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대대 박물관 큐레이터 ‘봅 바커스’

글/주경식 사진/권순형 | 입력 : 2022/11/28 [12:27]
▲ 타운스빌에 있는 제3대대 병영에 박물관을 세운 봅 바커스 씨     © 크리스찬리뷰


타운스빌의 가평대대

 

‘가평대대’와 ‘가평퍼레이드’를 취재하기 위해 본지 취재팀은 지난 4월 타운스빌(Townsville)에 다녀왔다. 한국 교민들은 많이 모르지만 의외로 호주 뉴스들을 접해온 호주인들은 ‘가평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다.

 

가평전투는 1951년 4월 23일부터 25일까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영국으로 구성된 영연방군 27여단이 서울을 탈환하려고 춘계 대공세를 퍼부은 중공군과 가평에서 맞붙은 전투이다.

 

1951년 4월, 중공군은 춘계 대공세를 펼치며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특히 한국군 6사단을 격파한 중공군 118사단은 4월 23일과 24일 이틀 동안 전략적으로 용이한 가평천 골짜기를 통해 서울-춘천간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연합군의 전선을 갈라놓고 수도 서울을 탈환하려고 했다.

 

대공세를 펼치며 남하하던 중공군 118사단 선두 연대는 가평을 신속히 점령할 목적으로 가평 계곡을 따라 진격하던 중 호주군의 방어에 기세가 꺾였다.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가 가평 504 고지에 배치되어 숫자적으로 10배가 넘는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다.

 

▲ 1951년 4월 24일 가평 전투 현장 그림이 제3대대(가평대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중공군은 가평전투에서 4천 명 이상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호주군 1개 대대가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던 중공군 1개 사단을 이틀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물리치는, 전쟁 역사상 믿기 어려운 전과를 올린 것이다.

 

한국 전쟁사에서는 당시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가 가평에서 중공군을 막지 못했다면 한국전쟁의 양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전투로 가평 전투에 참전한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훈장을 받았다. 이후로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가평대대’(Kapyong Battalion)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리고 ‘가평, Kapyong’은 호주인들에게 ‘희생’과 ‘영광’이라는 단어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이 전투를 기념하고 희생된 분들을 기리기 위해 매해 4월 24일이 되면 ‘가평퍼레이드’를 개최해 왔다.

 

▲ 가평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 부터 부대훈장을 수여받고 이후 가평대대라는 별칭이 붙었다.     

 

또한 이때 가평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새롭게 정착하면서 새로운 개발지역일 경우 아직 길 이름이 명명되지 않은 지역이 있으면, 자신이 사는 동네의 길 이름에 가평(Kapyong)을 붙여 지역 카운슬에 등록하였다. 이렇게 ‘Kapyong’ 이름이 붙은 ‘가평길’(Kapyong St)이 호주 전국에 걸쳐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무려 10곳이나 되고 있다(혹시 Kapyong St, Rd, Cres, Line, Lane 등 가평길을 발견한 독자들은 본지로 연락을 주기 바란다).

 

호주에 ‘가평길’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가? 그것도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무려 10곳이나 되고,‘가평다리’(Kapyong Bridge)도 두 곳에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놀라운 일이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호주에 있는 ‘가평길’을 취재하고 ‘가평전투’에 참전한 용사들을 인터뷰하여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기 위해 ‘가평 프로젝트’팀이 출발된 것이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가평프로젝트 팀은 지난 4월 23일 타운스빌로 날아가 ‘가평퍼레이드’와 ‘가평대대’를 취재하고 자세히 보도했다(자세한 내용은 지난 2022년 6월호 크리스찬 리뷰 참조). 그때 권순형 발행인은 안타깝게도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함께 동행하지 못했다.

 

그때는 정성택 영상감독과 영상중심의 취재였지만 이번에는 지난번 취재의 부족했던 부분도 보충하고 사진촬영도 필요하여 10월 11일 기자는 권 발행인과 함께 두 번째 타운스빌로 향했다.

 

▲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는 매년 4월 24일 가평 퍼레이드를 개최하고 있다.

