 언론인이 한 개도 받기 어려운 상을 무려 4개나 받은 그랜드 슬램 언론인, 이외에도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수없이 많다. 신천지를 15년간이나 추적해 8부작으로 탐사보도한 신천지 전문가, 한국 3대 페미니스트, 진 브라운 수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 변상욱 기자가 호주에 왔다.

 

크리스찬리뷰는 변상욱 기자를 지난 9월 호주로 초청했다. 호주를 처음 방문한 변 기자는 9월 1일 시드니에 도착해서 13일 동안 빽빽한 일정을 소화하고 9월 13일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기자가 변상욱 기자를 처음 만난 것은 9월 2일 시드니 공항에서였다. 9월 3일(토)에 있을 멜번호산나교회(담임목사 김종욱)의 신천지 이단 세미나 연합집회와 멜번에 있는 가평다리(Kapyong Bridge) 취재를 위해 함께 멜번으로 출발하기 위해서였다.

 

▲ 변상욱 대기자는 멜번호산나교회에서 신천지 이단 강연회 및 주일예배 설교 등 3회에 걸쳐 말씀을 전했다.               © 크리스찬리뷰
▲ 가평 다큐 제작 후원을 위한 서정남 목사의 성화 전시회가 멜번호산나교회에서 열렸다.     © 크리스찬리뷰

 

변상욱 기자는 ‘변상욱 쇼’와 TV를 포함한 여러 유튜브 방송에 예의 잘입고 나오는 진 브라운 수트를 입고 있었다. 처음 만났지만 유명인답지 않게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이 친근감 있게 다가왔다.

 

그는 멜번 일정을 마치고 9월 4일 시드니로 돌아와 바로 다음날부터 숨가쁘게 예정된 일정들을 소화해 냈다. 9월 7일(수)에는 호주 한인교육문화센터(KCC) 간담회, 9일(금)에는 호주 민주연합 주최로 한국현대사의 언론과 정치에 대해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10일(토)에는 시드니주안교회에서 연합집회로 신천지 이단 세미나, 11일(주일)에는 시드니영락교회에서 신천지 이단 세미나를 진행했다. 기자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날인 9월 12일(월) 오전에 쏜리연합교회에서 만나 단독 인터뷰를 했다.

 

▲ ‘한국 교회를 둘러싼 사회의 상황과 이단사이비’를 주제로 시드니지역 연합집회가 9월 10일 오후 시드니주안교회당에서 열렸다. 또한 12일 주일 오후에는 시드니영락교회에서 신천지를 중심으로 이단대책세미나를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각종 무술로 단련된 남자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부드러운 인상과 약간의 수줍음마저 비쳐져 각종 무술에 뛰어난 사람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그는 태극권을 비롯하여 유도, 검도, 태권도, 수벽치기 등으로 단련된 만능 무술인이다. 어렸을 때 몸이 허약해 어머님이 태권도를 종용해 시작한 무술은 검도는 공인 4단에 이르고 태극권과 수벽치도는 웬만한 무술인 빰치는 수준이다. 외유내강은 그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그의 심지 깊은 정의감이나 불의에 맞서는 용기 등은 아마도 이러한 무술로 단련된 그의 내공이 한몫 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가 CBS 초창기 기자 시절 때의 에피소드다.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일어난지 열흘이 조금 지나 한국사회가 들끓기 시작할 때였다. 방송실을 에워싸고 보호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고문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정권을 비방한 위험한(?) 방송을 내보냈다.

 

“사실은 이 일이 툭 터진게 아니고, 1987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전년도인 1986년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분노했었는데 기사를 써서 다행히 조금 나갔는데 그 후 기사가 안 나간 사건이 청량리 운동권 여대생 강제추행 사건입니다.

 

그것도 형사들이 경찰서 내에서 그런 거죠. 이것 때문에 막 분노하고 있는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진 거죠. 그런데 중앙일보에 기사가 짤막하게 간단하게 난 거죠. 그리고 동아일보에서는 그것보다는 약간 자세하게 기사가 나갔습니다.

 

▲ 변상욱 기자는 멜본에서 가평 다큐 촬영에 재능기부하여 인터뷰어로 참여했다. 한편 변 기자는 지난 6일 체스우드 중식당에서 시드니동포사회 단체장들과 환영오찬 및 상견례 시간을 가졌다.     © 크리스찬리뷰

 

그후로 기사가 막혔습니다. 더 이상 기사가 못 나간거죠. 그때 마침 제가 맡았던 2시간짜리 월요특집 방송이 있었습니다. 그때 30분 정도 리포터를 내보내고 1시간 30분 동안 시민들의 전화 토론이 있는 그런 포맷의 방송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포맷이었고 대한민국에서는 처음으로 했던 방송형식이었습니다. 이 특집방송으로 ‘고문피해자와 그 피해 가족들’을 내보내려고 준비를 해온 거죠.”

 

당시 CBS는 1980년대 초 전두환 군사독재의 폭압적인 방송통페합 조치로 보도 기능을 잃어버린 때였고, 생방송 취재를 마쳤던 변기자 일행은 “고문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라는 2시간 특집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당일 아침 CBS 방송 간부들은 이 정보를 미리 알고 변 기자의 특집방송 대신 음악방송을 내보내려고 계획하고 있었다.

 

“그때 간부들이 주조정실에서 진을 치고 음악방송을 틀려고 우리 팀과 옥신각신하고 있고, 방송시간은 다가오는데, 참 진퇴양난이었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선배가 꾀를 잘 냈습니다. 우리가 사람수가 많으니까 간부들을 들쳐업고 나가면 될 거 아니냐? 그래서 선배의 말에 간부들을 들쳐업고 옆방으로 몰아낸 후, 문을 잠그고 공권력 투입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책상과 캐비닛으로 바리케이트를 쌓고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엔지니어가 참으로 용기가 있었습니다. 간부들은 ‘빨리 음악 틀어!’ 라고 말하는데 음악방송을 안 틀고 동료들의 말을 듣고 특집 방송을 내보낸 거죠. 이미 제 리포트는 나갔고, 고문당한 사람들, 부모들의 애끓는 음성, 회사로 전화가 빗발치게 들어오고 난리가 났죠.”

 

이날 생방송은 1시간 15분 동안 이어졌다. 군부정권의 폭정 때문에 언론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시대였기에 사회적 반향은 대단했다. 여기저기 시민들의 전화가 빗발쳤고 다른 언론사들 기자들이 몰려 들었다.

 

이때 변상욱 기자는 방송을 마친 뒤에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해야 했다. 다행히 민주화 열기가 불붙던 시절이어서 감옥은 피할 수 있었다.

 

정의로운 기자가 되다

 

변 기자의 어렸을 때 꿈은 정치가나 외교관 또는 사상가가 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한학자였던 아버지 서재에 꽂혀 있던 많은 위인전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들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신정권하의 대학생활을 거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제가 대학 4학년 때 군대 마치고 복학을 했는데 ‘세상을 바꾸고 뭔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하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졸업한 후에 일반직장 생활은 관심에 없었죠.

 

그러면 학교에 남아 학문적인 길을 가야겠다 생각하고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사회학이다 보니 탈콧 파슨스, 칼 포퍼, 이런 사상가들의 책을 읽는데 갑자기 내 공부가 ‘죽은 학문’과 같다는 생각이 확 드는 거예요. 이게 지금 유신독재 밑에서 그리고 이어지는 5공 군사정권의 압제 속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상황하고 이 옛날 사회학, 철학 사상가들의 사상하고 어떤 의미를 갖고 연결이 될까? 그래서 여름 방학 때 책들을 쓸어 담아서 버렸습니다.

 

그리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럼 뭘 하지? 언론, 언론은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게라도 도움이 되지, 그래서 MBC 시험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MBC를 목표로 하고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CBS에서 공고가 난 거에요. 그때 MBC, KBS는 정권의 앵무새처럼 기득권이 되어 있는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그렇다고 규모가 작은 CBS는 그때 이미 보도기능을 정부로부터 제한받고 있었고, 언제 문닫을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원기도를 한 거죠. 그런데 제 마음이 CBS로 기울고 붙여만 주신다면, 회사에서 짜르지만 안는다면 끝까지 정의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는 그의 기도대로 CBS에서 36년간 기자로 일했다. 그리고 YTN에서 3년간 앵커로 일했다. 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한 말콤 글래드웰의 말대로라면 그는 이미 전문가 수준을 넘어 이 분야에 ‘도사’라 칭할 만하다. 호칭 그대로 ‘대기자’이다.

 

사실 ‘대기자’라고 호칭을 받는 언론인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것도 회사 사훈에 정식 인정받은 ‘대기자’는 손을 꼽을 정도이다. 변상욱 대기자는 CBS 사훈에 정식 이름이 올라가 있는 ‘대기자’이다.