 

가평대대와 제3대대 박물관

 

시드니에서 타운스빌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시드니에서 타운스빌까지 거리는 2천76km로 운전해서 가려면 무려 2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이다. 비행기도 시드니에서 타운스빌로 바로 가는 직항은 각 항공사 별로 하루에 한 편씩 밖에 제공되지 않는다. 아마도 이용 승객이 많지 않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기자 일행은 10월 11일 오전 10:50 비행기 출발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주 그렇듯이 비행기가 30분 지연되었다는 메시지가 모발폰으로 전송되었다. 코로나 이후 비행기 연착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다음날은 아예 우리가 타고 올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브리즈번에서 하루 숙박을 하고 다음 날 새벽 첫 비행기를 타고 시드니에 도착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많이 타 보았지만 아예 비행기가 취소되는 이런 황당한 일을 겪어 보기는 처음이다.

 

▲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병영안에 있는 박물관 입구.     © 크리스찬리뷰

 

▲ 한국 전쟁 관련 유품들이 가득한 박물관 내부.     © 크리스찬리뷰

 

라바락 병영(Lavarack Barrack) 위병소에 도착한 후 봅에게 연락했다. 봅은 군인을 위병소에 보내 기자 일행이 부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제3대대 박물관의 정식 명칭은 왕립 호주 연대 제3대대 박물관이다(The 3rd Battalion, Royal Australian Regiment Museum). 지난 기사에서도 밝혔지만 제3대대 박물관의 외관은 여타 다른 박물관처럼 대리석으로 지어진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박물관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차라리 야전 박물관이란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그러나 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전시 물품에 대해서는 어느 박물관의 전시물품보다도 진귀한 내용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봅은 캔버라 전쟁박물관에서 방문한 큐레이터와 리서치 연구원들에게 뭔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봅은 기자 일행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한 후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캔버라 전쟁박물관에서 이곳 전시 물품들에 대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제3대대 박물관의 전시 자료들이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캔버라 팀들을 위한 안내가 끝나자 봅은 반갑게 기자 일행을 맞이했다. 지난 4월에 보고 6개월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간 전화통화를 여러 번 하면서 그의 목소리가 익숙해진 까닭일 것이다.

 

우리는 봅 바커스 씨에게 가평 프로젝트 모자를 선물했다. 작은 선물이지만 그는 모자를 받아들고 직접 써보며 “Wow, excellent! That’s a beauty!”를 외치며 어린아이 마냥 즐거워 했다.

 

▲ 제3대대 박물관 설립 초기 자원봉사자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봅 바커스(Bob Bakkers) 어니 밀링톤(Ernie Millington), 베리 턴볼(Barry, Turnball), 존 미첼(John Mitchell)    

 

큐레이터 봅 바커스 씨는 원래는 군인이었다. 그는 6년간 군에서 복무하고 제대한 후 목수일을 배우고 나중에 건축 빌더가 되었다.

 

그리고 건축으로 돈을 모은 후 비교적 이른 나이인 48세에 은퇴하고 전쟁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전쟁역사 부대에 자원해 그곳에서 전쟁역사를 배우며 전쟁역사 큐레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박물관을 그의 동료들과 함께 직접 세우고 제3대대 전투와 관련된 많은 전쟁 유물들을 수집해서 이곳에 전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 책상에 놓여 있는 박물관 설립 초기 자기동료들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일일이 설명을 해주었다.

 

사진의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봅 바커스(Bob Bakkers), 어니 밀링톤(Ernie Millington), 베리 턴볼(Barry, Turnball), 존 미첼(John Mitchell)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이들 모두는 제3대대 박물관을 세우기 위해서 초기에 자원봉사자로 일한 사람들이다.

 

안타깝게도 이들 가운데 어니 밀링톤은 5년 전에 죽었고, 베리 턴볼은 다른 주로 이사를 해서 현재 본인과 존 미첼이 일을 하는데 최근에 존 미셀이 많이 아프다고 가슴 아파했다.

 

다행히 자신과 이름이 같은 봅 다비넷(Bob Dabinett)과 빌 털리(Bill Thurley)씨가 현재 자원봉사로 도와주고 있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이들의 노력으로 박물관의 전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곳 박물관에는 제3대대가 참전했던 전쟁의 상흔과 역사들을 담은 진귀한 물품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이곳에는 가평전투와 관련된 가평전투 코너가 따로 준비되어 있을 정도이다.

 

제3대대가 가평에서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막아냄으로 서울을 방어하고 한국전쟁의 승기를 잡게 한 공로로 미국 트루먼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받은 표창장 원본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봅 바커스 씨는 가평전투의 공로로 제3대대가 미국 투르먼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원본 표창장과 표창장 말미에 있는 투르먼 대통령의 친필 사인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운 듯 소개해 주었다.

 

전시된 물건 가운데 찰스 그린 중령이 사용하던 포탄에 찢어진 텐트도 있다. 찰스 그린 중령은 제3대대 대대장으로 1950년 10월 30일 ‘달천강’ 근처에서 다음 전투를 준비하며 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중 북한군이 쏜 포탄이 그린 중령의 텐트 옆에 터지며 포탄 파편에 맞아 사망했다.

 

▲ 찰스 그린 중령이 사용하던 텐트에 북한군의 포탄이 떨어져 그린 중령이 사망했다. 70년이 지났지만 찢어진 텐트에 핏자국이 선명하다.     © 크리스찬리뷰

 

그린 중령의 피묻고 찢겨진 텐트는 그린 중령의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었는데 가족들이 제3대대 박물관에 기증하여 한국전쟁의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되고 있다.

 

▲ 한국전에 참전한 재3대대 부대 안에 가평 라인스가 있다.    © 크리스찬리뷰

 

봅은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구급박스를 가리키며 이 구급박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구급함인데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고, 제3대대가 한국전에도 가지고 가서 사용했고 심지어 월남전까지 참전했던 유서 깊은 구급함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 재3대대 부대안에 마량산 로드에 병사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이외에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오직 제3대대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자료들이 이곳 박물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권 발행인이 박물관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는 동안 기자는 봅 바커스 씨를 간단히 인터뷰했다.

 

제3대대(가평대대)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 인터뷰

 

- 먼저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봅 바커스(Bob Bakkers)이고 현재 왕립 호주연대 제3대대 박물관 수석 큐레이터입니다. 현재 타운스빌에서 파트너 킴 플레니긴(Kim Flinigin)과 함께 살고 있고 오래전에 죽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아들은 퀸즈랜드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고,제 파트너는 양로 서비스(Aged Care)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 군 복무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 주십시오.

 

“저는 1980년 3월, 제 나이 18세 때 왕립 호주 제2/4 연대에 보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6년간 군에서 보병(Infantry)으로 복무한 후 1986년도에 3월에 제대했습니다. 제대할 때 계급은 상병(Corporal) 입니다.”

 

- 제3대대 박물관에서 일한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그리고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나요?

 

▲ 한국전쟁에서 부상당한 호주 군인들이 야전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 사진을 비롯해 박물관에는 많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제3대대 박물관은 제가 설립했습니다. 물론 건물은 부대 건물을 사용했지만 전시 물품과 내용들은 저의 땀과 노력들이 배어 있습니다.

 

제3대대가 시드니 남부 홀스워디(Holsworthy)에 주둔하고 있다가 2011년 말에 타운스빌로 이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제3대대는 새롭게 박물관이 필요한 상황에서 저에게 6주만 봉사해 달라고 부탁해서 왔는데 벌써 11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1986년에 제대한 후 목공을 배워 처음에는 목수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건축 빌더 공부를 해서 빌더가 된 후 건축을 많이 해서 돈을 많이 모았습니다. 그리고 48세에 조기 은퇴를 했습니다.

 

▲ 3대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한국전쟁 관련 유품들.     © 크리스찬리뷰

 

제가 은퇴할 무렵 타운스빌 시내에 북부 퀸즈랜드 군 박물관(Army Museum North Queensland) 건물을 건축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은퇴 후 전쟁역사에 관심이 많아 전쟁 역사 부대(War History unit)에 자원해서 호주군이 참전한 전쟁역사를 공부했습니다.

 

군 박물관 건축 경험도 있고 전쟁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제3대대에서 저에게 박물관 설립을 부탁했습니다. 처음에는 6주만 부탁해서 왔는데 계속 남아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물론 저 개인적으로 역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제3대대는 알다시피 가평전투를 포함해서 자랑스러운 전쟁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3대대 전쟁역사를 연구하고 알리고 개발하는 것은 저에게도 보람된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둘씩 귀한 물품들을 수집하고 역사들을 정리해가면서 저 자신에게도 성취감을 많이 주고 있습니다.”

 

- 제3대대 박물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이나 감동되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한 번은 제3대대를 전역한 베테랑(veteran)이 저희 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한참을 둘러보더니 저한테 와서 자기가 1979년에 제3대대에서 복무했었는데 그때 자기의 사진이 여기 전시되어 있다고 고맙다고 했습니다.