 

그는 한국사회의 민주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로로 1996년 ‘한국민주언론상’을 받았다. 이것은 그가 얼마나 정의로운 인물인지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어디 그 뿐인가? 2005년에는 한국방송대상(라디오 부문)을 받았다.

 

▲ KCC가 개최한 변상욱 대기자 초청 회원 간담회     © 크리스찬리뷰
▲ 호주민주연합이 호주한인복지회관에서 개최한 변상욱 대기자 초청 ‘토크 콘서트’.     © 크리스찬리뷰

 

그리고 2015년에는 제14회 송건호 언론상을 수여받았다. ‘송건호 언론상’은 언론 민주화에 한 평생을 바친 송건호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발족한 상이다. 변기자가 이 상을 받았다는 의미는 그의 언론 인생이 무엇을 지향했는지를 알게 해준다.

 

2019년에는 한국방송대상 공로상을 받았다. 일반 언론인들이 하나도 받기 힘들다는 언론인 상을 그는 무려 4개나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40년 전 처음 CBS 기자가 되고자 서원했던 그의 기도대로 정의로운 길을 걸은 것에 대한 보상을 해준 것은 아닐까?

 

세상의 중심은 아픈 곳이다

 

그는 젊은 날 사상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고 싶어 언론인이 되었다. 그의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그는 소신껏 한국사회의 정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다.

 

예수원에 가면 대천덕 신부의 소신이었던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이다”라는 글귀가 걸려있다. 기자는 이 글귀를 좋아한다. 기도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땀 흘리고 수고하는 정직한 노동이 우리의 기도라는 것이다.

 

변상욱 기자도 “기도는 발로 뛰는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 말을 기자의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의 신천지 이단 세미나를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발로 뛰는 기자인 것을 알 수 있다. 신천지에 대해 15년을 팠다. 맨 처음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신천지에 빠져 있는 자식을 둔 부모 때문이었다.

 

▲ 변상욱 대기자는 관광보다 호주의 자연 보호와 환경 운동, 시드니의 식수원, 그리고 안작 추모공원 등에 관심을 갖고 시간이 나는 대로 현장을 찾았다.     © 크리스찬리뷰

 

그들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자신의 삶은 없고 플래카드를 걸어 놓고 길거리에서 밤낮으로 먹고 자며 자식을 찾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찢어졌다. 그래서 그는 신천지를 15년이나 팠다. 말이 15년이지 한 가지 주제를 이렇게 오래 쫓는다는 것은 그가 불행에 빠진 사람들을 보며 얼마나 공감하며 아파하는지 알 수 있다.

 

“세상의 중심은 아픈 곳입니다.” 그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말을 좋아한다. 기자는 세상의 아픈 곳을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그곳이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취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주변에 방치하지 말고 그들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제가 CBS에 입사할 때는 CBS가 보도금지 상태였기 때문에 관공서 출입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겉돌면서 핍박받는 사람들, 소외받는 사람들, 박해받는 사람들 그리고 소위 기층민중이라고 불리우는 가난하고 아픈 주변부 사람들을 만나 취재하면서 다른 시각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실 언론을 어느 편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관점 차이가 큽니다. 언론을 일반 시민들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과 언론사의 입장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저는 시민편에 자주 내려가 있는 바람에 시민들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비교적 쉬웠습니다.

 

그래서 언론을 이용하려는 관료나 정치집단이나 기업들보다는 기층민들의 입장이나 학자나 사회운동가들 편에서 언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참 기자다. 한국의 언론인들을 향해 ‘기레기’라고 부르는 현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의 기자 정신과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장면이 있다.

 

호주에 오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호주의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 하버 브릿지, QVB 빌딩, 본다이 비치 등을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변 기자는 호주에 와서 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바로 2020년 호주 NSW 주에서 최대의 산불 현장이었다. 그 화재의 현장이 어떻게 복구가 되었는지 복구가 빨리 된 곳은 어떤 요인이 있었는지? 안된 곳과의 차이를 알고 싶어했다.

 

뿐만 아니라 호주는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쓰레기 분리 수거 매립현장과 호주의 식수공급 방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 장소도 보고 싶어했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터키와 치른 갈리폴리 전투를 추모하는 안작(ANZAC) 추모 공원을 보고 싶어했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그가 보고 싶은 곳은 대부분 가보았다. 그의 기도는 발로 뛰는 것이었고 그의 발은 아픈 곳, 아픈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세상의 중심이 아픈 곳이기 때문이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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