 

매해마다 제3대대 대대원은 중대별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들을 저희가 다 보관하고 있습니다. 저도 40년 전에 제2/4 보병연대에서 근무했었는데 2/4 연대 박물관에 가면 제 사진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 박물관의 자랑 중 한 가지는 제3대대에 복무했던 군인들의 사진들을 전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베트남전 이전 것부터 최근 것까지 제3대대 병사들의 단체 사진들을 다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런 박물관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어제도 제3대대 베테랑 한 분이 방문했는데 그는 1989년에 복무했는데 자기 사진을 발견하고는 매우 감격했습니다.

 

▲ 제3대대 박물관의 자랑은 베트남전 이전 것부터 최근 것까지 제3대대에 복무했던 군인들의 사진을 전부 보관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 가평전투 50주년 기념 명판 (plaque, 2001년 4월)    


- 혹시 가평전투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이 계신가요? 그리고 현재 제3대대 군인 가운데 아버지나 가족 중에 가평전투에 참전한 군인도 있는지요?

 

“가평전투에 참전한 참전용사 가운데 현재 15명이 호주에 생존해 계십니다. 그분들 가운데 울릉공에 조셉 베즈코프(Joseph Vezgoff) 옹은 제가 직접 만나 보았고 그분에게서 그림 선물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대에 로마스 레노이(Lomas Lenoy)이등병이 있는 데 로마스 레노이 이등병 할아버지인 스태포드 케니 제임스 레노이(Stafford Kenny James Lenoy) 병장이 한국전쟁 때 제3대대 A중대 기관총병으로 가평전투에 참전했다가 4월 24일 전사했습니다.

 

봅은 기자에게 전시되어 있는 스태포드 레노이 병장 기사가 실린 신문 스크랩을 보여 주었다. 레노이 병장은 호주 원주민(Aborigine) 출신 호주 군인이었다. 원주민도 한국을 위해 싸웠다는 사실이 더욱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에필로그

 

가평 프로젝트 다큐팀이 타운스빌에 다시 방문한다고 하니까 한국에 있는 김영미 PD가 두 가지 부탁을 했다. 한 가지는 제3대대 박물관에 있는 찰스 그린 중령의 피묻은 텐트의 피를 채취하여 DNA 테스트를 하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 피가 진짜 그린 중령의 혈흔으로 확인되면 다큐멘터리가 감동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제3대대 군인 가운데 아버지나 가족 중에 가평전투에 참전한 군인이 있는 병사들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두 가지 미션을 봅 바커스 씨에게 부탁을 했다. 한가지는 바로 해결되었다. 현재 제3대대 부대원 가운데 가평전투 참전 용사의 가족 출신 병사가 있는 것이었다. 김영미 PD가 부탁했을 때 설마 그런 확률이 있을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었는데 다행히 가평전투에 참전한 기관총 사수 레노이 병장의 손자 레노이 이등병이 제3대대에 근무하고 있는 것이다.

 

▲ 호주 원주민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해 가평전투에서 전사한 스태포드 케니 제임스 레노이 병장.     © 크리스찬리뷰

 

▲ 레노이 병장의 손자 로마스 레노이 이등병이 현재 제3대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 크리스찬리뷰


인터뷰를 마치고 봅의 사무실을 나와 박물관을 보니 권 발행인이 쪼그려 앉아 무엇인가를 열심히 찍고 있었다. 무얼 찍느냐고 물어보니 제3대대가 한국전쟁시 참전해 싸웠던 전투일지라고 약간 격앙된 어조로 얘기한다.

 

▲ 한국전쟁에 참전한 제3대대의 전쟁 일기장. 시간별로 기록해 놓은 내용들을 6개월 단위로 묶어 책자로 만들었다.     

 

▲ 가평 전투 당일 4월 23일 전투 상황 기록 일부     © 크리스찬리뷰

 

▲ 가평 전투 당일 4월 24일 전투 상황 기록 일부     © 크리스찬리뷰


70년도 넘은 전투일지가 손상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넘기며 진지하게 한 장 한 장 카메라에 담는 권 발행인의 모습 또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런 열정과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지고, 가평 다큐멘터리가 완성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으로 전달되기를 기대해 본다.〠

 

글/주경식|크리스찬리뷰 편집국장

사진/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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